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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니시드
김도윤 지음 / 팩토리나인 / 2023년 2월
평점 :
“ 아침이 되자 남편은 평소처럼 출근했다
그리고... 돌아오지 않았다.”
부산 국제 영화제 ACFM 선정작 [배니시드] 평범했던 한 주부의 삶이 남편의 실종으로 크게 휘청이게 된다. 세상을 살다 보면 별별 일이 다 있지만 남편이 살인 사건의 피의자라면? 그런 피의자가 한 마디 말도 없이 연기처럼 사라져버린다면? 이 책은 남편이 저지른 ( 혹은 저질렀을 거라 의심되는 ) 사건과 실종을 다루고 있지만 실제 주인공은 아내 정하이고 주로 다루는 내용도 실종 이후에 정하가 들려주는 10년간의 삶이다. 당사자는 없고 오직 독자들은 정하의 입으로 들려주는 진실을 듣게 되는데,, 과연 그게 진실일까?
평범한 젊은 주부였던 정하. 남편이 벌어오는 쥐꼬리만한 월급으로 20평대 조금 넘는 전세 아파트에서 어린아이들과 전투하듯 살아가고 있다. 그에 비해 이웃 동의 60평대 아파트에서 사는 한 여인은 팔자가 너무 좋아서인지 쓰레기장에서 남들을 감시하며 살아간다. 기분 탓인지 뭔지는 몰라도 왠지 정하는 그녀가 남들에 비해 유독 자신을 더 노려보고 감시한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퀭한 눈빛에 푹 들어간 뺨을 가진 그녀는 오늘도 정하가 버린 쓰레기들을 뒤지고 있다.
남편과 서로 대화가 없어진 지 오래되었다. 어느 순간부터 가족에 대해 관심을 끊은 듯한 남편. 그러던 어느 날 충격적인 일이 발생한다. 새벽에 들어온 남편이 욕실에서 엄청난 양의 피가 묻은 양복을 발로 밟으며 빨고 있던 것.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한 호프집에서 살인 사건이 발생했다는 뉴스가 TV를 통해 보도된다. 피를 뒤집어쓴 채 빨래를 하고 있던 남편... 그 옆에 놓여있던 칼... 그리고 호프집 살인 사건. 그러나 정하는 가정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모른 척하기로 결심하고 연기를 시작한다. 하지만 정하의 결심도 무색하게 아무렇지도 않게 출근했던 남편이 사라져버리는데...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배니시드]는 남편이 사라진 이후 10년 넘게 이어지는 정하의 세월을 담는다. 무책임하게도 아무런 설명 없이 가족을 떠나버린 남편. 정하는 닥치는 대로 여러 일을 하면서 아이들을 키워낸다. 그러는 가운데 그녀는 쓰레기장 빌런의 남편을 알게 되는데, 그는 정하의 아이들에게 치킨을 사주며 호감을 얻더니 어느새 그녀의 삶으로 조금씩 들어와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정하는 그녀가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정하를 이상한 방식으로 스토킹했던 60평대 사모님... 자꾸만 스치게 되는 사모님의 젊고 잘생긴 남편... 그리고 그녀의 죽음!
점점 서로를 소 닭 보듯 데면데면 대하게 되는 부부... 40평대 60평대 아파트들 사이에서 더 초라해지는 20평대의 삶.... 돌아다니며 소문을 퍼뜨리는 자들과 그런 소문에 휘둘리는 자들... 그리고 삶에 책임지지 않는 빌런들... 이 책은 한국 사회를 너무나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기 때문에 책을 읽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내가 만약에 정하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과연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숨기고 감춘 채 살아갈 수 있었을까? 정말 스릴러라는 게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싶다. 깜빡이 없이 들어오는 자동차처럼 불행은 예고 없이 다가온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재미있었던 작품 [배니시드] 그 흔한 살인 장면 하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손에 땀을 쥐게 하는 팽팽한 긴장감이 작품 전반에 흐른다. 진실을 전달할 당사자는 사라지고 독자들은 주인공과 함께 추측과 논리로 퍼즐을 끼워 맞춰야 된다. 도대체 이게 머선 일이고? 와 같은 궁금증 때문에 책을 헌번 들면 놓을 수가 없다. 한마디로 엄청나게 좋은 페이지 터너라는 말씀. 내가 생각했던 결말은 아니었으나 그랬기에 오히려 진부하지 않게 느껴졌던 작품이다. 신은 인간에게 역할을 부여했다. 어쩌면 각자가 맡은 역할을 너무도 충실히 해냈다는 점에서 조금 소름이었던 소설 [배니시드]
* 출판사에서 제공한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