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손님
윤순례 지음 / 은행나무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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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은 멀어서 눈부시게 환한 하얀 불빛들을 향해 걸어가는 사람들

기록되지 않은, 너무도 사적인 침묵의 역사 "

더 나은 삶을 찾아 고향을 버리고 자유의 땅인 한국으로 오게 된 탈북민들의 이야기인 [여름 손님]. 희망에 가득 찬 채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밝은 이야기를 기대했건만, 그들의 삶은 왠지 외롭고 쓸쓸해 보였다. 마치 뿌리를 뽑힌 채, 불어난 강물에 휩쓸린 나무들처럼 안정을 찾지 못하는 모습, 여전히 한국 사회 주류에 속하지 못한 채, 주변부로 떠밀리는 듯한 모습이 안타까웠다. 하지만 그들이 아주 절망적으로 보이지는 않았던 이유는, 아직도 무언가를 끊임없이, 열렬히 갈망하고 있는 모습을 보인다는 점이었다. 구하면 열린다는 뜻의 속담도 있지 않은가? 길이 없다면 길을 만들어서라도 가려는 그들의 의지가 보이는 듯했다.

[ 여름 손님 ]은 6편의 단편이 내용상 연결되어 있는 일종의 연작 소설이다. 탈북의 여정, 그 고난의 한 가운데에서 함께 했던 사람들과의 가슴 아픈 추억을 그리거나 한국에서 새롭게 맺게 된 복잡한 인연들에 대한 내면의 소리에 중점을 두는 소설이라 그런지 자기 고백적 성격을 띠는 이야기라 느꼈다. 그뿐 아니라 이 소설집의 특징은, 연작 소설이니만큼, 각 단편에 등장했던 주인공이나 주변 인물들이 다른 단편에서도 불쑥 등장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단편 [ 심봤다 ]에서 한 심마니의 기억 속에서만 단편적으로만 존재하는, 그래서 밋밋한 인물인 탈북민 화진은 [ 사적인, 너무도 사적인 침묵의 역사 ]라는 단편에서는 적극적으로 인생을 개척하는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단편 [심봤다]에서 주인공 심마니는 삼을 캐면서도 머리로는 온통 전 부인이었던 화진을 생각한다. 결혼 생활 내내 성실하지 못했던 화진, 그녀는 술집을 나가거나 다른 남자와 바람을 피우며 주인공의 마음을 산산조각 내버렸다. 오직 단란한 가정만을 원했던 그의 마음을, 화진은 왜 몰라줬던 걸까? 그녀가 미치도록 밉지만 동시에 미치도록 그리운 한 남자의 애타는 마음이 이 단편에서 잘 드러난다. 한편 [ 사적인, 너무도 사적인 침묵의 역사 ]에서는 자신의 행동의 이유를 설명할 수 없었던, 그렇기에 여전히 침묵 속에 갇혀있는 여자, 화진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젖먹이 시절 북에 놔두고 온 아들과 중국에 두고 온 딸을 데려와서 잘 키우자는 트럭 기사의 달콤한 말을 믿고 불나방처럼 뛰어들었던 사랑,, 그러나 자신의 씨가 아닌 자식들을 키우느라 부담감이 컸던 것인지 남편은 어느 순간부터 술에 취한 채 쌍욕을 입에 달고 살기 시작하는데.....

이 책 [여름 손님]을 읽으면서 마음이 좀 답답하고 불편해지는 걸 느꼈다. 한국이라는 공동체가 여전히 탈북민들에게 씌우는 프레임, 그 편견에 찬 시선들이 너무나 따갑게 느껴졌다. 단편 [여름 손님]의 주인공 철진은 단지 탈북민이라는 이유만으로 아래층 독거노인에게 끈질긴 괴롭힘을 당해야만 했고, 노인이 미스터리한 죽음을 맞이한 후 살인 혐의를 뒤집어쓰고 쫓기기까지 한다. 단편 [별빛보다 멀고 아름다운]에 나오는 탈북민 선화의 경우는 일하던 가게의 독일인 사장과 어울렸을 뿐인데, 그와 바람을 피우고 끝내는 그를 죽였다는 의심까지 받게 된다. 결국 독일인 사장이 심장 마비로 죽었다는 사실이 밝혀진 후에도 선화에게 사과를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국경 수비대에게 총 맞을 각오로 두만강을 넘고, 중국에 와서도 공안들에게 붙들려 북송될 위험을 극복하고 오게 된 자유의 땅.. 그러나 그들이 진정으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시간은 아직도 멀어 보였다.

탈북민을 처음으로 본 것은 TV 프로그램을 통해서였다. 눈물을 흘리면서 자신의 탈북 과정을 상세하게 묘사했던 그들. 탈북 과정에서 가족이 실종되거나 뿔뿔이 흩어지기도 하고 중국 공안에게 잡혀서 북송된 후 모진 탄압을 받은 사례도 있었다. 그래도 한국에서 가족을 이루고 사업체를 이끌며 나름 안정된 삶을 꾸리나 했는데, [여름 손님]에 나오는 탈북민들의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여전히 벽에 가로막힌 채 주변부로 계속 떠밀리면서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이 보인다. 윤순례 작가는 이 [여름 손님]이라는 책을 통해서 말하는 것 같다. 만약에 예상치 못했던 먼 친척이 우리 집에 갑작스레 손님으로 온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들이 온갖 트라우마로 점철된 삶을 살아야 했다면, 그런 황량하고 고통에 가득 찬 마음을 우리가 직면하게 된다면 어떨까? 외면하고 말 것인가, 아니면 우리의 곁을 내주고 함께 문제를 해결해 나갈 것인가? 그런 고민과 화두를 우리들에게 던져주는 것 같은 소설 [여름 손님]이다.

" 깨소금 넣은 송편을 먹으려고 가보면 앙금은 누군가 쏙 빼먹은 것만 내 차지였다고, 

그래도 남조선에 도면 반짝반짝 빛을 내며 살 줄 알았다고,

낡은 지 오래인 꿈에 대해서도 말하기에는 불빛이 너무 밝았다. (...)

두서없는 사념들이 무엇에 가닿을지 모르는 채로 화진은 빛을 향해 발을 내디뎠다.

아직은 멀어서 눈부시게 환한 불빛들을 향해..."

출판사에서 제공한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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