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마귀가 울다
박현주 지음 / 씨엘비북스(CLB BOOKS)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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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살을 막고자 발생하는 행위가 설령 명부전의 규율을 어기는 것일지라도

사자의 행위는 정당함으로 인정받는다"

저승사자라고 하면 다소 무서운 이미지가 떠오른다. 검은 도포와 갓 그리고 창백한 얼굴에 날카로운 눈빛.. 그들은 밤의 어둠을 틈타 슬며시 다가와서는 누군가의 목숨을 거둬서 체포하듯 저승으로 끌고 간다는 말이 전해진다. 그래서 수사에 일가견이 있는 경찰이나 검찰에게 때때로 저승사자라는 별명을 붙이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소설 [까마귀가 울다]에 나오는 저승사자들은 다소 세련된 분위기에 일종의 공무원 같은 느낌을 준다. 특히 저승사자가 자살 예방에 나선다는 설정은 비록 사람은 아니지만 저승사자에게도 있을 수 있는 인간성을 부각시킨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이 좋았다. 저승사자에게서 사람 냄새가 난달까? 따뜻하면서도 누군가에게 힘을 줄 수 있는 듯한 소설 [까마귀가 울다]

주인공 현은 저승사자이다. 그러나 그는 죽음이 임박한 사람들을 저승으로 이끄는 역할을 하기보다는 자살을 결심한 사람들의 마음을 돌리는 일을 주로 하고 있다. "죽음" 그 자체로 보이는 저승사자가 죽음을 예방한다니.. 다소 아이러니하게 보이기는 하지만 사실은 명부가 확실히 열리지도 않은 사람들의 안타까운 죽음을 막기 위해서 명부전에서 만든 또 다른 규율을 따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던 어느 날, 현은 5년 전에 자신이 겨우 살려냈던 한 소년을 길거리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다. 불행한 가정 출신이었던 소년 정운은 도서관에서 책마다 자살 방지 명함을 꽂고 다니던 저승사자 현을 당시 알아봤었다. 일반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현이 소년의 눈에 보인다? 그 말이라는 것은 소년이 살인에 연루되거나 자살 결심을 했다는 뜻.

" 자살에 실패했다는 말은 삶에 성공했다는 말과 동일하지 않다.

그래서 나는, 매일 인간을 살리기 위해 노력한다."

그 당시 소년을 살리기 위해서 고양이를 어디서 구해오고 김밥을 사다 나르고 옆에서 좋은 충고를 해주는 등 저승사자 현은 최선을 다했었다. 그런데 5년이 지난 지금, 정운의 눈에 왜 또다시 저승사자인 자신이 보이는 걸까? 5년 전 당시에 비해서 많이 안정되어 보이는 듯한 정운. 비록 3수이지만 대학 준비를 착실하게 하고 있고 사랑하는 반려묘 소크라테스에게 꼬박꼬박 밥을 주는 것을 잊지 않는 생활 밀착형 인간으로 변한 듯한 정운.. 그러나 현은 불안하기만 하다. 혹시 정운이 겉으로는 행복한 척하면서 다시 자살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 소설 [까마귀가 울다]에서 좋았던 점은, 각기 개성 있는 저승사자들에 대한 묘사였다. 대구를 담당하기에 걸쭉한 사투리가 매력인 저승사자 "철" 은 붉게 염색한 머리에 선글라스를 낀 외모로 묘사된다. 넉살 좋고 오지랖을 심하게 떠는 "철" 은 정운의 자살을 막아보겠다고 줄기차게 그에게 밥을 사 먹인다. 논리적이고 냉철한 저승사자 "한"은 인간에게 다소 냉소적이라 오지랖 떠는 "철" 과 사사건건 부딪힌다. 성격이 180도 다른 이들의 소소한 갈등 구도도 재미있었다. 이 소설에는 저승사자 외에도 선녀도 등장하는데, 하늘에서 쫓겨나서 이승을 전전하고 있는 선녀 해당에게까지 정운의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선녀와 장군은 미래에 일어날 죽음을 미리 예방하는 역할을 하는데... 정운에게 깃든 불길한 죽음의 전조.. 과연 그에게 무슨 일이 발생할 것인가?

까마귀가 울면 누군가가 죽어나간다는 것... 그렇게 오늘도 현은 스스로 생을 마감하려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서 팔을 걷어붙인다. 그는 스스로 생을 마감하려던 할머니에게서 꾸준하게 김밥을 주문했고 자살하려는 낌새가 보이는 정운을 따라다니며 밥을 샀다. 옛날부터 한국에서는 " 식사하셨어요? "라는 말이 인사일 정도로 정을 나누는 데는 "따뜻한 한 끼" 가 최고로 여겨진다. 다 읽고 나니 무시무시한 저승사자들의 이야기라기보다는 복지 회관에서 일하는 공무원들이 동네 사람들의 안부를 알뜰살뜰하게 살피는 그런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자살공화국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사람들이 많은 대한민국. 우리 눈에는 보이진 않지만 최근에 저승사자 "현" 과 같은 이들이 유달리 많이 늘어나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만약에 부제를 붙일 수 있다면 " 저승사자와의 따뜻한 한 끼"라고 붙여도 될 정도로 밥 먹는 장면이 많이 등장했던 [까마귀가 울다] 혹시나 힘겨운 삶에 지쳐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꼭 읽어보라고 추천하고 싶은 작품이다.

* 출판사에서 제공한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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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사연을 찾는 무지개 무인 사진관 - 2023 상반기 올해의 청소년 교양도서
김재희 지음 / 북오션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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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지개처럼 다양한 사연을 지닌 사람들의 별 무리 같은 이야기 "

세상에는 실로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기에 그들이 겪는 문제도 다양하다. 책이나 TV 등을 통해서 소개되는 사람들의 사연 중에는 기가 막힐 정도로 안타까운 사연들도 많다. 그런데 요즘에는 섣불리 충고를 하거나 간섭을 하기가 꺼려진다. 사람들 사이에 벽이 예전에 비해서 한층 더 높고 두꺼워진 느낌이다. 그러나 이런 각박한 세상에 내 사연을 듣고 진심으로 반응하고 도와주는 웬 사진관이 있다고 생각해 보자. 이야기를 먹고사는 듯한 주인과 직원은 나의 힘든 이야기를 다 들어주고 따라다니면서 예쁜 사진을 찍어주기도 하며 진심으로 문제 해결에 도움을 준다. 따뜻하면서도 힘이 불끈 솟게 하는 힐링 소설 [무지개 무인 사진관] 속으로 들어가 보자.

" 제가 무무사 사장이라서 하는 말이 아니고, 저에게는 소원을 들어줄 능력이 있어요. 사진을 찍어드리고 면접 합격 소원을 이루어 드릴게요"

주인공 수경은 국회의원 보좌관 일을 하다가 일이 너무 고된 나머지 거의 도망치듯 일을 그만두게 된다. 여러 알바를 전전하던 어느 날, 사연을 남기고 사진을 찍으면 소원을 이룰 수 있다는 무지개 무인 사진관을 알게 된다. 무무사의 주인인 주연의 도움으로 면접용 사진을 찍은 뒤 수경은 정말로 취업에 성공하게 된다. 그러나 좋았던 기분도 잠시, 이 회사가 보이스피싱 사기꾼이 운영하는 곳이라는 걸 알게 되는 수경. 주연의 개입으로 다행히 아무 일 없이 회사를 나올 수 있게 된 수경은 이 일을 인연으로 무무사에 취업하게 된다. 주연에게서 사진 찍는 법을 배우게 되는 수경.

사연을 남기면 사진을 찍어준다는 이야기에 실로 다양한 사람들이 무무사에 들러 사연을 남기고 사진도 찍는다. 결혼 이후 집에서 살림만 하고 자기 관리를 하지 않아서 15kg 이상 살이 쪄버린 서용정씨의 경우, 남편에게서 갑작스러운 이혼 통보를 듣게 된다. 그녀는 억울하기도 하고 더 좋은 남자를 만나고 싶은 욕심에 무무사에 들러 멋진 사진을 찍어줄 것을 부탁한다. 그런데 이 뻔뻔한 아줌마는 정신이 없어서 무무사에 두고 간 샤넬 백을 혹시라도 건드리면 경찰에 신고하겠다는 무시무시한 경고까지 함께 남겼다. 가게의 입장에서 봤을 땐 진상이고 갑질한다고 느껴질 만큼 무례한 여성인 서용정. 앞으로 이들 앞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어릴 때부터 엄마의 과보호 아래 마마보이로 커온 남자 임진성은 잘생긴 외모에 경제력까지 있지만 현실에서의 인간관계를 너무 버거워해서 애니메이션 주인공인 파파라라와 결혼하겠다고 결심한다. 그는 결혼을 위해 선을 보라고 다그치는 엄마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사진을 찍어달라고 요청한다. 다만 결혼 정보 회사에서 아무도 선택하지 않을 그런 엉망진창인 사진. 그리고 홈쇼핑의 호스트로 일하는 여자 한동희는 자신이 젊은 동료 호스트들에 비해서 너무 늙어 보인다고 생각을 하게 된다. 영원히 안 늙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달라는 사연을 남긴 한동희. 그녀는 자신의 소원을 이룰 수 있을까?

무인 사진관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사진 찍기 밖에 없다고? 노노, 이 [무지개 무인 사진관]에는 아주 맛있는 커피와 친절한 사장님 그리고 빠릿빠릿한 직원까지 있다. 어떤 사연을 가진 손님이든 간에 사장 수연의 손을 거치면 해결되지 않는 일이 없다. 아주 마법스럽고 신비로워 보이겠지만.. 글쎄, 아주~ 현실적이고 아주~ 평범하기까지 한 방법일 수도 있다. 그런데 이 이야기에서 가장 미스터리한 인물이 있다면 그건 바로 무무사의 사장인 주연이다. 해결되지 않은 채 주연의 인생을 좀먹고 있던 한 사건이 수경과 사람들의 도움으로 해결되게 된다. 잔잔하게 흘러가던 소설이 막판에 와서는 급물살을 타면서 갑자기 스릴러 장르가 된다. 역시 스릴러의 거장인 김재희 작가다운 결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너무나 따뜻하고 다정했던 소설, 타인을 위해 조금 더 시간을 내고 귀를 열어야겠다고 느끼게 만들었던 좋은 책 [무지개 무인 사진관]

* 출판사에서 제공한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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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자비한 여자들 - 최고의 쌍년을 찾아라
멜라니 블레이크 지음, 이규범 외 옮김 / 프로방스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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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팔콘만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하고, 누구든 다치게 할 수 있는 최고 등급의 사악함이 필요합니다.

쌍년처럼, 완전히 쌍년처럼요."

잘 만들어진 드라마는 배우 뿐만 아니라 제작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에게 부와 유명세를 안겨줄 수 있다. 시청자들은 감탄에 감탄을 거듭하며 그런 드라마를 시청하게 되지만 정작 시청자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 그런 드라마의 제작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혹은 방송국 안에서 벌어지는 이권 다툼이나 권력 싸움 등등은 우리가 정작 알 수는 없다. 조금만 양념을 치면 드라마 뒷편, 즉 방송국 사람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소설이나 영화로 만들어도 재미있겠다 싶었는데, 이 [무자비한 여자들 - 최고의 쌍년을 찾아라 ]가 바로 "팔콘만" 이라는 연속극을 제작하는 사람들, 특히 여자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무지막지한 이야기들 - 배신, 복수, 질투 등등 - 을 다루고 있다.

소설 [무자비한 여성들] 은 현재 작가로 활동하고 있지만 "드라마의 여왕"으로 잘 알려졌다는 멜라니 블레이크의 두번째 소설이다. 아마도 " 드라마 제작 과정 " 을 속속들이 잘 알 것 같은 그녀의, 폭로에 가까운 글인 듯 하다. 각 등장 인물들의 성격이라든가 개성 등이 잘 드러나서 재미있는 것도 있었지만 배우들과 놀아나는 (?) 캐스팅 책임자나 아이를 낳고 난 이후 자꾸만 자리에서 밀려나는 여성 PD 의 모습 등등이 세계 어디서나 있을 수 밖에 없는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 책은 드라마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여성들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보여줘서 더 좋았던 것 같다. 겉보기엔 화려해보이지만 마약 중독이나 사기, 거짓 그리고 배신이 판치는 무시무시한 연예계... 그 속으로 들어가보자

작은 섬에서 그림같은 배경을 두고 촬영되는 드라마 팔콘만. 전 세계적으로 40년 가까이 방영된 이 드라마는 한때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현재 이 드라마의 시청률이 반토막이 되면서 제작진들 사이에 살벌한 긴장감이 맴돈다. 드라마를 살릴 여러 아이디어 중에서 최고 등급의 사악함, 즉 쌍년을 찾아서 드라마에 투입해야 한다는 아이디어가 채택이 되면서 뭔가 돌파구를 찾은 듯한 제작진. 한편 방송국의 소유주가 매들린 케인이라는 여성으로 바뀌면서 모든 것이 흔들릴 위기에 처했다. 아역 배우로 데뷔하여 이제는 작가로 역량을 넓힌 파라, 드라마 속 루시 딘 역할로 오랫동안 인기를 끌어온 캐서린, 그리고 총 책임자인 제이크의 아내이자 프로듀서인 아만다는 모두 드라마가 시작되던 시기부터 지금까지 제 역할을 충분히 해낸, 매우 유능하고 열정이 가득한 여성들이다. 그러나 매들린 케인은 비열한 총 책임자인 제이크와 결탁하여 모든 것을 뒤집고 여자들의 자리를 뺴앗으려 한다. 도대체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가?

사실 드라마 팔콘만 뿐만 아니라 여기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삶이 드라마 그 자체이고 각 개인의 삶이 이 소설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듯 하다. 방송국도 직장이고 직장에 만연한 차별과 권력 다툼 등이 여기서도 뻔히 들여다보였다. 우선 다른 직원의 아이디어를 마치 자기의 것인양 포장하는 거짓말쟁이 총 책임자 제이크 ( 이런 상사는 널렸다 ) 아이를 낳고 나서는 일과 양육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제대로 다룰 수 없어서 힘들어 하는 프로듀서 아만다 ( 그래서 보통 여자들이 경력이 단절이 되는 것이다) 실력이 충분하지만 남성 중심의 방송국에서 밀려날 처지에 있는 파라 ( 이런 경우는 너무 흔하다 ) 하지만 새로운 소유주가 오면서 벌어지게 된 소동 아래에서 오랫동안 함께 일하며 친구가 된 여성들이 서로 연대하는 모습은 참으로 보기 좋았다. 비록 어느 지점에서 서로 삐걱거리게 되지만....

섹스가 난무하고 거짓말, 질투, 속임수 그리고 복수... 이 소설은 한번 가속도가 붙으면 내려놓을 수 없는 그런 소설이다. 특히 각 인물들, 아무 작은 비중의 인물들이라고 그들의 사연이 어느 정도 소개되어 있는 점이 좋았다. 아역 배우로 데뷔해서 성 착취를 당했다던가 한때는 큰 인기를 끌었지만 성 스캔들이나 마약 중독 등으로 고생고생한 배우들의 사연은, 겉으로 보기엔 화려하기만 한 연예계의 어둡고 비밀스러운 치부를 드러내는 것 같아서 인상적이었다. 일종의 막장 드라마라고 하면 될까? 친구라고 믿었던 여자가 자기 남편과 놀아나고 있다면 기분이 어떨까? 이 소설 [무자비한 여자들]은 제목 그대로 커리어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는 야심만만하고 열정적인 여자들의 이야기이다. 조금 가볍지만 흥미진진한 이야기 속으로 풍덩 빠지고 싶다면 이 [무자비한 여자들-최고의 쌍년을 찾아라] 속으로!

"남녀간의 전투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무엇이든 할 준비가 되어있다. 질투와 복수심과 야심이 그들의 우정을 갈라놓을까? 확실한 것은 가장 무자비한 여자가 살아남는다는 것. "

* 출판사가 제공한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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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먼 인 스펙트럼 안전가옥 FIC-PICK 5
배예람 외 지음 / 안전가옥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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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시도를 통해 새롭고 실험적인 작품들을 탄생시키는 안전가옥 출판사. 이번에도 매우 독특한 주제와 소재를 가진 앤솔로지가 탄생한 것 같다. [우먼 인 스펙트럼] 이라는 제목처럼 이 책에서는 여성들의 서사가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특히 여성 퀴어들의 이야기라 그런지 그들 사이의 감정선이 때로는 미묘하게 때로는 팽팽하게 느껴졌다. 요즘은 생물학적 성에 갇히기보다는 "내" 가 어떤 사람인지 탐구하는 경우가 더 많아서인지, 여성이 여성을 사랑하는 상황이 예전에 비해서 자연스럽게 다가왔다. 5가지 단편 소설에서 이야기를 주도하고 이끌어가는 것은 여성들.. 그들은 서로 질투하고 공격하고 미워하기도 하지만 힘든 와중에도 서로 연대하고 사랑하고 희생하기도 한다. 대중적인 재미뿐 아니라 이야기 속 숨어있는 메시지를 찾아내고 분석하는 재미도 쏠쏠했던 소설 [우먼 인 스펙트럼]

5가지 이야기가 모두 개성 넘치고 재미있었지만 나의 경우 [수직의 사랑], [하나뿐인 춤] 그리고 [누가 진짜 언니일까?]이 3가지 이야기가 나에게 조금 더 흥미진진하게 다가왔다.

[수직의 사랑]

심각하게 오염된 땅에서 더 이상 살아남지 못하게 되면서 거대하고 높은 건물을 지은 사람들. 돈과 권력이 많은 사람일수록 높은 층에서 살게 된다. 아래층으로 내려오면 올수록 비참한 생활이 사람들을 기다린다. 그래도 오염된 땅에서 개죽음을 당하는 것보다는 낫기에 아래층에서 무시당하면서도 꾸역꾸역 살아가는 사람들. 주인공 하영은 배달 일을 하면서 먹고살며 언젠가는 모든 것이 전복되길 바란다, 즉 탑이 무너질 날만 기다린다고 할까. 그러던 어느 날 그녀가 속한 "혁명당"에서 위험한 계획을 세운다. 국회의원의 딸을 납치하여 인간다운 삶을 보장받기 위한 거래를 하자는 것. 혁명당을 이끄는 유진은 하영에게 인질을 데려오라는 지령을 내리고 인질인 상미의 얼굴을 본 순간 하영은 그녀가 낯설지 않다고 느끼게 되는데....

* 수직의 사랑은 전형적인 디스토피아 물이다. 환경 오염으로 인해서 더 이상 바깥 생활을 하지 못하는 가운데에서도 사람들은 계층을 나누고 상류층은 하류층을 착취하고 지배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젊은이들은 절망한 상황에서 모든 것이 전복되기만을 기다린다.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아슬아슬한 상황에서도 지배-피지배 구도가 형성되는 걸 보니 영화 [설국열차]가 생각났다. 처절한 상황에서 역시 빛나는 것은 순수한 사랑과 우정! 하영과 상미가 나누는 애정이 돋보이는 소설이었다.

[하나뿐인 춤]

라뮈스 성인 아이들은 태어날 때는 같은 성의 쌍둥이로 태어나지만 청소년기에 접어들면서 이마에 붙어있는 감관도 퇴화하고 각기 다른 성으로 자라게 된다. 주인공인 카릴이 남자, 그리고 쌍둥이 동기인 릴카가 여자로 분화했듯이 말이다. 여자로서의 정체성이 분명한 릴카에 비해서 카릴은 춤을 출 때 남자 역할을 맡게 되는 것이 너무나 어색하게 다가온다. 자신이 남자라기보다는 여자에 가깝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카릴. 이런 생각을 드러낼 때마다 부모님의 심기가 불편해지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러던 어느날 친구 얀의 비밀을 듣게 되는 카릴은 졸업 무도회에서 여자 파트 춤을 준비하게 되는데... 과연 이 이야기의 결말은?

* 여러 이야기들 중에서 제일 독특하고 흥미로웠던 단편이다. 주인공 카릴이 느끼는 정체성 혼란을 보면서 실제 우리 현실에서도 이런 케이스가 굉장히 많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좀 했다. 개인적으로는 인간을 규정하는 데 있어서 전통이나 종교보다도 과학과 논리가 지배적인 편이 옳다고 생각한다. 생물학적으로 봤을 때 카릴처럼 스스로 여성도 아니고 남성도 아니라고 느끼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을 것으로 본다. 이런 개인들이 느끼는 혼란을 공동체가 잘 받아들이고 흡수해야 된다고 보는데, 그런 관점에서 봤을 때 이 소설 [하나뿐인 춤]의 결론은 굉장히 선하고 설득력이 있다.

[누가 진짜 언니일까?]

평생을 우유부단한 아버지에게 시달렸던 엄마. 그렇게 시달렸음에도 불구하고 만난지 얼마 안 된 남자와 결혼을 하겠다고 한다. 엄마가 아득바득 우겨서 나가게 된 상견례 자리에서 빠져나와 화장실에 간 주인공 "나"에게 어떤 여인이 접근해오고 그녀는 엄마의 결혼을 필사적으로 막으라는 충고를 한다. 그러나 결국 나에게는 새아버지가 생기고 엄마와 나는 양평으로 오게 된다. 그런데 화장실에서 봤던, 이복 언니일 거라 짐작했던 여인은 언니가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정원사와 가정부가 비밀스럽게 나누는 이야기를 엿듣게 되는 주인공. 그들의 대화 내용은 다소 섬뜩하다. 여자들이 죽어 나가는 집이라니..... 상견례 날 화장실에서 만난 그녀는 누구? 여자들이 죽어나간다는 소문은 사실일까?

* 고딕 스릴러라는 장르에 맞게 이 이야기의 분위기는 시종일관 음침하고 으스스하다. 소설 [레베카]에서 느꼈던 섬뜩함이 느낌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한적한 시골에 어울리지 않는 거대한 저택. 가정부와 정원사는 자기들끼리 비밀스러운 대화를 나누고, 집 주인으로 보이는 여인이 내민 손은 놀랍도록 차갑기만 하다. 거대한 저택 곳곳에는 들여다봐선 안될 공간과 비밀스러운 단지들이 놓여 있고 이 집으로 온 이후 엄마의 건강은 나빠지기만 하는데.... 결말이 소름 끼쳤던 이야기 [누가 진짜 언니일까?]

비슷한 이야기라도 등장인물 중 누구에게 초점을 맞추는가? 누가 화자인가?에 따라서 글의 성격이 매우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봤을 때 [우먼 인 스펙트럼]은 여성들이 느낄 수 있는 복잡 미묘한 심리 상태와 감정선을 아주 잘 드러낸다. 시대가 변하고 있고 성으로 사람을 나누기보다는 인간다움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회로 나아가고 있긴 하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는 여자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그렇기에 더욱더 서로 연대하고 지지할 수 있는 게 아닐까? SF, 디스토피아, 고딕 스릴러, 판타지 그리고 무협 등 다양한 장르와 독특한 주제로 독자들을 사로잡는 [우먼인 스펙트럼]을 추천한다.

* 출판사에서 제공한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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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채우는 여행의 기술 - 평범한 여행을 특별한 여행으로 바꾸는 30가지 질문 오렌지디 인생학교
인생학교 지음, 케이채 옮김, 알랭 드 보통 기획 / 오렌지디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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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손에 들어오는 작은 책 [나를 채우는 여행의 기술]은 알랭 드 보통이 기획하고 인생 학교에서 지은 책이다. 젊었을 때 알랭 드 보통의 "사랑과 인간관계" 시리즈를 읽고 작가에게 푹 빠졌었는데 이 작가의 지적 유희에 다시 빠지게 되어 너무 좋다. 사랑이라는, 감정의 영역에 속하는 부분도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분석했던 작가이기에 그는 이 책을 통해 그동안 우리가 여행에 대해서 제대로 깨닫지 못했던 부분을 조목조목 짚어준다. 책을 읽다 보니 신혼여행 때 남편과 내가 왜 발리 리조트에서 여유롭게 즐기기보다는 싱가포르에서 직접 관광지를 찾아다녔던 여행을 더 좋아했는지 알 수 있었다. 마냥 놀고먹는 게 여행이 아니라 새로운 곳에서 깨달음을 얻어 가는 게 여행이라는 생각이 문득 든다. 이 책을 통해서 알랭 드 보통이 이야기하는 여행이란 게 과연 무엇인가?

" 그렇지만 여행을 해 보면 안다. 우리가 얼마나 도시의 건축적인 아름다움을 갈구하고 있는지. 본능적으로 건축 환경이 우리에게 끼치는 영향을 알고 있는 것이다. (..) 이상적인 사회라면 건축이야말로 인간의 정신 건강에 중요하며 대중의 행복을 위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인정할 것이다." - 62쪽 -

몇 년 전에 이탈리아 3개 도시 - 밀라노, 토리노, 피렌체 -로 여행을 간 적이 있다. 그전에는 아시아 쪽 - 홍콩, 일본, 대만 등 - 으로 주로 여행을 다닌 터라 뭔가 친숙한 분위기였는데, 그때는 이탈리아의 색다른 문화에 푹 젖을 수 있었다. 특히 이탈리아의 건축물들을 본 순간 그야말로 입에서는 감탄이 흘러나왔다. 피렌체에서 본 성당과 광장들은 웅장하고 아름다웠고 내가 묵었던 민박집의 인테리어도 정말 예술적이었다. 일주일 정도밖에 머물지 않았지만 건축물로 인해 굉장히 행복하다는 느낌을 가졌었던 기억이 난다. 알랭 드 보통 작가의 주장처럼 예술적이고 아름다운 건축 디자인은 실제로 인간의 정신 건강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 즐거움이 작다는 것은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기쁨의 양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세상이 부당하게 폄하해 왔던 좋은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보여주는 지표일 뿐이다. 그러니 여행이 주는 보통의 즐거움들을 충분히 만끽하는데 도전해 보자. "

알랭 드 보통 작가는 우리가 여행을 할 때 마주칠 수 있는 작은 즐거움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호텔 테라스에서 먹은 호밀빵 한 조각. 어느 수로 근처에 펼쳐진 민들레 꽃밭. 분수에서 빨래를 하고 있던 사람과 나눈 짧은 대화, 늦은 밤 한 도시의 공원을 걸을 때 들려오는 소리들.... 정말 공감 가는 대목이었다

여행을 하다 보면 특히 작은 것에 감동하게 되고 즐거움을 얻게 되는 것 같다. 대만 야시장에서 스트리트 푸드를 먹고 홍콩 소호 거리에 있는 에스컬레이터를 타는 것만으로 너무너무 즐거웠다. 그 지역 사람들에게는 그냥 일상으로 여겨질 수 있는 것들이 관광객에게 큰 즐거움으로 남을 수 있다는 사실!

" 세상이 글로벌화되고 있다고들 하지만 각 나라의 도시들은 매력적인 개성을 유지하고 있다. 냄새, 소리, 빵, 이른 아침의 햇살과 사람들의 신발, 홍차를 만드는 방법, 수도꼭지와 콘센트의 모양, 그리고 오후 5시의 빛 같은 것들... " -65쪽 -

작가가 이야기하듯, 각 나라와 지역은 나름의 개성을 가지고 있다. 독일 크로이츠 베르크에 위치한 작은 바에서 쇼펜하우어를 읽는 중년의 여성을 발견할 수 있고 모로코 카사블랑카의 시장통에서 피스타치오와 레몬 절임 등을 파는 나이 든 남자를 볼 수 있다. 한 곳에만 정착해서 살다 보면 사람 사는 게 다 똑같거나 다람쥐 쳇바퀴 도는 삶이라고 생각하고 지루하게 느낄 수 있다. 그러나 매력적인 개성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는 새로운 나라에 가면 그런 편견이 부서질 거라고 작가는 말하고 있다. 나의 경우 싱가포르에 여행 갔을 때 도시 곳곳에 이색적인 모양의 식물들이 가득한 게 인상 깊었고 이탈리아에서는 햇빛 가득한 광장과 카페 바깥에 놓인 테이블에 가득한 사람들이 인상 깊었다. 이런 모든 것들이 내 마음속에 있는 기록 노트에 남아 있는 것 같다.

우리가 여행을 하는 이유는 무엇이고 여행은 우리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는가? "여행"이라는 주제를 놓고 이렇게 다양한 시선을 가질 수 있는 것도 알랭 드 보통 작가의 재능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는 주장한다. 우리가 끌리는 여행지들은 알고 보면 현재의 삶에 없거나 부족한 부분을 채워 준다고 느끼는 장소들이라고. 우리는 단지 새로운 곳을 보고 싶어 하는 게 아니라, 배움을 얻고 더 나은 사람이 되기를 희망하기 때문에 여행을 하는 것이라고. 낯선 지역에서 경험하는 모든 것들이 우리의 삶을 더 풍요롭고 비옥하게 가꿀 수 있게 도와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에 대한 알랭 드 보통 작가의 이 에세이를 읽고 나면 당장 내일이라도 파리로 모로코로 혹은 독일로 여행을 떠나고 싶다는 마음이 들 것이다. 작지만 알찬 내용이었던 책 [나를 채우는 여행의 기술]

* 출판사에서 제공한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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