검은 옷의 남자와 그가 주운 고양이
김리원 지음 / 북레시피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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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넌 남들이 못 보는 세상을 보는 거야.”

세상에 백 명의 사람이 있다면 백 개의 사연이 존재하는 법. 이 책 [검은 옷의 남자와 그가 주운 고양이]는 어둡고 안타까운 사연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속삭이듯 들려준다. 탄생의 비밀을 품은 채 외롭고 고단한 나날을 보내는 주인공 정원 신부부터, 친아버지가 아파트에서 떨어뜨리는 바람에 장애를 입어 청소년기를 휠체어에서 보내야 했던 미호까지, 이 책의 등장인물들은 보통 사람들은 살면서 한 번도 겪지 않을 것 같은 비극적인 사건과 사고를 겪어야만 했다. 처음 몇 장 읽었을 땐, 자살 귀의 원혼을 달래어 무사히 이승을 떠나보내는 정원 신부의 멋진 활약을 그린 심령 판타지물일 거라 생각했지만,, 이 책은 그리 단순하지 않았다.

이 책은 "자살한 사람들에게선 비 냄새가 난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된다. 문장에서 알 수 있듯, 주인공 정원은 영매 체질을 가지고 있어서 귀신을 볼 수 있고 그들의 냄새를 맡을 수도 있으며 자신의 몸에 그들을 실을 수도 있다. 특히 자살자들은 정원 신부가 이리저리 피해 다님에도 불구하고 끈덕지게 그에게 말을 건다. 그들이 그에게 말을 거는 이유는 살아생전 가족이나 지인에게 다 하지 못한 말들을, 정원을 통해서 그들에게 전하기 위함이다. 사실 귀신에게 몸을 빌려준다 하더라도 10초 밖에 버티지 못하기 때문에 별 소용은 없지만, 여러 이유로 안타깝게 세상을 저버린 그들을 외면할 수 없는 신부는 그때마다 몸을 빌려주게 된다.

정원이 귀신과 한 몸이 될 때마다 그는 극심한 육체적 고통에 시달려야 한다. 그러나 어쨌건 그를 통해 한을 푼 자살 귀들은 원래 갔어야 할 자리, 즉 저승이건 천국이건 그곳으로 가게 된다. 평생 죽은 이들의 끔찍함에 시달려야 한다니 실제로 그런 사람들의 삶은 얼마나 피곤할까?라는 생각이 든 대목이었다. 이렇듯 죽은 이들이 가야 할 길을 안내하는 역할을 맡았으나, 사실 정원 신부는 살아있지만 온전히 살아있길 거부하는 한 사람을 몇 년째 돌봐주고 있기도 하다. 8년 전 아버지에 의해서 아파트 5층에서 떨어져 장애를 갖게 된 소녀 미호, 마침 사고 현장에 있었던 정원 신부는 그녀를 외면하지 않고 양부모님이 물려준 유산을 써가면서까지 미호를 계속 돌봐준다.

그러나 참으로 아이러니한 게 세상일이라고 누가 이야기했었던가? 사고 당시 친아버지가 미호에게 잘못된 기억을 심어주는 바람에 그녀를 구하려던 정원 신부는 졸지에 성범죄자로 낙인찍히게 되었고, 미호는 자신을 정성껏 돌봐주는 신부의 마음을 하나도 모른 채 평생 그를 증오하며 살아가게 된다. 그 어떤 치료를 하고 그 어떤 수술을 해도 낫지 않았던 미호의 마비 증세. 그러나 마지막 치료라고 생각하고 보낸 미국에서 받은 새로운 기법의 수술로 인해서 미호는 기적적으로 다시 걸을 수 있게 된다. 하지만 미호의 치유에 한시름 놓았던 정원은 건강 검진차 찾아간 병원에서 자신이 무려 4가지 암에 걸려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데......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나에게 이 책 속 등장인물들의 기구한 사연과 비극적인 삶의 경험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어린 나이에 범죄를 당하고 정원 신부를 낳은 어머니의 이야기도 그렇고 친아버지로부터 목숨을 위협당한 미호의 이야기도 그랬다. 소설 전반적으로 짙고 어두운 안개가 깔려있는 느낌이라고 할까? 정원 신부가 귀신이든, 산 사람이든, 평생 다른 사람들을 위해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그 모든 상황들이 이해가 되었다. 세상의 모든 부정적이고 어두운 것들을 껴안고 보살펴서 밝은 세상으로 내보내려는 그의 끈질긴 인내심이 느껴졌다. 그의 마음이 통한 걸까? 소설 말미에 이르러, 정원 신부에 대한 모든 오해가 풀리면서 거칠고 날카로운 길고양이처럼 정원 신부를 할퀴어대던 미호는 그에 대한 다른 마음을 품게 된다.

사실 좀 힘들고 어려운 책이었다. 심령 판타지에서 미스터리 스릴러로 흘러가나 했더니.. 결국엔 사랑 이야기로 끝이 났다. 예상했던 바가 아니었기에 좀 허무하기도 했다. 그러나 남의 아픔을 끌어안으려다 본인이 아픈 인생을 보내게 된 정원 신부와 그에 대한 오해로 평생을 보낼 뻔했던 길고양이 미호의 엎치락뒤치락하는 사연은 굉장히 드라마틱 하고 감동적이었다. 책을 다 읽고 덮고 나니 가슴속 뭔가 묵직한 것이 차오른다. 생판 남을 위해 시간 쓰고 돈 쓰고 애쓰고 노력하는 세상 모든 바보들을 위해, 오늘 밤 마음속으로 기도를 올려본다.

* 출판사가 제공한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를 작성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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