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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한강
권혁일 지음 / 오렌지디 / 2023년 1월
평점 :
" 어렵게 죽음에 성공했다. 그러나 사라지는 데에는 실패했다.
자살한 이들이 모여 사는 평화로운 동네 '제2한강'
완전 소멸에 이르기 전 마지막 기회인가 신의 장난인가?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 걸까? 많은 발전을 이룬 인간이 유일하게 풀지 못한 미스터리가 있다면, 그건 바로 삶과 죽음이 아닐까? 평소에는 바쁘게 살면서 '삶과 죽음' 특히 '죽음'에 대해 성찰할 기회가 거의 없었는데 이 책 "제2한강"을 읽고 나니 그 미지의 영역에 대한 의문이 다시 생긴다. 주위를 둘러보면 살 만큼 살다가는 죽음도 있지만, 갑작스럽게, 그것도 제 손으로 세상을 등지는 안타까운 죽음도 있다. 물론 사는 게 죽는 것보다 더 고통스러워 그런 선택을 했겠지만, 남겨진 사람들은 그만큼의 자책과 슬픔을 떠안아야 한다.
이 책 "제2한강"을 쓴 작가 권혁일 씨는 갑작스러운 친구의 죽음 앞에서 매우 복잡한 감정을 느꼈던 것으로 보인다. 비록 정신과 치료를 받긴 했으나 평소에 자살을 암시하는 행동을 전혀 보이지 않았던 친구. 세상은 변함없이 흘러가고 아름답기조차 한데 친구는 작별 인사도 없이 왜 그런 갑작스러운 선택을 했어야만 했을까? 남겨진 자의 슬픔은 작가를 오래도록 붙들고 놓아주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슬프지만 따뜻하고 아름다운 소설, "제2한강" 이 세상에 발걸음을 내디딘 것을 보면.
책 속에 나오는 "제2한강"은 자살자들이 흘러들어가는 곳이다. ( 자살자들은 죽음 이후 물에서 건져진다 ) 이곳은 여러 종교에서 이야기하는, 죄의 심판을 받는 지옥도 아니고 천사들과 노닐 수 있는 천국도 아니다. 자살을 마음먹은 사람들이 지겹도록 찾을 만한 그 한강, 실제 한강와 똑같이 생긴 곳이다. 그뿐 아니라 이곳에는 자살자들의 전입과 숙소를 관리해 주는 관리사무소도 있고 식사를 해결할 수 있는 급식소도 있다. 한마디로 현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냥 공동체 같아 보인다. 현실과 다른 점은, 다른 색깔을 잃어버리고 푸르죽죽한 모습으로 살아간다는 것과 죽을 때 나이를 그대로 가지고 사는 것. 그들이 먹는 된장찌개조차 푸르죽죽하다고 묘사되는 걸 보면... 마치 흑백 시대로 돌아간 느낌이랄까?
어릴 때 강아지를 잃어버리고 엄마에게 호된 질책을 들은 후 책임을 회피하며 살아온 주인공 형록. 일찍 엄마를 잃고 폭력적인 아빠와 살아서 부모의 따뜻함이라고는 모르고 자라온 이슬. 외모 콤플렉스로 시달리다가 뷰티 유튜버로 변모하여 찬란한 삶을 사는가 했지만 집요한 악플러의 공격에 무너지게 된 화짜와 업무 스트레스로 우울증과 공황 장애를 앓으며 살았던 오 과장까지.... 세상을 등질 수밖에 없었던 안타까운 사연을 가진 제2한강의 주민들. 책을 읽다 보니 이들이 왜 "제2한강"에 와야 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들은 " 다시 자살 "이라는 체계를 거쳐서 완전 소멸에 이르기까지 어쩌면 이곳에서 마음의 평온과 휴식을 얻은 게 아니었을까? 아무것도 할 필요 없고 아무 생각도 안 해도 되지만 아팠던 지난 과거를 정리할 수는 있는 곳. "제2한강"을 읽는 내내, 그들이 꾸깃꾸깃 구겨져 있는 지난 삶이라는 사진들을 곱게 펴서 재정리할 수 있는 시간이라는 선물을 받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에 사랑하는 가족이, 친구가 혹은 아는 사람이 스스로 세상을 등진다면, 나는 크나큰 자책감에 시달릴 것 같다. 왜 그들의 일찍 고통을 눈치채지 못했고, 왜 더 관심을 보여주지 못했을까 하고 말이다. 실제로 몇 년 전에 너무 예쁘고 사랑스러운 여자 연예인이 스스로 유명을 달리했을 때 나는 너무 큰 충격을 받아서 며칠 동안 계속 그녀 생각만 했었다. 한국의 악플러 문제가 너무 심각한 건 아닌지.. 그녀가 너무 일찍 연예계로 나와서 경험하지 않았어도 될 일들을 너무 많이 경험한 건 아닌지.. 그녀의 가족들은 앞으로 어떤 힘든 나날들을 보내야 할지.. 그런 생각들. 그런데 만약 신이 이 "제2한강"의 작가와 비슷한 생각을 해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들에게 "제2한강"과 같은 환경을 만들어준다면 조금은 안심해도 될 것 같다. "제2한강"의 사람들은 결국에는 자신의 삶이 그다지 나쁘지만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지난 삶에서 아름답고 소중한 것들을 결국은 찾아내니 말이다.
책을 읽는 내내 안타까웠고 가슴 아팠고 눈물이 났다. 안 그런 척해도 결국 우린 견디며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닐까? 바쁘다는 핑계 대신 나 자신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돌아보며 살아가야겠다는 다짐도 했다. 같은 나이의 친구를 찾아 헤맸지만 결국엔 나이나 성별에 상관없이 모두가 친구였다는 걸 깨달은 이슬이처럼, 우리들이 잃어버린 채 살아가는 뭔가를 되찾을 필요가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자살한 사람들의 이야기로 시작했지만 결국엔 우리 모두의 이야기로 끝난 소설 [제2한강].
* 출판사가 제공한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를 작성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