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작은 가게 이야기 -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곳
정나영 지음 / 미래의창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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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은 저자가 미국의 작은 소도시에서 생활을 할 때 경험하였던,본인 스스로가 또한 어린 아이들과 같이 경험하였던 훈훈하고 실속 있었던 가게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여기에 마케팅과 유통에 대한 기법을 기술해 두어서 가게를 운영할 생각이 있는 독자에게는 유익한 정보가 될 것 같다.



저자는 한국으로 돌아온 후 두어 달씩 매일 커피를 마시러 들리는 가게에서도, 거의 매일 빵을 사는 가게에서도, 아이들과 들르던 서점에서도 늘 새로운 손님이라는 느낌을 받게 된다.

점원들이 저자를 알아보지도 혹은 알아보고 싶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된다.

늘 새로운 사람을 대하듯, 똑같이 적당한 거리감이 있는, 똑같이 공손한, 주문을 위한 단 한두 마디의 대화가 오고 갈 뿐이다.



안부를 묻지도, 아는 체를 하지도, 파김치가 된 날에 나를 걱정해주는 사람도 이곳의 작은 가게들에게는 없었다.작은 가게들의 양적인 증가가 질적인 증가로 이어지지 않아서 작은 가게들이처한 상황은 날로 곤두박질치고 있는 실정이다.

저자는 이런 문제에 대해서 이국땅에서 매일 드나들었던 작은 단골 가게들에게서 찾아보려한다. 작은 가게의 핵심은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이다.



저자가 미국에서 경험하였던 작은 가게들은 그들만의 문화를 창조하면서 차별화된 방법과 고객관의 지속적인 유대관계를 형성하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



근황을 물어보는 커피가게 점원, 단골손님을 위한 손 글씨 크리스마스 카드, 친정집 같은 쌀국수 사장님의 위에 좋은 육수 포장 서비스,단골손님의 대소사를 꿰고 있는 마트 점원 등 조지아 주의 에덴스의 작은 가게들이 소개되어지는데,이는 그리 특별해 보이지 않는 것 같지만 지속적인 관계 속에 있는 단골손님들의 성향과 그들의 니즈를 명확하게 파악하고 관계를 강화하는데 초점을 두고 있다는 공통점을 가지게 된다.



“ 제 3의 장소는 내게 그저 공간이 아니라 그 안에서 시간과 관계를 모두 아우르는 의미였다. 나의 작은 단골 가게들은 늘 내게 공간 이상의 의미였다. 그곳은 내게 포근한 안식처였고, 평화로운 시간이었고 이웃과 함께 한다는 안도감이었다.”

(p. 25)



자신만의 제 3장소는 어디인가? 나는 커피를 좋아하지만 스타벅스처럼 대형 프렌차이즈 매장을 그리 선호하지는 않는다. 오롯이 나만의 쉼과 시간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내 지진 몸과 마음을 쉬게 하는 편안한 공간으로써 제 3의 장소를 찾아나서는 것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필수조건이 아닐까 한다.



누군가와 마주칠 때 우리는 작건 크건, 잠깐이건 오랫동안 이건 그와의 관계 속에 놓이게 된다.누군가와의 관계에서 우리는 누구나 그가 혹은 그녀가 나를 알아봐주기를, 그리고 나를 친근하게 느끼기를 바라게 된다. 서로를 알아가고 서로의 이름을 불러주는 것. 나를 보면 반가워해 주는 것. 이는 언제나 매혹적인 일이다.(p. 43)



사람과의 만남을 가진 후 우연히 다시 가게를 방문했을 때 따뜻한 미소와 함께 나의 이름을 불러준다면, 내가 선택했던 메뉴를 알아봐 준다면, 이것만큼 반가운 일이 어디 있겠는가!

아마도 우리는 가게에 대한 무한 신뢰와 함께 그 가게의 단골손님 중 한명이 될 것이다.

미국의 소도시에 이루어지는 작은 가게들의 개인이나 사업체들의 경영철학, 한결같은 서비스와 편안함을 지속적인 관계 속에서 유지되고 있음을 저자는 이야기 하고 있다.

과연 우리나라의 작은 가게들에게 적용할 수 있는 이야기일까? 라는 생각을 해 본다.시간이 지나도 언제나 그 자리에서 나를 기다려주는 친구 같은 존재의 단골손님들이 찾을 수 있는 작은 가게를 열어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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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을 참던 나날
리디아 유크나비치 지음, 임슬애 옮김 / 든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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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당신이 인생을 제대로 조져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우리 모두를 관통해 흐르는 거대한 슬픔의 강이 당신에게도 닿은 적 있다면,

이 책을 당신에게 바친다.

숨을 참던 나날

것은 한 여인의 이야기이다. 이것은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냈던 한 여인의 이야기이다. 이것은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냈고 어린 딸을 일찍 하늘로 보내야 했던 한 여인의 이야기이다. 이렇게 문장을 반복하는 이유는, 저자 리디아 유크나비치가 책에서 이런 식으로 반복되는 어법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처음엔 다소 어색하게 느껴졌던 어법이, 익숙해지니까 그녀의 상처와 고통을 더 잘 드러내는 것처럼 보인다.

인용문구가 너무나 마음에 와닿는다. 누구든지 인생의 한 시점에서 인생을 조져본 적이 있을 것이다. 단순히 도피를 생각해봤을 수도 있고 심각한 경우에는 자살과도 같은 극단적인 형태를 생각했을 수도 있다. 이 책에서 그녀는 젊은 시절, 술과 마약 그리고 문란한 성생활을 반복한다. 한마디로 엉망진창 무질서한 삶을 살았다는 것. 하지만 그녀는 꼭 그래야만 했을 것이다.. 그러는 사이 본인도 모르게 치유되어가고 있었을 지도 모르기 때문에.

젊은 시절 불행한 시기가 더 많았지만 그녀에게는 인생을 걸만한 무기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물과 수영이었다. 그녀는 타고난 수영 선수였고 물속에 있을 때는 모든 슬픔과 절망은 사라지고 영혼이 치유되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대학도 수영 장학금으로 갈 만큼 물과 수영은 그녀에게 큰 힘을 줬다. 하지만 어쨌든 젊은 시절 그녀는 제정신으로 살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 이유가 정확하게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뒤틀린 가족 관계 때문이 아니었을까? 가부장적이고 딸들에게 신체적 정신적 폭력 그리고 성적인 학대를 가했던 아버지. 날 때부터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자격지심 때문에 아버지의 폭력 앞에서도 딸들을 보호해주지 못한 어머니. 주인공은 벨트로 얻어맞는 언니를 목격했고 자신에게 주먹을 휘두르려는 아버지와 맞선다. 마음속에 어둠과 괴물을 키우면서 살았던 아버지. 그로 인해서 함께 어둠과 괴물을 키우게 된 저자.


" 그해 어느 여름날 아버지가 화를 내다가 유리로 된 미닫이문에

접시를 던졌다. 나는 뭔가 깨지는 소리를 기다렸지만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또 하루는 내 수영 가방을 갈가리 찢고 수영복과 물안경을 망가뜨려 집어던졌다. (...) 아버지가 뱉은 단어들이 나의 이글거리는 어깨 위에 닿았다."

숨을 참던 나날

저자는 무려 3번의 결혼을 거친다. 그 와중에 딸을 일찍 하늘로 올려보냈고 결혼생활의 실패에 대한 자책을 하면서 술로 세월을 보낸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그녀가 끝까지 무너지지 않을 수 없었던 이유는 글쓰기와 그녀의 글쓰기에 도움을 주었던 사람들이 아닌가 싶다. 책에는 < 뻐꾸기 둥지 뒤로 날아간 새 >를 집필한 켄 키지가 이끄는 공동 소설 창작 워크숍에 참여하는 모습이 나온다. 거기서부터 출발한 그녀의 미미한 글쓰기는 컬럼비아 대학교 석사 과정, 강사직 합격, 지원금 그리고 교환 작가 지원 프로그램으로 이어진다. 그녀는 다시 태어난 것이다.

다시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내게 가르쳐 줄 것이다.

나는 내게 일어서는 법, 원하는 법, 원하는 것을 요구하는 법을 가르쳐줄 여자가 될 것이다.

네 마음, 네 상상력, 전부 대단해,라고 말해줄 여자가 될 것이다.

봐, 정말 아름답지. 네게도 저 테이블에 앉을 가치가 있어. 빛은 우리 모두를 비춰주니까.

숨을 참던 나날

이 책은 한 여인의 고통과 상처, 그리고 성장과 재탄생 등을 다루고 있다. 저자는 매우 솔직하다. 그녀의 삶에 생채기를 냈던 여러 사건들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아버지의 성적 학대, 어머니의 자살 미수 그리고 아가의 죽음.. 젊은 시절 술과 마약 그리고 방탕한 생활... 그러는 가운데 그녀는 계속 성장했고 물과 수영은 그녀와 함께 했다. 그녀는 문학, 여성학, 인류학 그 자체이다. 아버지에게 반항하던 어린 소녀가 이제는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 뱃속에 아이를 키운다. 너무나 강렬하고 감동적인 에세이이다. 그냥 에세이라고 말할 수 없는,,, 한편의 성장 소설 같은 에세이. 몇 번을 더 읽어보면 볼수록 더 진가를 알게 되는 그런 이야기이다. 모두에게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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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 곧 쉬게 될거야
비프케 로렌츠 지음, 서유리 옮김 / 고요한숨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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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급 홈 스릴러라더니.... 역시!! 긴장감과 스릴감이 장난 아니다. 칼로 누군가를 위협한다거나 총알에 후두부를 관통당하는 그런 끔찍한 장면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 으... 충분히 끔찍한 소설이다. 지켜보는 독자의 심장이 쫄깃해지고 뒤통수는 서늘해진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던 결말이긴 하지만 마지막 반전이 하나 더 있다. 이 반전은 진짜... 스포 금지!! 거의 식스센스급이다.

이 이야기를 쓴 저자 비프케 로렌츠는 아이를 혼자 키우는 싱글맘들을 보며 이 이야기를 고안해냈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그동안 기대왔던 남편을 잃고 혼자 아이를 키워내야 하는 여자들의 상실감과 절망감 그리고 불안감들을 잘 표현해내고 있다. 싱글맘이라는 상황 자체가 폭풍 속의 눈 같은, 커다란 사건이 터지기 전의 불안한 고요를 상징하는 것 같다.

레나는 조산원이었다. 안타까운 사건이 벌어지기 전까지는... 슈스터 부부의 아이인 오스카를 맡아서 돌봤었는데 오스카가 영아돌연사증후군으로

사망을 하고 그녀는 과실치사 혐의로 고소당한다. 비록 무죄로 판명 났지만 마음에 큰 상처를 입고 죄책감을 느끼는 레나. 그런 상태에서 자신을 아껴주는 남자를 만나게 되는데 그의 이름은 다니엘이다. 다소 연약하고 몽상적인 기질을 가진 그는, 알코올 중독 치료차 병원에 입원한 환자였다. 불행한 가정 속에서 고독감을 이기지 못하고 술로 연명했던 그는 이제 중독에서 벗어나려 애쓰고 있었고 레나를 보고 한눈에 반한다.

다니엘은 결혼을 한 상태였기 때문에 원래의 가정을 버리고 나오는 상황에서 엄청난 갈등을 겪는다. 특히 10대의 딸인 조시는 아버지인 다니엘뿐 아니라 레나에게 엄청난 증오와 분노를 품는다. 안아주고 품어주기가 쉽지 않은 조시. 어쨌든 다니엘과 레나는 가정을 꾸리고, 시간은 좀 걸렸지만 레나가 임신까지 하는 경사도 생긴다. 모든 것이 순조롭게 흘러가던 이 시기.... 역시 운명은 잔인한 것일까? 다니엘이 국도에서 큰 교통사고를 당해 사망을 한다. 거의 정면충돌 사고였던 그 교통사고에서 상대편 운전자도 역시 사망을 한다.

장례식에서 슬픔에 잠긴 레나에게 분노의 발길질을 해대는 조시. 마치 레나 때문에 다니엘이 죽은 것처럼 소리를 질러댄다. 그런데 장례식에서 그녀에게 다가온 한 남자가 있다. 그의 이름은 클라우스 크론. 그는 상대편 운전자인 마이크 크론의 남동생이다. 그들은 서로의 슬픔을 위로하면서 조금씩 조금씩 친해진다. 슬픔과 절망에 빠진 레나에게는 기댈 나무가 필요한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레나 곁에서 자꾸 이상한 일이 발생한다. 남편의 묘지에 갔을 때 발견한 오르골. 그런데 그 속에 들어있는 시뻘건 돼지의 염통... 염통 곁에 놓여있는 것은 다니엘과 레나의 결혼사진이다. 그 결혼사진에는 피로 : 살인자 !!! 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이런 섬뜩한 장난을 치는 사람은 과연 누구인가?

그런데 왜 레나는 경찰의 도움을 받지 않았을까? 그녀는 처음부터 조시의 짓일 거라고 확신을 하고 스스로 조사에 나선다. 뭘 믿고 혼자 수사를 하는 건지... 답답이 답답이. 이 부분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녀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사람이, 모든 이유로 그런 짓을 저지를 수 있는 것이다. 그냥 10대 청소년의 분노라는 단순한 이유로 돼지 염통이 조시의 짓이라고 판단하는 것은.. 레나의 착오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정적인 것으로!!! 엠마가 사라졌다!! 레나에게 지시사항을 남긴 채 엠마를 데리고 간 정체불명의 범인. 시어머니 에스더의 채근에도 불구하고 경찰에 끝까지 신고하지 않고 혼자서 조사해보겠다고 나서는 레나. ( 왜? ) 그런데 그 와중에 조시는 행방불명이 되고 레베카는 수영장에서 익사된 채 발견된다. 그녀의 재혼한 남편인 마르틴은 총상을 입고 사망했고 검은 세력은 레나에게 끊임없는 지시를 내보내며 그녀의 반려견마저 죽게 만든다.

이제 단 하나의 미션만이 남았다.

자정까지 스스로 목숨을 끊어. 그러지 않으면 네 딸이 죽어

이 수수께끼 같은 사건을 해결하기까지 세 시간 남았다. 읽는 내내 레나의 초조함과 급박하게 돌아가는 사건 전개가 느껴져서 심장이 쿵쾅거렸다. 1시간 남고 10분 남고 마지막 3분 남은 상황에서는 하도 주먹을 꼭 쥐어서 손가락이 하얗게 될 지경이었다. 아무런 죄가 없는, 가엾은 우리 엠마는 어디에 가 있는 걸까? 다니엘은 비밀을 품고 있었던 걸까? 조금 느린 듯 흘러가다가 약 3분의 2쯤, 마치 댐의 물을 풀어놓은 듯 모든 진실들이 터져 나오는 소설 [ 너도 곧 쉬게 될 거야 ]. 이번 주말 읽어볼 만한 스릴러로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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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진 다리 그래비티 픽션 Gravity Fiction, GF 시리즈 8
천선란 지음 / 그래비티북스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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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이제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 지구 오염은 가중되고 있고 내일 핵 미사일이 터져서 온 지구가 파괴된다 하더라도 이상할 것 없는 상황이다. 즉, 지구는 점점 인간이 살기 어려운 장소가 되어가고 있다는 것. 이러한 주제 의식에 따라서 많은 SF 작품들이 지구의 멸망과 그 이후를 다루는 종말 작품 - 아포칼립스 - 를 발표하거나 아니면 지구 외에 살만한 장소를 찾아헤매는 작품을 발표한다. 때로는 외계인 종족과의 조우를 다루기도 하고 오염으로 인해 좀비화되거나 변형되어버린 인류와의 사투를 다루는 식의 스토리가 대부분인 작품들 가운데서, 이 작품이 두드러지는 이유는, 인간이 개발한 일종의 안드로이드? 휴머노이드인 휴론에 대해서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인류의 근원적 물음은 바로 이것이 아닐까? 우리가 어디서 비롯되었고 어디로 돌아가는지. 그러나 인간의 탄생과 죽음에 대한 비밀은 아무리 과학이 발달하였다해도 풀지 못할 숙제이다. 사람들 대부분은 우리가 " 신 " 의해 창조되었거나 단세포 생물에서 진화된 존재라고 생각하지만 영화 [ 프로메테우스 ] 에서는 독특한 내용이 등장한다. 인간들은 모두 외계 종족의 엔지니어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으로 묘사되는데, 즉, 우리는 " 신 " 에 의해 창조된 거룩한 존재라기 보다는 한 " 외계 종족 " 의 필요와 실험 정신에 의해서 만들어진 결과물에 불과하다는 것. 그리고 그 외계종족의 마음에 들지 않아서 곧 파괴될 운명에 놓인 존재라는 것.

이 [ 무너진 다리 ] 에는 인간이 만들어낸 완성도 높은 복제 인간 - 휴론 - 이 등장한다. 이 복제인간은 로봇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인간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다. 주어진 명령어에 복종 - 인간을 보호해야 한다는 - 하다가 나중에는 스스로 지성을 발달하여 주체적인 판단을 내리는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여기서 잠깐!! 인간은 왜 A.I. 를 만들고 싶어할까? 우선 장기 배양 ( 휴론을 통해서 못 쓰는 장기나 다친 팔다리 얻을 수 있음 ) 이나 영생 ( 뇌만 들어내서 휴론에게 옮길 수 있다 ) 의 욕심도 있지만.... 내 생각엔.... 인간이 가진 근원적 고독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충직한 부하, 다정한 친구가 되어줄 수도 있는 그들.

[ 무너진 다리 ] 는 굉장히 완성도 높은 아포칼립스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지구 멸망 이후의 벌어지는 인간과 외계종족, 혹은 변형된 인간과의 혈투 등을 다루는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굉장히 철학적인 주제를 다루고 독자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아포칼립스에 대한 다른 작품들처럼 어둡고 절망적인 색이 짙긴 하지만 결론이 꼭 그렇게만 흐르는 것은 아니다.

줄거리를 잠깐 들여다보자면, 이 책의 주인공은 아인이라고 하는 우주비행사이다. 그는 가이아 행성을 찾는 탐사 작전에 참여했다가 실패하고 혼자 돌아온다. 거의 죽은 상태로 돌아왔으나 마티아스라는 친구의 놀라운 기술로 10년만에 휴론으로 다시 태어난다. 하지만 그는 탐사 작전에 실패했다. 그리고 우주선이 떨어지면서 동시에 어마어마한 양의 핵 폭발물이 아메리카 대륙에 떨어지면서 그곳은 초토화되어버렸다. 그 죽음의 땅으로 휴론을 보냈으나 돌아오지 않고 보내는 탐사선마다 파괴되는 이 상황. 아인이 책임지고 이 대륙에 무슨일이 발생하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떠난다. 그는 이제 방사능으로 모든 인간이 아마도 죽음을 맞이하였을 것이고 앞으로도 살 수 없을 땅으로 보내어진다.

“ 대기권조차 넘지 못했던 우주선은 추진력만 100톤에 달하는 핵과 함께 지구 반대편 아메리카 대륙에 떨어졌다.

성층권에 맞닿을 정도의 연기 기둥이 피어올랐고 핵이 떨어진 텍사스는 순식간에 모든 것이 증발했으며

열과 방사능에 대한 직접적인 영향은 콜로라도와 미시시피, 멕시코 국경까지 닿았다 ” (66쪽 )

“ 육체가 죽은 인간에게서 뇌만 꺼내 안드로이드와 연결시킨다는 연구주제는 20년전부터 학계에 만연했으나

불가능의 영역이었고 신의 영역이었다. 신만이 할 수 있다.

신만이 죽은 인간을 재탄생시킬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의 영역은 오로지 살아있음까지다.

하지만 모두가 인간은 때때로 절망과도 가까운 간절함에서 신을 능가한다는 걸 잊었다.

역사는 그런 인간들을 돌연변이나 마녀로 매도했지만 인간은 종종 신을 능가했다 .” ( 112쪽 )

“ 개인의 비극은 행성을 파괴할 수 있는 슬픔을 가지고 있다.

섞이거나 나눌 수 없다. 인간은 개인이 하나의 행성이므로. 각자의 비극을 외면해서는 안된다.

결국 그 파괴의 에너지가 은하수 전체에 퍼질 테니. 연쇄적 비극은 언젠가 모든 것을 태초의 상태로 돌릴 것이다 .” (419)

죽어가는 대륙, 아메리카로 들어온 아인. 그는 여기서 과연 무엇을 목격할 것인가? 유전자 변형이나 태양의 부재로 인한 인간들의 괴물화 좀비화를 기대했는데 (....) 글쎄. 책이 독자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메세지는 여럿 있지만 그 중에서 유달리 마음에 남았던 것은 어쨌든 살아있다는 것. 살아있음으로써 희망이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부분이었다... 아인은 사사로운 마음 때문에 실수를 저질렀지만 이제 바로잡을 기회가 왔다. 과연 그는 어떤 결정을 내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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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혹한 어머니의 날 1 타우누스 시리즈 9
넬레 노이하우스 지음, 김진아 옮김 / 북로드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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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넬레 노이하우스 "를 알게 된 것은 " 백설 공주에게 죽음을 "이라는 소설을 통해서였다. 그 책이 너무나 충격적이고 흥미진진하여 나는 곧이어 " 넬레 노이하우스 "라는 세계에 푹 빠져버렸다. ' 타우누스 ' 시리즈는 타우누스라는 독일 지역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범죄 스릴러로, 귀족 집안 출신의, 부드러운 이미지를 가진 올리버 폰 보덴슈타인 반장과 직관에 의존하는 수사기법을 가진 강력반 여형사 피아 산더 콤비가 이 지역에서 벌어지는 강간, 납치, 살인 등과 같은 강력 사건을 해결하는 내용을 다룬다.

이 [ 잔혹한 어머니의 날 ]의 경우, 생각지도 못했던 범죄 사건이 갑작스럽게 세상에 드러나며 두 형사들가 주축을 이룬 팀의 긴박한 추적이 계속 이어진다. 이 추적기를 보고 있자니, 내가 책을 읽고 있는지 잘 짜인 범죄 수사 드라마를 보고 있는지 헷갈릴 정도였다. 두 형사와 심리학 박사 그리고 검시관의 콜라보가 예술인 이 소설은 탄탄한 구성과 쫄깃한 긴장감을 자랑한다. 책의 플롯은 과거와 현재가 교차 서술되는 구조로써 " 맘몰스 하인 "이라는 지역에서 변사체가 발견되는 것으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혼자 살던 84세의 노인 " 테오도르 " 가 죽은 채로 발견된다. 그리고 그의 죽음은 자연사가 아닌 타살이라는 정황이 있다. 곧이어 노인이 키우던 개가 견사에서 발견이 되고, 거기서 발견된 뼈가 사람의 것이라는 게 밝혀진다. 이후 대대적인 주변 수사를 하게 되는데.... 우물에서 발견되는 시체, 견사 콘크리트 아래에서 발견되는 랩으로 싸인 채 익사된 시체들. 실종된 장소는 다 다르지만, 모두들 분명 공통점이 있다. 그들은 모두 5월 둘째 주 일요일인 어머니의 날 전후로 실종된 것이다. 이것은 분명 연쇄살인범의 소행이다. 보덴슈타인 반장과 피아 산더형사 팀은 어떻게 이 사건을 해결할 수 있을까?

한편 이 이야기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변사체로 발견되었던 노인은 과거에 그의 아내와 함께 예전 수녀원을 인수하여 입양되지 못한 여러 아이들을 키웠던 것으로 드러난다. 그들은 나중에 성장하여 ' 어머니의 날 '마다 모였었는데, 혹시 그들 중 누군가가 그 시체들의 존재와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닐까? 버려진 자신의 신세에 때문에 사람들에게 원한을 품고 있었던 것은 아닐지.

그리고 또 다른 이야기가 있다. 홀로 자신을 길러준 어머니가 사망한 후, 아버지인 줄 알았던 사람을 찾아갔다가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되는 여자 ' 피오나 피셔 ' 이야기. 그녀는 어머니가 자신의 친모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친모를 찾아 나서게 된다.

크게 두 줄기로 갈라진 소설 - 노인들이 키웠던 고아들 이야기와 피오나 피셔 이야기. 각 이야기 속의 인물 간의 겹치는 부분도 없고 연관성도 없어 보이는 이야기는 어느 시점에 다다라 접점을 이룬다. 이 책의 경우, 과거와 현재의 시점을 넘나들면서 여러 인물들과 함께 사건들이 전개되기 때문에 다소 헷갈릴 수 있지만, 날짜와 장소가 명시되어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읽어나가면 이야기가 틀이 잡히면서 큰 어려움 없이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동독 출신 맨디가

내 첫 번째 약물 실험이었던 셈이다.

그동안은 약물이 효과를 지녔는지, 어떤 효과를 지녔는지 알아보기 위해 개에게만 실험했었다.

거의 벤스하임에 다다르자 그녀는 떠벌리기를 멈추었다. 나는 옆자리를 힐끗 쳐다보았다.

“괜찮아요? 내가 짐짓 걱정스럽게 물었다.

그녀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거렸다.

곧 눈꺼풀이 감겼고 고개가 옆으로 툭 떨어졌다.”(1권 p. 181)

시체로 발견된 피해자들에 대한 주변 탐문 수사가 이어지고, 그 사건에 대한 살인자의 자기 고백 같은 독백이 이어지면서, 독자들은 연쇄 살인범이 과연 누구일지 계속 궁금증을 가지게 된다. 우연히 발견된 땅속의 시체 세 구. 이후 변사체로 발견된 노인과 가족들의 과거에 대한 행적 추적, 그리고 누군가가 저지른 만행들, 그리고 현재의 범인에 이르기까지의 과정들이 굉장히 세밀하고 지능적으로 전개되는 소설 [ 잔혹한 어머니의 날 ]

이 책이 결국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이런게 아닐까? 고아들을 맡은 종교 집단이나 위탁 가정의 학대와 방임도 문제지만 결국은 아이들에게 부모를 찾을 수 있다는 헛된 희망을 내내 안겨주다가 좌절의 늪으로 빠뜨리는 이기적인 인간들.. 그 인간들이 문제라고.

추리 소설을 읽는 모든 독자들이 그러하듯이 용의자를 하나하나 제외해가면서 살인자를 특정하려고 해보았다. 그러나 역시 강력한 반전과 함께 나의 추측은 보란 듯이 틀려버렸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나니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 제대로 된 부모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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