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본 것 - 나는 유해 게시물 삭제자입니다
하나 베르부츠 지음, 유수아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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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저히 끝까지 볼 수가 없었어.

그 영상을 보면 자꾸 뭔가가 떠올랐으니까.”

소설 [우리가 본 것]은 인터뷰 형식의 다소 짧은 소설이다. 하지만 굉장히 밀도가 높고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다. 디지털 미디어 시대를 맞이하여 우리는 매일 홍수처럼 밀려드는 영상들을 보고 열광한다. 그러나 물건을 사용한 후 쓰레기가 어떻게 처리되는지 제대로 알지 못하듯, 인터넷에 실리지 못하는 유해 영상들이 어떻게 처리되는지 아는 사람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소설 [우리가 본 것]은 유해 영상 삭제 처리라는 매우 어둡고 고통스러운 여정을 경험하는 사람들을 날카로운 시선으로 묘사한 이야기이다.

주인공 케일리와 동료들은 한 미디어 기업을 위해서 온라인에 게시가 가능하지 않은 영상을 골라내는 작업을 한다. 헥사라는 하청 기업에 소속된 이들 노동자들은 기업에서 제시한 가이드라인에 맞게 영상들을 골라내어 삭제하지만, 가이드라인은 그때그때 바뀌기에 평가 기준이 다소 애매모호하다. 겉으로 보기엔 명백한 유해물 – 동물 학대, 성폭력, 자해 등등 – 일지라도 약간의 변수에 따라서 온라인 게시가 가능하기도 하고 불가능하기도 하다.

나는 이 소설이 실제 노동 현실을 조금이라도 반영하고 있다면, 정말 엄청난 문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우선 감수자들은 심각한 정신적 고통에 시달려야 한다. 그들은 엄청나게 폭력적이고 잔인하며 처참한 영상을 매일 봐야 한다. 보안을 위해서 서로 대화도 제대로 나누지 못하는 상태에서 매일 500개 이상의 게시물을 다뤄야 하고 하루에 딱 2번만 휴식 시간을 가질 수 있다. 그렇게 죽도록 일하고도 애매한 평가 기준 탓에 영상을 걸러내는 속도나 정확도가 떨어지면 해고를 당한다. 그야말로 직원의 인권이 전혀 보장되지 않는 상황이라 할 수 있다.

소설은 주인공 케일 리가 직장을 그만둔 후에 그녀에게 회사를 상대로 한 소송에 참여할 것을 권하는 변호사 스티틱과 나누는 대화 위주로 서술된다. 회사에서 있었던 일들을 마치 고해하듯 토해내는 케일리를 보면서 인간성이 보장되지 않는 열악한 작업 환경이 인간의 신체와 정신을 얼마나 좀먹는지를 알 수 있었다. 감정적으로나 이성적으로나 어딘지 모르게 불안해 보이는 케일리. 그녀가 회사에서 겪었던 일은 그녀의 정신을 파괴했고 결국엔 그녀가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관계까지 망가뜨리게 된다.

소설 [우리가 본 것]은 짧지만 강렬하다. 미디어 시대라는 화려함 이면에 숨어있는 어두운 현실을 고발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영화 모던 타임스에서 찰리 채플린이 쉴 새 없이 돌아가는 공장 안에서 혹사당하는 노동자 흉내를 내면서 사회 현실을 고발했듯이, 이 소설도 엄청난 양의 콘텐츠라는 제품을 생산하는 거대 공장들 – 즉 IT 기업들 -에 대한 비판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책의 끝부분에는 이런 말이 실려있다. “이 소설은 허구이며 등장인물과 그들의 경험은 창작의 산물이다. 하지만 소설의 내용이 현실과 유사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 물론 작가의 상상력에 기초한 픽션이겠지만 이 소설은 굉장히 사실적이다. 대중들의 눈에 쉽게 띄지 않는 정신적 노동자들의 비참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현실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불편한 사실, 그러나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우리 사회 현실을 알고 싶은 분들에게 강력 추천하는 소설 [우리가 본 것]

* 출판사에서 제공한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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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정원 - 자연이 그랬어, 마음을 보라고
한성주 지음 / 북코리아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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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이 그랬어, 마음을 보라고

예전에 TV에서 많이 봤었던 미스코리아 출신 방송인 한성주씨의 책 [마음정원]을 읽게 되었다. 한때는 꽤 인기를 끌었던 분으로 기억하는데, 한동안 보이지 않더니 이렇게 원예치료사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작가로 새로운 발걸음을 내딛게 되신 듯 하다. 스트레스를 받거나 힘든 일이 있을 때 사람들은 자연으로부터 위로를 받곤 한다. 나의 경우도 특히 나무가 울창한 숲으로 가면 이상하게 마음이 평온해진다는 걸 느꼈는데, 이렇게 원예 치료라는 분야가 있다는 걸 이번에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이 책은 총 3부로 이루어져 있다. 원예 치료사라는 타이틀이 있으셔서 식물에 관한 내용이 많이 나올 줄 알았는데 그보다는 심리 치료 쪽으로 더 초점이 맞추어진 책이다. 1부의 제목은 [나에게 말 걸기]이고 주로 상처입은 심리를 회복하는 내용이다. 도움이 되는 이론이 많이 소개되어 있지만, 나는 특히 59쪽에 나와 있는 "감정노트를 적어보자"라는 부분이 인상깊었다. 하루에도 여러 번 마음을 어지럽히는 여러 일 때문에 괴로울 때면 사건에 대한 간략한 정리, 사건에 대해 느끼는 감정, 등등을 적어봄으로써 내 감정에 대해 객관적으로 접근해보고 해결 방법을 찾아볼 수 있겠다 싶었다.

이외에 1부에서 마음을 울렸던 문장을 꼽아보자면,

"인간을 고통 속에 빠뜨리는 것은 그에게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그것을 대하는 태도이다. 일어난 사건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에 따라서 지옥같은 불행 속에 빠질 수도 있고, 평안한 일상을 누릴 수도 있다. 된서리를 맞고 시든 꽃같이 되었어도 얼마든지 우리의 마음가짐에 따라서 부활할 수 있는 것이다" -100쪽-

"우리는 자기 자신과 세상에 대해 긍정적인 태도를 견지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나의 행복을 남의 평가나 다른 이들과의 경쟁, 비교우위에 맡기지 말아야 한다. 스스로 자기 인생의 중심에 서야 한다." -101쪽-

2부의 제목은 [세상과 관계맺기]이고 회복한 자아를 가지고 세상으로 나아가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여기서는 나 자신과의 관계 맺기 보다는 타인과 어떻게 하면 건강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지에 대한 내용이 주로 나온다. 내가 주목한 부분은 다른 무엇보다도 "타인과 건강한 거리 유지"와 관련된 내용이다. 135쪽에 "독립적인 개체끼리 만나야 한다"라는 제목의 글에는 사회에서의 지위와 상관없이 서로의 거리를 지키고 독립성을 유지하는게 굉장히 중요하다는 내용이 나온다. 그리고 148쪽에서 가족처럼 친밀한 관계에서도 적절하고 명료한 경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내용이 나오는데, 정말 백번 공감하는 부분이었다.

"우리가 건강한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자기 과잉도, 자기 비하도 곤란하다. 상대방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지금 상황에서 맡은 역할이 각기 다를 뿐, 각자를 인격적으로 존중하며, 독립적인 개체로 만날 때 우리는 건강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 -137쪽-

"경계가 모호할 때 뭉개진 가족의 형태가 되어 가족들 간에 불필요한 개입이 일어나고, 또한 경계가 지나치게 경직되어 있을 때는 커뮤니케이션에 어려움이 따라 분리된 가족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 우리는 일반적인 인간관계에서도 적절하고 명료한 거리, 뭉개진 관계와 분리된 관계의 중도를 찾아야한다." -148쪽-

책 [마음 정원]을 읽는 동안 실제로 나무가 울창한 숲 속을 걷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모든 것을 받아주고 수용하는 자연처럼 우리들도 서로에게 그런 존재가 되어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마저 들게 하는 책이었다. 고통을 통해서 성숙한다는 말도 있듯이, 어쩌면 힘든 시간을 견디며 더 단단해지고 더 넓어진 작가 한성주씨의 마음을 들여다본 계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원예 치료라는 분야가 아직은 그다지 널리 알려지지 않은 것 같은데, 앞으로 더 많은 영역에 진출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특히 심리적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는 것 같은데, 그런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인 [마음 정원]

* 출판사에서 받은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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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이 죽은 밤에
아마네 료 지음, 고은하 옮김 / 모로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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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들어왔는데

목을 매고 있길래 도와주려다 그만...

자수하면 사형은 아닌 거죠?

아마네 료 작가의 사회파 미스터리 소설 "희망이 죽은 밤에"를 읽었다. 나도 그다지 넉넉하지 못한 가정에서 유년기를 보낸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이 책은 나에게 미스터리 그 이상의 먹먹함을 가져다 주었다. 사실 '가난'은 다소 불편할 수는 있지만 바로 '절망'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가난'으로 인해 아무것도 꿈꿀 수 없는 현실은 바로 절망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주인공 도노 네가는 한부모 가정 출신의 중학생이다. 아버지 없이 어머니하고만 살고 있는데, 부유한 가정에서 자랐으나 부모의 방임과 학대로 인해 제대로 된 양육된 경험이 없는 엄마 도노 에이코는 몸만 어른이지 정신 연령은 아직 어린이 수준이다. 직업 활동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엄마 때문에 경제적으로 매우 궁핍한 생활을 하고 있는 도노 네가. 부유한 외가가 있는 까닭에 그들은 생활 보호 대상자도 되지 못한다.

그러던 어느날, 도노 네가는 동급생 가스가이 노조미를 살해한 혐의로 체포된다. 주로 빈집이 모여 있는 동네를 순찰하던 한 경찰은 한 빈집에서 큰소리를 듣게 되고 거기서 목을 맨 채 숨져 있는 한 여학생과 마침 현장에서 도망을 가려던 다른 여학생을 발견한다. 겡찰에게 붙잡힌 여학생이 바로 도노 네가. 그녀는 자신이 노조미를 살해했다는 것을 순순히 인정하지만 살인 동기에 대해서는 침묵을 하게 되는데....

미스터리 소설 답게 '희망이 죽은 밤'이라는 소설은 '와이던잇', 즉 도노가 왜 동급생을 살해하게 되었는지, 그 동기를 집요하게 파고든다. 그 미스터리를 추적하는 가운데, 나는 사회적으로 복지와 같은 안전장치가 부족하게 되는 경우, 경제적 빈곤이 어떻게 아동학대와 같은 다른 범죄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그 뿐만 아니라 빈곤은 그냥 경제적 문제라기 보다는 개인의 영혼을 잠식시키는 문제, 즉 수치심과 무력감을 일으키면서 삶을 무너지게 만드는 요소가 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것도 느꼈다.

주로 중범죄를 다루는 베테랑 형사 마카베와 아동 청소년 범죄를 담당하는 나카타가 한 팀을 이루어 이 사건을 조사하게 되는데, 처음에는 가난을 단지 개인의 노력 부족으로 돌리는 다수의 일본인과 생각이 같았던 형사 마카베는 이 사건을 추적하는 동안 점점 자신의 생각이 틀렸을 수도 있다는 걸 인정하게 된다. 물론 개인의 노력 탓도 있겠으나 갑작스러운 질병이나 사고같은 외부적인 문제도 무시하지 못한다는 점을 인정하는 마카베.

가난은 어른을 힘들게 하는 것이지만 아이들을 비참하게 만들 수도 있다는 사실도 또한 그는 깨닫게 된다.

과연 도노 네가가 노조미를 죽인 게 맞을까?

도노 네가가 노조미를 죽인 것이라면 그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이런 소설이 좋은 게, 개인의 불행을 다루는 것 같지만 결국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 안에서 우리가 추구해야 할 올바른 삶의 방향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미스터리 소설이라 추리와 추적이라는 재미 요소도 있으나 공동체 속에서 그림자와 어둠에 가려진 채 고통받는 아이들이 있을 수 있다는 걸 깨닫게 해주는 캠페인 같은 소설 [희망이 죽은 밤에]


* 출판사에서 제공한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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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주 미친 반전
유키 하루오 지음, 김은모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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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홍수를 일으켜

무릇 생명의 기운이 있는 모든 육체를 천하에서 멸절하리니

땅에 있는 것들이 다 죽으리라.

그러나 너와는 내가 내 언약을 세우리니

너는 네 아들들과 네 아내와 네 며느리와 함께 그 방주로 들어가고.

소설 [방주]를 읽는 동안 나를 장르소설로 이끈 한 소설이 떠올랐다.

그것은 바로 애거사 크리스티의 소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이다.

완벽한 밀실 속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연쇄 살인과 탈출구 없는 공간에서

시시각각 다가오는 죽음에 대한 불안감으로 피 마르는 사람들...

그처럼 극한의 공포와 짜릿한 추리의 재미를 동시에 제공하는 소설 [방주] 속으로 들어가 보자.

주인공 슈이치는 오랜만에 만난 대학 친구들과 함께 친구 유야가 발견했다는

깊은 산속에 있는 특이한 지하 건축물로 탐험을 떠난다. 그들이 발견한 곳은

마치 세상의 종말을 기다리는 신흥 종교인들이 만든 것처럼 매우 폐쇄적이고 비밀스럽다.

소설의 제목인 [방주]처럼 땅속에 묻힌 거대한 배 같은 구조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나마 지하 1층과 2층은 무사하지만 지하 3층은 이미 물에 잠겨 버린 상태이다.

고문 기구로 보이는 것들이 있기에 다소 으스스하고 소름 끼치는 분위기의 지하 건축물.

그러나 깊은 산속인데다 날이 이미 저물어버린 상태라 슈이치와 친구들은 거기서 하루를 묵기로 결정한다. 그런데 전파를 잡기 위해서 잠시 밖에 나갔다 온 친구들이 산에서 길을 잃은 것으로 보이는 한 가족들을 데리고 들어오게 되고 그렇게 그들은 낯선 장소에서 낯선 사람들과 하룻밤을 보내게 되는데.... 과연 그들은 무사히 하루를 보낼 수 있을 것인가?

극한의 공포에 처하게 되면 사람들은 과연 어떤 행동을 할까?

소설 [방주]를 읽으면서 나는 스스로에게 계속 이런 질문을 던졌던 것 같다.

내일이면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하면서 룰루랄라 느긋한 기분이었다가

하루아침에 시시각각으로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를 느끼게 되는 대학생들.

거기에 반드시 누군가를 희생시켜야만 다른 모두가 무사할 수 있다는 도덕적 딜레마에도

봉착하게 된다.

소설 [방주]는 등장인물과 독자들을 아주 극한으로 몰아붙인다.

지진으로 인해 막힌 출입구에 아래에서부터 조금씩 차오르는 물

그리고 동기도, 범인도 전혀 알 수 없는 오리무중의 연쇄 살인 사건들.

빠져나갈 방법을 모색하면서 동시에 날카로운 추리를 통해서

연쇄 살인범까지 잡아야 한다. 그런데 이게 정말 스릴 만점 그 자체다!

갇힌 공간에서 벌어지는 살인과 그 살인범을 잡아내는 현란한 누군가의 추리!

독자들은 심장이 쫄깃해지는 서스펜스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에 펼쳐지는 엄청난 반전.... 소름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독자들의 심장을 얼어붙게 만들지만 동시에 모든 것에 대한 해답을 제공해 준다.

살인범의 정체부터 도덕적 딜레마에 대한 해답까지....

띠지에 나와 있듯 " 한마디로 뇌 정지를 부르는 미친 반전 "이라고 볼 수 있다!

최근 읽은 소설 중에서 가장 긴장감 넘치고 완벽한 밀실 미스터리가 뭔지를 보여주는 소설 [방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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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소년 로컬은 재미있다
홍정기 지음 / 빚은책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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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 탐정물로 시작해 그야말로 세상에 질문을 던지는 문제작

어린 시절에 셜록 홈스나 아르센 뤼팽의 활약이 담긴 소설을 읽고 그들처럼 미스터리한 사건을 속 시원하게 해결하고 세상에 이름을 떨치는 것을 꿈꿔본 사람이 있을 것이다. 이 단편소설집 [초소년]은 현재는 어른이 된 주인공 정충호가 뛰어난 추리 실력을 가졌던 친구 은기와의 초등학교 시절을 그리워하며 추억하는 설정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언뜻 보면 어린 시절에 품을 만한 꿈과 희망을 이야기하며 아주 말랑한 사건을 다루지 않을까? 생각하겠지만 이 책은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어른도 마주하기 힘든 온갖 잔인하고 비정한 사건들이 우리를 기다린다. 뭐랄까? 어른보다 더 어른 같은 꼬마들이 냉정한 현실을 다 파악하고 있다는 걸 알려주는 이야기랄까?

[초소년]은 각기 다른 주제로 쓰인 6편의 단편들이 이어지는 단편소설집이다. 뛰어난 추리력을 가진 은기와 뛰어난 행동력을 가진 충호가 만나서 마치 셜록 홈스와 왓슨처럼 여러 다양한 사건들을 만나고 해결해 내는 이야기들인데, 그들의 이야기가 내내 이어지다 보니 일종의 연작 소설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데 생각보다 다소 심각한 수준의 사건들이 이어진다. 동물 학대, 가정폭력과 살인, 아동학대 그리고 학교 폭력 등등등. 마치 이 세상의 어두운 면 정도는 다 간파하고 있다고 하듯, 어른보다 더 어른스러운 초등학교 탐정단이 사건 해결에 나선다.

첫 번째 이야기 "추적"에서 은기와 충호가 처음으로 탐정단을 꾸리게 된다. 그 이유는 충호의 고양이인 "코난"이 가출을 해버린 것. 이게 큰 문제인 게, 당시에 그들이 살고 있던 낡은 아파트에서 자꾸만 고양이가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각자의 추리에 따라 아파트 주민들 중 고양이를 살해할 만한 품성 나쁜 어른들을 3명 골라내게 되고, 그중 한 명인 한 고등학교 남학생이 뒷산으로 올라가는 것을 보고는 그를 따라서 올라가게 되는데... 이야기 중간중간에 누군가의 독백이 있는데, 주인공을 알게 되면 진짜 " 깜짝 " 놀라게 된다. 엄청난 반전이 있어서 재미있었던 작품.

두 번째 이야기 "소음"에서 충호의 가족들은 위층에 사는 우식이 부모님이 내는 층간 소음 때문에 너무 괴롭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보다 더 심한 층간 소음에다가 여자의 찢어지는 비명을 듣고 충호네 가족은 경찰을 부르게 된다. 마침 그때 우식이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칼을 휘두른 것으로 보이는 사건이 발생했고 때마침 출동한 경찰 덕에 어느 정도 사건은 마무리된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우식이 어머니가 심각한 분노조절장애에 의부증까지 있었고 칼부림은 다름 아닌 어머니가 일으킨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또다시 벌어진 엄청난 부부 싸움 탓에 우식이 부모님 중 누군가가 크게 다치게 되는데... 이 작품은 마치 일본의 정통 추리소설을 읽는 기분이었다. 마치 우연처럼 보이는 필연적인 사고.... 누군가의 치밀하고 교묘한 계산이 숨어 있다. 사람들아, 사고로 보이는 죽음을 그냥 지나치지 말지어다.

한때 뛰어난 장르소설 리뷰어로 이름을 날렸던 블로거 "엽기 부족"님이 작가로 데뷔하신지 벌써 몇 년이 흘렀다. 예전에 우리나라 전래 동화를 장르소설로 각색한 작가님의 작품을 읽은 적이 있는데, 그때도 소재나 이야기 설정이 굉장히 참신하다고 생각했었다. 단편 소설집 "초소년"도 그에 못지않게 독자들을 깜짝 놀라게 만드는 트릭과 반전이 이야기 속에 들어있어서 참 재미있었고, 필력도 되게 좋으셔서 각 단편들이 막힘없이 술술 읽힌다. "초소년"이란 제목이 낯설게 다가와서 찾아왔는데, 초등학교 소년 탐정단을 줄여서 초소년이라고 하기도 하고, 세상을 초월하여 소년 이상의 것을 생각하고 해낸다는 의미로 초소년이라고도 한단다. 소설의 내용으로 미루어보다 후자의 뜻이 더 어울리는 것 같다. 생각보다 훨씬 참신하고 재미있었던 추리 단편 소설집 [초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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