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사랑할 수 없는 두 사람
요시다 에리카 지음, 김은모 옮김 / arte(아르테) / 2023년 3월
평점 :
세상엔 정말 다양한 색깔을 가진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자석처럼 이끌려서 누군가를 만나게 되고 가족을 이루고 지지고 볶는 생활을 하며 살아간다는,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나의 가치관을 단번에 무너뜨리는 사람들의 이야기 [사랑할 수 없는 두 사람] 물론 최근 들어 1인 가구 수가 늘었고 다양한 형태의 가족들이 늘긴 했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천생연분과 만나 사랑에 빠지고 결혼을 하고 가족을 이루는 꿈을 꾼다. 그렇기에 사랑이 뭔지 모르고 사랑을 할 수 없는 부류인 주인공 사쿠코와 다카하시의 이야기는 매우 신선했다.
누구에게도 로맨틱한 감정과 성적 이끌림을 느끼지 않는 여자,
사랑하지 않아도 괜찮은 남자와 임시 가족이 되다!
사쿠코는 일반 사람들과 약간 다르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그와 로맨틱한 관계를 가지는 것에 대한 욕심이 전혀 없다. 과거에 누군가와 사귀어도 봤지만 정신적이든 육체적이든 친밀감을 쌓아가는 일이 그녀에게는 정말로 어려운 것이었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친절한 사쿠코를 오해한 많은 남자들은 그녀에게 이성적으로 접근을 하고 그러다가 그녀가 그들에게 이성적 관심이 없다는 것을 알고는 실망하는 경우가 많았다. 사쿠코는 그런 상황이 되면 자신에게 큰 문제가 있나 싶어서 우울감에 빠지게 되었다. 그러다가 그녀는 우연히 날개 빛 양배추라는 닉네임을 가진 누군가의 블로그에 들어가게 되고 그 사람의 생각이 자신과 매우 비슷하다는 걸 알게 된다.
“ 연애와 성적 감정을 별개로 보고, 둘 중 어느 면에서도 남에게 끌리지 않는 경우는 에이 로맨틱이 자 에 이 섹슈얼이기도 합니다. 그런 사람을 ‘에이 로맨틱 에이 섹슈얼’, 줄여서 ‘에이로에이섹’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습니다. 정의와 표기법, 당사자에게도 다양성이 존재합니다 ”
"날개 빛 양배추"의 블로그에 쓰인 글들은 마치 사쿠코의 마음을 대변하는 듯했다. 세상엔 남을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고, 누군가와 함께 살기 위해 반드시 그를 사랑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는 블로그 주인. 그러던 어느 날 관리차 들른 슈퍼 마루마루 야마나카점에서 만났던 직원 다카하시가 그 블로그의 주인이라는 걸 알게 되는 사쿠코. 너무나 기쁜 마음에 다카하시를 붙들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충동적으로 그에게 함께 살 것을 제안하는 사쿠코. 물론 로맨틱한 감정과 성적 이끌림은 완전히 배제한 거래! 사쿠코의 갑작스러운 제안에 놀란 다카하시는 처음엔 다소 물러서지만 결국 혼자 살기는 좀 외로웠던 걸까? 이내 사쿠코의 제안을 받아들이게 되는데....
사실 책을 다 읽기 전까지는 이 책도 로맨틱 코미디 같은 거겠지라고 생각했다. 말하자면 사랑을 원치 않았던, 아니 원치 않는다고 머릿속으로 만 생각하던 두 사람이 서서히 서로에게 빠져들면서 생기는 좌충우돌? 그런 종류의 이야기를 생각했는데, 와우, 이 소설은 전혀 그런 쪽이 아니었다. 자신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분명하게 알고 상대방과의 거리를 존중하며 함께 살아갈 줄 아는, 매우 성숙한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사랑에 빠지지 않거나 연애를 하지 않는 사람들을 다소 비정상으로 보는 일반 통념과는 다르게 사쿠코와 다카하시는 너무나 정상적이고 자신들의 삶을 사랑하는 사람들이었다. 책을 읽다 보니까 저절로 설득이 되었다. 저마다 생각하는 삶의 방법이 다를 수 있고 그 다름의 다양함을 인정하는 사회가 좋은 사회라는 것을.
" 주변에서 정해놓은 기준에 얽매이기 싫어하는 저희조차도요. 사고방식이나 소중한 것도 점점 변해가는 법이니까 그때그때 최선을 찾아가면 되고, 만약 두 사람의 최선이 전혀 다른 방향이라 여러모로 의논했는데도 합의를 이루지 못한다면, 억지로 가족으로 지낼 필요도 없겠죠."
읽을 땐 재미있었는데 다 읽고 나니 생각이 많아졌다. 세상에는 정말 많은 종류의 사람들이 있고 사쿠코나 다카하시처럼 일반적인 삶을 살아갈 수 없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왜 다른 삶의 가능성에 대한 논의가 우리 사회에선 많이 없는 걸까? 개인이 행복할 수 있는 사회를 위해선 좀 더 다양한 형태의 가족 구성에 대한 고민도 있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재미있었지만 동시에 다른 형태의 가족 구성의 가능성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하게 해준 책 [사랑할 수 없는 두 사람]
* 출판사에서 제공한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