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우스프라우
질 알렉산더 에스바움 지음, 박현주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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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서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는지.... 처음 이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 느꼈던 불길한 예감은 글을 읽어갈수록 퍼즐이 맞춰지듯이 하나하나 맞춰지기 시작했다.

 

이 글의 주인공은 안나. 그녀는 미국에서 만난 스위스인 남편을 따라 먼 이국땅을 날아왔다. 사랑하니까 결혼했다는 합리적 판단 아래. 그 당시에는 서로 사랑했다고 믿었을지 모르겠지만, 그러나 마치 새장에 갇힌 새처럼, 안나는 합리성과 절제를 요구하는 스위스라는 공동체와 가족이지만 끈끈한 정이라고는 찾기 힘든 무뚝뚝한 시어머니 그리고 남편 사이에서 고독과 외로움이라는 고통을 느끼게 된다.

 

어떻게 보면 철저하게 자신을 배척하는 타자들과 맞서 싸워야 하는 시점과 공간 속에 놓였다고 할 수 있다. 그 와중에 그녀의 자아 정체성은 어느새 사라져가고 그녀가 서 있는 자리는 조금씩 균열이 이루어지기 시작한다. 그녀의 영혼은 액체처럼 흔들리기 시작하고 그녀의 무의식은 묻기 시작한다. 나는 도대체 왜 여기 있는가?

Do I belong here ? 라는 질문을 하기 시작하며 그녀는 밤마다 집 뒤 언덕을 산책하며 고독을 달랜다.

 

그러던 와중에 그녀는 생존의 몸부림으로 인한 자신의 선택으로, 혹은 운명의 장난으로 인한 사랑에 빠지게 되는데 그로 인해서 간신히 버티고 있던 그녀의 신경은 와르르 무너져 내린다. 자신은 진실하다고 믿었던 사랑.

불과 같은 사랑이라고 믿었는데........

 

이제 안나는 메설리 박사라는 정신 분석가와 만나서 면담 치료에 들어가게 된다. 메설리 박사는 보통 스위스인과 마찬가지로 냉정함과 합리성을 갖춘 인간인 만큼, 감정의 영역을 철저히 차단하고, 안나가 꾸는 꿈들을 분석해 가며 그녀의 정신적 성장을 도운다. 이 대목에서 의문이 들었던 것은,, 과연 안나에게 필요했던 것이 정신적 정상이었을까? 아니면 그녀에게서 진심을 끌어낼 수 있는 공감이었을까? 나는 후자라고 생각하는데.... 어쨌든 그들은 형식적이나마 치료를 계속해나간다.

 

정신과 의사에게서 독일어 수업을 추천받은 안나는, 거기서 만난 아치와 불륜에 들어가기 시작한다. 자신을 밀어내기만 하는 사람들 - 아이들을 봐주긴 하지만 무뚝뚝한 시어머니 우르줄라, 결혼 이후로 애정 표현이 급격하게 줄어든 남편 브루노 - 에 대한 항의의 몸짓이었을까? 그녀는 아치와의 불륜에 이어서 겁도 없이, 파티에서 남편이 얼마 떨어져 있지 않는 거리에서 남편의 지인인 카를과 또 불륜관계에 들어가게 된다.

 

어쩌자고 저러는 것일까...... 마치 프랑스 여류작가 프랑스와즈 사강의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라는 문장이 떠오르는 장면들이었다. 낮에는 외간 남자들과 불륜을 저지르고 밤에는 집 뒤 언덕에 올라가서 하염없이 걷고 기차 소리도 듣고 새 소리도 들으면서 괴로움을 달래는 안나. 안나는 마치 100킬로 속도로 달리는 자동차에서 졸아버린 운전자 같다. 안나는 빠져나갈 수 없는 운명이라는 네모 상자에 갇혀서 이리저리 흔들리는 삐에로 인형 같다.

 

작가는 다른 누구의 관점으로도 이 글을 쓰지 않는다. 오직 안나의 관점에서, 안나가 바라보는 세상에 대한 그녀의 느낌을 적기 때문에 안나의 섬세한 심리변화와 심적 고통을 생생하게 그려낼 수 있었다. 오직 여성적 관점에서만 안나의 이상하리만치 자기 파괴적인 행동이 이해가 될 수가 있었다. ( 설명은 못 하겠다 ^^;;;;)

 

만약 다른 사람의 눈으로 안나의 행적을 따라가게 되었더라면 소설의 느낌이 또 달랐을 수도 있겠지. 남편의 눈으로 봤다면 아마 수상쩍은 행동을 하는 안나를 추적하는 추리소설의 형태를 띄었을 수도 있었겠다.

 

그러던 중..... !!!! !!! 책이나 영화를 보면 제일 예쁘고 제일 사랑스럽고 제일 아끼는 사람이나 동물에게 안 좋은 일이 생기는 것처럼, 마치 내가 저지른 죄에 대한 희생양이 그들이 되는 것처럼.... 안나에게 절망 그 이상의 사건이 또 터진다

 

마치 그녀에게 속죄를 요구하듯 그녀의 삶은 그녀에게서 가장 중요한 것을 앗아가버린다. 그리고 슬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눈물조차 말라버린 안나에게 브루노는 자신이 그동안 절제해야만 했던 분노를 주먹에 모두 담아서 그녀에게 날리고는 짐을 싸서 안나에게 집을 나갈 것을 요구한다.

 

이제 안나는 어딜 가야 할까? 절망적인 안나가 연락한 메리는 바쁘고 찾아간 메설리 박사는 시간을 지키지 않았다고 그녀에게 거절의 표시를 한다. 마지막으로 찾아간 아치는 스코틀랜드로 돌아가있다. 그리고 정말 정말 한가닥 희망을 담아서 들른 성당의 신부는 그녀의 얼굴 자국에 난 멍을 보고는 메설리 박사의 이름이 담긴 정신과 의사들의 목록을 내밀면서 도움을 요청해보기를 충고한다.

 

책의 끝자락에 와서 나는 내 자신에게 물어보았다. 과연 신이 있을까? 우리에게 정해진 운명이라는 게 있을까? 안나는 자신이 선택한 불행한 삶을 충실히 산 것 뿐이었을까? 아니면 신이 정해준 운명이라는 계단을 차근차근 올라간 것 뿐이었을까?

 

지금 안나를 만난다면 아무말 없이 그냥 안아주고 함께 울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서 책장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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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보다도 더 사랑한다는 말이 있다면 - 이 문장이 당신에게 닿기를
최갑수 지음 / 예담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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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삶을 정의 내리려 한 적이 있었다.  바보처럼.

사는 게 도대체 뭘까? 나름 이성적 판단 아래 의미를 찾으려 한 것 같은데

갑자기,,,,, 삶이란 건,,,, 순간 순간이 모여서 이루어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예쁜 틀에 담긴 아이들의 웃고 있는 사진들과 창틀에 놓인 아름다운 꽃병들 그리고 방 안으로 스며드는 햇살처럼, 아니면 퍼즐이 모여서 하나의 직소퍼즐이 완성되는 것처럼.... 의미 없는 보이는, 그냥 스쳐지나가는 모든 순간 순간들이 바로 삶인 것.


이 책을 쓰신 최갑수님도 삶을 나름대로 정의내리시는 것 같다.

여행을 하시면서 깨달은 것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그리움 등을 표현하시면서.

영화나 책에 나온 아름다운 글귀로

( 이터널 선샤인 - 네가 없는 곳은 기억할 수 없어  )

때로는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사진들로 우리가 직접 느낄 수 있도록 해준다.

그리고 머리로 이해하기 보다는 가슴으로 느낄 수 있는 글귀들로 ( 대단히 풍부한 감수성 )

 

그는 여행을 다니고 사랑을 찬미하는데 사랑을 정의하는 그의 개념이 매우 폭 넓다.

아내에 대한 사랑, 사람들에 대한 사랑, 여행에 대한 사랑,,,, 자신이 하는 모든 행위에 대한 사랑사랑 그 자체에 대한 사랑


그리고 제일 중요한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을 언급하신다.


65- 우리는 서로를 사랑하지만 자기 자신을 좀 더 사랑한다

[ 레이먼드 카버 - 내가 필요하면 전화해 ]


갑수님은 우리 자신을 사랑하라고 하신다.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원하는 곳으로 여행을 떠나고 스스로의 삶을 온전히 살아라. 우리의 눈이 빛날 거라고. 우리가 우리를 사랑하는 만큼 서로를 사랑할 수 있다고.


- , 알겠어요. 명심할게요.

   <![endif]-->   

그리고 갑수님은 한 인간을 사랑하기 위해 기울여야 하는 사랑도 얘기하시죠.


98- 내가 당신을 얼마나 오랫동안 사랑했는지 누가 알겠어요. 내가 아직도 당신을 사랑한다는 걸 아나요. 당신이 원한다면 외롭게 기다리겠어요. 그러겠어요.


- 여기서 당신과 내가 외롭게 누군가를 사랑할 것을 생각하니 울컥 치밀어 오르는 불공평함에 대한 약간의 분노 비슷한 것이 갑자기 생기네요. 기울어질 저울을 생각해서 일까? 그러나.... 사랑이란 원래 상처를 허락하는 것이니까.

 

갑수님은 또한  채우기 보다는 비워야 하는 삶에 대한 성찰도 하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잠시 빌려쓰고 있는 생명에 대해서도 이야기 하시구요.

 

133- 여행을 하며 삶에는 그다지 많은 것들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다. ..... 중간 생략..... 이만큼 살다보니 내 것은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전부 다른 이의 것이엇다. 나는 잠시 빌려쓰고 있을 뿐이었다. .... 중간 생략 ....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언제나 오늘 하루가 전부라는 것. 우리에게 하루가 더 주어질 지는 다음 날 아침이 되어야 비로소 알 수 있다는 것,

 

슬프지만 이미 지나가버리고 기억 속에서 조차 소멸해버린 사랑에 대해서도 이야기 하십니다.

 

162- 우리가 지나온 대부분의 일들은 이미 소멸되었다

[ 처음부터 나는 그렇게 깊은 바닷속에 혼자 있었어. 하지만 그렇게 외롭지는 않아. 처음부터 혼자였으니까 ]

 

영화 -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에 나오는 대사인데, 이 영화를 한번이라도 본 사람들은 여주인공을 버리고 도망치듯 뛰어가버리는 남자 주인공의 오열과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여주인공의 체념이 가득찬 눈빛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장애가 있던 그녀에게 문득 찾아왔던 사랑 그러나 곧 홀연히 사라져 버리는 사랑.. 심해에 사는 바닷속 물고기처럼 그녀는 곧 고독에 길들여지겠지.

 

그러나 갑수님은 또 포기하지 말라고 애기하신다. ( 어쩌라구요, 위에 하신 말과 다르잖아요 ㅠㅠ )

   

208-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일,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이건 상당한 용기를 필요로 하는 것이다..... 여행도 마찬가지. 인생도 마찬가지. ...... 어제의 꾸준함과 내일에 대한 기대가 나를 이곳까지 데려왔다.

   <![endif]--> 

나 - 사랑과 인생은 고백하는 쪽, 그리고 을 인 쪽이 상처받기 쉬운 자리에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고 하겠다. 그러나 갑수님이 끊임없이 주장하는 것처럼 사랑과 인생은 버티는 쪽이 승리하는 법.

 

213쪽 - 돌아가서는 당신에게, 사랑한다는 말보다는 함께 떠나자는 말을 해야겠다. 사랑보다도 더 사랑한다는 말이 있다면 아마도 그것일테니.


 

사랑을 말로 표현할 수 있을가요?

과연.... “ 사랑해 ” 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요? 

어떤 사람은 " 너가 편해 " 라고 말할 수도 있는 거고, 누군가는 " 너 없이는 살 수 없어 "

라고 표현하고 있을 수도. 

세상에는 형용할 수 없는 것도 있어요. 나만의 사랑표현법도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그게 뭔지는 자세히 모르겠지만.

 

227- 그러니까 우리 사랑하도록 하자

 <![endif]-->

이리저리 여행을 다니노라면, 인생이란 참 별거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인생은 짧으니까. ..... 중간 생략.... 그러니까 우리는 사랑하도록 하자, 열심히 책을 읽고 음악을 들으며 여행을 떠나자. 혁명은 멀고 사랑은 간절하니까.

 

- 닥터 지바고를 읽고 혁명 보다는 사랑이 생활에 가까우니 사랑에 전념하자시는 작가님의 말씀! 쿠바에 묻히신 체 게바라 님을 무덤에서 벌떡 일어나시게 만들 문장일 지도 모르겠으나, 나는 엄청나게 공감을 하며 내가 주어야 할,  아니면 받아야할 (?) 사랑에 대해 떠올려 본다.  빚쟁이처럼 내놔라고 사람들에게 얘기를 하고 다닐까?

사랑 내놔... 안 주면 뗏지뗏지.

 

259쪽 : 생사를 건 사랑이라고 말하는 거야? 지금껏 그 남자 없이 살았잖아. 충분히 불행했지. 내 말은 그래도 그때 네가 죽고 싶어하진 않았다는 거야... 하지만 그게 삶이었다고 할 수도 없어.

 

어느덧 여름의 하반기에 접어들었다,, 곧 가을이 찾아오겠지. 물론 목숨을 건 사랑은 아니었지만.... 사랑을 잃고 난 뒤 허망함과 좌절감에 잠을 이루지 못했던 젊은 날이 떠오른다. 도대체 사랑이 뭔지 몰라 헤매고 다녔던 수없이 많은 나날들..... 소심한 내 마음은 아직도 사랑보다 사랑 때문에 치러야했던 상처들이 딱지처럼 마음속에 들어앉아 있다. 그러나 그것들 또한 나의 삶이었던 것.... 사랑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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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토랑에서 - 맛, 공간, 사람
크리스토프 리바트 지음, 이수영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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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토랑이라는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어떤 느낌이 드는가 하면, 크리스토퍼 교수님이 제자들과 한 팀이 되어서, 레스토랑을 소재로 하여, 방대한 한 다큐멘터리 영화를 찍은 것이 아닌가? 하는 그러한 느낌이 든다. 그러나 철저히 감정이나 주관적 의견을 배제하고 관찰자 입장에서 모으신, 인종과 국가를 넘나드는 레스토랑에 대한 실험적인 영화를 찍으신 것 같은, 그러한 느낌.

 

이 영화는 연대순으로 각 나라와 민족에 속한 레스토랑의 발전과 변천사에 보여준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이 영화가 레스토랑을 단지 음식을 먹는 공간으로만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레스토랑이라는 소재를 가지고 다양한 관점 ( 내부의 권력 투쟁, 음식의 변천사, 미식가들의 화려한 언변, 그 당시 사회적 격변 등등 ) 에 관련된 자료를 가지고 독자라는 관객들에게, 수없이 많은 실존 인물들의 실제 활약상을 슬라이드로 보여준다거나 아니면 인터뷰 형식으로, 그들의 입을 통하여  흥미로운 레스토랑과 그 안팎의 모습을 보여주는 듯 하다.

 

사실 저자가 역사학자이자 문학 및 문화사 교수님이기 때문에 각 사회 문화를 반영하거나,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을 슬쩍 보여주기도 하면서, 사회와 문화를 비추는 거울과도 같은 역할의 레스토랑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것도 수많은 증인들의 사례를 통해서.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위에서도 얘기했듯이,  미식가의 비평에 관한 부분이 이 책에서 빠져 있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식도락가의 미식 비평은 레스토랑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기 때문이므로 이 부분에서 대해서도 많은 설명이 이어진다. 수많은 실제 인물들의 증언을 통해서.

 

일단 1800년대부터 시작된 레스토랑에 대한 이야기는 프랜시스라는 한 여성 사회학자의 웨이트리스 직업 구하기 대작전과 유럽에서의 1700대 후반 레스토랑의 태동에 대한 설명을 작가가 과거형으로 설명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사실 프랜시스의 사회 참여적 실험 연구는 아주 인상 깊었고 신선했다. 왜냐하면 사회과학이라는 것이 저런 식으로도 연구될 수도 있다는 것, 접근 방식이 매우 직접적이고 현장 중심이라는 면에서 매우 생생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그녀의 활동이 사회를 변화시키는데 있어서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책의 나머지도 이런 식으로 펼쳐진다. , 레스토랑이라는 하나의 사회가 있고 그것은 하나의 생명체처럼 스스로 발전하고 진화한다. 그러면서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인간 사회와 어우러지면서 서로에게 좋든 나쁘든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프랜시스나 바바라 에런 라이크라는 사회학자는 레스토랑에 잠입 취재를 하고 책을 발간하는 활동을 통해 ( 프랜시스는 -- 시중드는 여자 / 여성 웨이트리스의 사회적 지위 등을 다룸, 바바라 에런 라이크 --- 노동의 배신 / 노동자의 빈곤 문제를 다룸 ) 서로 영향을 미칠 수 있게 중간 역할을 한 것이고.

 

이 뿐만 아니라 전후 미국에서는 제임스 볼드윈이라는 아프리카계 작가와 몇 몇 대학생들이 레스토랑이라는 공간에서도 벗어날 수 없는 인종차별에 대항하는 장면이 나온다. 다른 것 보다 유독 이런 부분이 와 닿았다는 것은 어쨌든 레스토랑이라는 개념 자체가 하나의 사회이고 사회에서는 계급 차별이나 빈부 격차 그리고 열린 사회, 개방된 사회일 수록 인종 차별 문제가 불거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레스토랑이라는 " 하나의 창 " 을 통해 그 당시 격렬했던 미국에서의 인종 차별 문제를 우리가 현재 알게 해 준다.

 

하지만 위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이 책은 비판을 위한 글만을 적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날줄과 씨줄처럼 민족과 인종과 시공간을 넘나드는 다양한 레스토랑과 그 안에서 펼쳐지는 맛있는 음식들과, 그리고 그것을 맛보고 비평을 하는 미식가들의 어우러짐에 대한 부분이  더 많이 나와 있다다시 말해서, 엄청나게 다양한 요리법이 등장하고 그 요리를 맛보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등장인물들이 등장하여 요리 뿐 아니라 그 요리를 만드는 사람이라든가 레스토랑의 분위기를 칭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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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면 사실 잘 아는 사람은 아니지만 미식 비평가라고 하는 요제프 벡스베르크나 게일 그린 그리고 앤서니 보데인과 같은 사람들이 미국의 식도락계에 큰 영향을 끼친 인물들이라는 정도는 알 수가 있었다. 게일 그린이라는  여자는 샌드위치에 대한 식도락 평가를 내리기 위해서 100개의 샌드위치를 먹어보는 철저한 여자였다는 글을 통해서 말이다.

 

그들 외에도 1977년 뉴욕 타임스는  미미 셰라톤이라는 여자를 프랑스로 파견하여 미식 비평을 하도록 시키는데 그녀는 여러 식당을 다녀보고는 실망을 하고 그것을 글로 표현한다. 폴 보퀴즈 레스토랑은 셰라톤의 비판을 성적인 욕구불만으로 몰아세우고, 메트로는 케첩을 핥아먹는 양키라고 표현하기까지 한다. 이처럼 그 당시에는 미식 비평이 아주 중요했음을 알 수 있다.  ( 지금도 그럴 것이다. 요리사를 자살로 몰아갈 만큼 )

      

이제 포스트 모더니즘에 들어서게 되면서 레스토랑에 대한 사람들의 다양한 재해석이 몰아친다. 다니엘 벨은 새로운 문화 엘리트들의 지식 실험실이 될거라고 하고 조지 리처는 노동과 소비가 표준화된 사회, , 레스토랑도 맥도널드 화가 될 것임을 보여준다. 그러나 저자는 푸디 ( 새로운 미식 비평 집단 - 음식 전문 기자단 ) 라는 새로운 집단을 통하여 미래 사회에는 레스토랑이 오히려 본래의 음식, 지속 가능한 음식을 추구하는 집단으로 돌아갈 것임을 넌지시 암시하고 있고 또 그들이 가지고 있는 자유로움과 관용성 덕분에 레스토랑이라는 것과 그 안팎의 것들 ( 음식, 사회, 문화 ) 가 매우 개방적이게 될 것임을 바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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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를 건너다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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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끝내고 보니 너무 재미있었다. 하지만 사실 처음에는 어리둥절했다. 속도도 너무 느리고, ( 속으로 왜 이렇게 가독성이 떨어지지 ? 이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 워낙 추리소설이나 환상소설 등에 심취하는 타입이다 보니 일상을 잠식하는 불안감을 나열하거나 서로 별 관계가 없는 것 같은 사건을 늘어놓는 듯한 글은 좀 지겨워진다. 그래서 그냥 그런 내용인 줄 알았는데, 그런데, 이 책의 모든 미스터리를 푼 열쇠는 마지막에 뿅! 하고 모습을 드러냈다.


이 책은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 이렇게 4 부작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각 계절에 속해있는 주인공들은 나름의 도덕적 딜레마에 갇혀있는데 그런 부조리에 대해서 스스로를 성찰하여 올바른 쪽으로 나아가기보다는 그상황을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합리화하거나 아니면 다른 사람들이 그들의 죄를 알아차릴까봐 전전긍긍하는 못난 모습을 보인다.


그래서 사실은 읽으면서 작가의 의도가 각 계절에 속해 있는 주인공이 짊어지고 있는 도덕 혹은 윤리의 부조리함의 무게를 독자로 하여금 재어보게 하는 것인가? 싶었다. 통상적인 사회적 규범이라는 기준으로 봤을 때, 각자 어떤 죄라고 할 수 있는 일을 저지르고 있는 개인들이 나오니까.


아내를 두고 내연녀를 두고 있는 아키라. 거짓말을 해놓고도 숨기고 더 나아가 뇌물수수까지 하는 남편을 방관하는 자신에 대해서 모멸감을 느끼는 그의 부인 아쓰코. 그리고 마지막으로 세속에서 판단하기에 엄청난 죄를 저지르고도 그것이 옳다고 계속 주장하는 한 남자.


그런 이야기 인 줄만 알았다......... 그런데........


영어에는 이런 단어가 있다. “ irreversible ” 돌이킬 수 없다는 뜻인데, 내가 과거에 한 행동이나 혹은 지금 저지른 행동은 더 이상 돌이킬 수가 없다. 그리고 " Think twice " 라는 단어도 있다. 행동 하기 전에 한번 더 생각해 보라고. 너의 행동이 후에 어떤 반향을 일으킬지 모르니,


한때 한국에서 인터스텔라라는 영화의 붐이 분 적이 있었는데 거기서 감독은 웜홀과 평행 우주 이론이라는 것을 제시한다.


즉, 우주 공간에는 블랙홀과 화이트홀이 있어서 그 사이의 웜홀을 통해 시공간을 여행할 수 있고 사람들이 생각하듯이 시간은 직선이 아니라 우주에는 여러 차원이 있어서 - 층층이 쌓여있음 - 과거, 현재, 미래의 나는 언제나 서로에게 영향을 줄 수 있거나 아니면 다른 차원의 우주에서 나와 똑같은 내가 다른 삶을 살고 있을 것이라고.


이 책에서도 아마 그런 이론을 바탕으로 했을 것 같은 미스터리한 일이 각 주인공에게 발생한다. 예를 들면 아키라의 집 앞에 배달되는 쌀과 술. 자신의 잘못을 의식하고 있는 아키라는 CCTV를 달면서까지 누가 그것을 놔두고 갔는지 찾으려 하지만 결국 찾지 못하고.


여름 편의 아쓰코는 장을 볼 때마다 자신이 고르지 않은 통조림이 바구니 속에 들어 있는 것을 발견하기도 하고 깊은 물 속에서 한 없이 가라앉는 자신이 보이는 몽환적인 꿈을 꾸기도 한다. 미래의 자신을 모습을 본건가?


가을편의 겐이치로는 자신이 찍은 한 다큐멘터리에서 잠깐 스쳐지나가는 사막의 영상을 보게 된다. 황폐해진 미래의 디스토피아를 슬쩍 엿본 것 인가? 작가가 제시하는 웜홀이라는 통로를 통해 미래에서 보낸 시그널을 통해서.


작가는 평행우주이론 이나 웜홀 등의 이론을 통해서 우리는 현재에서도 모두 연결되어 있는 존재이고 끊임없이 서로에게 그것이 행이든 불행이든 영향을 주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인터스텔라에도 나왔듯이 미래의 내가 과거의 나에게 주의나 경고를 보내던가, 아니면 미래의 나의 자손이 나에게 시그널을 보내던가 하는 식으로 내가 지금 하는 선택이 옳은지에 대해서 한번 더 생각해 보라고 이야기를 한다고 말하는 듯 하다.

 

비록 각 계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서로 아무런 관계가 없는 듯이 보이지만, 각 강물에서 흐른 물이 하나의 바다에서 합치듯이 그들이 저질러놓은 일들은 .... 누군가의 불행으로 이어진다. ( 내가 생각하기에 ) 절망까지는 아니지만 뭔가 서늘하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한 그리고 겨울이라는 계절을 통해서.


가을편에서 겐이치로는 누구보다도 정의로운 인물이다. 일본에서는 가난한 모녀의 투쟁기를 다큐멘터리로 담기도 하고 홍콩의 반 정부 시위대를 따라다니며 그들의 목소리를 지지하고 담아내기도 한다.


그런데 왜 그는 한 과학자의 야심만만한 그리고 매우 비윤리적인 실험에 반대하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하지 않았을까? 일반 서민과 달리 똑똑한 그가 그 과학자가 계획한 프로젝트가 미래에 어떤 결과를 불러일으킬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침묵을 택했다는 것은 그 프로젝트에 반대를 해봤자 미래가 어떤 식으로 흘러갈지에 대해서 체념을 했다는 뜻이고 그 말인 즉슨 지금 목소리를 높여봤자 바뀔 수 없다고 체념을 했다는 것이다. 왜? 잘못된 일은 언제든지 바꿀 수 있다고 생각을 해야지.


 

이 부분을 읽었을 때 아일랜드라는 영화가 문득 떠올랐다. 복제인간이 양산되고 그들은 자신이 복제되었다는 사실을 모른채 원래 자신의 희생양으로 쓰이게 된다. 인간이 가진 똑같은 정자와 난자의 수정을 통한 인간이 차별을 당해야 하고 이용을 당해야 하나..... 어떤 영화나 책을 읽어도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다.

 

작가가 제목에서 제시했듯이 우리는 이미 다리를 건너온 것이 아닐까? 건너지 말아야할 많은 다리들, 한번쯤 고려하고 진행했어야할 많은 옳지않은 일들의 다리들을.


한번 더 생각하고,,, 자신이 잘못을 했으면 즉각적으로 인정으로 하고... 어떤 사건을 그냥 단기적으로 바라볼 것이 아니라 이것이 앞으로 나의 자손들이나 미래의 후손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 지에 대해서도 고민해 보고 살아야 하지 않을까.


내가 원하지 않았던 삶을 살아가야 하는 사인 인간들. ( 겨울편에 나오는 복제인간들 ) 걱정이 많은 인간인 나는 또 복제인간들이 처해있는 상황과 그들이 누릴 수 없는 자유 때문에 밤잠을 제대로 못 이룰 것 같다.


재미있게 읽기도 했지만 여러 생각을 많이 하게끔 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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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열대
해원 지음 / CABINET(캐비넷)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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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실점을 읽었던 것 만큼 책을 빨리 읽었다. 그만큼 흡입력이 있어서 책 내용에 빨려 들어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책을 덮은 지금, 처음에 시작했던 마음과 달리 울적한 기분이 든다. 이 소설이 어느 정도 실화를 바탕으로 한 것이기 때문이리라. 아,,,, 제목을 이렇게 잘 지은 책도 참.. 오랜만에 만나보는 것 같다.

 

사실 처음에는 권순이라는 주인공을 보며 와 이거 소설이냐 영화냐 이러면서, 생생하고 박진감 넘치는 전투장면과 춤추듯 불 뿜는 총기와 한 몸이 된 그녀의 활약상에 감탄했으나 책을 끝내는 이 순간... 나는 울고 싶어졌다.

 

제목이 슬픈 열대 이듯, 이 책은 남아메리카에 있는 열대지방인 콜롬비아를 바탕으로 하여 콜롬비아 전역에 흩어져 있는 마약 카르텔을 위해서 일하는 전직 북한군 권순이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마약 카르텔간의 전쟁, 그리고 그 와중에 파리 목숨처럼 너무나 쉽게 죽어나가는 사람들,,, 하루 하루 일상을 살아가나가지만 현실이 현실인지라 미래를 그릴 수 없는 사람들의 불안함 등이 묘사가 된다.

이 와중에 북한군 권순이는 아주 냉철하고 잘 훈련된 군인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러다 그녀의 삶에 터닝 포인트가 된 사건이 발생을 하게 된다. 그녀가 몸 담고 있는 매데인 카르텔이라는 곳에서 운영하는 동물농장 ( 마약을 제조하는 곳 ) 이 다른 카르텔에 의해 습격을 당했다는 보고를 듣고 간 그 처참한 곳에서 그녀는 한 여자아이를 구하게 된다.

 

그녀의 부모는 이미 사망했으나 그 꼬마 여자아이는 살아남은 상태였고 모진 고문과 성적 괴롭힘등으로 인해 충격으로 인하여 말을 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권순이는 어쩔 수 없이 그녀를 떠맡게 되는데, 자신의 생각과는 달리 그 꼬마는 앞으로 그녀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얼마전 봤던 영화, 매드맥스가 떠올랐다. 다른 장면 보다는 남자 주인공이 자신이 구하지 못했던 사람들을 생각하며 괴로워했던 부분과 권순이가 화물선 안에 있던 다른 사람들을 구하지 못해서 하루 하루 악몽을 꾸며 괴로워하며 살아가는 것이 겹치는 것이 흥미로웠다.

권순이는 자신이 구하지 못했던 여자아이들에 대한 죄책감으로 인하여 얼마 전 구하게 된 여자아이인 리타에게 가족과도 같은 애착심을 가지게 되고 돈을 모으면 그녀와 함께 스위스로 가서 제 2의 삶을 살겠다는 야무진 희망을 품게 되는데..............

 

작가는 액션활극이라는 가면을 덮어쓴 책으로 나에게 질문을 하는 것 같다.  우리의 생명의 값어치는 도대체 얼마쯤 될까요?  우리가 현재 누리고 있는 이 안전함과 편안함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지구 반대편에 있다는 걸 알고나 있나요? ( 내가 소설을 읽었나 르포를 읽었나? )

 

너무나도 슬픈 인간의 군상? 자화상?을 그린 소설이자 너무나도 복잡 미묘한 정치 경제학적 역학 관계를 다룬 책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면서 그들이 펼쳐놓은 체스판에 쫄의 역할을 하다가 죽어나가는 시카리오 - 마약 사범들이 맞습니다, 범죄자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도 인간임 - 들이 너무나 많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다.

 

상황만 받쳐준다면 가족들과 함께, 농사를 지으며, 아기를 키우고, 자신들의 일터를 키워나가며 행복하게 살아갈 수도 있었을 사람들이, 누군가가 짜놓은 판 혹은 계략, 혹은 프로그램에 의해서 이용되고 버려지고 죽어나갔다는 ( 지금도 그럴 수도 있겠네요 ) 사실에 분노를 느끼면서 동시에 슬퍼졌다.


이 책이 드라마나 영화로 각색이 된다면 아주 큰 인기를 끌 수 있을 것 같다.  권순이의 활약은 정말 대단하고, 만약에 전쟁이 발생한다면 권순이를 피해서 아주 깊은 산골로 도망가야 할 것 같다. 그만큼 그녀는 막강한 전투력을 앞세워서 적들을 물리쳐 나간다.

 

더운 여름에 아주 재미있게 읽었지만... 슬펐다.... 매우 슬펐다... 그들도 같은 인간이라는 사실에.

그리고 과연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에서 태어났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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