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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귀가 울다
박현주 지음 / 씨엘비북스(CLB BOOKS) / 2023년 3월
평점 :
" 자살을 막고자 발생하는 행위가 설령 명부전의 규율을 어기는 것일지라도
사자의 행위는 정당함으로 인정받는다"
저승사자라고 하면 다소 무서운 이미지가 떠오른다. 검은 도포와 갓 그리고 창백한 얼굴에 날카로운 눈빛.. 그들은 밤의 어둠을 틈타 슬며시 다가와서는 누군가의 목숨을 거둬서 체포하듯 저승으로 끌고 간다는 말이 전해진다. 그래서 수사에 일가견이 있는 경찰이나 검찰에게 때때로 저승사자라는 별명을 붙이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소설 [까마귀가 울다]에 나오는 저승사자들은 다소 세련된 분위기에 일종의 공무원 같은 느낌을 준다. 특히 저승사자가 자살 예방에 나선다는 설정은 비록 사람은 아니지만 저승사자에게도 있을 수 있는 인간성을 부각시킨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이 좋았다. 저승사자에게서 사람 냄새가 난달까? 따뜻하면서도 누군가에게 힘을 줄 수 있는 듯한 소설 [까마귀가 울다]
주인공 현은 저승사자이다. 그러나 그는 죽음이 임박한 사람들을 저승으로 이끄는 역할을 하기보다는 자살을 결심한 사람들의 마음을 돌리는 일을 주로 하고 있다. "죽음" 그 자체로 보이는 저승사자가 죽음을 예방한다니.. 다소 아이러니하게 보이기는 하지만 사실은 명부가 확실히 열리지도 않은 사람들의 안타까운 죽음을 막기 위해서 명부전에서 만든 또 다른 규율을 따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던 어느 날, 현은 5년 전에 자신이 겨우 살려냈던 한 소년을 길거리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다. 불행한 가정 출신이었던 소년 정운은 도서관에서 책마다 자살 방지 명함을 꽂고 다니던 저승사자 현을 당시 알아봤었다. 일반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현이 소년의 눈에 보인다? 그 말이라는 것은 소년이 살인에 연루되거나 자살 결심을 했다는 뜻.
" 자살에 실패했다는 말은 삶에 성공했다는 말과 동일하지 않다.
그래서 나는, 매일 인간을 살리기 위해 노력한다."
그 당시 소년을 살리기 위해서 고양이를 어디서 구해오고 김밥을 사다 나르고 옆에서 좋은 충고를 해주는 등 저승사자 현은 최선을 다했었다. 그런데 5년이 지난 지금, 정운의 눈에 왜 또다시 저승사자인 자신이 보이는 걸까? 5년 전 당시에 비해서 많이 안정되어 보이는 듯한 정운. 비록 3수이지만 대학 준비를 착실하게 하고 있고 사랑하는 반려묘 소크라테스에게 꼬박꼬박 밥을 주는 것을 잊지 않는 생활 밀착형 인간으로 변한 듯한 정운.. 그러나 현은 불안하기만 하다. 혹시 정운이 겉으로는 행복한 척하면서 다시 자살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 소설 [까마귀가 울다]에서 좋았던 점은, 각기 개성 있는 저승사자들에 대한 묘사였다. 대구를 담당하기에 걸쭉한 사투리가 매력인 저승사자 "철" 은 붉게 염색한 머리에 선글라스를 낀 외모로 묘사된다. 넉살 좋고 오지랖을 심하게 떠는 "철" 은 정운의 자살을 막아보겠다고 줄기차게 그에게 밥을 사 먹인다. 논리적이고 냉철한 저승사자 "한"은 인간에게 다소 냉소적이라 오지랖 떠는 "철" 과 사사건건 부딪힌다. 성격이 180도 다른 이들의 소소한 갈등 구도도 재미있었다. 이 소설에는 저승사자 외에도 선녀도 등장하는데, 하늘에서 쫓겨나서 이승을 전전하고 있는 선녀 해당에게까지 정운의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선녀와 장군은 미래에 일어날 죽음을 미리 예방하는 역할을 하는데... 정운에게 깃든 불길한 죽음의 전조.. 과연 그에게 무슨 일이 발생할 것인가?
까마귀가 울면 누군가가 죽어나간다는 것... 그렇게 오늘도 현은 스스로 생을 마감하려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서 팔을 걷어붙인다. 그는 스스로 생을 마감하려던 할머니에게서 꾸준하게 김밥을 주문했고 자살하려는 낌새가 보이는 정운을 따라다니며 밥을 샀다. 옛날부터 한국에서는 " 식사하셨어요? "라는 말이 인사일 정도로 정을 나누는 데는 "따뜻한 한 끼" 가 최고로 여겨진다. 다 읽고 나니 무시무시한 저승사자들의 이야기라기보다는 복지 회관에서 일하는 공무원들이 동네 사람들의 안부를 알뜰살뜰하게 살피는 그런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자살공화국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사람들이 많은 대한민국. 우리 눈에는 보이진 않지만 최근에 저승사자 "현" 과 같은 이들이 유달리 많이 늘어나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만약에 부제를 붙일 수 있다면 " 저승사자와의 따뜻한 한 끼"라고 붙여도 될 정도로 밥 먹는 장면이 많이 등장했던 [까마귀가 울다] 혹시나 힘겨운 삶에 지쳐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꼭 읽어보라고 추천하고 싶은 작품이다.
* 출판사에서 제공한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