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폴론 저축은행 - 라이프 앤드 데스 단편집
차무진 지음 / 요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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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죽음의 경계를 주시하는

서늘하고도 사려 깊은 여덟 개의 시선

삶과 죽음은 과연 명확하게 나누어질 수 있는 걸까? 끊임없이 서로를 들여다보고 있는 쌍둥이거나 꼬리에 꼬리를 물고 돌다가 결국 하나가 되는 두 마리 도마뱀은 아닐까? 니콜 키드먼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영화 [디 아더스]는 엄연히 다른 세계에 속한 두 존재들이 같은 시공간을 공유하며 경험하는 혼란과 착각을 다룬다. 두 아이와 함께 조용하게 살아가던 그녀는 어느 순간부터 낯선 존재를 인식하게 된다. 아무도 없는 방에서 갑작스럽게 피아노 소리가 들리고 아이는 여주인공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어떤 사람들이 집에 머무르고 있다는 이야기를 한다. 과연 그들은 누구고 여주인공이 겪는 혼란은 어디서부터 온 것일까?

혼란스러워하는 등장인물을 보다가 예상치 못했던 결론, 즉 반전에 깜짝 놀라게 되는 영화 [디 아더스]. 나는 이 책 [아폴론 저축은행]을 읽으면서도 비슷한 전율 혹은 소름을 느꼈다. 파도가 넘실대는 바닷가가 그러하듯 물과 땅이 혼재하는 곳에서는 그 경계를 제대로 알 수 없는 법, 이 책 [아폴론 저축은행]에서도 죽음이라는 파도가 끊임없이 넘실대며 삶이라는 육지를 침범한다. 갑작스럽게 경계가 무너진 곳에서 질서가 흐트러지고 시공간이 뒤집히면서 "내"가 그들을 들여다보는지 "그들"이 나를 들여다보는지 알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하는 책.. 작가의 그 서늘한 시선이 머무르는 곳으로 들어가 본다.

8편의 기묘하고 오묘한 단편 소설로 이루어진 책 [아폴론 저축은행]. 그중에서도 인상 깊었던 작품 4편을 꼽아보자면 [그 봄], [아폴론 저축은행], [상사화당] 그리고 [비형도]이다. [그 봄]은 남편을 잃고 악착같이 살다가 결국엔 생활고로 추측되는 어떤 사유로 아이들을 절에 맡기게 되는 엄마와 그 엄마를 그리워하며 외로운 절간 생활을 이겨내는 아이들의 이야기이다. 주지 스님이 살뜰하게 돌봐주기는 하지만 뼛속 깊이 엄마의 부재를 느끼는 아이들의 외로움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이야기인데, 마지막에 드러나는 반전 때문에 제일 깜짝 놀랐던 소설이다.

[그 봄]이 아련하고 쓸쓸한 기운을 가진 소설이라면, [아폴론 저축은행]은 모든 이야기들 중에서 가장 피비린내 나고 씁쓸한 뒷맛을 남기는 단편이라고 볼 수 있다. 시나리오 작가이자 택시 운전사인 주인공. 혈액암을 앓고 있는 아이에게 들어간 엄청난 병원비에 최근 일어난 외제차와의 교통사고까지.. 이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없었던 주인공과 아내는 자살 시도를 하지만 결국 실패하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택시 손님인 한 노신사가 소개해 줘서 알게 된 [아폴론 저축은행]이라는 곳에서 자신이 빌릴 수 있는 돈이 10억에 가깝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주인공. 신용 불량자인 주인공이 그렇게 많은 돈을 대출할 수 있는 이유는 과연 뭘까?

[아폴론 저축은행]이 벼랑 끝에 서 있는 현대인의 자화상을 매우 날카로운 시선으로 담아내었다면 [상사화당]은 "염매"라고 하는 고약하고 괴기스러운 귀신술을 부리는 남자 밀봉과 며느리와 아이 그리고 가진 것 전부를 일본에 빼앗겨버린 한 독짓는 노인에 대한 이야기이다. 일제 식민지 시절이 전달하는 황량함과 절망 그리고 "염매"라는 기묘한 저주술이 섞여 한 편의 그로테스크한 심령 영화가 탄생한 듯한 소설이다. 그리고 [비형도]는 그야말로 삶과 죽음, 이승과 저승이라는 시공간이 뒤집히는 것을 가장 절묘하게 보여주는 소설인데, 마치 도깨비에게 홀려서 밤새도록 빗자루와 씨름을 하고 깨어난 옆집 아저씨가 들려주는 이야기 같기도 하다. 정말 신묘하고 신비롭게 다가왔던 단편이다.

죽음과 저승 그리고 영혼이라는 존재는 우리가 알 수 없는 미지의 영역에 속한다. 호기심 많은 사람들은 폐가 투어 같은 활동을 통해서라도 우리가 함부로 넘나들 수 없는 세계로 침범하려고 애쓰기도 한다. 그러나 과연 죽음의 영역은 우리가 속한 세계와 동떨어져있는 걸까? 이 책 [아폴론 저축은행]은 독자들에게 묻고 있는 듯하다. 과연 죽음이 저 멀리 떨어져 있을까요? 혼자만 있는 줄 알았던 공간인데 만약 수많은 눈들이 그동안 내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면 그 기분이 어떨까요? 라고 말이다. 죽음이 내내 검은 입을 벌린 채 산자의 주변에 머무르고 있음을 알려주는 듯한 소설 [아폴론 저축은행]. 읽고 나니 책 자체에 서늘한 귀기가 서려있는 느낌이다. 영혼의 존재와 초자연적 세계 등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에게 적극 추천한다.

* 출판사에서 제공한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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