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러 - 경계 위의 방랑자 클래식 클라우드 31
노승림 지음 / arte(아르테)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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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그 속되고 아름다운 것을 모두 포용한 영원한 방랑자

구스타프 말러의 자취를 따라가다

여행을 통해 거장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전문가의 해박한 배경지식도 함께 소개되는 클래식 클라우드, 이번 편에서는 천재적인 지휘자이자 작곡가였던 거장 구스타프 말러에 대한 이야기가 소개되었다. 혹시 별자리가 쌍둥이자리가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이중성을 지녔던 남자 말러. 오페라극장의 지휘자로 머물렀던 빈의 음악계에 크나큰 돌풍을 일으킨 개혁가지만 정작 아내인 알마의 음악 활동을 전면 금지했던 가부장적 의식을 지녔던 말러는, 자신의 작품에서도 특유의 이중성이 나타난다. 행복한 가운데에서도 비극적 운명을 떠올리게 만드는 음악 세계를 선보인 말러. 행진곡과 같은 발랄하고 씩씩한 곡조 뒤에 한없이 비극적인 장송곡이 이어진다고 하니 그의 음악이 가진 아이러니가 기대되었다. 책을 읽으며 그의 1번 교향곡 : 거인을 감상했는데, 불꽃같이 살다간 한 작곡가의 고뇌에 찬 땀방울이 귀에 들리고 눈에 보이는 듯했다.

말러는 1860년 에코 칼리슈테에서 태어나 이흘라바에서 유소년기를 보냈다고 한다. 선술집을 운영하고 사업에 수완이 있었던 아버지에 비해서 어머니를 닮아 감수성이 예민하고 몽상가의 기질이 컸던 소년 말러. 아무래도 아버지와는 별로 사이가 좋지 않았던 듯 보였다. 삶의 환희와 비극을 동시에 떠올리게 만든다는 그의 음악적 모순은 아마도 유소년기 성장 환경에서 온 듯하다. 아버지는 결혼 생활 내내 다른 여자와 불륜을 저지르면서 어머니를 학대했고 많은 형제자매들이 병으로 목숨을 잃는 비극을 경험한 말러. 참으로 아이러니한 것은, 그가 이런 비극적 상황을 경험할 때마다 거리에서는 너무나 발랄하고 신나는 행진곡이 울렸다고 하니 그가 경험했을 감정의 부조화가 대단히 깊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 가장 괴롭고 슬픈 상황에 가장 즐거운 배경음악이 울려 퍼지는 정서 부조화의 순간은 이 집에 비일비재했다.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비극이 부재할 때도 이 집안은 그리 화목한 편이 아니었다. (.....)


어느 날 구스타프는 부모가 사납게 싸우는 모습에 겁에 질려 집 밖으로 뛰쳐나갔다.

무작정 나오고 보니 유랑 밴드가 <오 그대 사랑스러운 아우구스틴>이라는 오스트리아 민요를 경쾌하게 연주하고 있었다. (...)


말러의 음악에서 슬프고 비극적인 선율에 반드시 해학적인 웃음이 뒤섞이는 이유는 이처럼 어린 시절 가장 슬프고 우울한 순간에 즐거운 노래가 배경음악으로 존재하는 상황을 일상적으로 경험했기 때문이다." - 58쪽-

그의 음악 세계를 지배한 키워드가 "세속" 과 " 죽음"이라면 그의 평생을 지배한 키워드는 바로 "유대인과 완벽주의" 가 아닐까 싶다. 당시 유럽 사회의 분위기상 유대인은 어딜 가나 환영받지 못했다. 평소에 종교 활동에 무심했고 나중에는 가톨릭으로 전향하기까지 했건만 말러는 내내 반유대주의자들의 차별과 따돌림을 겪어야 했다. 평생 이방인처럼 살아야 했기에 단원들과 대중들의 평가에 연연하지 않았던 그는 당시 빈 음악계에 만연했던 슐람페라이 문화 ( 안정주의, 대충대충 하려는 문화 )를 결코 용납하지 않았다. 리허설에 열심인 단원, 노래와 연기를 동시에 하는 성악가를 원했고 성에 차지 않는 사람은 가차 없이 해고했다고 하니 말러가 이끌었던 무대는 얼마나 긴장감이 맴돌았을지 상상이 된다. 함께 일했던 사람들은 당연히 힘들었겠지만 내가 관객이었다면? 말러가 이끄는 오케스트라 연주가 있다면 두말 않고 달려갔을 것 같다.

" 그의 지휘는 빈에서의 첫 임기 1년 내내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그의 지휘봉은 독이 잔뜩 오른 뱀처럼 쏜살같이 앞으로 내달렸다. 오른손으로는 서랍장 제일 깊숙한 곳 밑바닥을 뒤져 올리듯 오케스트라로부터 음악을 끌어냈다. (...) 지휘 도중 가시에라고 찔린 듯 의자에서 풀쩍 뛰어올랐고, 활활 타오르는 불꽃처럼 온몸을 움직였다." - 101쪽 -

독재자이자 완벽주의자였던 말러. 그러나 한편으로는 현실도피적이고 몽상가 기질이 있었던 말러에게 자연은 특히나 좋은 음악적 영감의 원천이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휴가 때마다 호수나 숲이 있는 곳에 작은 오두막을 짓고 작곡 활동에 몰두한다. 그는 다른 사람에게 호수가 자신에게 말을 건다고 할 만큼 호수와 주변 환경에 푹 빠져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아침마다 수영을 하고 주변 산책을 하며 영감을 얻었는데, 하루는 괴성을 지르는 까마귀 소리를 듣고 교향곡에 필요한 모티프를 끄집어내기도 했다고 한다. 빈 최고의 오페라 지휘자로 평가받고 동시에 최악의 작곡가로 평가절하를 당하는 등 여러 희로애락을 겪는 와중에도 휴가 때면 철저하게 자신을 고립시켜가며 작곡에 몰두했던 말러. 평생 현실에 적응하기 힘들었던 말러에게 자연은 휴식과 영감을 모두 안겨준 것으로 보였다.

말러를 수식하는 키워드는 많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두드러지는 것이 바로 " 천재적인 지휘자이자 작곡가 " 가 아닐까?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다면 말러가 미치광이 감독이라고 불렸다던 시절, 빈 궁정 오페라 극장으로 한번 가보고 싶다. 그의 완벽주의가 얼마나 완성도 높은 연주를 이끌었을지.. 상상만 해도 굉장했을 것 같다. 함께 일했던 단원들이나 반유대주의자들은 말러를 좋아하지 않았겠지만 관객들은 얼마나 행복했을 것인가? 이 책을 통해서 그가 얼마나 위대한 지휘자이자 작곡가였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평생 그를 따라다닌 유대인이라는 꼬리표.. 어릴 때 경험했던 형제자매들의 이른 죽음과 불행했던 가정 환경... 딸 마리아의 죽음과 아내 알마의 남성 편력 ... 비극적 인생은 그를 우울과 몽상으로 이끈 동시에 그를 독창적인 예술 세계로 이끌었다는 생각이 든다. " 그는 만물 안에서 살았고, 만물은 그의 안에서 살았다."라는 제자의 말처럼 만물을 두루 포용한 음악 세계를 보여주었던 말러가 바로 현대 음악을 대표하는 선구자가 아닌가 싶다.

* 출판사가 제공한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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