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사랑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소미미디어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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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은 이 뫼비우스 띠 위에 있어요.

완전한 남자도, 완전한 여자도 없어요.

또 각자가 지닌 뫼비우스 띠도 하나가 아니에요. (...)

이 세상에 똑같은 사람은 없어요."

실로 오랜만에 읽은 히가시노 게이고 작가의 소설 [외사랑] 기존에 그가 써왔던 장르의 소설과는 사뭇 다른 느낌을 풍기는 책이다. 쫓고 쫓기는 추격전과 같은 범죄 미스터리의 요소가 있긴 하지만 그것보다 이 책은 좀 더 철학적이랄까? 인간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던진다. 여자와 남자를 구분 짓는 것이 정확하게 무엇일까? 성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는 사람이 문제일까, 아니면 그들을 무조건 배척하는 사회가 문제일까? 와 같은 날카로운 주제 의식을 가지고 독자들과 마주하고 있는 소설이다.

데이토대학 미식축구부 출신인 데쓰로는 매년 부원들과 만나 술잔을 기울이며 찬란했던 과거를 회상한다. 벌써 열세 번째 모임을 갖게 된 그들. 하지만 당시 두 명의 여자 매니저들 중 한 명이었던 미쓰키 히우라에 대한 소식은 좀체 들려오지 않는다. 그런데 모두와 헤어지고 마지막으로 남게 된 데쓰로와 스가이 앞에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 미쓰키. 하지만 놀라움과 기쁨도 잠시... 미쓰키 히우라는 그들에게 충격적인 소식을 전한다. 분명히 여자였던 미쓰키... 그런데 남자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고?

거의 10년 만에 돌아와 폭탄선언을 날린 미쓰키는 어렸을 때부터 여자로서의 삶이 상당히 불편했음을 고백한다. 치마를 입고 싶지 않았고 머리도 기르고 싶지 않았건만 어머니가 슬퍼하는 모습을 볼 수 없었기에 연기하듯 살아야 했다는 미쓰키. 무엇보다 본인 스스로를 설득하여 여자로 살아가기 위해 원치 않았던 결혼을 하고 아이도 낳았다. 그러나 결국 정체성과 현실 간의 괴리감을 극복하지 못한 채 가출을 감행하여 술집에서 남자 직원으로 살아왔다는 미쓰키. 하지만 폭탄선언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미쓰키는 술집에서 함께 일했던 가오리를 집요하게 스토킹하던 남자와 대치하다 그만 실수로 그를 죽이고 말았다고 고백한다. 충격적인 소식에, 데쓰로를 비롯한 친구들은 큰 혼란과 고민에 빠지게 되는데....

이 책은 2000년대 초에 [짝사랑]이라는 제목으로 쓰였다가 다시 [외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재출간된 소설이다. 20년 전이라 그런지, 미쓰키처럼 성 정체성에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불편해하고 배척하는 사회의 모습이 소설 속에 여실히 드러난다. 성장 과정 내내 미쓰키가 보통 여자아이와 다르다는 걸 알면서도 그냥 덮어둔 부모님이나 남자로 변해버린 미쓰키 앞에서 혼란을 느끼는 친구들의 모습에서 그런 면이 보인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 사회에선 어떨까? 성 역할이나 정체성에 대해 많은 논의가 오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만약 내 딸이, 혹은 친구가 미쓰키처럼 성 정체성에 대한 혼란을 고백해 온다면, 우리는 과연 열린 마음으로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평소에는 별생각이 없었던 성 정체성의 문제를 끄집어낸 소설 [외사랑]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면서 뇌세포를 자극하여 좋았다. 우리는 생물학적 존재이고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의외로 이런 문제를 가진 사람들이 사회에 많이 흩어져 있을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단지 공론화가 되지 않았을 뿐. 여성과 남성의 명확한 구분을 강요하는 사회는 일종의 틀에 갇힌 사회가 아닐까? 성 역할과 정체성을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 개인과 공동체가 모두 행복한 결말을 이끌기 위해선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주제가 아닌가 싶고, 그런 면에서 이 주제를 가지고 소설을 쓴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천재성이 엿보였다.

여자에서 남자로 변해버린 미쓰키. 비록 실수였지만 살인이라는 중범죄를 저지른 후 행적이 묘연해져버린 미쓰키를 찾아서 보호하고자 하는 마음에, 데쓰로와 친구들은 미쓰키의 과거와 주변을 추적하며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기에 나선다. 그러는 와중에 드러나는 새로운 사실과 반전.. 그리고 그 앞에서 경악하게 되는 그들..... 인간의 근원적인 문제에 초점을 맞춘 이야기라 너무 진지하여 자칫 독서가 늘어질 수도 있었지만, 히우라가 저지른 범죄 사건과 얽히고 설킨 복잡한 사연 덕분에 긴장감의 끈을 놓지 않고 읽을 수 있었다.

소설 [외사랑]에 대해 번역가 민경욱 씨는 소개 글을 통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 우리는 모두 이해받고 싶은 상대가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을 품고 있으나 그 마음이 제대로 닿지 않아 안타까워하며 가혹한 현실을 받아들이는 짝사랑을 하는 존재인지 모른다. " 제목인 [외사랑] 이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일까? 싶었는데, 책 속에 어느 정도 해답이 있는 것 같다. 세상에는 고정관념으로 규정할 수 없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고 사회가 그들의 다 담아내기엔 너무 틀이 좁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인간에 대한 통찰력과 깊이 있는 이해가 돋보인 휴먼 드라마이자 사회파 미스터리 소설 [외사랑]. 흥미와 메시지를 동시에 얻고 싶은 독자들에게 추천한다.

" 남자를 검은 돌, 여자를 흰 돌이라고 하자. 미쓰키는 회색 돌이야. 둘의 요소를 다 지니고 있지. (...) 원래 모든 인간이 완전한 검은색도 하얀색도 아니야. 검은색에서 하얀색으로 변화하는 그러데이션 속 어딘가에 있지. " - 675쪽 -

* 출판사가 제공한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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