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먼 인 스펙트럼 안전가옥 FIC-PICK 5
배예람 외 지음 / 안전가옥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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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시도를 통해 새롭고 실험적인 작품들을 탄생시키는 안전가옥 출판사. 이번에도 매우 독특한 주제와 소재를 가진 앤솔로지가 탄생한 것 같다. [우먼 인 스펙트럼] 이라는 제목처럼 이 책에서는 여성들의 서사가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특히 여성 퀴어들의 이야기라 그런지 그들 사이의 감정선이 때로는 미묘하게 때로는 팽팽하게 느껴졌다. 요즘은 생물학적 성에 갇히기보다는 "내" 가 어떤 사람인지 탐구하는 경우가 더 많아서인지, 여성이 여성을 사랑하는 상황이 예전에 비해서 자연스럽게 다가왔다. 5가지 단편 소설에서 이야기를 주도하고 이끌어가는 것은 여성들.. 그들은 서로 질투하고 공격하고 미워하기도 하지만 힘든 와중에도 서로 연대하고 사랑하고 희생하기도 한다. 대중적인 재미뿐 아니라 이야기 속 숨어있는 메시지를 찾아내고 분석하는 재미도 쏠쏠했던 소설 [우먼 인 스펙트럼]

5가지 이야기가 모두 개성 넘치고 재미있었지만 나의 경우 [수직의 사랑], [하나뿐인 춤] 그리고 [누가 진짜 언니일까?]이 3가지 이야기가 나에게 조금 더 흥미진진하게 다가왔다.

[수직의 사랑]

심각하게 오염된 땅에서 더 이상 살아남지 못하게 되면서 거대하고 높은 건물을 지은 사람들. 돈과 권력이 많은 사람일수록 높은 층에서 살게 된다. 아래층으로 내려오면 올수록 비참한 생활이 사람들을 기다린다. 그래도 오염된 땅에서 개죽음을 당하는 것보다는 낫기에 아래층에서 무시당하면서도 꾸역꾸역 살아가는 사람들. 주인공 하영은 배달 일을 하면서 먹고살며 언젠가는 모든 것이 전복되길 바란다, 즉 탑이 무너질 날만 기다린다고 할까. 그러던 어느 날 그녀가 속한 "혁명당"에서 위험한 계획을 세운다. 국회의원의 딸을 납치하여 인간다운 삶을 보장받기 위한 거래를 하자는 것. 혁명당을 이끄는 유진은 하영에게 인질을 데려오라는 지령을 내리고 인질인 상미의 얼굴을 본 순간 하영은 그녀가 낯설지 않다고 느끼게 되는데....

* 수직의 사랑은 전형적인 디스토피아 물이다. 환경 오염으로 인해서 더 이상 바깥 생활을 하지 못하는 가운데에서도 사람들은 계층을 나누고 상류층은 하류층을 착취하고 지배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젊은이들은 절망한 상황에서 모든 것이 전복되기만을 기다린다.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아슬아슬한 상황에서도 지배-피지배 구도가 형성되는 걸 보니 영화 [설국열차]가 생각났다. 처절한 상황에서 역시 빛나는 것은 순수한 사랑과 우정! 하영과 상미가 나누는 애정이 돋보이는 소설이었다.

[하나뿐인 춤]

라뮈스 성인 아이들은 태어날 때는 같은 성의 쌍둥이로 태어나지만 청소년기에 접어들면서 이마에 붙어있는 감관도 퇴화하고 각기 다른 성으로 자라게 된다. 주인공인 카릴이 남자, 그리고 쌍둥이 동기인 릴카가 여자로 분화했듯이 말이다. 여자로서의 정체성이 분명한 릴카에 비해서 카릴은 춤을 출 때 남자 역할을 맡게 되는 것이 너무나 어색하게 다가온다. 자신이 남자라기보다는 여자에 가깝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카릴. 이런 생각을 드러낼 때마다 부모님의 심기가 불편해지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러던 어느날 친구 얀의 비밀을 듣게 되는 카릴은 졸업 무도회에서 여자 파트 춤을 준비하게 되는데... 과연 이 이야기의 결말은?

* 여러 이야기들 중에서 제일 독특하고 흥미로웠던 단편이다. 주인공 카릴이 느끼는 정체성 혼란을 보면서 실제 우리 현실에서도 이런 케이스가 굉장히 많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좀 했다. 개인적으로는 인간을 규정하는 데 있어서 전통이나 종교보다도 과학과 논리가 지배적인 편이 옳다고 생각한다. 생물학적으로 봤을 때 카릴처럼 스스로 여성도 아니고 남성도 아니라고 느끼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을 것으로 본다. 이런 개인들이 느끼는 혼란을 공동체가 잘 받아들이고 흡수해야 된다고 보는데, 그런 관점에서 봤을 때 이 소설 [하나뿐인 춤]의 결론은 굉장히 선하고 설득력이 있다.

[누가 진짜 언니일까?]

평생을 우유부단한 아버지에게 시달렸던 엄마. 그렇게 시달렸음에도 불구하고 만난지 얼마 안 된 남자와 결혼을 하겠다고 한다. 엄마가 아득바득 우겨서 나가게 된 상견례 자리에서 빠져나와 화장실에 간 주인공 "나"에게 어떤 여인이 접근해오고 그녀는 엄마의 결혼을 필사적으로 막으라는 충고를 한다. 그러나 결국 나에게는 새아버지가 생기고 엄마와 나는 양평으로 오게 된다. 그런데 화장실에서 봤던, 이복 언니일 거라 짐작했던 여인은 언니가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정원사와 가정부가 비밀스럽게 나누는 이야기를 엿듣게 되는 주인공. 그들의 대화 내용은 다소 섬뜩하다. 여자들이 죽어 나가는 집이라니..... 상견례 날 화장실에서 만난 그녀는 누구? 여자들이 죽어나간다는 소문은 사실일까?

* 고딕 스릴러라는 장르에 맞게 이 이야기의 분위기는 시종일관 음침하고 으스스하다. 소설 [레베카]에서 느꼈던 섬뜩함이 느낌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한적한 시골에 어울리지 않는 거대한 저택. 가정부와 정원사는 자기들끼리 비밀스러운 대화를 나누고, 집 주인으로 보이는 여인이 내민 손은 놀랍도록 차갑기만 하다. 거대한 저택 곳곳에는 들여다봐선 안될 공간과 비밀스러운 단지들이 놓여 있고 이 집으로 온 이후 엄마의 건강은 나빠지기만 하는데.... 결말이 소름 끼쳤던 이야기 [누가 진짜 언니일까?]

비슷한 이야기라도 등장인물 중 누구에게 초점을 맞추는가? 누가 화자인가?에 따라서 글의 성격이 매우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봤을 때 [우먼 인 스펙트럼]은 여성들이 느낄 수 있는 복잡 미묘한 심리 상태와 감정선을 아주 잘 드러낸다. 시대가 변하고 있고 성으로 사람을 나누기보다는 인간다움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회로 나아가고 있긴 하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는 여자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그렇기에 더욱더 서로 연대하고 지지할 수 있는 게 아닐까? SF, 디스토피아, 고딕 스릴러, 판타지 그리고 무협 등 다양한 장르와 독특한 주제로 독자들을 사로잡는 [우먼인 스펙트럼]을 추천한다.

* 출판사에서 제공한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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