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청 - 잃어버린 도시
위화 지음, 문현선 옮김 / 푸른숲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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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회오리바람처럼 개인의 삶을 송두리째 뒤집어버리는 운명.. 그런 잔인한 운명 앞에서 개인은 과연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좌절한 채 주저앉아 울거나 분노할 수도 있겠지만, 적극적으로 운명을 받아들이는 방법도 있다. 소설 "원청"의 주인공 린샹푸는 자신의 삶을 할퀴고 가버린 사나운 운명에 의연히 대처한다. 앞이 보이지 않는 막막한 미래를 뚫고 힘차게 발걸음을 내딛는 린샹푸.... 소설 속에서 그가 보여준 용기와 고결함 그리고 인간에 대한 애정과 의리 등등은 정말 인상 깊었다. 소설 "원청" 은 청나라에서 중화민국으로 넘어가던 시기, 격동의 중국이 겪었던 혼란과 아내를 찾아 정처 없이 떠돌다 낯선 땅에 정착하는 린샹푸를 동시에 비추면서 독자들에게 거대한 물음표를 던진다. 운명이라는 것, 인연법이라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삶은 그저 정해진 운명을 따라가는 것에 불과한 것일까?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았던 땅, "원청" 그곳을 찾아 린샹푸는 길을 떠났다. 중국 북쪽 지역 출신인 린샹푸는 갓 태어난 딸을 안고 자신의 몸만 한 거대한 봇짐을 맨 채, 원청이라는 땅을 찾아 남쪽 지역으로 향한다. 린샹푸의 삶에 조용히 들어왔다가 연기처럼 사라져버린 아내 샤오메이. 정직하게 삶을 살아온 린샹푸의 머릿속에는 의문만이 가득하다. 아름답고 친절했던 아내 샤오메이가 어떤 사연으로 그의 삶에 갑작스럽게 들어왔다가 가버린 걸까? 핏덩이 같은 딸, 애지중지하던 딸을 놔두고 떠나야만 했던 이유는 과연 무엇인 걸까? 그리고 과연 고향땅 원청에 있기나 한 건지...

가던 길에 회오리바람을 만나 딸아이를 잃을 뻔하고 눈 폭풍에 휘말리기도 하지만 린샹푸는 포기하지 않는다. 천명이 넘는 여인에게 젖동냥을 받아 가며 고생고생 끝에 남쪽 지역에 도달하는 린샹푸. 그러나 누구를 붙잡고 물어도 원청이라는 지역을 아는 사람이 없다. 그러던 중 아내가 평소에 말했던 원청 지역과 가장 흡사해 보이는 지역인 시진에 도착하게 되는 린샹푸. 눈 폭풍이 몰아치는 가혹한 상황의 한가운데서 자신에게 큰 도움을 준 천융량이라는 사람과 그 가족들이 베푼 친절과 너그러움에 반한 린샹푸는 그들을 믿고 시진에 정착하기로 마음먹는데... 한 가닥 희망의 끈을 찾게 된 린샹푸.. 과연 그는 시진에서 꿈에 그리던 샤오메이와 상봉할 수 있을까?

중국 소설을 많이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이 소설 "원청" 은 그야말로 엄청나게 흥미진진하고 흡인력이 대단했다. 역시 대륙의 힘인 것일까? 굉장히 스케일이 크고 선이 굵은 소설이라는 생각이 든다. 개인의 심리 묘사와 같은 섬세함은 떨어지지만 끊임없이 몰아치는 여러 사건 덕택에 지루할 틈이 없었다. 특히 청나라에서 중화민국으로 넘어가던 1900년대 초반, 중국의 여러 다양한 모습과 사건들이 아주 스펙터클하게 그려져서인지 대단히 생명력 있고 생생하게 느껴졌다. 국가의 혼란을 틈타 돈을 얻기 위해 사람들을 납치하고 고문하고 살인을 서슴지 않았던 토비들, 그리고 그 토비들에게 맞서서 대항하다가 고통을 겪게 되는 평범한 사람들... 특히 가족과 친구를 위해 자처해서 납치당하고 고통을 겪는 사람들을 보며 가슴이 찡해졌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떠한 어려움이 찾아와도 인간성을 송두리째 내버리는 어리석은 선택은 하지 말자. 우리가 인간이라는 걸 한시도 잊지 말자.

이 책은 드라마인데도 굉장히 미스터리하게 시작한다는 점과 예상치 못했던 샤오메이가 화자인 이야기가 불쑥 등장한다는 점에서 흥미진진하다. 린샹푸라는 화자가 풀어내는 첫 번째 이야기에서는 주인공 린샹푸 뿐만 아니라 독자들도 도대체 샤오메이가 누구인지.. 그리고 왜 원청이라는 지역을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지.. 낯선 지역에 머물게 되는 린샹푸의 운명은 앞으로 어떻게 될 건지.. 알쏭달쏭 한 의문을 가진 채 책을 읽게 된다. 이 책은 어쩌면 우리의 인생을 말해주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점을 치거나 사주를 해석하거나 하면서 예측을 하려고 애쓰지만 결국 우리는 우리네 인생이 앞으로 어떻게 펼쳐질지 알 수 없다. 그냥 담담히 받아들일 뿐. 두 번째 이야기에서 우리는 비로소 의문을 품었던 많은 것들에 대한 해답을 얻게 된다. 첫 번째 이야기에서 입체적이었던 린샹푸에 비해서 다소 그림자처럼 느껴졌던 샤오메이의 사연이 술술 풀리며 두 번째 이야기에서는 그녀도 입체적인 존재로 변한다. 이 소설이 독특한 게, 사랑한다는 말이나 애정 표현이 전혀 드러나지 않는데도 절절한 감정이 고스란히 느껴진다는 점이다. 아이러니한 운명, 안타까운 인연법 앞에서 약자일 수밖에 없는 주인공들의 애절한 사연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웃다가 울다가 또 가슴 아팠다가 분노하다가.. 걷잡을 수 없고 통제할 수 없는 감정을 느끼며 책을 읽어내려갔다. 작가 위화는 [허삼관 매혈기]로 우리나라에서도 유명한 작가라고 하는데, 이 책 [원청]을 읽고 나니 그가 왜 인기 있는 작가인지 이유를 알 것 같다. 그가 풀어내는 이야기가 굉장히 드라마틱 하고 살아있고 힘이 있다. 누군가가 굵은 붓으로 선이 뚜렷한 중국 역사 속 한 토막의 그림을 그려낸 것 만 같다. 격동의 시대를 겪어내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마치 내 눈앞에서 펼쳐지는 것처럼 생생하게 그려졌다. 무엇보다도 주인공 린샹푸와 샤오메이의 이야기는 한 편의 서사시 같기도 했다. 거부하고 싶지만 거부할 수 없었던 안타까운 운명,, 도대체 이 아이러니한 운명의 장난은 누가 시작한 것인가? 만약 신이 있다면 그들이 꼬아버린 누군가의 실타래에 대해 항의하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나 어쨌든 주어진 운명을 거부하지 않고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살아낸 사람들의 용감한 이야기, 원청.

* 출판사에서 제공한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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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폴론 저축은행 - 라이프 앤드 데스 단편집
차무진 지음 / 요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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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죽음의 경계를 주시하는

서늘하고도 사려 깊은 여덟 개의 시선

삶과 죽음은 과연 명확하게 나누어질 수 있는 걸까? 끊임없이 서로를 들여다보고 있는 쌍둥이거나 꼬리에 꼬리를 물고 돌다가 결국 하나가 되는 두 마리 도마뱀은 아닐까? 니콜 키드먼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영화 [디 아더스]는 엄연히 다른 세계에 속한 두 존재들이 같은 시공간을 공유하며 경험하는 혼란과 착각을 다룬다. 두 아이와 함께 조용하게 살아가던 그녀는 어느 순간부터 낯선 존재를 인식하게 된다. 아무도 없는 방에서 갑작스럽게 피아노 소리가 들리고 아이는 여주인공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어떤 사람들이 집에 머무르고 있다는 이야기를 한다. 과연 그들은 누구고 여주인공이 겪는 혼란은 어디서부터 온 것일까?

혼란스러워하는 등장인물을 보다가 예상치 못했던 결론, 즉 반전에 깜짝 놀라게 되는 영화 [디 아더스]. 나는 이 책 [아폴론 저축은행]을 읽으면서도 비슷한 전율 혹은 소름을 느꼈다. 파도가 넘실대는 바닷가가 그러하듯 물과 땅이 혼재하는 곳에서는 그 경계를 제대로 알 수 없는 법, 이 책 [아폴론 저축은행]에서도 죽음이라는 파도가 끊임없이 넘실대며 삶이라는 육지를 침범한다. 갑작스럽게 경계가 무너진 곳에서 질서가 흐트러지고 시공간이 뒤집히면서 "내"가 그들을 들여다보는지 "그들"이 나를 들여다보는지 알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하는 책.. 작가의 그 서늘한 시선이 머무르는 곳으로 들어가 본다.

8편의 기묘하고 오묘한 단편 소설로 이루어진 책 [아폴론 저축은행]. 그중에서도 인상 깊었던 작품 4편을 꼽아보자면 [그 봄], [아폴론 저축은행], [상사화당] 그리고 [비형도]이다. [그 봄]은 남편을 잃고 악착같이 살다가 결국엔 생활고로 추측되는 어떤 사유로 아이들을 절에 맡기게 되는 엄마와 그 엄마를 그리워하며 외로운 절간 생활을 이겨내는 아이들의 이야기이다. 주지 스님이 살뜰하게 돌봐주기는 하지만 뼛속 깊이 엄마의 부재를 느끼는 아이들의 외로움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이야기인데, 마지막에 드러나는 반전 때문에 제일 깜짝 놀랐던 소설이다.

[그 봄]이 아련하고 쓸쓸한 기운을 가진 소설이라면, [아폴론 저축은행]은 모든 이야기들 중에서 가장 피비린내 나고 씁쓸한 뒷맛을 남기는 단편이라고 볼 수 있다. 시나리오 작가이자 택시 운전사인 주인공. 혈액암을 앓고 있는 아이에게 들어간 엄청난 병원비에 최근 일어난 외제차와의 교통사고까지.. 이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없었던 주인공과 아내는 자살 시도를 하지만 결국 실패하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택시 손님인 한 노신사가 소개해 줘서 알게 된 [아폴론 저축은행]이라는 곳에서 자신이 빌릴 수 있는 돈이 10억에 가깝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주인공. 신용 불량자인 주인공이 그렇게 많은 돈을 대출할 수 있는 이유는 과연 뭘까?

[아폴론 저축은행]이 벼랑 끝에 서 있는 현대인의 자화상을 매우 날카로운 시선으로 담아내었다면 [상사화당]은 "염매"라고 하는 고약하고 괴기스러운 귀신술을 부리는 남자 밀봉과 며느리와 아이 그리고 가진 것 전부를 일본에 빼앗겨버린 한 독짓는 노인에 대한 이야기이다. 일제 식민지 시절이 전달하는 황량함과 절망 그리고 "염매"라는 기묘한 저주술이 섞여 한 편의 그로테스크한 심령 영화가 탄생한 듯한 소설이다. 그리고 [비형도]는 그야말로 삶과 죽음, 이승과 저승이라는 시공간이 뒤집히는 것을 가장 절묘하게 보여주는 소설인데, 마치 도깨비에게 홀려서 밤새도록 빗자루와 씨름을 하고 깨어난 옆집 아저씨가 들려주는 이야기 같기도 하다. 정말 신묘하고 신비롭게 다가왔던 단편이다.

죽음과 저승 그리고 영혼이라는 존재는 우리가 알 수 없는 미지의 영역에 속한다. 호기심 많은 사람들은 폐가 투어 같은 활동을 통해서라도 우리가 함부로 넘나들 수 없는 세계로 침범하려고 애쓰기도 한다. 그러나 과연 죽음의 영역은 우리가 속한 세계와 동떨어져있는 걸까? 이 책 [아폴론 저축은행]은 독자들에게 묻고 있는 듯하다. 과연 죽음이 저 멀리 떨어져 있을까요? 혼자만 있는 줄 알았던 공간인데 만약 수많은 눈들이 그동안 내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면 그 기분이 어떨까요? 라고 말이다. 죽음이 내내 검은 입을 벌린 채 산자의 주변에 머무르고 있음을 알려주는 듯한 소설 [아폴론 저축은행]. 읽고 나니 책 자체에 서늘한 귀기가 서려있는 느낌이다. 영혼의 존재와 초자연적 세계 등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에게 적극 추천한다.

* 출판사에서 제공한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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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사랑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소미미디어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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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은 이 뫼비우스 띠 위에 있어요.

완전한 남자도, 완전한 여자도 없어요.

또 각자가 지닌 뫼비우스 띠도 하나가 아니에요. (...)

이 세상에 똑같은 사람은 없어요."

실로 오랜만에 읽은 히가시노 게이고 작가의 소설 [외사랑] 기존에 그가 써왔던 장르의 소설과는 사뭇 다른 느낌을 풍기는 책이다. 쫓고 쫓기는 추격전과 같은 범죄 미스터리의 요소가 있긴 하지만 그것보다 이 책은 좀 더 철학적이랄까? 인간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던진다. 여자와 남자를 구분 짓는 것이 정확하게 무엇일까? 성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는 사람이 문제일까, 아니면 그들을 무조건 배척하는 사회가 문제일까? 와 같은 날카로운 주제 의식을 가지고 독자들과 마주하고 있는 소설이다.

데이토대학 미식축구부 출신인 데쓰로는 매년 부원들과 만나 술잔을 기울이며 찬란했던 과거를 회상한다. 벌써 열세 번째 모임을 갖게 된 그들. 하지만 당시 두 명의 여자 매니저들 중 한 명이었던 미쓰키 히우라에 대한 소식은 좀체 들려오지 않는다. 그런데 모두와 헤어지고 마지막으로 남게 된 데쓰로와 스가이 앞에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 미쓰키. 하지만 놀라움과 기쁨도 잠시... 미쓰키 히우라는 그들에게 충격적인 소식을 전한다. 분명히 여자였던 미쓰키... 그런데 남자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고?

거의 10년 만에 돌아와 폭탄선언을 날린 미쓰키는 어렸을 때부터 여자로서의 삶이 상당히 불편했음을 고백한다. 치마를 입고 싶지 않았고 머리도 기르고 싶지 않았건만 어머니가 슬퍼하는 모습을 볼 수 없었기에 연기하듯 살아야 했다는 미쓰키. 무엇보다 본인 스스로를 설득하여 여자로 살아가기 위해 원치 않았던 결혼을 하고 아이도 낳았다. 그러나 결국 정체성과 현실 간의 괴리감을 극복하지 못한 채 가출을 감행하여 술집에서 남자 직원으로 살아왔다는 미쓰키. 하지만 폭탄선언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미쓰키는 술집에서 함께 일했던 가오리를 집요하게 스토킹하던 남자와 대치하다 그만 실수로 그를 죽이고 말았다고 고백한다. 충격적인 소식에, 데쓰로를 비롯한 친구들은 큰 혼란과 고민에 빠지게 되는데....

이 책은 2000년대 초에 [짝사랑]이라는 제목으로 쓰였다가 다시 [외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재출간된 소설이다. 20년 전이라 그런지, 미쓰키처럼 성 정체성에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불편해하고 배척하는 사회의 모습이 소설 속에 여실히 드러난다. 성장 과정 내내 미쓰키가 보통 여자아이와 다르다는 걸 알면서도 그냥 덮어둔 부모님이나 남자로 변해버린 미쓰키 앞에서 혼란을 느끼는 친구들의 모습에서 그런 면이 보인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 사회에선 어떨까? 성 역할이나 정체성에 대해 많은 논의가 오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만약 내 딸이, 혹은 친구가 미쓰키처럼 성 정체성에 대한 혼란을 고백해 온다면, 우리는 과연 열린 마음으로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평소에는 별생각이 없었던 성 정체성의 문제를 끄집어낸 소설 [외사랑]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면서 뇌세포를 자극하여 좋았다. 우리는 생물학적 존재이고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의외로 이런 문제를 가진 사람들이 사회에 많이 흩어져 있을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단지 공론화가 되지 않았을 뿐. 여성과 남성의 명확한 구분을 강요하는 사회는 일종의 틀에 갇힌 사회가 아닐까? 성 역할과 정체성을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 개인과 공동체가 모두 행복한 결말을 이끌기 위해선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주제가 아닌가 싶고, 그런 면에서 이 주제를 가지고 소설을 쓴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천재성이 엿보였다.

여자에서 남자로 변해버린 미쓰키. 비록 실수였지만 살인이라는 중범죄를 저지른 후 행적이 묘연해져버린 미쓰키를 찾아서 보호하고자 하는 마음에, 데쓰로와 친구들은 미쓰키의 과거와 주변을 추적하며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기에 나선다. 그러는 와중에 드러나는 새로운 사실과 반전.. 그리고 그 앞에서 경악하게 되는 그들..... 인간의 근원적인 문제에 초점을 맞춘 이야기라 너무 진지하여 자칫 독서가 늘어질 수도 있었지만, 히우라가 저지른 범죄 사건과 얽히고 설킨 복잡한 사연 덕분에 긴장감의 끈을 놓지 않고 읽을 수 있었다.

소설 [외사랑]에 대해 번역가 민경욱 씨는 소개 글을 통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 우리는 모두 이해받고 싶은 상대가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을 품고 있으나 그 마음이 제대로 닿지 않아 안타까워하며 가혹한 현실을 받아들이는 짝사랑을 하는 존재인지 모른다. " 제목인 [외사랑] 이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일까? 싶었는데, 책 속에 어느 정도 해답이 있는 것 같다. 세상에는 고정관념으로 규정할 수 없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고 사회가 그들의 다 담아내기엔 너무 틀이 좁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인간에 대한 통찰력과 깊이 있는 이해가 돋보인 휴먼 드라마이자 사회파 미스터리 소설 [외사랑]. 흥미와 메시지를 동시에 얻고 싶은 독자들에게 추천한다.

" 남자를 검은 돌, 여자를 흰 돌이라고 하자. 미쓰키는 회색 돌이야. 둘의 요소를 다 지니고 있지. (...) 원래 모든 인간이 완전한 검은색도 하얀색도 아니야. 검은색에서 하얀색으로 변화하는 그러데이션 속 어딘가에 있지. " - 675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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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의 밤
블레이크 크라우치 지음, 이은주 옮김 / 푸른숲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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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하는 모든 생각, 우리가 내릴 수도 있는 모든 선택이 

새로운 세계로 분기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무서울 지경이야. ” - 182쪽 -

주인공 제이슨 데슨은 작은 대학의 물리학 교수이자 아름다운 아내와 사랑스런 아들을 둔 평범한 가장이다. 그러던 어느날, 친구 라이언의 큰 성공을 축하하고 돌아오던 길에 괴한의 공격을 받아 납치되는 제이슨. 순식간에 벌어진 납치 사건 속에서 제이슨은 탈출을 노리지만 쉽지 않다. 괴한은 정체모를 이상한 약물을 제이슨에게 주입하게 되고 제이슨은 그대로 정신을 잃고 만다. 그런데 이게 웬일일까? 깨어난 세상과 현실은 뭔가 앞뒤가 맞지 않다. 모든 것이 뒤집혀버린 듯한 현실... 내가 누군지, 여기는 도대체 어디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이상한 현실.. 그는 어떻게 이 상황을 극복하고 사랑하는 사람들 곁으로 돌아갈 것인가?

이 책에는 과학 개념에 무지한 나 같은 일반인에게는 다소 어렵게 들리는 개념들이 등장한다. 다른 세계로 가는 금속 상자 (슈뢰딩거의 고양이 이론이 나오는데 무슨 소리인지 전혀 알 수 없다 ) 그리고 한번은 들어본 듯한 다중우주 이론과 양자 역학 그리고 암흑 물질 이론 등등의 다소 어려운 과학적 개념이 등장한다. 이렇게만 이야기하면 이 책이 꽤 지루할 거라고 지레짐작할 수 있지만 천만의 말씀! 다소 호흡이 짧은 문장과 강렬한 묘사가 어우러지면서 굉장한 속도감을 일으키는 소설이다. 

무시무시한 속도감도 있지만 독자들의 호기심을 매번 자극한다는 면에서 이 책은 굉장히 흡인력이 있다. 사실 다소 불친절하게 시작되는 첫 장면 때문이기도 한 것 같다. 주인공 제이슨이 갑자기 낯선 자에게 공격을 받고 낯선 세계로 끌려와서 어벙벙해 있는 걸 보니, 아무런 단서가 없는 상황에서 "나" 라는 정체성을 어렵게 되찾아야 했던 또 다른 "제이슨", 영화 “ 본 아이덴티티” 속 주인공 제이슨 본이 생각났다. 제이슨 본이 그랬던 것처럼, 이 책의 주인공 "제이슨" 도 칠흑 같은 어둠 속을 헤매듯 사건의 전말을 파악해야 한다. 이렇게 주인공을 아무렇게나 던져놓다니... 하지만 이 또한 재미의 요소이다!

이 책은 공상 과학 소설을 표방하고 있지만 사실 스릴러처럼 읽히기도 한다. 앞서 말했듯 굉장히 속도감이 있고 범죄가 속출하며, 화려한 액션도 펼쳐진다. 굉장히 예측 불가능하다는 면도 소설의 재미를 배가시키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다음 스토리 전개에 대해서 더 털어놓을 수가 없다. 내 생각에는 일단 독자들이 이 “30일의 밤” 이라는 바다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는 경험을 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제이슨을 관찰하는 것보다는 직접 제이슨이 되어보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SF, 추리, 스릴러 등등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요소 이외에도 이 책의 중심을 차지하는 것이 있는데 그게 바로 “로맨스”이다. 어떻게 보면 가장 핵심이라고 볼 수 있다. 첫 장면에서 제이슨을 납치한 괴한이 그에게 묻는 말이 있는데 그게 바로 “사는 게 행복해?” 이다. 소설 속 모든 사건들은 어쩌면 그의 이 한마디에서 시작된다고 볼 수 있다. 모든 SF에는 철학적 요소가 좀 있는데 그런 면에서 이 책도 한번 생각해 볼 여지를 남긴다고 할 수 있다.

만약 우리가 인생에서 지금과 다른 선택을 했다면 우리는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가지 않은 길,, 그 곳엔 과연 무엇이 기다리고 있었을까?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우리는 어디까지 희생을 할 수 있을까? 다중 우주 속 다른 세계에서 살아가던 다른 "나" 가 갑자기 찾아와서 지금까지 쌓아올린 "나"의 삶을 빼앗으려 한다면" ? 읽다보면 결국 스스로에게 많은 질문을 하게 만드는 흥미로운 소설이다. 약 30일간 다중우주에서 펼쳐지는 제이슨과 다른 제이슨들의 쫓고 쫓기는 이야기. 진짜 제이슨은 과연 본인의 세계로 안전하게 돌아갈 수 있을까? 너무나 재미있었던 소설 "30일의 밤" 꼭 읽어보라고 추천하고 싶은 소설이다.

* 출판사에서 제공한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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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미스터리한 일상 와카타케 나나미 일상 시리즈
와카타케 나나미 지음, 권영주 옮김 / 내친구의서재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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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벚꽃을 싫어하는 사람의 비밀과

한여름의 나팔꽃 살인사건,

마물이 나타나는 가을의 황혼녘을 지나

수상한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받기까지. "

회사를 그만둘 생각을 하고 있었던 주인공 와카타케 나나미. 그녀의 속마음을 읽어내기라도 한 건지 회사에서는 그녀에게 사내보 “르네상스”의 편집장을 맡아달라는 지시를 한다. 사내보를 읽어 본 직원들은 내용이 다소 심심하니 오락성을 조금 추가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와카타케에게 전달하게 되고, 그녀는 고민 끝에 한 대학 선배에게 매달 단편 소설을 써달라는 부탁을 하게 된다. 선배는 그녀에게 다른 익명의 작가를 소개하게 되고 그 작가는 매달 기묘하면서도 오싹한, 매우 독특한 단편들을 매달 보내오기 시작하는데.....

대표적인 코지 미스터리인 “살인곰 서점 시리즈”로 오랫동안 호평을 받아온 와카타케 나나미 작가의 젊은 시절 작품인 “나의 미스터리한 일상”을 읽었다. 약간 어설퍼 보이지만 추리 능력은 예리하기 그지 없는 탐정이 등장하여 범죄 사건을 해결했던 “살인곰 서점 시리즈” 와는 달리, 이 책에는 한 여름밤에 동네 친구들과 모여 나누면 좋을 듯한 괴담, 오컬트, 초자연적 미스터리 등등이 단편 소설 형식으로 실려 있다. 즉, 범죄 소설의 강점인 짜릿한 스릴과 긴장감은 조금 부족하지만 기묘하고 신비로운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감탄할 만한 이야기보따리가 바로 이 “나의 미스터리한 일상”인 것이다.

사내보는 1년 동안, 매달 발간되기에 이 책에는 총 12편의 단편 소설이 실린다. 익명의 작가는 계절과 매달의 느낌을 충분히 반영한 소설을 보내는데, 예를 들자면 4월에 발간된 사내보에 실린 단편 “벚꽃이 싫어"라는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한 맨션에서 벌어진 미스터리한 화재 사건을 다루고 있고, 8월의 단편 소설인 “사라져가는 희망” 은 연속적으로 악몽을 꾸다가 죽음을 맞게 된 한 젊은이의 이야기인데, 8월에 주로 피는 나팔꽃의 영혼이 누군가의 꿈에서까지 등장하여 정기를 앗아간다는, 다소 오싹한 이야기이다.

익명의 작가가 보내오는 각각의 소설은 서술자 “나” 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미스터리를 풀어내는 구조라서, 마치 작가에게 주어진 수수께끼를 작가와 함께 풀어내는 느낌이 들어서 굉장히 재미있었다. 그뿐 아니라, 각 미스터리는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접하게 되는 일들을 다루기에 상당히 친근하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예를 들자면 동네 야구팀의 사인이 왜 매번 상대팀에게 노출되는가? 부터 시작해서, 절에서 만난 범상치 않은 여인이 사실은 초현실적인 존재였다면? 그리고 케이블카에서 실종된 아이와 누에고치는 무슨 관계가 있는 걸까? 등등 각 이야기가 제시하는 수수께끼를 풀다 보면 어느새 책장이 술술 넘어가 있다.

그런데 이 소설의 진짜 결말은 각 이야기가 끝나는 지점이 아니다. 진짜 결말은 1년이 지나서 사내보가 끝나는 지점에서 가서야 비로소 이루어진다. 12편의 단편은 각각 다른 내용을 말하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서로 유기적으로 연관이 되어서 거대한 미스터리 구조를 이루고 있었던 것! 한마디로 각 단편 소설은 이 거대한 미스터리에 대한 힌트를 제공하는 열쇠라고나 할까? 마지막에 밝혀진 진실에 깜짝 놀랐고, 조용히 사내보만 만들었던 주인공 와카타케 나나미의 마지막 활약이 너무나 짜릿했다. 역시 잔잔하고 평화롭게 흘러가는 일상 속 비밀스런 미스터리를 잘 다루는 작가의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매달 주어지는 수수께끼를 풀어보고 싶다면? 각 이야기가 구성하는 거대한 미스터리를 풀어보고 싶다면? 꼭 읽어봐야할 책 [나의 미스터리한 일상]

*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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