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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사뱀 메소드 ㅣ 안전가옥 오리지널 22
정이담 지음 / 안전가옥 / 2023년 1월
평점 :
우리의 태생이 세상의 언저리,
은밀한 지하임을 인정하고 매번 허물을 벗기
끝없이 사는 뱀처럼 매 순간의 사인을 찬양하기
상사뱀이라는 단어의 뜻을 찾아보니 1. 상사병으로 죽은 남자가 뱀으로 변하여 연인을 따라다니는 경우 2. 무섭도록 끈덕지고 집착이 강한 사람을 의미한다고 한다. 또한 메소드는 극중 인물과 혼연일체가 되는 사실주의적 연기를 뜻한다고 하니 [상사뱀 메소드]는 이 소설의 제목으로 아주 적절하다. 책 내용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주인공 미옥이 답답한 영화계를 뛰쳐나와 삶이라는 보다 큰 무대에서 스스로 만든 연극 혹은 영화를 찍는다는 것이다. 이 책을 미옥의 모노드라마라고 불러도 무방할 정도로 책 속 그녀의 광기 어린 연기가 빛을 발한다.
뱀을 잡아 탕으로 끓여 내는 생사탕 가게를 운영했던 부모님을 둔 미옥은 비록 가난했지만 빼어난 미모로 인해 일찍이 영화계로 흘러들어가게 된다. 젊었던 시절 [상사뱀]이라는 영화를 통해 남자를 유혹하는 연기로 인기를 얻었던 미옥. 이후 치명적인 성적 매력을 부각시키는 팜므 파탈 이미지로만 스스로를 소비하게 된다. 진짜 연기를 하고 싶었던 미옥은 그런 남성 위주의 영화판에 염증을 느끼게 되고, 나이가 들면서 그런 역할마저도 미옥에게 주어지지 않게 되자, 지친 미옥은 쉬워 보이는 길을 택하게 되는데....
여주인공의 극적인 감정 변화, 토해내듯 내뱉는 광기 어린 연극 대사 같은 말들, 그리고 과장된 연기 같은 행동.. 앞서 말했듯 이 책은 미옥이 직접 연출을 맡고 주연까지 한 모노드라마 같다. 서사구조가 분명히 존재하지만 이마저도 미옥이라는 1인칭 화자가 내뱉는 독백에 의해 전달되므로 처음엔 분명하지 않아 보였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장황하게 늘어놓는 미옥의 장광설은 독자의 이성을 마비시켜 그녀의 세계에 푹 빠지게 만든다. 마치 뱀의 독 같다. 그러고 보니 이 책의 거대한 주제가 바로 "뱀"이다. 태초에 이브를 꼬여내어 아담과 함께 선악과를 따먹게 한 교활한 뱀. 치명적인 독으로 언제든 상대를 죽일 수 있는 뱀. 탈피를 하기에 새롭게 거듭날 수 있는 뱀.... 뱀이 미옥인가? 미옥이 뱀인가?
과거 미옥에게는 영현이라는 동성 연인이 있었다. 영현은 감독이었기에 미옥을 빛나게 만들 수 있는 존재였고 둘은 뱀이라는 공통 관심사가 있어서 빨리 서로에게 푹 빠질 수 있었다. 미옥은 영현이 쓴 [사의 찬미]라는 대본을 너무나 좋아했고 언젠가는 그 영화에 출연할 수 있으리라 믿었지만 결혼을 원치 않았던 영현과 결국 헤어지게 된다. 남자를 사랑하지 않았지만 현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 의사 철중을 사랑하는 척 연기한 미옥. 결국 그녀는 철중과의 보금자리, 즉 에덴으로의 입성에 성공하게 된다. 그러나 겉으로 순진하고 어리어리해 보였던 철중은 치명적인 비밀을 품고 있었고 끝내 마음속에서 밀어내지 못한 과거의 연인 영현은 결혼 후에도 끈덕지게 미옥의 곁으로 파고들게 되는데.... 거짓과 위선으로 똘똘 뭉친 미옥의 결혼... 그리고 여기저기서 출몰하는 영현 (혹은 그녀의 환상) 과연 미옥은 결혼 생활을 끝까지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상사뱀 메소드는 끝까지 읽어봐야 한다. 벌어지는 사건의 진상은 마지막에 제3자인 형사의 눈으로 진술될 때 확연히 드러난다. 어딘가 정상적이지 않은 듯한 미옥의 눈으로 보는 세상, 그녀의 입으로 듣는 세상은 보랏빛 광기로 가득하다. 술에 취해 중간중간 기억이 끊어진 자의 진술로 이루어진 듯한 이야기, 혹은 미옥이 꿈을 꾸는 건가? 싶을 만큼 몽환적인 분위기가 이야기 전반에 깔려 있다. 사실 소설의 중반에 가서까지도 이야기의 전반적 상황이 잘 이해되진 않았다. 집 안 곳곳 CCTV를 달고 미옥을 감시하는 철중, 철중의 창고를 자기 목숨처럼 지키는 애꾸눈 정원사, 독일에 신혼여행을 간 미옥에게 마치 스파이 활동하듯 자신의 영화 대본을 넘겨준 영현...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너무 많았지만 결국 모든 것은 마지막에 다 드러난다.
그 어떤 로맨틱 스릴러보다도 더 진한 향기와 치명적인 매력을 드러냈던 소설 [상사뱀 메소드] 상상과 현실이 혼재하는 무대 위에서 미옥은 혼신의 힘을 다하여 연기를 펼친다. 연인은 자신을 버렸고 세상과 영화는 남성 위주로 돌아갔다. 차가운 현실을 견디지 못해서 미옥은 철중과의 결혼이라는 에덴동산을 택했으나,, 글쎄,, 재벌 2세인 철중의 집안은 겉으론 알 수 없는 비밀과 기만 그리고 위선으로 가득 찬 곳이었다. 사람들이 수없이 죽어나간 그곳에서 미옥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마도 일생일대의 연기가 아닐지... 삶을 무대로 한 미옥의 소름 끼치는 연기가 돋보였던 소설 [상사뱀 메소드]였다.
* 출판사에서 제공하는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