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이제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 지구 오염은 가중되고 있고 내일 핵 미사일이 터져서 온 지구가 파괴된다 하더라도 이상할 것 없는 상황이다. 즉, 지구는 점점 인간이 살기 어려운 장소가 되어가고 있다는 것. 이러한 주제 의식에 따라서 많은 SF 작품들이 지구의 멸망과 그 이후를 다루는 종말 작품 - 아포칼립스 - 를 발표하거나 아니면 지구 외에 살만한 장소를 찾아헤매는 작품을 발표한다. 때로는 외계인 종족과의 조우를 다루기도 하고 오염으로 인해 좀비화되거나 변형되어버린 인류와의 사투를 다루는 식의 스토리가 대부분인 작품들 가운데서, 이 작품이 두드러지는 이유는, 인간이 개발한 일종의 안드로이드? 휴머노이드인 휴론에 대해서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인류의 근원적 물음은 바로 이것이 아닐까? 우리가 어디서 비롯되었고 어디로 돌아가는지. 그러나 인간의 탄생과 죽음에 대한 비밀은 아무리 과학이 발달하였다해도 풀지 못할 숙제이다. 사람들 대부분은 우리가 " 신 " 의해 창조되었거나 단세포 생물에서 진화된 존재라고 생각하지만 영화 [ 프로메테우스 ] 에서는 독특한 내용이 등장한다. 인간들은 모두 외계 종족의 엔지니어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으로 묘사되는데, 즉, 우리는 " 신 " 에 의해 창조된 거룩한 존재라기 보다는 한 " 외계 종족 " 의 필요와 실험 정신에 의해서 만들어진 결과물에 불과하다는 것. 그리고 그 외계종족의 마음에 들지 않아서 곧 파괴될 운명에 놓인 존재라는 것.
이 [ 무너진 다리 ] 에는 인간이 만들어낸 완성도 높은 복제 인간 - 휴론 - 이 등장한다. 이 복제인간은 로봇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인간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다. 주어진 명령어에 복종 - 인간을 보호해야 한다는 - 하다가 나중에는 스스로 지성을 발달하여 주체적인 판단을 내리는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여기서 잠깐!! 인간은 왜 A.I. 를 만들고 싶어할까? 우선 장기 배양 ( 휴론을 통해서 못 쓰는 장기나 다친 팔다리 얻을 수 있음 ) 이나 영생 ( 뇌만 들어내서 휴론에게 옮길 수 있다 ) 의 욕심도 있지만.... 내 생각엔.... 인간이 가진 근원적 고독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충직한 부하, 다정한 친구가 되어줄 수도 있는 그들.
[ 무너진 다리 ] 는 굉장히 완성도 높은 아포칼립스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지구 멸망 이후의 벌어지는 인간과 외계종족, 혹은 변형된 인간과의 혈투 등을 다루는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굉장히 철학적인 주제를 다루고 독자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아포칼립스에 대한 다른 작품들처럼 어둡고 절망적인 색이 짙긴 하지만 결론이 꼭 그렇게만 흐르는 것은 아니다.
줄거리를 잠깐 들여다보자면, 이 책의 주인공은 아인이라고 하는 우주비행사이다. 그는 가이아 행성을 찾는 탐사 작전에 참여했다가 실패하고 혼자 돌아온다. 거의 죽은 상태로 돌아왔으나 마티아스라는 친구의 놀라운 기술로 10년만에 휴론으로 다시 태어난다. 하지만 그는 탐사 작전에 실패했다. 그리고 우주선이 떨어지면서 동시에 어마어마한 양의 핵 폭발물이 아메리카 대륙에 떨어지면서 그곳은 초토화되어버렸다. 그 죽음의 땅으로 휴론을 보냈으나 돌아오지 않고 보내는 탐사선마다 파괴되는 이 상황. 아인이 책임지고 이 대륙에 무슨일이 발생하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떠난다. 그는 이제 방사능으로 모든 인간이 아마도 죽음을 맞이하였을 것이고 앞으로도 살 수 없을 땅으로 보내어진다.
“ 대기권조차 넘지 못했던 우주선은 추진력만 100톤에 달하는 핵과 함께 지구 반대편 아메리카 대륙에 떨어졌다.
성층권에 맞닿을 정도의 연기 기둥이 피어올랐고 핵이 떨어진 텍사스는 순식간에 모든 것이 증발했으며
열과 방사능에 대한 직접적인 영향은 콜로라도와 미시시피, 멕시코 국경까지 닿았다 ” (66쪽 )
“ 육체가 죽은 인간에게서 뇌만 꺼내 안드로이드와 연결시킨다는 연구주제는 20년전부터 학계에 만연했으나
불가능의 영역이었고 신의 영역이었다. 신만이 할 수 있다.
신만이 죽은 인간을 재탄생시킬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의 영역은 오로지 살아있음까지다.
하지만 모두가 인간은 때때로 절망과도 가까운 간절함에서 신을 능가한다는 걸 잊었다.
역사는 그런 인간들을 돌연변이나 마녀로 매도했지만 인간은 종종 신을 능가했다 .” ( 112쪽 )
“ 개인의 비극은 행성을 파괴할 수 있는 슬픔을 가지고 있다.
섞이거나 나눌 수 없다. 인간은 개인이 하나의 행성이므로. 각자의 비극을 외면해서는 안된다.
결국 그 파괴의 에너지가 은하수 전체에 퍼질 테니. 연쇄적 비극은 언젠가 모든 것을 태초의 상태로 돌릴 것이다 .” (419)
죽어가는 대륙, 아메리카로 들어온 아인. 그는 여기서 과연 무엇을 목격할 것인가? 유전자 변형이나 태양의 부재로 인한 인간들의 괴물화 좀비화를 기대했는데 (....) 글쎄. 책이 독자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메세지는 여럿 있지만 그 중에서 유달리 마음에 남았던 것은 어쨌든 살아있다는 것. 살아있음으로써 희망이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부분이었다... 아인은 사사로운 마음 때문에 실수를 저질렀지만 이제 바로잡을 기회가 왔다. 과연 그는 어떤 결정을 내릴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