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청 - 잃어버린 도시
위화 지음, 문현선 옮김 / 푸른숲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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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회오리바람처럼 개인의 삶을 송두리째 뒤집어버리는 운명.. 그런 잔인한 운명 앞에서 개인은 과연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좌절한 채 주저앉아 울거나 분노할 수도 있겠지만, 적극적으로 운명을 받아들이는 방법도 있다. 소설 "원청"의 주인공 린샹푸는 자신의 삶을 할퀴고 가버린 사나운 운명에 의연히 대처한다. 앞이 보이지 않는 막막한 미래를 뚫고 힘차게 발걸음을 내딛는 린샹푸.... 소설 속에서 그가 보여준 용기와 고결함 그리고 인간에 대한 애정과 의리 등등은 정말 인상 깊었다. 소설 "원청" 은 청나라에서 중화민국으로 넘어가던 시기, 격동의 중국이 겪었던 혼란과 아내를 찾아 정처 없이 떠돌다 낯선 땅에 정착하는 린샹푸를 동시에 비추면서 독자들에게 거대한 물음표를 던진다. 운명이라는 것, 인연법이라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삶은 그저 정해진 운명을 따라가는 것에 불과한 것일까?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았던 땅, "원청" 그곳을 찾아 린샹푸는 길을 떠났다. 중국 북쪽 지역 출신인 린샹푸는 갓 태어난 딸을 안고 자신의 몸만 한 거대한 봇짐을 맨 채, 원청이라는 땅을 찾아 남쪽 지역으로 향한다. 린샹푸의 삶에 조용히 들어왔다가 연기처럼 사라져버린 아내 샤오메이. 정직하게 삶을 살아온 린샹푸의 머릿속에는 의문만이 가득하다. 아름답고 친절했던 아내 샤오메이가 어떤 사연으로 그의 삶에 갑작스럽게 들어왔다가 가버린 걸까? 핏덩이 같은 딸, 애지중지하던 딸을 놔두고 떠나야만 했던 이유는 과연 무엇인 걸까? 그리고 과연 고향땅 원청에 있기나 한 건지...

가던 길에 회오리바람을 만나 딸아이를 잃을 뻔하고 눈 폭풍에 휘말리기도 하지만 린샹푸는 포기하지 않는다. 천명이 넘는 여인에게 젖동냥을 받아 가며 고생고생 끝에 남쪽 지역에 도달하는 린샹푸. 그러나 누구를 붙잡고 물어도 원청이라는 지역을 아는 사람이 없다. 그러던 중 아내가 평소에 말했던 원청 지역과 가장 흡사해 보이는 지역인 시진에 도착하게 되는 린샹푸. 눈 폭풍이 몰아치는 가혹한 상황의 한가운데서 자신에게 큰 도움을 준 천융량이라는 사람과 그 가족들이 베푼 친절과 너그러움에 반한 린샹푸는 그들을 믿고 시진에 정착하기로 마음먹는데... 한 가닥 희망의 끈을 찾게 된 린샹푸.. 과연 그는 시진에서 꿈에 그리던 샤오메이와 상봉할 수 있을까?

중국 소설을 많이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이 소설 "원청" 은 그야말로 엄청나게 흥미진진하고 흡인력이 대단했다. 역시 대륙의 힘인 것일까? 굉장히 스케일이 크고 선이 굵은 소설이라는 생각이 든다. 개인의 심리 묘사와 같은 섬세함은 떨어지지만 끊임없이 몰아치는 여러 사건 덕택에 지루할 틈이 없었다. 특히 청나라에서 중화민국으로 넘어가던 1900년대 초반, 중국의 여러 다양한 모습과 사건들이 아주 스펙터클하게 그려져서인지 대단히 생명력 있고 생생하게 느껴졌다. 국가의 혼란을 틈타 돈을 얻기 위해 사람들을 납치하고 고문하고 살인을 서슴지 않았던 토비들, 그리고 그 토비들에게 맞서서 대항하다가 고통을 겪게 되는 평범한 사람들... 특히 가족과 친구를 위해 자처해서 납치당하고 고통을 겪는 사람들을 보며 가슴이 찡해졌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떠한 어려움이 찾아와도 인간성을 송두리째 내버리는 어리석은 선택은 하지 말자. 우리가 인간이라는 걸 한시도 잊지 말자.

이 책은 드라마인데도 굉장히 미스터리하게 시작한다는 점과 예상치 못했던 샤오메이가 화자인 이야기가 불쑥 등장한다는 점에서 흥미진진하다. 린샹푸라는 화자가 풀어내는 첫 번째 이야기에서는 주인공 린샹푸 뿐만 아니라 독자들도 도대체 샤오메이가 누구인지.. 그리고 왜 원청이라는 지역을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지.. 낯선 지역에 머물게 되는 린샹푸의 운명은 앞으로 어떻게 될 건지.. 알쏭달쏭 한 의문을 가진 채 책을 읽게 된다. 이 책은 어쩌면 우리의 인생을 말해주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점을 치거나 사주를 해석하거나 하면서 예측을 하려고 애쓰지만 결국 우리는 우리네 인생이 앞으로 어떻게 펼쳐질지 알 수 없다. 그냥 담담히 받아들일 뿐. 두 번째 이야기에서 우리는 비로소 의문을 품었던 많은 것들에 대한 해답을 얻게 된다. 첫 번째 이야기에서 입체적이었던 린샹푸에 비해서 다소 그림자처럼 느껴졌던 샤오메이의 사연이 술술 풀리며 두 번째 이야기에서는 그녀도 입체적인 존재로 변한다. 이 소설이 독특한 게, 사랑한다는 말이나 애정 표현이 전혀 드러나지 않는데도 절절한 감정이 고스란히 느껴진다는 점이다. 아이러니한 운명, 안타까운 인연법 앞에서 약자일 수밖에 없는 주인공들의 애절한 사연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웃다가 울다가 또 가슴 아팠다가 분노하다가.. 걷잡을 수 없고 통제할 수 없는 감정을 느끼며 책을 읽어내려갔다. 작가 위화는 [허삼관 매혈기]로 우리나라에서도 유명한 작가라고 하는데, 이 책 [원청]을 읽고 나니 그가 왜 인기 있는 작가인지 이유를 알 것 같다. 그가 풀어내는 이야기가 굉장히 드라마틱 하고 살아있고 힘이 있다. 누군가가 굵은 붓으로 선이 뚜렷한 중국 역사 속 한 토막의 그림을 그려낸 것 만 같다. 격동의 시대를 겪어내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마치 내 눈앞에서 펼쳐지는 것처럼 생생하게 그려졌다. 무엇보다도 주인공 린샹푸와 샤오메이의 이야기는 한 편의 서사시 같기도 했다. 거부하고 싶지만 거부할 수 없었던 안타까운 운명,, 도대체 이 아이러니한 운명의 장난은 누가 시작한 것인가? 만약 신이 있다면 그들이 꼬아버린 누군가의 실타래에 대해 항의하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나 어쨌든 주어진 운명을 거부하지 않고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살아낸 사람들의 용감한 이야기, 원청.

* 출판사에서 제공한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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