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한강
권혁일 지음 / 오렌지디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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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렵게 죽음에 성공했다. 그러나 사라지는 데에는 실패했다.

자살한 이들이 모여 사는 평화로운 동네 '제2한강'

완전 소멸에 이르기 전 마지막 기회인가 신의 장난인가?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 걸까? 많은 발전을 이룬 인간이 유일하게 풀지 못한 미스터리가 있다면, 그건 바로 삶과 죽음이 아닐까? 평소에는 바쁘게 살면서 '삶과 죽음' 특히 '죽음'에 대해 성찰할 기회가 거의 없었는데 이 책 "제2한강"을 읽고 나니 그 미지의 영역에 대한 의문이 다시 생긴다. 주위를 둘러보면 살 만큼 살다가는 죽음도 있지만, 갑작스럽게, 그것도 제 손으로 세상을 등지는 안타까운 죽음도 있다. 물론 사는 게 죽는 것보다 더 고통스러워 그런 선택을 했겠지만, 남겨진 사람들은 그만큼의 자책과 슬픔을 떠안아야 한다.

이 책 "제2한강"을 쓴 작가 권혁일 씨는 갑작스러운 친구의 죽음 앞에서 매우 복잡한 감정을 느꼈던 것으로 보인다. 비록 정신과 치료를 받긴 했으나 평소에 자살을 암시하는 행동을 전혀 보이지 않았던 친구. 세상은 변함없이 흘러가고 아름답기조차 한데 친구는 작별 인사도 없이 왜 그런 갑작스러운 선택을 했어야만 했을까? 남겨진 자의 슬픔은 작가를 오래도록 붙들고 놓아주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슬프지만 따뜻하고 아름다운 소설, "제2한강" 이 세상에 발걸음을 내디딘 것을 보면.

책 속에 나오는 "제2한강"은 자살자들이 흘러들어가는 곳이다. ( 자살자들은 죽음 이후 물에서 건져진다 ) 이곳은 여러 종교에서 이야기하는, 죄의 심판을 받는 지옥도 아니고 천사들과 노닐 수 있는 천국도 아니다. 자살을 마음먹은 사람들이 지겹도록 찾을 만한 그 한강, 실제 한강와 똑같이 생긴 곳이다. 그뿐 아니라 이곳에는 자살자들의 전입과 숙소를 관리해 주는 관리사무소도 있고 식사를 해결할 수 있는 급식소도 있다. 한마디로 현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냥 공동체 같아 보인다. 현실과 다른 점은, 다른 색깔을 잃어버리고 푸르죽죽한 모습으로 살아간다는 것과 죽을 때 나이를 그대로 가지고 사는 것. 그들이 먹는 된장찌개조차 푸르죽죽하다고 묘사되는 걸 보면... 마치 흑백 시대로 돌아간 느낌이랄까?

어릴 때 강아지를 잃어버리고 엄마에게 호된 질책을 들은 후 책임을 회피하며 살아온 주인공 형록. 일찍 엄마를 잃고 폭력적인 아빠와 살아서 부모의 따뜻함이라고는 모르고 자라온 이슬. 외모 콤플렉스로 시달리다가 뷰티 유튜버로 변모하여 찬란한 삶을 사는가 했지만 집요한 악플러의 공격에 무너지게 된 화짜와 업무 스트레스로 우울증과 공황 장애를 앓으며 살았던 오 과장까지.... 세상을 등질 수밖에 없었던 안타까운 사연을 가진 제2한강의 주민들. 책을 읽다 보니 이들이 왜 "제2한강"에 와야 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들은 " 다시 자살 "이라는 체계를 거쳐서 완전 소멸에 이르기까지 어쩌면 이곳에서 마음의 평온과 휴식을 얻은 게 아니었을까? 아무것도 할 필요 없고 아무 생각도 안 해도 되지만 아팠던 지난 과거를 정리할 수는 있는 곳. "제2한강"을 읽는 내내, 그들이 꾸깃꾸깃 구겨져 있는 지난 삶이라는 사진들을 곱게 펴서 재정리할 수 있는 시간이라는 선물을 받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에 사랑하는 가족이, 친구가 혹은 아는 사람이 스스로 세상을 등진다면, 나는 크나큰 자책감에 시달릴 것 같다. 왜 그들의 일찍 고통을 눈치채지 못했고, 왜 더 관심을 보여주지 못했을까 하고 말이다. 실제로 몇 년 전에 너무 예쁘고 사랑스러운 여자 연예인이 스스로 유명을 달리했을 때 나는 너무 큰 충격을 받아서 며칠 동안 계속 그녀 생각만 했었다. 한국의 악플러 문제가 너무 심각한 건 아닌지.. 그녀가 너무 일찍 연예계로 나와서 경험하지 않았어도 될 일들을 너무 많이 경험한 건 아닌지.. 그녀의 가족들은 앞으로 어떤 힘든 나날들을 보내야 할지.. 그런 생각들. 그런데 만약 신이 이 "제2한강"의 작가와 비슷한 생각을 해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들에게 "제2한강"과 같은 환경을 만들어준다면 조금은 안심해도 될 것 같다. "제2한강"의 사람들은 결국에는 자신의 삶이 그다지 나쁘지만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지난 삶에서 아름답고 소중한 것들을 결국은 찾아내니 말이다.

책을 읽는 내내 안타까웠고 가슴 아팠고 눈물이 났다. 안 그런 척해도 결국 우린 견디며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닐까? 바쁘다는 핑계 대신 나 자신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돌아보며 살아가야겠다는 다짐도 했다. 같은 나이의 친구를 찾아 헤맸지만 결국엔 나이나 성별에 상관없이 모두가 친구였다는 걸 깨달은 이슬이처럼, 우리들이 잃어버린 채 살아가는 뭔가를 되찾을 필요가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자살한 사람들의 이야기로 시작했지만 결국엔 우리 모두의 이야기로 끝난 소설 [제2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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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세계와 먼 우리 안전가옥 FIC-PICK 4
이경희.전삼혜.임태운 지음 / 안전가옥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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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매트릭스]는 종말로 인해 황폐화된 지구에서, 컴퓨터의 배터리 노릇을 하며 가상 현실에 갇힌 채 살아가는 인류를 그린다. 주인공 네오를 비롯한 몇몇 깨어난 자들은 아직도 "가짜" 세상에서 살아가는 다른 인간들을 해방하기 위해 A.I. 들과 전면전을 펼치게 되지만, 그 와중에도 진짜 현실보다 가상 현실 속 달콤한 보상을 선택한 한 인간은 로그아웃을 온몸으로 거부한다. 이 책 " 가까운 세계와 먼 우리 "에 실린 단편집을 읽다 보니 내 최애 영화였던 [매트릭스] 속에서 해방, 즉 로그아웃을 하고자, 혹은 로그아웃을 막고자 엎치락뒤치락하며 싸우던 등장인물들이 떠올랐다. [매트릭스]를 보며 언젠가 아주 먼 미래에 인간이 인공 지능의 배터리 노릇을 하면서 가상 현실 속에서 비루하게 살아가는 디스토피아가 펼쳐질 가능성도 있겠구나.. 했는데?! 웬걸? 인간이 가상 현실 속에서 살아갈 미래가 멀지 않았다는 생각이 이 책을 보면서 들었다.

" 가까운 세계와 먼 우리 "는 3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단편 소설집이다. 3편 모두 가상 현실, 즉 메타버스를 주제로 구성된 이야기이다. 아직은 먼 미래가 아닌가 생각하던 차에, 기후 변화로 인해 몸살을 앓고 있는 현 지구의 상황이 떠올랐다. 단편 " 멀티 레이어 " 에서처럼 극심한 환경 변화로 인해 지구가 종말에 다다르게 되면 메타버스인 " 세컨드 서울" 을 택한 사람들처럼 우리도 가상 현실이라는 차선책을 택하게 되지 않을까?

첫 번째 단편 " 멀티 레이어"에서 극심한 기후 변화로 인해 지구가 물에 잠긴 후 인류는 "세컨드 서울"이라는 가상 공간에서의 삶을 택했다. 기한은 100년, 그 사이에도 기후가 어느 정도 회복되면 회사가 로그아웃을 해주는 게 약정이었으나 100년이 지난 후에도 로그아웃 버튼은 활성화되지 않았다. 유저들은 항의 끝에 결국 혁명단을 조직하여 고객 센터로의 침입을 노렸지만 첫 번째 시도는 누군가의 우유부단함으로 인해 실패했고 이제 두 번째 기회가 왔다. "세컨드 서울" 을 테스트하던 시기부터 참여하며 그 세상을 너무 잘 알고 있는 유저 정민에게 인클루드라는 닉네임의 유저가 다시 한번 의뢰를 해온 것. 가상 현실의 삶에 그럭저럭 만족하며 살아온 정민이 이 의뢰를 받아들일 이유는 별로 없지만, 문제는 이 혁명단을 이끄는 중심부에 자신의 수양딸인 수현이 있다는 것! 그는 과연 로그아웃을 애타게 원하는 수현을 위해서 고객센터로의 침투를 감행할 것인가? 그리고 성공을 거두고 로그아웃을 감행할 수 있을 것인가?

" 멀티 레이어 "를 쓴 작가 이경희는 다른 SF 작품인 [테세우스의 배]나 [모래 도시 속 인형들] 등을 통해서 주로 서열이나 권력을 이야기하는 편인데 이 작품에도 다르지 않았다. 가상 공간을 무너뜨리고 싶어 하는 자들, 즉 자유와 개혁을 원하는 무리들과 가상 공간에서 자신들이 쌓아 올린 부와 권력을 지키고자 하는 무리들 사이에 뚜렷한 갈등 관계가 드러난다. 사실 " 세컨드 서울" 은 붕괴하고 있고 붕괴 후 시스템이 셧다운 되어버리면 접속한 사람들은 어떤 부작용에 시달릴지 모를 일이다. 현실에서든 가상 현실에서든 오로지 자신의 이익만 추구하는 소수 기득권과 불의와 불합리에 맞서 싸우는 다수 대중들이 있을 수 있다는 설정이 대단히 흥미로웠다.

메타버스 속 가상의 전시장에 걸릴 NFT 사진. 그 작품 속에 등장하는 손 사진들이 자신들의 것임을 알게 되는 현준의 구 여자친구들. 주인공 미현은 선배이자 절친이었던 소리의 작품을 무단으로 NFT 창작자에게 빼돌린 현준을 용서할 수가 없다. 구여친들이 연대하여 전남친의 불법 행위에 대한 응징을 가한다는 다소 코믹 발랄했던 작품 [구 여자친구 연대]와 메타버스 세계에서 아바타를 납치하는 일당들이 머무르는 요굴에 언더커버 요원으로 들어가서 테러 행위를 사전에 예방한다는 설정의 [바람과 함께 로그아웃]도 굉장히 신선하고 재미있었다.

사실 [구여친 연대]를 제외하고 다른 2단편들의 경우는 스토리가 있는 롤 플레잉 게임을 하고 있다는 생각마저 들 만큼 그래픽 묘사와 장면 전환 자체가 상당히 화려하고 속도감이 있었다. 마치 평행 우주를 연상케 만드는 여러 레이어들, 그런 레이어들을 뛰어넘으면서 고객 센터로 질주하는 " 멀티 레이어" 속 정민의 모습과 " 바람과 함께 로그아웃 "에서 거대한 방망이를 휘두르며 날아다니는 도깨비의 모습에서 마치 신의 영역을 넘나드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나 할까? 온라인 게임에 열광하며 오랫동안 가상의 공간에 머무르는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이 바로 그런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잠시였지만 가상의 공간에서 살아가는 아바타로 변신한 듯한 느낌을 갖게 해 준 책 [가까운 세계와 먼 우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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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력 질주 안전가옥 쇼-트 17
강민영 지음 / 안전가옥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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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력 질주]를 읽고 나니 내가 수영을 처음 배웠던 날이 문득 떠올랐다. 어색했던 수영복과 너무 꽉 끼는 수영모 때문에 안 그래도 불편했는데 1시간을 꼬박 발로 물장구치는 연습만 했었다. 뭔가 멋있고 화려한 영법을 배울 것을 기대하고 갔으나 수영 초보자의 현실은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몇 년이 흐르고 열심히 수영장을 다닌 결과, 나는 접영을 배울 수 있었고 똑같은 수영모를 쓴 아줌마들 사이에서 물살을 가로지르는 한 마리 돌고래가 되어 있었다. 오랫동안 내 삶의 버팀목이 되어준 운동인 수영,, 그런데 이 책 [전력 질주] 속 주인공들이 재난을 만난 장소가 하필이면 수영과 달리기를 할 수 있는 생활 체육관이라니.. 참으로 아이러니하다고 생각했다. 장마로 인해 침수되어 점점 무너져가는 건물을 탈출하는 생존기를 그리는 소설 [전력 질주]

" 실제 나이는 20대인데, 신체 나이는 80대라고요. 지금까지 이런 몸 상태로 어떻게 버텼어요? "

[전력 질주] 속 주인공 중 한 명인 진은 온몸이 아파서 간 정형외과에서 신체 나이가 80대라는 소리를 듣고는 깜짝 놀란다. 걷기와 달리기를 통해서 신체 나이를 끌어올려 보려고 애쓰는 그녀. 하지만 오히려 여기저기 다치기만 한다. 그런 그녀를 보다 못한 의사는 진에게 다치지 않는 운동인 수영을 해보라는 처방을 내리고, 진은 의외로 수영이 자신에게 잘 맞는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야근을 한 다음날에도 수영장에 갈 만큼 열심히 훈련을 한 결과 진은 바다 수영에 도전하게 되고, 결국엔 전국 여성부 수영 대회에서 1위를 차지하는 쾌거를 얻게 된다.

"뛰어서 회사 출근 안 한 지 꽤 되었죠? 왜, 항상 형광색이 이렇게 멋있게 있는, 그 예쁘게 생긴 운동화 신고 왔잖아요."

한편, 또 다른 주인공인 설은 회사에 달리기로 출근할 만큼, 달리기가 생활화되어 있다. 그러나 장마철이 왔고 밖에서 뛰다가 물웅덩이에서 미끄러진 경험을 한 후, 현재는 열흘째 달리기를 쉬고 있다. 마라톤 대회를 비롯한 여러 대회를 목전에 두고 있는 터라 일요일 오후 이렇게 쉬고 있을 수는 없다고 생각하던 설은 거대한 트랙을 실내에 설치했다는 송도 트라이 센터를 찾게 된다. 매우 훌륭한 시설 안에서 열심히 훈련을 하고 있던 중, 아주 미묘하지만 분명한 '텅' 하는 소리를 듣게 되는 설. 지하 5층에서 4층으로 이어지는 에스컬레이터에서 계속 소리가 난다는 것을 알게 되고, 찝찝한 마음에 에스컬레이터로 다가간 설은, 레일 끝자락에 겨우 매달려 있는 진과 그 밑으로 넘실대는 잿빛의 탁한 물을 발견하게 되는데.. 이것이 과연 무슨 일일까?

안전가옥 쇼트 시리즈 17 [전력 질주]는 요즘 기후 변화가 극심한 우리나라에서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는 재난과 그 재난에 대처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삶을 변화시킨 수영과 달리기, 그러나 하필이면 진과 설이 휴일에 훈련을 위해서 찾은 곳이 바로 송도 트라이 센터였다. 장기간 내린 비 때문에 신도시의 주거지가 침수되었고 송도 트라이 센터가 그 중심지에 있었던 것. 건물 안으로 들이닥친 거대한 물로 인해 지하층이 무너지고 에스컬레이터가 부서졌으며, 정전으로 인해 앞이 거의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점점 불어나는 물은 그녀들의 목숨을 시시각각 위협하게 된다. 그러나 각종 대회에서 상을 휩쓴 진과 설이 아니었던가? 누구보다 빠른 그들의 팔과 다리, 그리고 서로를 위한 마음은 위기 상황에서 그녀들을 구출해내는데......

재난 상황이라는 게 멀리 있지 않구나..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 준 책 [전력 질주]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기후 변화로 인해서 언제 어떻게 재난과 맞닥뜨리게 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이 책의 주인공 허진과 김설은 각종 대회에서 만나게 되는 일종의 라이벌 관계이지만 우연하게도 재난의 상황에서 맞닥뜨리게 되면서 서로 연대하게 된다. 그러면서 서로의 약점과 아픈 곳을 알게 되면서 더욱더 끈끈한 관계를 만들어간다. 과거 반려견을 바다에서 잃어버린 트라우마 때문에 수영을 두려워하는 설과 무릎을 크게 다친 경험 때문에 달리기를 두려워하는 진. 그러나 이들 둘이 힘을 합치게 되면서 위험천만한 상황에서도 용감히 대처해 나가는 그녀들의 든든한 모습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우리들은 약하지 않고, 외롭지도 않다! 위기 상황에서 오히려 더 큰 힘을 발휘하고 타인을 위해 희생하는 용감한 여성들의 이야기 [전력 질주]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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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손님 - 제26회 동리문학상 수상작
윤순례 지음 / 은행나무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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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은 멀어서 눈부시게 환한 하얀 불빛들을 향해 걸어가는 사람들

기록되지 않은, 너무도 사적인 침묵의 역사 "

더 나은 삶을 찾아 고향을 버리고 자유의 땅인 한국으로 오게 된 탈북민들의 이야기인 [여름 손님]. 희망에 가득 찬 채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밝은 이야기를 기대했건만, 그들의 삶은 왠지 외롭고 쓸쓸해 보였다. 마치 뿌리를 뽑힌 채, 불어난 강물에 휩쓸린 나무들처럼 안정을 찾지 못하는 모습, 여전히 한국 사회 주류에 속하지 못한 채, 주변부로 떠밀리는 듯한 모습이 안타까웠다. 하지만 그들이 아주 절망적으로 보이지는 않았던 이유는, 아직도 무언가를 끊임없이, 열렬히 갈망하고 있는 모습을 보인다는 점이었다. 구하면 열린다는 뜻의 속담도 있지 않은가? 길이 없다면 길을 만들어서라도 가려는 그들의 의지가 보이는 듯했다.

[ 여름 손님 ]은 6편의 단편이 내용상 연결되어 있는 일종의 연작 소설이다. 탈북의 여정, 그 고난의 한 가운데에서 함께 했던 사람들과의 가슴 아픈 추억을 그리거나 한국에서 새롭게 맺게 된 복잡한 인연들에 대한 내면의 소리에 중점을 두는 소설이라 그런지 자기 고백적 성격을 띠는 이야기라 느꼈다. 그뿐 아니라 이 소설집의 특징은, 연작 소설이니만큼, 각 단편에 등장했던 주인공이나 주변 인물들이 다른 단편에서도 불쑥 등장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단편 [ 심봤다 ]에서 한 심마니의 기억 속에서만 단편적으로만 존재하는, 그래서 밋밋한 인물인 탈북민 화진은 [ 사적인, 너무도 사적인 침묵의 역사 ]라는 단편에서는 적극적으로 인생을 개척하는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단편 [심봤다]에서 주인공 심마니는 삼을 캐면서도 머리로는 온통 전 부인이었던 화진을 생각한다. 결혼 생활 내내 성실하지 못했던 화진, 그녀는 술집을 나가거나 다른 남자와 바람을 피우며 주인공의 마음을 산산조각 내버렸다. 오직 단란한 가정만을 원했던 그의 마음을, 화진은 왜 몰라줬던 걸까? 그녀가 미치도록 밉지만 동시에 미치도록 그리운 한 남자의 애타는 마음이 이 단편에서 잘 드러난다. 한편 [ 사적인, 너무도 사적인 침묵의 역사 ]에서는 자신의 행동의 이유를 설명할 수 없었던, 그렇기에 여전히 침묵 속에 갇혀있는 여자, 화진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젖먹이 시절 북에 놔두고 온 아들과 중국에 두고 온 딸을 데려와서 잘 키우자는 트럭 기사의 달콤한 말을 믿고 불나방처럼 뛰어들었던 사랑,, 그러나 자신의 씨가 아닌 자식들을 키우느라 부담감이 컸던 것인지 남편은 어느 순간부터 술에 취한 채 쌍욕을 입에 달고 살기 시작하는데.....

이 책 [여름 손님]을 읽으면서 마음이 좀 답답하고 불편해지는 걸 느꼈다. 한국이라는 공동체가 여전히 탈북민들에게 씌우는 프레임, 그 편견에 찬 시선들이 너무나 따갑게 느껴졌다. 단편 [여름 손님]의 주인공 철진은 단지 탈북민이라는 이유만으로 아래층 독거노인에게 끈질긴 괴롭힘을 당해야만 했고, 노인이 미스터리한 죽음을 맞이한 후 살인 혐의를 뒤집어쓰고 쫓기기까지 한다. 단편 [별빛보다 멀고 아름다운]에 나오는 탈북민 선화의 경우는 일하던 가게의 독일인 사장과 어울렸을 뿐인데, 그와 바람을 피우고 끝내는 그를 죽였다는 의심까지 받게 된다. 결국 독일인 사장이 심장 마비로 죽었다는 사실이 밝혀진 후에도 선화에게 사과를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국경 수비대에게 총 맞을 각오로 두만강을 넘고, 중국에 와서도 공안들에게 붙들려 북송될 위험을 극복하고 오게 된 자유의 땅.. 그러나 그들이 진정으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시간은 아직도 멀어 보였다.

탈북민을 처음으로 본 것은 TV 프로그램을 통해서였다. 눈물을 흘리면서 자신의 탈북 과정을 상세하게 묘사했던 그들. 탈북 과정에서 가족이 실종되거나 뿔뿔이 흩어지기도 하고 중국 공안에게 잡혀서 북송된 후 모진 탄압을 받은 사례도 있었다. 그래도 한국에서 가족을 이루고 사업체를 이끌며 나름 안정된 삶을 꾸리나 했는데, [여름 손님]에 나오는 탈북민들의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여전히 벽에 가로막힌 채 주변부로 계속 떠밀리면서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이 보인다. 윤순례 작가는 이 [여름 손님]이라는 책을 통해서 말하는 것 같다. 만약에 예상치 못했던 먼 친척이 우리 집에 갑작스레 손님으로 온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들이 온갖 트라우마로 점철된 삶을 살아야 했다면, 그런 황량하고 고통에 가득 찬 마음을 우리가 직면하게 된다면 어떨까? 외면하고 말 것인가, 아니면 우리의 곁을 내주고 함께 문제를 해결해 나갈 것인가? 그런 고민과 화두를 우리들에게 던져주는 것 같은 소설 [여름 손님]이다.

" 깨소금 넣은 송편을 먹으려고 가보면 앙금은 누군가 쏙 빼먹은 것만 내 차지였다고, 

그래도 남조선에 도면 반짝반짝 빛을 내며 살 줄 알았다고,

낡은 지 오래인 꿈에 대해서도 말하기에는 불빛이 너무 밝았다. (...)

두서없는 사념들이 무엇에 가닿을지 모르는 채로 화진은 빛을 향해 발을 내디뎠다.

아직은 멀어서 눈부시게 환한 불빛들을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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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할 수밖에 네오픽션 ON시리즈 5
최도담 지음 / 네오픽션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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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건의 진실을 향한 숨 막히는 심리전과 가슴 아린 반전

타인의 죽음 그 이후를 살아가야 하는 이들의 위한 이야기 "

" 원수를 사랑하라 "라는 말이 있지만 일반인들이 그렇게 하기란 상당히 힘들다. 한 번이라도 희생자의 위치에 놓여본 적이 있는 사람들은 당한 그대로 갚아주는 통쾌한 복수극에 열광하기 마련이다. 최근 대중들에게 큰 인기를 얻고 있는 K 드라마 [ 더 글로리 ]는 학창 시절 모진 괴롭힘을 당한 한 여자의 철저한 복수극에 대한 이야기이다. 지금까지 공개된 시즌 1 에서는 발톱을 조금 드러낸 여주인공이 가해자들을 향해 복수를 예고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시즌 2에서 본격적으로 펼쳐질 잔인하고도 소름 끼칠 복수극이 기대되긴 하지만 사실 나는 이 드라마를 보며 여주인공이 평생 견뎌내야 했던 몸과 마음의 상처, 그 고통의 깊이에 몸서리쳐졌다. 온몸을 뒤덮은 화상 흔적과 그녀의 무표정한 얼굴 속에 감춰진 깊은 상처... 이미 한번 죽은 듯한 그녀가 다시 살아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복수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최도담 작가의 소설 [ 그렇게 할 수밖에 ] 도 복수라는 주제를 다룬다. 어릴 적 어머니와 재혼한 남자 이기섭에게 몹쓸 짓을 당했던 라경. 그 일로 인해 어머니는 자살을 했고 라경의 인생은 엉망이 되었다. 정신과 약을 복용하며 근근이 버텨왔던 그녀는 어른이 된 후, 우연히 이기섭이 운영하는 듯한 카페에서 그를 만나게 되고, 그 이후 그녀는 " 복수 " 라는 새로운 꿈을 꾸게 된다. 오직 이기섭의 죽음만이 완전한 복수이기에 그녀는 완벽하게 일을 처리한다고 소문난 살인 청부업자인 "연"에게 일을 맡기게 되고 곧 이기섭이 뺑소니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그러나 반가웠던 소식도 잠시, 다시 "연"에게서 살인 청탁이 실패로 돌아갔고 그녀에게 다시 청탁 비용을 되돌려주겠다는 연락을 받게 되는데,,,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이기섭의 사망은 우연의 일치였던 것일까? 완벽하다고 믿었던 "연" 이 실수를 한 이유는 무엇일까?

살인이라는 중범죄가 등장하긴 하지만 이 소설은 잔인한 이미 지나 묘사와는 거리가 멀다. 범죄가 직접적으로 발생하는 상황 혹은 가해자와 피해자가 만나 충돌하거나 갈등하는 상황은 거의 묘사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소설은 실제 살인 사건보다는 " 우연 "처럼 보이는 사건 혹은 사고를 둘러싼 의문과 미스터리 그리고 그 주변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의 복잡한 심리 묘사를 주로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쫓고 쫓기는 추격전만큼이나 이 소설도 팽팽한 긴장감과 신경전으로 가득하다. 사건이 이미 종료된 상황이긴 하지만 " 사고 "로 보이는 상황에서 기가 막히게 " 사건 " 냄새를 맡아내는 형사들이 라경의 뒤를 쫓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미 이기섭과 라경의 에전 관계를 알고 있는 듯 보이고 그 이상의 것도 알아낼 수 있는 능력이 있다. " 나 "라는 독자는 손에 땀을 쥔 채 기도를 할 수밖에 없었다. 오직 라경의 안위를 바라는 마음으로.

실패로 끝난 살인 청탁... 그러나 여전히 라경의 뒤를 쫓는 형사들.. 그리고 이후 드러나는 놀라운 사실들. 단순하고 명백하게 보였던 사건의 이면에 복잡 미묘하게 얽혀있던 진실들을 맞닥뜨리게 되면서 독자들은 놀라움의 연속을 경험하게 된다. " 우연 "처럼 보였던 그 죽음 이면에 철저하고도 완벽한 " 필연 " 이 숨어 있었다는 사실.. 그리고 마무리까지 완벽했던 계획을 알게 되는 순간, 꼬여있던 실타래가 풀리는 동시에 독자들은 경지에 이른 누군가의 예술혼까지 느끼게 될 수도 있다. 살인 청탁과 실질적인 누군가의 죽음, 그 잔인한 현실 앞에서 오히려 위대한 사랑과 배려를 느꼈다고 하면 아이러니한 건가? 악이 득세하고 강자가 약자를 짓밟는데도 법과 규칙은 아무 소용 없는 세상.. 고구마같이 답답했던 그 세상 속에서 누군가의 철저하고도 완벽한 복수극은 사이다 그 자체였다.

" 타인의 고통을 들여다보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자신의 고통에 매몰된 인생은 타인을 돌아보지 못한다. 나의 고통 너머를 보는 삶. 이제 달라진 삶을 살 수 있다는 징조를 읽는다. 나는 나 자신으로부터 벗어나고 있었다." 

" 나는 너를 사랑한다 "라고 말하기는 쉽다. 그러나 그 사랑을 실천하기는 매우 어렵다. 더군다나 인생을 바쳐서 사랑을 실천하기는 더더욱 힘든 법이다. 단순히 복수극만은 아니었던 소설 [ 그렇게 할 수밖에 ] 누군가의 뜨거운 사랑과 차가운 계획, 냉탕과 온탕을 왔다 갔다 하는 짜릿함을 보여주는 이야기였다. 후련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아련한 슬픔과 안타까움도 느껴졌던 이야기이기도 했다. 세상 모든 고통받는 약자들과 그들을 지켜볼 수밖에 없어서 더 고통을 느껴야 했던 모든 사람들을 위해 쓰인 듯한 소설 [ 그렇게 할 수밖에 ]

* 출판사가 제공한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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