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멧 : 계절이 지나간 자리 - 2021 볼로냐 라가치 미들그레이드 코믹 부문 대상작 스토리잉크
이사벨라 치엘리 지음, 노에미 마르실리 그림, 이세진 옮김, 배정애 손글씨 / 웅진주니어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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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핑장에서 우연히 만난 소년과 소녀 이야기. 동화책 [메멧]은 스치듯 만났다 헤어지는 두 아이의 이야기이다. 색연필로 빠르게 그린 듯한 그림체는 아이들의 표정이나 상황에 대해 상상력을 발휘하게 해준다. 동시에 아주 따뜻하다는 느낌도 갖게 되었다. 대사가 별로 없고 그림이 대부분이라서 그런지 한 2~3번 읽고 나서야 대충의 스토리를 파악할 수 있었다. 그러나 스토리를 잘 몰라도 어떠하리.. 그냥 그림만 봐도 주인공들의 예쁜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한 여름의 캠핑장. 나뭇잎은 푸르르고 아이들은 첨벙첨벙 물속에서 뛰어논다. 이곳저곳에서 텐트나 카라반을 설치하고 지내는 사람들이 보인다. 주인공 루시는 긴 금발을 가진 소녀이고 아마도 언니로 보이는 사람과 캠핑을 온 것 같다. 루시는 계곡에서 첨벙거리면서 노는 다른 여자애들이 함께 놀자고 제안하지만 무리에 끼지 않고 빈 플라스틱 병을 하나 구해서 마치 강아지를 대하듯 데리고 다닌다. 메멧이라는 이름까지 붙여준 채.

한편, 로망은 캠핑장에서 만난 친구가 가지고 온 비디오카메라를 들고 놀고 있다. 중세 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를 찍어보겠다며 마녀 역할을 할 소녀를 구하러 다니는 로망. 그러다가 로망은 루시를 만나게 되고 루시가 들고 있는 빈 병을 빼앗으려다가 그녀가 쓰고 있던 가발을 벗기게 된다. 알고 보니 루시는 굉장히 짧은 머리칼의 소녀였고 ( 마치 몸에 병이 있거나 하는 사연이 있는 듯) 당황한 로망은 가발을 그대로 들고 도망가 버리는데...


로망은 뾰족한 아이이다. 죽은 고양이 사체를 함부로 하고 루시와 장난치다가 갑자기 팔을 꽉 물어버린다. 그런데 로망이 남들에게 상처를 주는 이유가 있었다. 가정에서 왠지 학대받고 있는 듯한 인상을 주는 로망. 그 모습을 보니 로망이 가엾게 보였다. 한편 어딘가 외로워 보이는 루시. 듬성듬성 난 머리칼을 가리는 가발과 아이들을 피하는 모습을 보니 사연이 있어 보였다. 그러나 자신을 스스럼없이 대하는 로망을 만나서 즐거워 보이는 루시. 모든 걱정거리를 잊어버리고 잠시나마 함께 잘 어울리는 두 아이의 모습이 좋아 보였다.

그러나 여기는 캠핑장. 오래 머무를 순 없다. 로망과 어울린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루시는 다른 캠핑장으로 떠나게 된다. 로망에게 자신이 떠남을 알리고는 강아지 인형을 남겨놓고 떠나게 되는 루시.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던 로망은 루시가 떠난 이후 봇물 터진 듯 울음을 터트리고 죽은 고양이 사체를 좋은 자리에 묻어주게 되는데...

어린 시절, 그 순수한 마음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좋은 동화책인 [메멧: 계절이 지나간 자리] 큰 걱정 없이 뛰어놀았고 계산 없이 사람들을 만나던 유년기의 추억 속으로 잠시 머물 수 있어서 좋았다. 대사가 많지 않기에 루시나 로망에 대한 자세한 사연은 알 수 없었지만 그것 그대로 좋았던 것 같다. 어리지만 외로울 수 있고 아무것도 모르는 어른들에게서 상처 입을 수 있는 게 아이들이다. 그림이나 짧은 대사만으로도 쓸쓸함, 외로움, 사랑과 우정 등등을 느낄 수 있었던 좋은 동화책이라 아이들 뿐만 아니라 잠시 어린 시절 추억으로 빠지고 싶은 어른들에게도 추천한다.

* 출판사에서 제공한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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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할 수 없는 두 사람 아르테 오리지널 13
요시다 에리카 지음, 김은모 옮김 / arte(아르테)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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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엔 정말 다양한 색깔을 가진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자석처럼 이끌려서 누군가를 만나게 되고 가족을 이루고 지지고 볶는 생활을 하며 살아간다는,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나의 가치관을 단번에 무너뜨리는 사람들의 이야기 [사랑할 수 없는 두 사람] 물론 최근 들어 1인 가구 수가 늘었고 다양한 형태의 가족들이 늘긴 했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천생연분과 만나 사랑에 빠지고 결혼을 하고 가족을 이루는 꿈을 꾼다. 그렇기에 사랑이 뭔지 모르고 사랑을 할 수 없는 부류인 주인공 사쿠코와 다카하시의 이야기는 매우 신선했다.

누구에게도 로맨틱한 감정과 성적 이끌림을 느끼지 않는 여자,

사랑하지 않아도 괜찮은 남자와 임시 가족이 되다!

사쿠코는 일반 사람들과 약간 다르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그와 로맨틱한 관계를 가지는 것에 대한 욕심이 전혀 없다. 과거에 누군가와 사귀어도 봤지만 정신적이든 육체적이든 친밀감을 쌓아가는 일이 그녀에게는 정말로 어려운 것이었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친절한 사쿠코를 오해한 많은 남자들은 그녀에게 이성적으로 접근을 하고 그러다가 그녀가 그들에게 이성적 관심이 없다는 것을 알고는 실망하는 경우가 많았다. 사쿠코는 그런 상황이 되면 자신에게 큰 문제가 있나 싶어서 우울감에 빠지게 되었다. 그러다가 그녀는 우연히 날개 빛 양배추라는 닉네임을 가진 누군가의 블로그에 들어가게 되고 그 사람의 생각이 자신과 매우 비슷하다는 걸 알게 된다.

“ 연애와 성적 감정을 별개로 보고, 둘 중 어느 면에서도 남에게 끌리지 않는 경우는 에이 로맨틱이 자 에 이 섹슈얼이기도 합니다. 그런 사람을 ‘에이 로맨틱 에이 섹슈얼’, 줄여서 ‘에이로에이섹’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습니다. 정의와 표기법, 당사자에게도 다양성이 존재합니다 ”

"날개 빛 양배추"의 블로그에 쓰인 글들은 마치 사쿠코의 마음을 대변하는 듯했다. 세상엔 남을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고, 누군가와 함께 살기 위해 반드시 그를 사랑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는 블로그 주인. 그러던 어느 날 관리차 들른 슈퍼 마루마루 야마나카점에서 만났던 직원 다카하시가 그 블로그의 주인이라는 걸 알게 되는 사쿠코. 너무나 기쁜 마음에 다카하시를 붙들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충동적으로 그에게 함께 살 것을 제안하는 사쿠코. 물론 로맨틱한 감정과 성적 이끌림은 완전히 배제한 거래! 사쿠코의 갑작스러운 제안에 놀란 다카하시는 처음엔 다소 물러서지만 결국 혼자 살기는 좀 외로웠던 걸까? 이내 사쿠코의 제안을 받아들이게 되는데....

사실 책을 다 읽기 전까지는 이 책도 로맨틱 코미디 같은 거겠지라고 생각했다. 말하자면 사랑을 원치 않았던, 아니 원치 않는다고 머릿속으로 만 생각하던 두 사람이 서서히 서로에게 빠져들면서 생기는 좌충우돌? 그런 종류의 이야기를 생각했는데, 와우, 이 소설은 전혀 그런 쪽이 아니었다. 자신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분명하게 알고 상대방과의 거리를 존중하며 함께 살아갈 줄 아는, 매우 성숙한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사랑에 빠지지 않거나 연애를 하지 않는 사람들을 다소 비정상으로 보는 일반 통념과는 다르게 사쿠코와 다카하시는 너무나 정상적이고 자신들의 삶을 사랑하는 사람들이었다. 책을 읽다 보니까 저절로 설득이 되었다. 저마다 생각하는 삶의 방법이 다를 수 있고 그 다름의 다양함을 인정하는 사회가 좋은 사회라는 것을.

" 주변에서 정해놓은 기준에 얽매이기 싫어하는 저희조차도요. 사고방식이나 소중한 것도 점점 변해가는 법이니까 그때그때 최선을 찾아가면 되고, 만약 두 사람의 최선이 전혀 다른 방향이라 여러모로 의논했는데도 합의를 이루지 못한다면, 억지로 가족으로 지낼 필요도 없겠죠."

읽을 땐 재미있었는데 다 읽고 나니 생각이 많아졌다. 세상에는 정말 많은 종류의 사람들이 있고 사쿠코나 다카하시처럼 일반적인 삶을 살아갈 수 없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왜 다른 삶의 가능성에 대한 논의가 우리 사회에선 많이 없는 걸까? 개인이 행복할 수 있는 사회를 위해선 좀 더 다양한 형태의 가족 구성에 대한 고민도 있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재미있었지만 동시에 다른 형태의 가족 구성의 가능성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하게 해준 책 [사랑할 수 없는 두 사람]

* 출판사에서 제공한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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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온도가 전하는 삶의 철학
김미영 지음 / 프로방스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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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당신의 삶은 몇 도인가요?

책 표지에 나와 있는 질문을 보면서 문득 생각에 잠겼다. 지금 나의 삶을 온도계로 재어본다면 과연 몇 도일까? 아마도 너무 덥지도 않고 춥지도 않은 정도의 온도가 아닐까 싶다. 크게 즐거운 일도 없지만 그럭저럭 나쁘지도 않은 상태. 이 책 [기억의 온도가 전하는 삶의 철학]에서 등장하는 저자의 삶의 온도는 어떠했을까? 마치 봄, 여름, 가을, 겨울처럼 그녀는 총 4개의 장을 통해서 따뜻함, 뜨거움, 싸늘함 그리고 차가움의 온도를 띄는 삶의 기억을 전달한다. 누군가의 딸, 아내 그리고 엄마로 살았던 충실히 살았던 삶에 대한 기억을 때로는 솔직하게, 때로는 감동적으로 전달하는 그녀의 책 안으로 들어가보자.

" 지금도 생각난다. 밤새 눈이 펑펑 쏟아지던 어느 추운 겨울밤, 안방을 가득 메운 커다란 이불 위에서 한땀 한땀 시침질을 하던 엄마의 따뜻한 모습이 "

1장 : 따뜻했던 기억들에 나와 있는 이야기들 중에서는 특히 이불에 관한 이야기가 눈길을 끌었다. 나의 경우 어릴 적에 주택에 살았는데, 아파트보다는 보온이 덜 되는 곳이었다. 온돌로 되어 있기에 방바닥은 뜨끈한 편이었지만 벽을 타고 들어오는 바람 때문에 항상 코끝이 서늘했다. 그런 밤이면 어머니가 꺼내놓은 무거운 솜이불 속으로 들어가는 것만큼 좋은 일이 없었다. 저자 김미영씨도 빳빳하게 풀을 먹인 이불홑청과 봉황새, 푸른 소나무, 솔방울이 수놓아진 솜이불에 대한 추억을 이야기한다. 커다란 이불 안에서 정서적인 안정감을 키워나갔다는 말과 이부자리에서 엄마의 따뜻한 손길을 느꼈다는 말에 큰 공감을 느꼈다.

“ 언뜻 그 할머니의 모습을 보게 되었는데.... 순간 심장이 멎는 듯 했다. 아파서 거동조차 못하는 엄마와 너무도 닮았던 것이다.”

2장: 열정적이었던 기억들에서는 낯선 할머니의 모습에서 엄마의 모습을 발견하는 저자의 이야기가 나온다. 너무 아파서 거동조차 못 하는 엄마, 그런데 그렇게 아픔에도 불구하고 병원을 고집스럽게 거부하는 바람에 아픈 엄마를 어쩔 수 없이 그대로 내버려둘 수 밖에 없던 저자. 안타까워하면서도 동시에 무기력할 수 밖에 없는 딸의 처지가 너무나 공감이 되었다. 그러다가 저자는 우연히 길거리에서 만난 폐지 줍는 할머니가 엄마와 대단히 많이 닮아 있는 걸 보게되고 기다렸다가 할머니에게 빵과 우유를 건네준다. 아픈 엄마 때문에 괴로워하던 저자는 그런 식으로라도 위로를 받게 된다.

“ 난 내 아이의 게임 중독, 스마트폰 중독을 미리 막지 못했던 고개 숙인 엄마 중의 한 사람이었다. 물론 지금은 고등학생이 되었고, 그로 인해 게임에서 공부 쪽으로 방향을 돌리긴 했지만 불과 수개월 전까지만 해도 우리 가정은 무척 삭막하고 싸늘한 분위기였다.”

3장 싸늘했던 기억들 속에는 아이가 게임 중독에 걸리게 되면서 겪게 되는 저자의 웃지 못할 상황들이 펼쳐진다. 밤새 게임을 하느라 소진된 체력으로 겨우겨우 학교에 등교하던 아이의 모습, 마치 어두운 늪 같던 판타스틱한 게임 화면에 빠져들어서 점점 난폭하게 변해가던 아이를 지켜만 봐야했던 엄마의 안타까운 심정이 그대로 드러난다. 주위에 이런 가정들을 숱하게 봐왔기 때문에 너무나 이해가 되었다. 미래를 위해 공부에 전념해야 할 학창 시절이 게임으로 인해서 엉망이 되어갈 때의 심정.. 겪어본 부모님들을 다 알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시절 아이가 학원을 가지 않게 되면서 매달 사교육비를 아껴 큰 아이에게 더 큰 지원을 해줄 수 있었다는 저자의 말이 웃프게 다가왔다. 세상의 모든 부모님은 아이의 방황을 가슴 졸이면서 지켜보고 어서 돌아오길 바랄 것이다.

" 기억! 나의 뇌리를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기억들, 그 기억들 속에는 각각의 따뜻함과 뜨거움, 싸늘함과 차가움 등과 같은 온도가 느껴진다 "

기억이 온도로 다가온다니...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였다. 그런데 그러고 보니 가끔 머리 속을 스쳐가던 기억의 느낌이 각각 달랐다는 생각이 든다. 따스하게 쏟아지던 봄의 햇빛, 차갑게 몸에 튀던 물방울들, TV밖으로 흘러나오던 뜨거운 함성 등등 생생하게 느낌으로 기억되는 장면들이 있기는 하다. 어머니의 솜이불이나 남편의 주말 레시피와 같은 따뜻한 기억들과 시월드와 어머니의 죽음처럼 추웠던 기억들까지 저자는 몸과 마음을 어루만져주기도 하고 한꺼번에 얼어붙게 만들기도 하는 여러 추억들을 독자들과 공유한다. 읽어보니 공감가는 부분이 정말 많았고 이 책 덕분에 과거에 묻어놨던 여러 기억들을 떠올릴 수 있었다. 소탈하면서도 따뜻한 내용이 많았던 [기억의 온도가 전하는 삶의 철학]을 모두가 읽을 만한 좋은 에세이로 추천한다.

* 출판사에서 받은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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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생활자 안전가옥 앤솔로지 10
최현수 외 지음 / 안전가옥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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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립톤 행성에서 온 칼-엘은 클락크 켄트라는 이름의 평범한 학생으로 어른이 되어서는 신문기자로 살아가게 된다. 그러나 재난이 발생하여 사람들이 위기에 봉착하게 되면 클락크 켄트는 초능력을 가진 영웅 슈퍼맨으로 변신한다. 사람들은 위기 때마다 나타나서 악당들을 물리치고 사람들을 구해내는 이 히어로에게 열광한다. 아마도 우리가 이런 히어로들에게 열광하는 이유는 겉으로 보이는 평범함 속에 감추어진 비범함 때문은 아닐까? 안전가옥 앤솔로지 [이중 생활자] 속에는 이렇게 본모습을 숨기고 살아가는 여러 다양한 인간 군을 보여준다. 이중 생활자라는 테마에 꼭 들어맞는 스파이 이야기부터 남들이 감추고 싶어하는 비밀을 몰래 숨겨주는 한 엄마의 이야기까지, 시종일관 아슬아슬하고 비밀스러운 매력을 보여주는 이야기들로 가득 찬 [이중 생활자] 속으로 들어가 본다.

첫 번째 이야기 " 열일곱 여름 전쟁"에서 명국에서 적국 암국으로 파견된 군인 영은 몸속에 도시 하나를 날려버릴 수 있는 생체 폭탄을 가지고 있다. 명국에는 디지털 필드 안에서 데이터를 변환하여 사물의 원형을 이리저리 바꿀 수 있는 능력자, 데이터 디스펜서들이 있다. 전쟁을 끝내기 위해서는 최대한 많은 데이터 디스펜서들을 죽이는데 영의 목표이다. 그러나 데이터 디스펜서인 이비와 한 팀이 되면서 자기도 모르게 이비에게 정이 들어버린 영. 과연 그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열일곱이라는 그 순수한 감수성이 전쟁이라는 비극 속에서 갈등하는 모습이 대단히 안타까웠던 작품. 전쟁 이데올로기 속에서는 그 누구도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없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준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두 번째 이야기 "드림 센스"에서 주인공 설이는 맥이라는 동물에게 물리면서 귀 뒤에 더듬이가 생긴다. 이후로 그녀는 남의 꿈을 볼 수 있고 그 꿈과 소통도 할 수 있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아이들에 의해서 불을 뿜는 새, 즉 화식조라는 별명을 갖게 된 담임선생도 자신과 비슷한 초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동네에 알 수 없는 병이 돌고, 같은 학급 친구 도윤이가 결석을 한 날, 걱정이 되어 도윤이 집을 찾은 설이는 화식조와 만나게 되고 그가 도윤이의 꿈을 잡아먹으려고 온 두억시니를 막으려 왔다는 걸 알게 되는데...

꿈을 보고 꿈과 대화하는 신비로운 주인공 설이와 엄격하지만 아이들을 무척 사랑하는 교사 화식조와의 티키타카가 매력적이었던 작품. 우리 청소년들로부터 꿈을 빼앗아가는 사회 현실을 잘 보여주는 작품인 것 같았다.

네 번째 이야기 "부처핸접" 에서 주인공 지거는 작은 절 학선사에서 어머니와 다름없는 주지스님 법해와 함께 살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절과 절 자리를 빼앗으려는 한 사악하고 간교한 기업 대표의 계략에 빠져 주지스님이 강원랜드에서 5억이라는 큰돈을 탕진하게 된다. 고민에 빠져 있던 지거는 얼마 전 템플스테이를 다녀간 무량과 매니저 주연을 통해 랩 경연 프로그램인 [샤워 미 더 머니]의 1등 상금이 5억 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대회에 참여하게 되는데... 한편, 치매로 인해서 정신이 들어왔다 나갔다는 반복하는 주지스님은 악귀들에 의해서 절이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이상한 소리를 자꾸 하시는데 과연 이 절에는 무슨 일이 발생하고 있는 걸까?

스님과 힙합이라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었으나 대단히 시너지 효과가 있었던 작품. 라임을 딱딱 맞추는 힙합과 불경이 만나서 악귀를 쳐부수는 장면이 정말 압권인 이야기이다. 이야기 내용 자체가 굉장히 리듬감 있게 느껴졌다.

한물 간 일본 호스트를 연기하는 한 개그맨의 인기가 떨어질 줄을 모른다. 부캐가 본캐를 압도하는 시대가 왔다. 여러 다른 페르소나를 가진 사람들에게 열광하는 이유는, 인간의 본질 그 자체가 다면적이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낮에는 아이들과 씨름하는 공무원이다가도 밤에는 압정으로 두억시니를 물리치는 전사와 불경에 비트를 얹어서 요괴를 처단하는 스님이 등장하는 이야기들. 대단히 재미있었고 대단히 신선했다. 우리에게는 스스로가 모르는 어떤 능력이 숨겨져 있지도 모른다는 사실! 사람을 겉으로만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속담을 문득 생각나게 만든 앤솔로지 [이중 생활자]

* 출판사에서 제공한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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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 웹소설을 말할 때 알아야 할 것들
이융희 지음 / 요다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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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칠 수 있는 이론, 가르칠 수 없는 기술

웹소설 교육 현장에서 웹소설을 다시 생각하다

예전에 웹소설에 푹 빠져있는 대학 후배와 만난 적이 있다. 눈물이 맺힌 빨간 눈동자를 한채 왔길래 이유를 물었더니 새벽에 웹소설을 읽느라 잠을 못 잤다는 것이었다. 편견과 선입견을 갖지 말고 우선 한번 읽어보라는 후배의 말은 그냥 흘러 들었었다. 웹소설은 다소 생소한 분야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얼마전에 "재벌집 막내아들"이라는 공전의 히트작을 만나게 되었고 미친 듯이 빠져들었는데, 그 드라마의 원작이 웹소설이었다니?! 그 뿐만 아니라 요즘 나오는 장르소설 중 않은 신작들이 웹을 기반으로 창작된 작품을 다시 종이책으로 발간한 거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도대체 웹소설이 무엇이고 매력이 뭔지 알고 싶었다.

그러던 차에 이 책 " 웹소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를 만나게 되었다. 웹소설 작법 위주의 실용서가 아닐까? 생각했는데 내 예상을 완전히 벗어난 책이었다. 어떻게 보면 논문을 책으로 다시 편집한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저자 이융희씨는 2006년에 소설 " 마왕성 앞 무기점" 을 출간하고 이후 장르 관련 글을 쭉 쓰고 있고, 한국 판타지 소설을 주제로 석사 학위와 박사 학위까지 받은... 이 분야의 전문가이다. 그래서 지식의 넓이와 깊이가 남달랐구나 싶다. 현재 대학에서 웹소설과 장르 관련 강연을 기획하고 진행하는 일을 맡고 있다 한다. 놀란 것은, 웹소설을 가르치는 대학이 있다니 ( 내가 너무 무식하다는 생각 ) 그리고 이제 웹소설은 사회 현상을 넘어서서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았다는 것까지 알게 되었다. 독보적인 존재감을 뽐내고 있달까?

이 책은 웹소설이라는 주제를 넓고 깊게 파고든다. 웹소설의 본질, 즉 웹소설이 과연 무엇인가? 에서부터 웹소설의 기원, 즉 이 장르가 생기게 된 사회적 역사적 배경까지 다루고 있다. 그리고 웹소설의 가치는 뭐고 좋은 작품은 어떤 것이 있는지, 그리고 웹소설에 대한 강의에서 주로 어떤 내용을 가르치고 있는지까지 제시한다. 웹소설이라는 현상이자 문화를 매우 다각도로 분석하고 연구한 결과를 내놓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현재 대학에서 실제로 강의를 하고 있는 저자이기에 탄탄하고 체계적인 강의 커리큘럼이 필요했다고 느꼈을 것이고, 이 책이 그 피와 땀의 결정체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큰 흐름을 잡아가는 이론서이자 실질적인 작법으로까지 연결되는 충실한 책이라고 하겠다.

“ 그러나 웹소설은 하루에 한 편 연재되며, 독자들의 댓글 반응이 좋지 않으면 24시간 이내에 내용을 A/S 하지요. 그렇다보니 소설의 내용은 작가만의 생각을 바탕으로 한 창작물에 그치는 게 아닙니다. 독자들이 소설에 바라는 욕망이 즉각적으로 포함되고, 동시에 그것이 다시 작품이라는 콘텐츠에 흡수되지요.”

그렇다면 웹소설이 요즘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는 뭘까? 처음부터 끝까지 작가의 의도대로 완결되어 나오는 종이책과 달리 웹소설은 그날 그날 독자들의 반응을 보고 수정까지 하는, 즉 독자들의 반응이 적극적으로 반영되는 분야였다. 흔히들 이야기하는 쌍방향 시스템이랄까? 넷플릭스에서 본 한 영국 드라마에서 독자들이 선택하는 결말이라는 다소 파격적인 구조를 봤었는데, 웹소설에서는 이미 시작된 현상이었다. 저자에 따르면, 독자가 적극적으로 자신의 소비패턴과 문화적 형상을 해시태깅해 소비함으로써 텍스트의 장르의 바꾸는 시대가 된 것이다.

“ 대학이라는 공간의 제도적 문제 때문이기도 합니다. (...) 강사들은 커리큘럼을 짤 때 학생들의 역향이 어느 정도인지, 어떤 커리큘럼으로 수업을 받았는지 파악할 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중복된 커리큘럼을 교육하지 않기 위해서는 교육 시스템을 완비한 컨트롤타워가 역량 있는 사람을 제 공간에 배치해야만 합니다.”

온라인이나 오프라인을 통틀어 글쓰기를 가르치는 프로그램이나 기관이 있다는 건 알았지만 웹소설이라는 특정 분야를 가르치는 학과가 대학에 있다는걸 이 책을 통해서 처음 알게 되었다. 저자는 한국 사회가 가진 특수성 ( 게임 산업, IT분야 발달 ) 덕분에 웹소설 분야가 발전했고 그런 문화를 누린 세대들이 적극적으로 웹소설을 소비하는 주체이자 창작하는 주체가 되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웹소설 분야와 산업은 쑥쑥 성장하고 있는데 작가나 비평가 등등 웹소설에 대한 전문가를 육성할 수 있는 교육 시스템이 아직 빈약하고 앞으로도 더 보충해야 할 분야임을 저자가 지적하고 있는데 매우 공감가는 부분이었다.

생각보다 굉장히 전문적이고 깊이있었던 책 [웹소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웹소설이라는 우물만 수십년 파온 저자의 내공이 느껴졌다. 이 책에 나와 있는 것처럼 체계적으로 강의 커리큘럼이 짜여져 있다면 학생들의 수업에 대한 만족감도 굉장히 클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경우, 책을 읽기 전과 책을 읽고 난 후 웹소설에 대한 생각이 180도 바뀐 느낌이다. 나름 엘리트인 후배가 웹소설에 빠져든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한국이라는 특수한 환경에 뿌리를 내리기까지 웹소설은 여러 정체성을 거치면서 발전을 해왔다는 생각이 든다. 웹소설이라는 바다에 풍덩 빠질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던 책 [웹소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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