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의 밤
블레이크 크라우치 지음, 이은주 옮김 / 푸른숲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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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하는 모든 생각, 우리가 내릴 수도 있는 모든 선택이 

새로운 세계로 분기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무서울 지경이야. ” - 182쪽 -

주인공 제이슨 데슨은 작은 대학의 물리학 교수이자 아름다운 아내와 사랑스런 아들을 둔 평범한 가장이다. 그러던 어느날, 친구 라이언의 큰 성공을 축하하고 돌아오던 길에 괴한의 공격을 받아 납치되는 제이슨. 순식간에 벌어진 납치 사건 속에서 제이슨은 탈출을 노리지만 쉽지 않다. 괴한은 정체모를 이상한 약물을 제이슨에게 주입하게 되고 제이슨은 그대로 정신을 잃고 만다. 그런데 이게 웬일일까? 깨어난 세상과 현실은 뭔가 앞뒤가 맞지 않다. 모든 것이 뒤집혀버린 듯한 현실... 내가 누군지, 여기는 도대체 어디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이상한 현실.. 그는 어떻게 이 상황을 극복하고 사랑하는 사람들 곁으로 돌아갈 것인가?

이 책에는 과학 개념에 무지한 나 같은 일반인에게는 다소 어렵게 들리는 개념들이 등장한다. 다른 세계로 가는 금속 상자 (슈뢰딩거의 고양이 이론이 나오는데 무슨 소리인지 전혀 알 수 없다 ) 그리고 한번은 들어본 듯한 다중우주 이론과 양자 역학 그리고 암흑 물질 이론 등등의 다소 어려운 과학적 개념이 등장한다. 이렇게만 이야기하면 이 책이 꽤 지루할 거라고 지레짐작할 수 있지만 천만의 말씀! 다소 호흡이 짧은 문장과 강렬한 묘사가 어우러지면서 굉장한 속도감을 일으키는 소설이다. 

무시무시한 속도감도 있지만 독자들의 호기심을 매번 자극한다는 면에서 이 책은 굉장히 흡인력이 있다. 사실 다소 불친절하게 시작되는 첫 장면 때문이기도 한 것 같다. 주인공 제이슨이 갑자기 낯선 자에게 공격을 받고 낯선 세계로 끌려와서 어벙벙해 있는 걸 보니, 아무런 단서가 없는 상황에서 "나" 라는 정체성을 어렵게 되찾아야 했던 또 다른 "제이슨", 영화 “ 본 아이덴티티” 속 주인공 제이슨 본이 생각났다. 제이슨 본이 그랬던 것처럼, 이 책의 주인공 "제이슨" 도 칠흑 같은 어둠 속을 헤매듯 사건의 전말을 파악해야 한다. 이렇게 주인공을 아무렇게나 던져놓다니... 하지만 이 또한 재미의 요소이다!

이 책은 공상 과학 소설을 표방하고 있지만 사실 스릴러처럼 읽히기도 한다. 앞서 말했듯 굉장히 속도감이 있고 범죄가 속출하며, 화려한 액션도 펼쳐진다. 굉장히 예측 불가능하다는 면도 소설의 재미를 배가시키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다음 스토리 전개에 대해서 더 털어놓을 수가 없다. 내 생각에는 일단 독자들이 이 “30일의 밤” 이라는 바다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는 경험을 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제이슨을 관찰하는 것보다는 직접 제이슨이 되어보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SF, 추리, 스릴러 등등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요소 이외에도 이 책의 중심을 차지하는 것이 있는데 그게 바로 “로맨스”이다. 어떻게 보면 가장 핵심이라고 볼 수 있다. 첫 장면에서 제이슨을 납치한 괴한이 그에게 묻는 말이 있는데 그게 바로 “사는 게 행복해?” 이다. 소설 속 모든 사건들은 어쩌면 그의 이 한마디에서 시작된다고 볼 수 있다. 모든 SF에는 철학적 요소가 좀 있는데 그런 면에서 이 책도 한번 생각해 볼 여지를 남긴다고 할 수 있다.

만약 우리가 인생에서 지금과 다른 선택을 했다면 우리는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가지 않은 길,, 그 곳엔 과연 무엇이 기다리고 있었을까?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우리는 어디까지 희생을 할 수 있을까? 다중 우주 속 다른 세계에서 살아가던 다른 "나" 가 갑자기 찾아와서 지금까지 쌓아올린 "나"의 삶을 빼앗으려 한다면" ? 읽다보면 결국 스스로에게 많은 질문을 하게 만드는 흥미로운 소설이다. 약 30일간 다중우주에서 펼쳐지는 제이슨과 다른 제이슨들의 쫓고 쫓기는 이야기. 진짜 제이슨은 과연 본인의 세계로 안전하게 돌아갈 수 있을까? 너무나 재미있었던 소설 "30일의 밤" 꼭 읽어보라고 추천하고 싶은 소설이다.

* 출판사에서 제공한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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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미스터리한 일상 와카타케 나나미 일상 시리즈
와카타케 나나미 지음, 권영주 옮김 / 내친구의서재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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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벚꽃을 싫어하는 사람의 비밀과

한여름의 나팔꽃 살인사건,

마물이 나타나는 가을의 황혼녘을 지나

수상한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받기까지. "

회사를 그만둘 생각을 하고 있었던 주인공 와카타케 나나미. 그녀의 속마음을 읽어내기라도 한 건지 회사에서는 그녀에게 사내보 “르네상스”의 편집장을 맡아달라는 지시를 한다. 사내보를 읽어 본 직원들은 내용이 다소 심심하니 오락성을 조금 추가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와카타케에게 전달하게 되고, 그녀는 고민 끝에 한 대학 선배에게 매달 단편 소설을 써달라는 부탁을 하게 된다. 선배는 그녀에게 다른 익명의 작가를 소개하게 되고 그 작가는 매달 기묘하면서도 오싹한, 매우 독특한 단편들을 매달 보내오기 시작하는데.....

대표적인 코지 미스터리인 “살인곰 서점 시리즈”로 오랫동안 호평을 받아온 와카타케 나나미 작가의 젊은 시절 작품인 “나의 미스터리한 일상”을 읽었다. 약간 어설퍼 보이지만 추리 능력은 예리하기 그지 없는 탐정이 등장하여 범죄 사건을 해결했던 “살인곰 서점 시리즈” 와는 달리, 이 책에는 한 여름밤에 동네 친구들과 모여 나누면 좋을 듯한 괴담, 오컬트, 초자연적 미스터리 등등이 단편 소설 형식으로 실려 있다. 즉, 범죄 소설의 강점인 짜릿한 스릴과 긴장감은 조금 부족하지만 기묘하고 신비로운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감탄할 만한 이야기보따리가 바로 이 “나의 미스터리한 일상”인 것이다.

사내보는 1년 동안, 매달 발간되기에 이 책에는 총 12편의 단편 소설이 실린다. 익명의 작가는 계절과 매달의 느낌을 충분히 반영한 소설을 보내는데, 예를 들자면 4월에 발간된 사내보에 실린 단편 “벚꽃이 싫어"라는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한 맨션에서 벌어진 미스터리한 화재 사건을 다루고 있고, 8월의 단편 소설인 “사라져가는 희망” 은 연속적으로 악몽을 꾸다가 죽음을 맞게 된 한 젊은이의 이야기인데, 8월에 주로 피는 나팔꽃의 영혼이 누군가의 꿈에서까지 등장하여 정기를 앗아간다는, 다소 오싹한 이야기이다.

익명의 작가가 보내오는 각각의 소설은 서술자 “나” 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미스터리를 풀어내는 구조라서, 마치 작가에게 주어진 수수께끼를 작가와 함께 풀어내는 느낌이 들어서 굉장히 재미있었다. 그뿐 아니라, 각 미스터리는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접하게 되는 일들을 다루기에 상당히 친근하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예를 들자면 동네 야구팀의 사인이 왜 매번 상대팀에게 노출되는가? 부터 시작해서, 절에서 만난 범상치 않은 여인이 사실은 초현실적인 존재였다면? 그리고 케이블카에서 실종된 아이와 누에고치는 무슨 관계가 있는 걸까? 등등 각 이야기가 제시하는 수수께끼를 풀다 보면 어느새 책장이 술술 넘어가 있다.

그런데 이 소설의 진짜 결말은 각 이야기가 끝나는 지점이 아니다. 진짜 결말은 1년이 지나서 사내보가 끝나는 지점에서 가서야 비로소 이루어진다. 12편의 단편은 각각 다른 내용을 말하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서로 유기적으로 연관이 되어서 거대한 미스터리 구조를 이루고 있었던 것! 한마디로 각 단편 소설은 이 거대한 미스터리에 대한 힌트를 제공하는 열쇠라고나 할까? 마지막에 밝혀진 진실에 깜짝 놀랐고, 조용히 사내보만 만들었던 주인공 와카타케 나나미의 마지막 활약이 너무나 짜릿했다. 역시 잔잔하고 평화롭게 흘러가는 일상 속 비밀스런 미스터리를 잘 다루는 작가의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매달 주어지는 수수께끼를 풀어보고 싶다면? 각 이야기가 구성하는 거대한 미스터리를 풀어보고 싶다면? 꼭 읽어봐야할 책 [나의 미스터리한 일상]

*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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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차가운 일상 와카타케 나나미 일상 시리즈
와카타케 나나미 지음, 권영주 옮김 / 내친구의서재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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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말 미안해. 내 안에 어떻게도 할 수 없게 차가운 게 있어.

멈추려 해도 멈춰지지 않는 얼음장처럼 차가운 것.

이게 있는 한 난 가망이 없어."

일상의 평온함을 파고드는 불온한 사건들을 다루는 장르인 코지 미스터리, 대표적인 코지 미스터리인 “살인곰 서점 시리즈”로 유명한 작가 “와카타케 나나미”의 초기작인 “나의 차가운 일상”을 읽었다. 독특하게도 소설 속에 작은 소설이 들어있는 구조이고, 그 작은 이야기 속에 미스터리를 해결할 열쇠가 모두 들어가 있다. 이 “나의 차가운 일상”의 주인공 이름도 작가 이름과 같은 “와카타케 나나미”이다. 왠지 작가가 진짜로 겪었을 법한 이야기가 아닐까 싶어 더욱더 사실적이고 친근하게 다가온 소설, “나의 차가운 일상” 속으로 들어가 본다.

주인공 와카타케는 직장을 그만두고 휴식을 취하러 짧은 여행을 떠난다. 기차 안에서 큰소리로 누군가와 말다툼을 벌이는 여성을 발견한 그녀. 그런데 씩씩거리며 자리에서 일어선 그녀가 와카타케의 옆자리에 앉으면서 둘 사이의 인연이 시작된다. 외모도 굉장히 화려하고 발언도 솔직하기 그지없는 그녀의 이름은 이치노세 다에코. 부담스러운 성격이지만 왠지 그녀가 싫지 않았던 와카타케 나나미. 짧았던 여행지에서의 인연 이후 그녀를 잊어버리고 살고 있었는데 다에코가 갑자기 전화를 걸어와 크리스마스이브를 함께 보내자고 한다. 함께 이브를 보낼 남자들이 많을 것 같은 다에코의 제안.... 과연 그녀의 꿍꿍이가 과연 무엇일까?

크리스마스이브가 가까워지고 현재 아르바이트로 일하고 있는 술집에서 파티를 준비한다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와카타케는 다에코를 떠올리곤 그녀에게 전화를 건다. 그런데 그녀의 가족 중 한 사람인 것 같은 저음의 여성은 다에코가 자살을 기도했다는 짧은 말을 남긴 채 전화를 끊어버린다. 이후 와카타케는 우편함에서 다에코가 쓴 것 같은 “수기” 를 발견한다. 마지막 전화 통화에서 다이코가 내뱉었던 말, “ 회사에 관찰자가 있어”, “ 관찰자, 실행자, 지배자가 있어”라는 왠지 모르게 섬뜩한 마지막 말을 떠올리며 수기를 읽어보는 와카타케 나나미. 과연 그녀가 남긴 수기에는 어떤 내용이 있는 걸까?

여행길에서 잠시 스친 인연이 나에게 뭔가 중요한 “정보”가 담긴 듯한 자료를 남기고 자살을 시도했다면 기분이 어떨까? 그리고 자살을 시도하기 전에 기묘하고 소름 끼치는 “한 마디”를 남겼다면? 누구든지 그녀의 자살 시도에 대해 의문을 품지 않을까? 그녀는 자살을 한 걸까? 혹은 자살을 가장한 타살일까? 와카타케의 눈을 통해서 독자들은 다에코가 남긴 미스터리에 대한 단서 “수기”를 읽게 된다. 그 속에는 사이코패스라고 불러도 될 만한 한 남자의 소름 끼치는 만행과 고백이 누나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적혀 있고 그 남자가 얽혀있는 살인 미스터리를 좇는 한 여성의 이야기가 실려져 있다. 짧은 인연이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긴 친구 다에코가 남긴 미스터리를 해결하기 위해 주인공 와카타케 나나미가 나선다.

이 책 “나의 차가운 일상”은 “나의 미스터리한 일상” 과 마찬가지로 회사를 배경으로 한 미스터리이다. 아마도 작가가 젊었던 시절 회사에서 벌어진 모든 어두운 사건들을 경험하고 쓴 이야기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유부남과의 스캔들, 외모가 화려하고 자기 의견이 강한 여성을 따돌림 하는 사내 여직원들 등등 회사 내에서 흔히 벌어지는 시기와 질투 그리고 불륜 스캔들 등등의 음험한 뒷 이야기가 소설 속에서 펼쳐진다. 주인공와카타케 나나미는 다에코가 쓴 "수기" 속 살인 사건과 아마도 그와 관련되었을 듯한 다에코의 자살 미수 사건을 동시에 조사하던 가운데 생각지도 못했던 다에코에 대한 충격적인 진실을 접하게 되는데... 친구라고도, 아니라고도 할 수 없는 그녀, 다에코를 위해 뛰어든 사건에서 과연 와카타케가 마주할 진실은 과연 무엇일까? 어떤 이유에서건 차갑게 변해버린 사람들... 그 사람들 사이에서 얽히고 설킨, 약간은 섬뜩했던 이야기 [나의 차가운 일상]

* 출판사에서 제공하는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를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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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어가 제철 트리플 14
안윤 지음 / 자음과모음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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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지만 깊이 있는 메시지로 사람들의 마음을 파고드는 단편 소설집, 자음과 모음 출판사의 트리플 시리즈 14 - 방어가 제철 -을 읽게 되었다. 각 단편들은 "누군가의 죽음" 을 다루고 있지만 죽음 자체를 조명하기보다는 남겨진 사람들의 애도와 추모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허망한 죽음 앞에서 허둥거리지만 결국 산 사람은 어떻게든 일상을 꾸려나가야 한다. 크나큰 슬픔과 분노에 압도될 수도 있는 남겨진 자들이 어떻게 마음을 추스르는지를 보여주는 듯한 소설들. 사랑했던 사람들이 갑자기 곁을 떠나버렸을 때 느껴지는 그 헛헛함, 우리는 과연 무엇으로 그 빈 공간을 메울 수 있을까?

[방어가 제철]이라는 제목에 맞게 이 책에는 맛깔스러운 음식들이 등장한다. 누구나 그런 경험이 있지 않은가? 너무나 힘들고 지쳤을 때 엄마가 차려준 따뜻한 밥상에 큰 위로를 받았던 경험. 정갈한 반찬들과 든든한 밥 한 공기, 정성스럽게 차려진 밥상은 세상이 무너진 듯한 절망감을 극복할 수 있게 도와준다. 단편 [달밤]의 주인공은 생일을 맞이한 후배 소애가 육개장을 먹고 싶다고 하는 말을 듣고는, 양지머리를 푹 삶아 결을 따라서 뜯어내고 고사리, 토란, 대파를 팍팍 넣어 먹음직스러운 육개장을 끓어낸다. 재료 준비부터 요리까지 감각적으로 묘사해 내는 글을 읽다 보면 어느새 주인공이 차려낸 얼큰하고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육개장을 받아든 느낌이다. 절로 힘이 솟는다.

그녀는 육개장을 맛있게 먹는 소애를 보며 더 이상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은주를 떠올린다. 갑작스러운 은주의 죽음 소식을 들은 후 장례식에 가서 미지근한 육개장을 먹었던 주인공. 질긴 대파를 씹으며 은주에 대해 함부로 이야기하는 사람들에게 분노했던 그때를 떠올리며 그녀는 은주가 왜 그렇게 빨리 떠나야 했는지를 안타까워한다. 그랬기에 현실을 힘겹게 버텨내고 있는 소애를 위해 정성스러운 육개장을 끓여 낸 것인지도 모른다. 어떻게든 소애가 현실을 잘 살아가길 바라며. 그녀가 끓여 낸 것은 아마도 육개장이 아니라 사랑이었을지도 모른다.

" 살아있는 나는 이제 뭘 해야 할까. 언니가 없는데, 언니가 스스로 없기를 원했는데 살아 있는 나는 뭘 할 수 있을까. 살아 있는 나는, 살아 있으니 살아. 살아서 기억해. 네 몫의 삶이 실은 다른 삶의 여분이라는 걸 똑똑히 기억해. 그렇다고 너무 아끼지도 말고 너무 아까워하지도 말고, 살아 있는 나를 아끼지 말고 살아." (30쪽)

차마 버릴 수 없어 차곡차곡 모아뒀던 기억과 추억들.. 죽은 이를 잊지 못해 모아뒀던 추억들을 하나하나 떠나보내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등장한다. 단편 [방어가 제철]에서 주인공은 공사장에서 사고를 당해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한 오빠와 오빠의 절친 정오 그리고 자신이 젊은 시절 나누었던 추억을 차마 그냥 떠나보낼 수가 없다. 영화와 책 그리고 음악을 공유하며 열띤 한때를 공유했던 그들. 그러나 중심축이었던 오빠 영재는 없고 이제 정오와 주인공은 가끔 만나 싱싱한 방어 회를 먹으며 슬픔과 그리움을 달랜다. 그러는 가운데 조금씩 마음에 묻어두었던 아픔과 상처를 위로하는 그들. 배는 불러오고 취기가 얼큰 도는 가운데 비로소 망자와 그와의 추억을 떠나보낼 자신이 생긴다.

"가끔 생각한다. 내가 왜 오래전 연락이 끊어진 정오의 연락처를 사방팔방으로 수소문해 엄마의 장례식 소식을 그에게 전했는지, 그가 왜 다시 내게 연락을 해 계절이 바뀔 때마다 제철 음식을 사주었는지, 우리가 왜 3년 동안 만남을 이어갔는지. 생각의 끝에는 언제나, 그 일들의 이유가 모두 같으며 그러므로 단 하나의 이유라는 것을 알게 된다. 곧 방어가 제철인 계절이 온다." (71쪽)

누군가의 죽음 앞에 의연해질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사람은 떠나고 없지만 그 사람과 나눈 추억, 그 사람의 향기는 고스란히 남아 남은 자들을 한동안 괴롭히기도 한다. 그럴 때 우리가 서로 어떻게 위로받고 위로할 수 있을지를 보여준 소설 [방어가 제철]. 각 단편들 속에 등장한 요리들 - 육개장과 방어회 -의 요리법과 먹는 장면들이 너무나 생생하게 묘사되어서 책을 덮은 후 언젠가 이 음식들을 꼭 먹으러 가야겠다는 생각을 먼저 했다. 누군가가 곁에 머물렀던 시간과 공간의 크기만큼, 그가 더 이상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때 주위 사람들이 겪게 되는 공허함과 슬픔의 크기는 더 커지는 것 같다. 음식을 함께 먹는 그 사소한 일상의 공유가 큰 위로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해 준 소설이었던 [방어가 제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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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랜더 1
다이애나 개벌돈 지음, 심연희 옮김 / 오렌지디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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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종된 이들은 언젠가 발견된다. 사라진 데는 이유가 있기 마련이니까. 대개는 말이다."

넷플릭스 드라마로 방영되면서 전 세계를 열광시켰다는 시리즈 [아웃랜더] 원작 소설을 읽고 난 지금, 만약 그 드라마가 원작 소설을 충실히 반영하고 있다면 나중에라도 꼭 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굉장히 감동적이고 웅장한 소설, 이 소설은 사람의 마음을 뒤흔드는 뭔가가 있다. 역사와 판타지 그리고 로맨스가 적절히 섞인 이 책 속에서 클레어라는 한 여성은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짜릿한 모험과 사랑을 경험한다.

[아웃랜더]는 600쪽이 넘는 두꺼운 책이다. 그런 만큼 서사 구조 자체가 길고 복잡하다. 주인공 클레어가 갑작스러운 시간 여행을 하게 되면서 불시착하게 되는 시점과 지역이 1700년대 스코틀랜드 지역인데, 당시 스코틀랜드는 잉글랜드와 극심한 갈등상태에 놓여 있었고 따라서 이 책은 당시 두 나라 사이에 있었던 길고도 복잡한 역사적 사실을 다루고 있다. 그뿐 아니라 마치 작가가 살아본 것처럼, 그 당시 스코틀랜드 사람들의 생활상과 문화가 생생하고 자세하게 묘사된다.

매우 자세하게 당시 생활상을 묘사하고 있기에 역사 다큐멘터리를 방불케한다는 느낌도 들었다. 그러나 작가는 스토리텔링에 매우 능하다. 단조로운 생활에 파묻혀 살아가는 클레어의 평범한 모습을 비추다 가도 갑자기 격정적인 사건에 휘말리는 모습을 보여주며 독자들의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한다. 그 뿐 아니라 주인공에 대한 개성있고 풍부한 묘사 덕분에 한층 더 재미있기도 하다. 주인공 클레어는 당차고 똑똑할 뿐 아니라 공감 능력도 뛰어나다. 남자 주인공 제이미는 소년 같은 외모와 잔뜩 성나있는 근육을 가졌고 거기에 헌신적이고 이타적인 마음까지 있다. ... 현실에 존재하기 힘든 사기 캐릭터랄까?

1945년 2차 세계 대전에 영국군 간호사로 참전했던 클레어는 남편 프랭크와 함께 미뤄두었던 신혼여행을 떠난다. 신혼여행지의 유적지에서 배회하던 중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200년 전, 즉 1700년대 스코틀랜드로 불시착하게 된 클레어. 우여곡절 끝에 매켄지 씨족 공동체에서 사람들을 치료하는 일을 맡게 되지만 그녀가 잉글랜드 스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의심은 줄어들지 않는다. 결국 그녀는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스코틀랜드의 젊은 전사인 제이미와 내키지 않는 결혼을 하게 된다. 그러나 순수하고 이타적인 제이미의 헌신적인 사랑으로 인해 흔들리는 클레어... 격동의 역사 속에서 과연 이들의 운명은 어디로 흘러가게 될까?

시간 여행을 통해 클레어가 겪는 흥미진진한 모험에 끌렸다가 클레어와 제이미의 로맨틱하기 그지없는 사랑 이야기에 마음을 홀라당 뺏겨 버렸다. 이 책은 로맨스 부분이 완전 킬링 포인트인 듯하다. 적들과의 교전에서는 거칠고 용맹하기 그지없지만 사랑 앞에서는 순한 강아지 같은 제이미. 이 청년의 열정적인 사랑에 아줌마 독자인 내 심장이 두근두근.. 세 근 반.. 네 근 반 난리 났다. 이런 책은 좀 해롭지 않은가? 싶기도 하다 (매우 빈약한 로맨스라는 초라한 현실을 자꾸만 자각하게 되므로) 

하지만 이 책의 경우, 로맨스가 다는 아니다. 아마도 작가가 철저히 역사적 고증을 거치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작가는 격변의 1700년대 스코틀랜드 상황을 대단히 흥미진진하게 그려내고 있다. 특히 잉글랜드의 지배와 폭력으로부터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켜내려는 한 청년을 통해 당시 스코틀랜드 민족이 겪었어야 할 고난과 역경 그리고 치욕 등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우리도 일본의 식민지 통치를 겪어보지 않았던가? 목숨을 건 투쟁이 남의 일로 느껴지지 않았다. 이야기가 전달하는 웅장함과 비장미에 크나큰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

평소에 역사서도 별로 안 좋아하고 로맨스에도 잘 끌리지 않았는데 이 책에는 금방 몰입할 수 있었다. 현미경으로 들여다본 듯한 1700년대의 스코틀랜드의 역사적 상황과 생활상이 흥미진진했고 클레어와 제이미의 앞을 내다볼 순 없지만 순수하고 열정적인 사랑에도 마음을 훅 빼앗기고 말았다. 모두에게 추천하고 싶고 시리즈가 너무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는 책 [아웃랜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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