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드
니타 프로스 지음, 노진선 옮김 / 마시멜로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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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당신의 메이드입니다. 당신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죠.

하지만 당신은 저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나요?"

약간 이상하지만 사랑스럽고 조금 모자라는 듯 하지만 사실 알고 보면 너무나 똑똑하고 어진 사람 몰리. 분명 천재적으로 타고 났지만 멍청한 주위 사람들이 그녀의 가치를 알리 없다. 청소를 너무나 사랑하여 호텔방을 항상 완전 무결한 상태로 돌려놓는 것을 삶의 모토로 삼은 듯한 그녀 몰리. 이 책은 몰리를 위한, 몰리에 의한 그리고 몰리의 소설이다. 굉장히 매력적인 캐릭터인 몰리로 독자들을 사로잡는 소설 [메이드] 그런데 이렇게 착하기 그지 없는 몰리가 살인 사건의 주요 용의자라니.. 이게 무슨 일일까?

스물 다섯 살 몰리 그레이는 리젼시 호텔에서 일하는 것을 너무나 자랑스러워한다. 지금은 돌아가신 할머니가 항상 하시던 말, " 네가 하는 일을 사랑하면 넌 평생 하루도 일하는 게 아니야." 몰리는 화려한 장식이 빛나는 호텔방들을 청소하는게 너무 신나고 청소 카트를 민다는 사실도 너무 좋고 유니폼을 입은 자신의 모습도 너무나 사랑한다. 그런데 사실 몰리가 호텔에서 청소하는 일을 사랑하는데는 한가지 이유가 있다. 다른 사람들의 말과 행동 그리고 표정에 숨겨진 의미를 읽어내지 못하는 그녀. 사회 생활과 대인 관계에 어려움이 있기에 남들의 눈에 쉽게 띄지 않는 직업인 메이드를 택한 것일 수도 있다.

호텔 직원들은 그녀를 로봇을 의미하는 룸바나 몰리와 돌연변이를 합해서 몰연변이 혹은 예의충이라고 부르며 그녀를 따돌린다. 매우 예의바르고 성실한 그녀, 단지 세상을 다르게 본다는 이유만으로 왕따를 당하는 몰리가 가여웠다. 잔머리를 굴려서 다른 메이드들의 팁을 빼돌리거나 딱 보기에도 몰리를 이용하는 로드니 같은 인간들이 뒤에서 그녀를 씹어제끼는게 보이는 듯 했다. 하지만 그래도 도어맨 프레스턴같은 분들이 몰리를 걱정하며 지켜보고 있다. 세상에 자기 편이 딱 1명만 있어도 사실 든든하고 세상은 살만한 것이다.

그런데.. 운명은 왜 이렇게 가혹한 것인지... 어느날 몰리는 호텔방에서 뻣뻣해진 채 죽어있는 찰스 블랙을 발견한다. 블랙과 그의 젊은 새 아내 지젤은 주로 스위트룸에 묵는 부유한 고객이다. 몰리는 거칠고 무례한 블랙은 싫어했지만 자신을 진심으로 대해주는 지젤을 좋아하고 있었다. 지젤을 진정한 친구로 여기기까지 했는데 이런 일이... 호텔에 경찰들과 형사가 드나들고 조사를 하는 가운데 호텔은 사람이 갑작스럽게 죽어나간 현장을 구경하려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그러던 어느날, 블랙의 사인이 약물 중독이 아니라 질식사일 가능성이 밝혀지면서 상황은 급박하게 돌아간다. 또한 방 안에서 발견된 몰리의 지문들 ( 청소를 했으니 당연한 말이지만 ) 죽은 블랙의 목에 묻어 있는 청소 세제 ( 몰리가 블랙이 죽었는지 어떤지 확인했으니 당연 ) 그리고 더욱 더 중요한 건, 그 방에서 주운 블랙의 결혼 반지를 몰리가 전당포에 맡겼다는 사실 ( 월세가 급했던 몰리의 실수 ) 이런 모든 정황이 몰리가 블랙의 돈을 노리고 그를 죽였을 수 있다는 것을 가리켰고, 그 뿐 아니라 스타크 형사가 누군가에게 받은 결정적인 제보가 있다. 가여운 몰리, 열심히 청소한 죄 밖에 없는데 이렇게 범인으로 몰리다니.. 그녀를 궁지에 몬 사람은 누구고 이제 몰리는 어떻게 여기서 빠져나올 것인가?

소설의 주요 화자는 몰리이므로 독자들의 그녀의 눈으로 세상을 보게 된다. 몰리 캐릭터는 굉장히 독특하고 신선하게 다가온다. 사람들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기 때문에 처음에는 거짓말쟁이나 협잡꾼을 걸러내지 못한다. 이렇게 험한 세상을 살아나가기 굉장히 힘들어 보여 조금 안타깝고 답답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할머니의 고결함과 성실함 그리고 청소에 대한 신념을 물려받은 몰리는 무질서한 세상을 바로잡아나가는 일종의 전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전체 줄거리는 살인 사건의 용의자로 누명을 쓴 한 메이드 이야기이지만 그것보다 몰리라는 개성넘치는 주인공 덕분에 책이 너무 재미있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 대해 너무 쉽게 판단을 내린다. 세상을 조금 다르게 본다고 하여 혹은 말투가 이상하다거나 조금 모자라게 보인다고 해서 누군가를 멀리하기도 한다. 이 책은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고 서로의 다름에 대한 이해와 사랑이 더 필요함을 이야기하고 있다. 스스로에 대한 가치감, 자존감 그리고 우정과 가족의 의미를 좀 더 일깨워준 좋은 소설이라는 생각이 든다. 너무너무 재미있었던 소설 [메이드] 

* 출판사에서 제공한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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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니시드
김도윤 지음 / 팩토리나인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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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이 되자 남편은 평소처럼 출근했다

그리고... 돌아오지 않았다.”

부산 국제 영화제 ACFM 선정작 [배니시드] 평범했던 한 주부의 삶이 남편의 실종으로 크게 휘청이게 된다. 세상을 살다 보면 별별 일이 다 있지만 남편이 살인 사건의 피의자라면? 그런 피의자가 한 마디 말도 없이 연기처럼 사라져버린다면? 이 책은 남편이 저지른 ( 혹은 저질렀을 거라 의심되는 ) 사건과 실종을 다루고 있지만 실제 주인공은 아내 정하이고 주로 다루는 내용도 실종 이후에 정하가 들려주는 10년간의 삶이다. 당사자는 없고 오직 독자들은 정하의 입으로 들려주는 진실을 듣게 되는데,, 과연 그게 진실일까?

평범한 젊은 주부였던 정하. 남편이 벌어오는 쥐꼬리만한 월급으로 20평대 조금 넘는 전세 아파트에서 어린아이들과 전투하듯 살아가고 있다. 그에 비해 이웃 동의 60평대 아파트에서 사는 한 여인은 팔자가 너무 좋아서인지 쓰레기장에서 남들을 감시하며 살아간다. 기분 탓인지 뭔지는 몰라도 왠지 정하는 그녀가 남들에 비해 유독 자신을 더 노려보고 감시한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퀭한 눈빛에 푹 들어간 뺨을 가진 그녀는 오늘도 정하가 버린 쓰레기들을 뒤지고 있다.

남편과 서로 대화가 없어진 지 오래되었다. 어느 순간부터 가족에 대해 관심을 끊은 듯한 남편. 그러던 어느 날 충격적인 일이 발생한다. 새벽에 들어온 남편이 욕실에서 엄청난 양의 피가 묻은 양복을 발로 밟으며 빨고 있던 것.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한 호프집에서 살인 사건이 발생했다는 뉴스가 TV를 통해 보도된다. 피를 뒤집어쓴 채 빨래를 하고 있던 남편... 그 옆에 놓여있던 칼... 그리고 호프집 살인 사건. 그러나 정하는 가정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모른 척하기로 결심하고 연기를 시작한다. 하지만 정하의 결심도 무색하게 아무렇지도 않게 출근했던 남편이 사라져버리는데...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배니시드]는 남편이 사라진 이후 10년 넘게 이어지는 정하의 세월을 담는다. 무책임하게도 아무런 설명 없이 가족을 떠나버린 남편. 정하는 닥치는 대로 여러 일을 하면서 아이들을 키워낸다. 그러는 가운데 그녀는 쓰레기장 빌런의 남편을 알게 되는데, 그는 정하의 아이들에게 치킨을 사주며 호감을 얻더니 어느새 그녀의 삶으로 조금씩 들어와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정하는 그녀가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정하를 이상한 방식으로 스토킹했던 60평대 사모님... 자꾸만 스치게 되는 사모님의 젊고 잘생긴 남편... 그리고 그녀의 죽음! 

점점 서로를 소 닭 보듯 데면데면 대하게 되는 부부... 40평대 60평대 아파트들 사이에서 더 초라해지는 20평대의 삶.... 돌아다니며 소문을 퍼뜨리는 자들과 그런 소문에 휘둘리는 자들... 그리고 삶에 책임지지 않는 빌런들... 이 책은 한국 사회를 너무나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기 때문에 책을 읽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내가 만약에 정하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과연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숨기고 감춘 채 살아갈 수 있었을까? 정말 스릴러라는 게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싶다. 깜빡이 없이 들어오는 자동차처럼 불행은 예고 없이 다가온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재미있었던 작품 [배니시드] 그 흔한 살인 장면 하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손에 땀을 쥐게 하는 팽팽한 긴장감이 작품 전반에 흐른다. 진실을 전달할 당사자는 사라지고 독자들은 주인공과 함께 추측과 논리로 퍼즐을 끼워 맞춰야 된다. 도대체 이게 머선 일이고? 와 같은 궁금증 때문에 책을 헌번 들면 놓을 수가 없다. 한마디로 엄청나게 좋은 페이지 터너라는 말씀. 내가 생각했던 결말은 아니었으나 그랬기에 오히려 진부하지 않게 느껴졌던 작품이다. 신은 인간에게 역할을 부여했다. 어쩌면 각자가 맡은 역할을 너무도 충실히 해냈다는 점에서 조금 소름이었던 소설 [배니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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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사뱀 메소드 안전가옥 오리지널 22
정이담 지음 / 안전가옥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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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태생이 세상의 언저리,

은밀한 지하임을 인정하고 매번 허물을 벗기

끝없이 사는 뱀처럼 매 순간의 사인을 찬양하기

상사뱀이라는 단어의 뜻을 찾아보니 1. 상사병으로 죽은 남자가 뱀으로 변하여 연인을 따라다니는 경우 2. 무섭도록 끈덕지고 집착이 강한 사람을 의미한다고 한다. 또한 메소드는 극중 인물과 혼연일체가 되는 사실주의적 연기를 뜻한다고 하니 [상사뱀 메소드]는 이 소설의 제목으로 아주 적절하다. 책 내용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주인공 미옥이 답답한 영화계를 뛰쳐나와 삶이라는 보다 큰 무대에서 스스로 만든 연극 혹은 영화를 찍는다는 것이다. 이 책을 미옥의 모노드라마라고 불러도 무방할 정도로 책 속 그녀의 광기 어린 연기가 빛을 발한다.

뱀을 잡아 탕으로 끓여 내는 생사탕 가게를 운영했던 부모님을 둔 미옥은 비록 가난했지만 빼어난 미모로 인해 일찍이 영화계로 흘러들어가게 된다. 젊었던 시절 [상사뱀]이라는 영화를 통해 남자를 유혹하는 연기로 인기를 얻었던 미옥. 이후 치명적인 성적 매력을 부각시키는 팜므 파탈 이미지로만 스스로를 소비하게 된다. 진짜 연기를 하고 싶었던 미옥은 그런 남성 위주의 영화판에 염증을 느끼게 되고, 나이가 들면서 그런 역할마저도 미옥에게 주어지지 않게 되자, 지친 미옥은 쉬워 보이는 길을 택하게 되는데....

여주인공의 극적인 감정 변화, 토해내듯 내뱉는 광기 어린 연극 대사 같은 말들, 그리고 과장된 연기 같은 행동.. 앞서 말했듯 이 책은 미옥이 직접 연출을 맡고 주연까지 한 모노드라마 같다. 서사구조가 분명히 존재하지만 이마저도 미옥이라는 1인칭 화자가 내뱉는 독백에 의해 전달되므로 처음엔 분명하지 않아 보였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장황하게 늘어놓는 미옥의 장광설은 독자의 이성을 마비시켜 그녀의 세계에 푹 빠지게 만든다. 마치 뱀의 독 같다. 그러고 보니 이 책의 거대한 주제가 바로 "뱀"이다. 태초에 이브를 꼬여내어 아담과 함께 선악과를 따먹게 한 교활한 뱀. 치명적인 독으로 언제든 상대를 죽일 수 있는 뱀. 탈피를 하기에 새롭게 거듭날 수 있는 뱀.... 뱀이 미옥인가? 미옥이 뱀인가?

과거 미옥에게는 영현이라는 동성 연인이 있었다. 영현은 감독이었기에 미옥을 빛나게 만들 수 있는 존재였고 둘은 뱀이라는 공통 관심사가 있어서 빨리 서로에게 푹 빠질 수 있었다. 미옥은 영현이 쓴 [사의 찬미]라는 대본을 너무나 좋아했고 언젠가는 그 영화에 출연할 수 있으리라 믿었지만 결혼을 원치 않았던 영현과 결국 헤어지게 된다. 남자를 사랑하지 않았지만 현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 의사 철중을 사랑하는 척 연기한 미옥. 결국 그녀는 철중과의 보금자리, 즉 에덴으로의 입성에 성공하게 된다. 그러나 겉으로 순진하고 어리어리해 보였던 철중은 치명적인 비밀을 품고 있었고 끝내 마음속에서 밀어내지 못한 과거의 연인 영현은 결혼 후에도 끈덕지게 미옥의 곁으로 파고들게 되는데.... 거짓과 위선으로 똘똘 뭉친 미옥의 결혼... 그리고 여기저기서 출몰하는 영현 (혹은 그녀의 환상) 과연 미옥은 결혼 생활을 끝까지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상사뱀 메소드는 끝까지 읽어봐야 한다. 벌어지는 사건의 진상은 마지막에 제3자인 형사의 눈으로 진술될 때 확연히 드러난다. 어딘가 정상적이지 않은 듯한 미옥의 눈으로 보는 세상, 그녀의 입으로 듣는 세상은 보랏빛 광기로 가득하다. 술에 취해 중간중간 기억이 끊어진 자의 진술로 이루어진 듯한 이야기, 혹은 미옥이 꿈을 꾸는 건가? 싶을 만큼 몽환적인 분위기가 이야기 전반에 깔려 있다. 사실 소설의 중반에 가서까지도 이야기의 전반적 상황이 잘 이해되진 않았다. 집 안 곳곳 CCTV를 달고 미옥을 감시하는 철중, 철중의 창고를 자기 목숨처럼 지키는 애꾸눈 정원사, 독일에 신혼여행을 간 미옥에게 마치 스파이 활동하듯 자신의 영화 대본을 넘겨준 영현...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너무 많았지만 결국 모든 것은 마지막에 다 드러난다. 

그 어떤 로맨틱 스릴러보다도 더 진한 향기와 치명적인 매력을 드러냈던 소설 [상사뱀 메소드] 상상과 현실이 혼재하는 무대 위에서 미옥은 혼신의 힘을 다하여 연기를 펼친다. 연인은 자신을 버렸고 세상과 영화는 남성 위주로 돌아갔다. 차가운 현실을 견디지 못해서 미옥은 철중과의 결혼이라는 에덴동산을 택했으나,, 글쎄,, 재벌 2세인 철중의 집안은 겉으론 알 수 없는 비밀과 기만 그리고 위선으로 가득 찬 곳이었다. 사람들이 수없이 죽어나간 그곳에서 미옥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마도 일생일대의 연기가 아닐지... 삶을 무대로 한 미옥의 소름 끼치는 연기가 돋보였던 소설 [상사뱀 메소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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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러 - 경계 위의 방랑자 클래식 클라우드 31
노승림 지음 / arte(아르테)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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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그 속되고 아름다운 것을 모두 포용한 영원한 방랑자

구스타프 말러의 자취를 따라가다

여행을 통해 거장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전문가의 해박한 배경지식도 함께 소개되는 클래식 클라우드, 이번 편에서는 천재적인 지휘자이자 작곡가였던 거장 구스타프 말러에 대한 이야기가 소개되었다. 혹시 별자리가 쌍둥이자리가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이중성을 지녔던 남자 말러. 오페라극장의 지휘자로 머물렀던 빈의 음악계에 크나큰 돌풍을 일으킨 개혁가지만 정작 아내인 알마의 음악 활동을 전면 금지했던 가부장적 의식을 지녔던 말러는, 자신의 작품에서도 특유의 이중성이 나타난다. 행복한 가운데에서도 비극적 운명을 떠올리게 만드는 음악 세계를 선보인 말러. 행진곡과 같은 발랄하고 씩씩한 곡조 뒤에 한없이 비극적인 장송곡이 이어진다고 하니 그의 음악이 가진 아이러니가 기대되었다. 책을 읽으며 그의 1번 교향곡 : 거인을 감상했는데, 불꽃같이 살다간 한 작곡가의 고뇌에 찬 땀방울이 귀에 들리고 눈에 보이는 듯했다.

말러는 1860년 에코 칼리슈테에서 태어나 이흘라바에서 유소년기를 보냈다고 한다. 선술집을 운영하고 사업에 수완이 있었던 아버지에 비해서 어머니를 닮아 감수성이 예민하고 몽상가의 기질이 컸던 소년 말러. 아무래도 아버지와는 별로 사이가 좋지 않았던 듯 보였다. 삶의 환희와 비극을 동시에 떠올리게 만든다는 그의 음악적 모순은 아마도 유소년기 성장 환경에서 온 듯하다. 아버지는 결혼 생활 내내 다른 여자와 불륜을 저지르면서 어머니를 학대했고 많은 형제자매들이 병으로 목숨을 잃는 비극을 경험한 말러. 참으로 아이러니한 것은, 그가 이런 비극적 상황을 경험할 때마다 거리에서는 너무나 발랄하고 신나는 행진곡이 울렸다고 하니 그가 경험했을 감정의 부조화가 대단히 깊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 가장 괴롭고 슬픈 상황에 가장 즐거운 배경음악이 울려 퍼지는 정서 부조화의 순간은 이 집에 비일비재했다.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비극이 부재할 때도 이 집안은 그리 화목한 편이 아니었다. (.....)


어느 날 구스타프는 부모가 사납게 싸우는 모습에 겁에 질려 집 밖으로 뛰쳐나갔다.

무작정 나오고 보니 유랑 밴드가 <오 그대 사랑스러운 아우구스틴>이라는 오스트리아 민요를 경쾌하게 연주하고 있었다. (...)


말러의 음악에서 슬프고 비극적인 선율에 반드시 해학적인 웃음이 뒤섞이는 이유는 이처럼 어린 시절 가장 슬프고 우울한 순간에 즐거운 노래가 배경음악으로 존재하는 상황을 일상적으로 경험했기 때문이다." - 58쪽-

그의 음악 세계를 지배한 키워드가 "세속" 과 " 죽음"이라면 그의 평생을 지배한 키워드는 바로 "유대인과 완벽주의" 가 아닐까 싶다. 당시 유럽 사회의 분위기상 유대인은 어딜 가나 환영받지 못했다. 평소에 종교 활동에 무심했고 나중에는 가톨릭으로 전향하기까지 했건만 말러는 내내 반유대주의자들의 차별과 따돌림을 겪어야 했다. 평생 이방인처럼 살아야 했기에 단원들과 대중들의 평가에 연연하지 않았던 그는 당시 빈 음악계에 만연했던 슐람페라이 문화 ( 안정주의, 대충대충 하려는 문화 )를 결코 용납하지 않았다. 리허설에 열심인 단원, 노래와 연기를 동시에 하는 성악가를 원했고 성에 차지 않는 사람은 가차 없이 해고했다고 하니 말러가 이끌었던 무대는 얼마나 긴장감이 맴돌았을지 상상이 된다. 함께 일했던 사람들은 당연히 힘들었겠지만 내가 관객이었다면? 말러가 이끄는 오케스트라 연주가 있다면 두말 않고 달려갔을 것 같다.

" 그의 지휘는 빈에서의 첫 임기 1년 내내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그의 지휘봉은 독이 잔뜩 오른 뱀처럼 쏜살같이 앞으로 내달렸다. 오른손으로는 서랍장 제일 깊숙한 곳 밑바닥을 뒤져 올리듯 오케스트라로부터 음악을 끌어냈다. (...) 지휘 도중 가시에라고 찔린 듯 의자에서 풀쩍 뛰어올랐고, 활활 타오르는 불꽃처럼 온몸을 움직였다." - 101쪽 -

독재자이자 완벽주의자였던 말러. 그러나 한편으로는 현실도피적이고 몽상가 기질이 있었던 말러에게 자연은 특히나 좋은 음악적 영감의 원천이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휴가 때마다 호수나 숲이 있는 곳에 작은 오두막을 짓고 작곡 활동에 몰두한다. 그는 다른 사람에게 호수가 자신에게 말을 건다고 할 만큼 호수와 주변 환경에 푹 빠져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아침마다 수영을 하고 주변 산책을 하며 영감을 얻었는데, 하루는 괴성을 지르는 까마귀 소리를 듣고 교향곡에 필요한 모티프를 끄집어내기도 했다고 한다. 빈 최고의 오페라 지휘자로 평가받고 동시에 최악의 작곡가로 평가절하를 당하는 등 여러 희로애락을 겪는 와중에도 휴가 때면 철저하게 자신을 고립시켜가며 작곡에 몰두했던 말러. 평생 현실에 적응하기 힘들었던 말러에게 자연은 휴식과 영감을 모두 안겨준 것으로 보였다.

말러를 수식하는 키워드는 많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두드러지는 것이 바로 " 천재적인 지휘자이자 작곡가 " 가 아닐까?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다면 말러가 미치광이 감독이라고 불렸다던 시절, 빈 궁정 오페라 극장으로 한번 가보고 싶다. 그의 완벽주의가 얼마나 완성도 높은 연주를 이끌었을지.. 상상만 해도 굉장했을 것 같다. 함께 일했던 단원들이나 반유대주의자들은 말러를 좋아하지 않았겠지만 관객들은 얼마나 행복했을 것인가? 이 책을 통해서 그가 얼마나 위대한 지휘자이자 작곡가였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평생 그를 따라다닌 유대인이라는 꼬리표.. 어릴 때 경험했던 형제자매들의 이른 죽음과 불행했던 가정 환경... 딸 마리아의 죽음과 아내 알마의 남성 편력 ... 비극적 인생은 그를 우울과 몽상으로 이끈 동시에 그를 독창적인 예술 세계로 이끌었다는 생각이 든다. " 그는 만물 안에서 살았고, 만물은 그의 안에서 살았다."라는 제자의 말처럼 만물을 두루 포용한 음악 세계를 보여주었던 말러가 바로 현대 음악을 대표하는 선구자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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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령들이 잠들지 않는 그곳에서
조나탕 베르베르 지음, 정혜용 옮김 / 열린책들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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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령님, 오셨다면 <딱> 소리를 내주세요.

거리의 마술사 제니, 우당탕 기상천외한 수사에 뛰어들다

거리의 마술사인 제니의 모험 이야기 [심령들이 잠들지 않는 그곳에서] 남들의 눈을 속이는 환상술사, 즉 마술사가 같은 계열인 심령술사들의 속임수를 밝혀낸다는 설정이 다소 모순적이긴 하나 대단히 설득력 있게 다가온 작품. 또한 조나탕 베르베르가 한국인이 너무나 좋아하는 작가인 그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아드님이란 사실도 정말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어쩐지... 메인 스토리 사이에 끼워 넣은 탐정 지침서와 돌아가신 제니 아버님이 일기처럼 남긴 마술의 길, 즉 여러 마술 기법에 대한 안내서를 보고 조금 아버지 냄새가 난다 했지.

이야기는 1888년 뉴욕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주인공 제니는 매우 재능 있지만 아직은 거리에서 공연할 수밖에 없는, 가진 것 없는 젊은 마술사이다. 구경꾼들이 내는 몇 푼의 동전들이 그녀가 벌어들이는 소득의 전부이다. 그야말로 하루 벌어서 하루 먹고사는 입장. 그러던 어느 날 제니는 그동안 그녀의 재능을 눈여겨봐온 핑커턴 탐정 사무소 소장 로버트 핑커턴을 만나게 된다. 그는 제니가 솔깃할 만한 제법 큰돈을 제시하면서 그녀를 탐정으로 고용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는데. 그녀가 할 일은 바로 심령 술사인 폭스 자매의 속임수를 밝혀내는 것!

마술사로서의 재능도 뛰어나지만 눈치도 빠르고 굉장히 똑똑한 제니. 그녀는 자신의 인간적인 매력과 친화력을 이용하여 폭스 자매 중 좀 더 젊은 쪽인 마거릿과 친구가 되는데 성공한다. 이제 폭스 자매가 심령술을 하는 동안 어떻게 "딱" 소리를 내는지 알아내고 그들의 속임수를 만천하에 알릴 일만 남았다. 소매에 기계를 감추는 걸까? 아님 관절로 소리를 내는 걸까? 하지만 일은 제니가 생각했던 것처럼 쉽게 풀리지 않는다. 심령술에 대해서 공격하는 무리들이 많았던 지라 폭스 자매는 평소에 그에 대비해왔고, 또 제니를 마땅찮아 하는 어떤 인물의 방해공작에 의해서 그녀의 첫 번째 프로젝트는 실패로 돌아간다. 결국 제니와 로버트는 폭스 자매들 중 실종된 것으로 알려진 케이트 폭스를 찾아내기 위해 백방으로 수소문하게 되는데......

소설의 배경은 1800년대 후반 뉴욕이다. 남북전쟁 이후 약간 어수선한 미국의 분위기를 아주 생생하게 담고 있는 소설이다. 당시에 심령주의 운동이 굉장히 인기가 있었고 거의 미국을 휩쓸다시피했지만, 미국이 어떤 나라인가? 청교도가 지배하는 국가로써 기독교 단체의 힘이 굉장히 강했기 때문에 폭스 자매들처럼 심령을 부린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억압하는 분위기도 존재했다. 사람들이 심령주의에 물들지 않기를 바랐던 여러 종교들이 로버트 핑커턴과 같은 탐정들을 시켜서 심령 술사들을 무너뜨릴 수 있는 방법을 계속 모색해왔던 것. 중간중간 작가가 끼워 넣은 핑커턴 탐정 지침서를 통해 당시에 있었던 마녀사냥과 같은 역사적 사실들이 독자들에게 소개된다는 면도 흥미진진하다.

조나탕 베르베르의 소설 [심령들이 잠들지 않는 그곳에서]는 여러 면에서 독자들에게 큰 만족감을 선사한다. 여성의 인권이 바닥이었던 당시 아버지의 길을 이어받아 꿋꿋하게 마술사의 길을 가는 제니. 마술에 대한 그녀의 순수한 열정과 속임수를 금방 파악해 내는 영리함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돈 때문에 탐정 일을 하게 되지만 위기에 대처하는 능력이라던가 사람들 속에 금방 녹아들어 가는 친화력 등등은 로버트 핑커턴이 그녀를 고용한 이유를 말해주었다. 그뿐 아니라 1800년대 후반 미국을 휩쓸었던 심령주의 분위기는 폭스 자매의 인기를 통해 잘 드러나고 그런 분위기를 억압하려고 애썼던 종교 단체들이 오히려 더 전전긍긍했다는 느낌마저 받았다. 

심령술사 활동에 환멸을 느끼고 숨어버린 케이트를 결국 찾아내는 로버트 핑커턴과 제니.. 과연 그들은 폭스 자매의 거짓과 심령술이 사기라는 것을 밝혀낼 수 있을까? 베르베르 집안 특유의 재기 발랄한 문체와 흥미로운 배경지식이 돋보이는 소설 [심령들이 잠들지 않는 그곳에서]

* 출판사가 제공한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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