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병동 병동 시리즈
치넨 미키토 지음, 김은모 옮김 / arte(아르테)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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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가 무엇이건 간에 상관없이, 작가는 책을 통하여 자신이 속한 사회의 여러 다양한 모습과 인간 군상 등을 드러내고자 한다. 단지 형식이 다를 뿐. 미스터리나 스릴러물도 그런 면에서 별로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오히려 이런 장르들이 살인이나 자살 등과 같은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을 통하여, 개인의 추악한 욕망이나 사회의 어둠 ( 자본주의의 탐욕 ) 등등을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미스터리를 좋아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 미스터리 혹은 추리소설이란 복잡한 미로를 빠져나갈 수 있게 해주는 문의 열쇠를 찾는 것과 같은 일이다. 나는 사건 해결의 스릴감에 도취되기를 원하고 작가와의 머리 싸움을 시작한다. 작가가 뿌리는 사건 해결을 향한 빵가루를 따라가면서, 그래 한판 씨름을 해보자. 던질 때로 던져봐라. 복선과 힌트,,, 과연 누가 범인이고 범인이 아닌지,,, 뭣 때문에 이런 사고가 발생했는지, 난 해결할 수 있어. 왜냐하면 난 한국의 셜록 홈즈, 한국의 아가사 크리스티이니까 ( 라는 헛소리를 해가며 ㅋㅋ )

 

이 가면 병동이라는 책의 겉장에 나와 있는 가면이 심상치 않다. 모든 사건이 이 가면을 중심으로 해서 벌어진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현대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가면을 쓰고 살게 된다. 그것이 고객을 향한 점원의 웃음이든 상사에게 잘 보이기 위한 부하직원의 표정관리이든 아니면, 세금탈루와 같은 부도덕한 짓을 저지르는 회사와 같은 곳이든 간에, 현대의 인간과 사회는 많은 가면을 덮어쓰고 산다고 볼 수 있다.

 

위선과 가식 그리고 더 나아가면 뇌물 수수와 같은 부도덕.

 

병원이라는 공적인 장소도 인간이 운영하는 곳이니 만큼.... 어떤 가면을 쓰고 있지 않을까? 그 가면을 끝까지 따라갔을 때.... 과연 그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독자의 상상에 맡겨야 할 부분이다.

 

주인공 쇼고는 외과의사인데 원래 자신의 선배가 근무해야할 한 요양병원 당직 근무를 대신 맡게 된다. 그 병원은 늘 누워만 있거나 아예 정신이 없는 요양환자들이 있는 곳이라 따로 할 일이 없고 그냥 대기만 하면 되는 일이라 꿀알바라 생각하며 병원에 가는데, 하필이면 그날 재수도 없게 생각지도 못한 사건이 터지게 된다.

 

갑자기 뉴스에서 편의점 강도 사건이 터졌다는 이야기가 들려오고 멍하니 그 이야기를 듣고 있던 쇼고는 병원에서 권총을 들고 삐에로의 가면을 뒤집어쓴 복면 강도를 만나게 된다. 그때 그는 그의 손에 붙들려온 한 여인을 보게 되고 그 여인은 바로 편의점에서 강도의 총에 맞아 배에 피를 흘린 채 삐에로 가면에 의해 끌려온 인질인 것이었다.

 

병원에는 쇼고와 두 명의 간호사 사사키, 히가시노 밖에 없고 그 외에는 3층과 4층에 머물러 있는 환자들 뿐이다. 그 강도는 연신 자신은 경찰을 피하러 왔을 뿐이고 새벽이 되면 나갈 것이니 그 동안 조용히 있어라 라고 말하여 쇼고와 그 외의 인질들을 안심시키지만 그래도 역시나 불안감을 감출 수는 없다.

 

그런데 병원에 없는 줄 알았던 원장이 갑자기 나타나서 삐에로 가면을 골프채로 때려눕히려 하였으나 도리어 자신이 공격을 받고 다리에 총을 맞는다. 마나미라는 이름의 인질도 부상, 원장도 그 지경에 이른 상태. 그들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쇼고는 요양 병원에 있을 가능성이 낮은 완벽한 시설을 갖춘 수술대가 놓여 있는 광경을 발견하게 된다. 그는 이 부분에 대해 강한 의심을 품고 병원 이리저리를 쑤시고 다니며 조사를 한다.

 

수술실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삐에로 가면이 당연히 돈을 훔치기 위해서 편의점을 습격하고 병원에 몸을 숨기기 위해서 인질을 데리고 온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쇼고, 그러나 완벽한 시설을 갖춘 수술실을 발견하고, 연이어, 밖으로 드러나 있지 않던 비밀 엘리베이터와 뭔가 숨기는 듯한 원장의 태도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하면서 수상한 점을 조사해야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품게 되는 쇼고.

 

그러다가 쇼고과 마나미 사이에는 이상야릇한 감정이 폴폴 솟아나게 되고 쇼고는 그녀를 지켜줘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자 마나미를 빨리 탈출시키던지 아니면 경찰을 빨리 불러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애를 써보지만 어찌하리... 이미 밀실 미스터리인 걸. 마음대로 되는게 하나도 없다.

 

그런데 간호사 중 한 명인 사사키가 가슴에 칼을 맞은 채로 발견이 되고 이제 이 밀실 미스터리는 다른 국면에 들어가게 되고 다른 성격을 띄게 된다. 누가 왜 사사키를 죽였는가? 아무도 들어갈 수 없고 나갈 수 없는 이 상황에서 과연 누가??

 

자 이제 생각해 볼 거리들이 있다.

 

첫 번째, 삐에로는 왜, 하필이면 이 요양병원을 선택했을까? 우리는 여러 가지 추측을 해볼 수 있다.

두 번째, 사사키는 왜 살해를 당했을까? 다른 사람들은 멀쩡한 상태인데. 왜 사사키만?

세 번째, 과연 요양병원에 완벽한 수술대가 있을 필요가 있는가?

 

이제 새벽이 밝아오고 있고 조금만 더 있으면 삐에로는 약속대로 경찰을 피해서 병원을 나갈 것이고 쇼고와 함께 다른 인질들도 안전하게 밖으로 빠져나갈 수 있다. 그러나 과연 삐에로가 약속을 지킬까? 삐에로는 과연 무엇 때문에 병원에 들어온 것일까? 자신의 말대로 단지 경찰을 피해서 온 것일까?

 

책 전체에 걸쳐서 허둥지둥 대는 원장 다도코로, 다도코로와 함께 뭔가 감추는 듯한 간호사 히가시노, 그리고 무슨 이유에서인지 칼에 찔려 사망한 간호사 사사키, 연약하지만 웬일인지 쇼고에게 지나치게 추파를 던지는 듯한 마나미 그리고 이 혼란의 와중에도 뭔가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쇼고.

 

이 책은 밀실 미스터리가 그러하듯이 나중에 거대한 반전이 빵 하고 터진다. 그러나 읽어나가다보면 추리 소설을 어느 정도 읽어본 사람이라면 이 모든 인질극의 시작이 무엇에서 비롯되었고 어떻게 끝날지 대충 짐작을 하게되어서 씁쓸함을 감출 수 없을 것 이다.

 

자본주의의 사회에서 우리는 정녕 물질의 노예로써 밖에 살아갈 수 없는 것일까?  소유나 존재나 그것이 문제로다.

 

인간으로써의 최소한의 존엄성도 지킬 수 없다면,,,,,,,, 과연 법의 테두리 밖에서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 과연 정당화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도 생각해 보는 좋은 시간이었던 것 같다.

 

완벽하게 쇼고의 입장에서 ( 과연 그런 지는 사실 모르겠지만 ㅎㅎㅎ) 삐에로의 가면을 쓴 무시무시한 인질범과 함께 하루를 보낸 느낌이다. 지친다. 머리도 어지럽고. 아마 쇼고도 그랬을 것 같다. 쇼고 다음에도 또 만나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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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유하는 혼
황희 지음 / 해냄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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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유하는 혼이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작가는 차마 이승을 떠나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영혼들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그는 글 전체에 걸쳐서 우리의 영혼은 마치 순환하는 공기처럼, 이쪽 세상에서 저쪽 세상으로 아니면 저쪽에서 이쪽으로 오고가며,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것을 주장한다.

 

그는 죽음으로 인해 육체를 떠난 영혼이 만약 세상에 미련이 너무 많이 남으면, 빙의, , 산 사람의 몸을 빌어서 마치 그 사람인양 살아간다는 무시무시한 내용을, 추리소설의 형식을 빌어서 다소 빠른 호흡으로 풀어내고 있다.

글의 중요한 주인공인 전직 추리소설가 미야베 라이카 ( 한국이름 : 신재경 ) 는 경증 치매를 앓고 있어서 하루에도 정신이 수십 번 왔다 갔다 하는 상태. 그녀에게 하나뿐인 딸 양희주 ( 사실 딸이 하나 더 있다는깜짝 반전이 있긴 합니다만 ) 는 책에 삽화를 그리는 , 즉, 일러스트레이터라는 직업의 소유자이고,  그녀의 삽화의 주 소재는 카나리아이며 이상의 시집에 나오는 아해에 끌린다.

이 글의 저자가 자주 언급하는 무서운 아해와 무서워하는 아해

이 글은 과거와 현재를 오고가며 과거에 벌어진 끔찍한 자살과 살인 사건에 대한 의문을 책에 등장하는 웬 정의로운 인물이 형사나 탐정, 여기서는 한 여인을 사랑하는 남자 - 해결해 나가는 방식, 즉 추리소설이나 스릴러 소설의 그것을 띄고 있다

 

이것은 과연 무슨 이야기를 뜻하는 것일까? 정답은 책 속에.


 작가는 그러한 추리소설의 빠른 전개를 이용하여 영혼이 남의 몸에 깃드는 현상을 설명하고 있다. 이렇게 말하면서, “ 산 사람은 죽고 싶어하고 죽은 영혼은 다시 부활하길 원한다

과거 불행한 삶을 살다가 자살한 수인 그러한 그녀에게 심하게 집착하며 폭행을 가했던 남편 곽새기. 그리고 정신병원에서 수인과 친했다는 이유만으로 곽새기에게 살해를 당했던 조이라는 이름의 남자. 수인은 그렇다 치더라도, 곽새기는 왜 조이를 살해했던 것일까? 이것의 정답은 책의 말미에. ㅎ

 

그리고 이야기는 수인이 죽던 날 번지 점프를 했던 강주미라는 대학생에 관한 이야기로 넘어간다. 그녀는 번지 점프를 한 이후 전혀 다른 사람처럼 행동을 하기 시작 하는데, 그러다 갑자기 어느 순간부터 부모님이 행방불명되고 자신에게 이상한 소리를 해대는 괴한으로부터 쫓기기 시작한다. 강주미는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동생 나영과 함께 주거지를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최대한 괴한의 눈에 띄지 않도록 도망다니지만 집요한 추적자는 계속 그들을 쫓아다닌다.

 

그러던 와중, 미야베 라이카의 딸 양희주가 자신의 남자친구에게 살해를 당하는 끔찍한 일이 발생하고 치매에 걸린 미야베 라이카가 그런 딸을 찾아헤매는 와중에 강주미 강나영 자매를 만나게 되고, 미야베를 도와주기 위해서 그녀의 집에 들어간 강주미는 양희주가 바로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일러스트레이터 " 아해 " 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고, 양희주의 작업실에서 자신이 가장 좋아하던 그림 카나리아 를 발견하게 된다.

 

과거 자살한 수인이 기르던 새들은 카나리아였다.

강주미는 손등에 카나리아를 문신하였고 아해라는 작가명으로 활동한 일러스트레이터, , 양희주를 가장 좋아했다.

남자친구에게 살해를 당한 양희주는 작가명 아해로 활동하였고 카나리아를 즐겨 그렸다

 

이들 사이에는 무슨 상관관계가 있는 것일까

 

물론 추측은 해볼 수 있지만 작가는 일단 여러 단서와 힌트 등만을 제시한다. 독자들이 스스로 그녀들 간의 관계를 파악해 낼 수 있도록

 

 

흡입력 있는 문장과 다양한 인물 구성, 그리고 그 인물들 사이의 거미줄처럼 그러나 유기적으로 얽힌 관계, 생생한 캐릭터 묘사,, 마지막으로 탄탄한 플롯을 통해서, 작가는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소재 빙의, 영능력자,등등 을 판타지 추리 소설이라는 장르 (?)를 이용하여 독자가 쉽고 재미있게 다가갈 수 있도록 잘 풀어낸 듯 하다.

사실 소름끼치는 장면이 몇 군데 있어서 읽어보다가 갑자기 뒤를 돌아본다거나 오금이 저려온 적도 몇 번 있긴 하나 더운 여름날 뭔가 시원한 느낌을 느끼고 싶거나 머리끝이 서는 느낌을 느끼고 싶다면 적극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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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스프라우
질 알렉산더 에스바움 지음, 박현주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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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서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는지.... 처음 이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 느꼈던 불길한 예감은 글을 읽어갈수록 퍼즐이 맞춰지듯이 하나하나 맞춰지기 시작했다.

 

이 글의 주인공은 안나. 그녀는 미국에서 만난 스위스인 남편을 따라 먼 이국땅을 날아왔다. 사랑하니까 결혼했다는 합리적 판단 아래. 그 당시에는 서로 사랑했다고 믿었을지 모르겠지만, 그러나 마치 새장에 갇힌 새처럼, 안나는 합리성과 절제를 요구하는 스위스라는 공동체와 가족이지만 끈끈한 정이라고는 찾기 힘든 무뚝뚝한 시어머니 그리고 남편 사이에서 고독과 외로움이라는 고통을 느끼게 된다.

 

어떻게 보면 철저하게 자신을 배척하는 타자들과 맞서 싸워야 하는 시점과 공간 속에 놓였다고 할 수 있다. 그 와중에 그녀의 자아 정체성은 어느새 사라져가고 그녀가 서 있는 자리는 조금씩 균열이 이루어지기 시작한다. 그녀의 영혼은 액체처럼 흔들리기 시작하고 그녀의 무의식은 묻기 시작한다. 나는 도대체 왜 여기 있는가?

Do I belong here ? 라는 질문을 하기 시작하며 그녀는 밤마다 집 뒤 언덕을 산책하며 고독을 달랜다.

 

그러던 와중에 그녀는 생존의 몸부림으로 인한 자신의 선택으로, 혹은 운명의 장난으로 인한 사랑에 빠지게 되는데 그로 인해서 간신히 버티고 있던 그녀의 신경은 와르르 무너져 내린다. 자신은 진실하다고 믿었던 사랑.

불과 같은 사랑이라고 믿었는데........

 

이제 안나는 메설리 박사라는 정신 분석가와 만나서 면담 치료에 들어가게 된다. 메설리 박사는 보통 스위스인과 마찬가지로 냉정함과 합리성을 갖춘 인간인 만큼, 감정의 영역을 철저히 차단하고, 안나가 꾸는 꿈들을 분석해 가며 그녀의 정신적 성장을 도운다. 이 대목에서 의문이 들었던 것은,, 과연 안나에게 필요했던 것이 정신적 정상이었을까? 아니면 그녀에게서 진심을 끌어낼 수 있는 공감이었을까? 나는 후자라고 생각하는데.... 어쨌든 그들은 형식적이나마 치료를 계속해나간다.

 

정신과 의사에게서 독일어 수업을 추천받은 안나는, 거기서 만난 아치와 불륜에 들어가기 시작한다. 자신을 밀어내기만 하는 사람들 - 아이들을 봐주긴 하지만 무뚝뚝한 시어머니 우르줄라, 결혼 이후로 애정 표현이 급격하게 줄어든 남편 브루노 - 에 대한 항의의 몸짓이었을까? 그녀는 아치와의 불륜에 이어서 겁도 없이, 파티에서 남편이 얼마 떨어져 있지 않는 거리에서 남편의 지인인 카를과 또 불륜관계에 들어가게 된다.

 

어쩌자고 저러는 것일까...... 마치 프랑스 여류작가 프랑스와즈 사강의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라는 문장이 떠오르는 장면들이었다. 낮에는 외간 남자들과 불륜을 저지르고 밤에는 집 뒤 언덕에 올라가서 하염없이 걷고 기차 소리도 듣고 새 소리도 들으면서 괴로움을 달래는 안나. 안나는 마치 100킬로 속도로 달리는 자동차에서 졸아버린 운전자 같다. 안나는 빠져나갈 수 없는 운명이라는 네모 상자에 갇혀서 이리저리 흔들리는 삐에로 인형 같다.

 

작가는 다른 누구의 관점으로도 이 글을 쓰지 않는다. 오직 안나의 관점에서, 안나가 바라보는 세상에 대한 그녀의 느낌을 적기 때문에 안나의 섬세한 심리변화와 심적 고통을 생생하게 그려낼 수 있었다. 오직 여성적 관점에서만 안나의 이상하리만치 자기 파괴적인 행동이 이해가 될 수가 있었다. ( 설명은 못 하겠다 ^^;;;;)

 

만약 다른 사람의 눈으로 안나의 행적을 따라가게 되었더라면 소설의 느낌이 또 달랐을 수도 있겠지. 남편의 눈으로 봤다면 아마 수상쩍은 행동을 하는 안나를 추적하는 추리소설의 형태를 띄었을 수도 있었겠다.

 

그러던 중..... !!!! !!! 책이나 영화를 보면 제일 예쁘고 제일 사랑스럽고 제일 아끼는 사람이나 동물에게 안 좋은 일이 생기는 것처럼, 마치 내가 저지른 죄에 대한 희생양이 그들이 되는 것처럼.... 안나에게 절망 그 이상의 사건이 또 터진다

 

마치 그녀에게 속죄를 요구하듯 그녀의 삶은 그녀에게서 가장 중요한 것을 앗아가버린다. 그리고 슬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눈물조차 말라버린 안나에게 브루노는 자신이 그동안 절제해야만 했던 분노를 주먹에 모두 담아서 그녀에게 날리고는 짐을 싸서 안나에게 집을 나갈 것을 요구한다.

 

이제 안나는 어딜 가야 할까? 절망적인 안나가 연락한 메리는 바쁘고 찾아간 메설리 박사는 시간을 지키지 않았다고 그녀에게 거절의 표시를 한다. 마지막으로 찾아간 아치는 스코틀랜드로 돌아가있다. 그리고 정말 정말 한가닥 희망을 담아서 들른 성당의 신부는 그녀의 얼굴 자국에 난 멍을 보고는 메설리 박사의 이름이 담긴 정신과 의사들의 목록을 내밀면서 도움을 요청해보기를 충고한다.

 

책의 끝자락에 와서 나는 내 자신에게 물어보았다. 과연 신이 있을까? 우리에게 정해진 운명이라는 게 있을까? 안나는 자신이 선택한 불행한 삶을 충실히 산 것 뿐이었을까? 아니면 신이 정해준 운명이라는 계단을 차근차근 올라간 것 뿐이었을까?

 

지금 안나를 만난다면 아무말 없이 그냥 안아주고 함께 울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서 책장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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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보다도 더 사랑한다는 말이 있다면 - 이 문장이 당신에게 닿기를
최갑수 지음 / 예담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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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삶을 정의 내리려 한 적이 있었다.  바보처럼.

사는 게 도대체 뭘까? 나름 이성적 판단 아래 의미를 찾으려 한 것 같은데

갑자기,,,,, 삶이란 건,,,, 순간 순간이 모여서 이루어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예쁜 틀에 담긴 아이들의 웃고 있는 사진들과 창틀에 놓인 아름다운 꽃병들 그리고 방 안으로 스며드는 햇살처럼, 아니면 퍼즐이 모여서 하나의 직소퍼즐이 완성되는 것처럼.... 의미 없는 보이는, 그냥 스쳐지나가는 모든 순간 순간들이 바로 삶인 것.


이 책을 쓰신 최갑수님도 삶을 나름대로 정의내리시는 것 같다.

여행을 하시면서 깨달은 것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그리움 등을 표현하시면서.

영화나 책에 나온 아름다운 글귀로

( 이터널 선샤인 - 네가 없는 곳은 기억할 수 없어  )

때로는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사진들로 우리가 직접 느낄 수 있도록 해준다.

그리고 머리로 이해하기 보다는 가슴으로 느낄 수 있는 글귀들로 ( 대단히 풍부한 감수성 )

 

그는 여행을 다니고 사랑을 찬미하는데 사랑을 정의하는 그의 개념이 매우 폭 넓다.

아내에 대한 사랑, 사람들에 대한 사랑, 여행에 대한 사랑,,,, 자신이 하는 모든 행위에 대한 사랑사랑 그 자체에 대한 사랑


그리고 제일 중요한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을 언급하신다.


65- 우리는 서로를 사랑하지만 자기 자신을 좀 더 사랑한다

[ 레이먼드 카버 - 내가 필요하면 전화해 ]


갑수님은 우리 자신을 사랑하라고 하신다.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원하는 곳으로 여행을 떠나고 스스로의 삶을 온전히 살아라. 우리의 눈이 빛날 거라고. 우리가 우리를 사랑하는 만큼 서로를 사랑할 수 있다고.


- , 알겠어요. 명심할게요.

   <![endif]-->   

그리고 갑수님은 한 인간을 사랑하기 위해 기울여야 하는 사랑도 얘기하시죠.


98- 내가 당신을 얼마나 오랫동안 사랑했는지 누가 알겠어요. 내가 아직도 당신을 사랑한다는 걸 아나요. 당신이 원한다면 외롭게 기다리겠어요. 그러겠어요.


- 여기서 당신과 내가 외롭게 누군가를 사랑할 것을 생각하니 울컥 치밀어 오르는 불공평함에 대한 약간의 분노 비슷한 것이 갑자기 생기네요. 기울어질 저울을 생각해서 일까? 그러나.... 사랑이란 원래 상처를 허락하는 것이니까.

 

갑수님은 또한  채우기 보다는 비워야 하는 삶에 대한 성찰도 하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잠시 빌려쓰고 있는 생명에 대해서도 이야기 하시구요.

 

133- 여행을 하며 삶에는 그다지 많은 것들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다. ..... 중간 생략..... 이만큼 살다보니 내 것은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전부 다른 이의 것이엇다. 나는 잠시 빌려쓰고 있을 뿐이었다. .... 중간 생략 ....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언제나 오늘 하루가 전부라는 것. 우리에게 하루가 더 주어질 지는 다음 날 아침이 되어야 비로소 알 수 있다는 것,

 

슬프지만 이미 지나가버리고 기억 속에서 조차 소멸해버린 사랑에 대해서도 이야기 하십니다.

 

162- 우리가 지나온 대부분의 일들은 이미 소멸되었다

[ 처음부터 나는 그렇게 깊은 바닷속에 혼자 있었어. 하지만 그렇게 외롭지는 않아. 처음부터 혼자였으니까 ]

 

영화 -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에 나오는 대사인데, 이 영화를 한번이라도 본 사람들은 여주인공을 버리고 도망치듯 뛰어가버리는 남자 주인공의 오열과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여주인공의 체념이 가득찬 눈빛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장애가 있던 그녀에게 문득 찾아왔던 사랑 그러나 곧 홀연히 사라져 버리는 사랑.. 심해에 사는 바닷속 물고기처럼 그녀는 곧 고독에 길들여지겠지.

 

그러나 갑수님은 또 포기하지 말라고 애기하신다. ( 어쩌라구요, 위에 하신 말과 다르잖아요 ㅠㅠ )

   

208-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일,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이건 상당한 용기를 필요로 하는 것이다..... 여행도 마찬가지. 인생도 마찬가지. ...... 어제의 꾸준함과 내일에 대한 기대가 나를 이곳까지 데려왔다.

   <![endif]--> 

나 - 사랑과 인생은 고백하는 쪽, 그리고 을 인 쪽이 상처받기 쉬운 자리에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고 하겠다. 그러나 갑수님이 끊임없이 주장하는 것처럼 사랑과 인생은 버티는 쪽이 승리하는 법.

 

213쪽 - 돌아가서는 당신에게, 사랑한다는 말보다는 함께 떠나자는 말을 해야겠다. 사랑보다도 더 사랑한다는 말이 있다면 아마도 그것일테니.


 

사랑을 말로 표현할 수 있을가요?

과연.... “ 사랑해 ” 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요? 

어떤 사람은 " 너가 편해 " 라고 말할 수도 있는 거고, 누군가는 " 너 없이는 살 수 없어 "

라고 표현하고 있을 수도. 

세상에는 형용할 수 없는 것도 있어요. 나만의 사랑표현법도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그게 뭔지는 자세히 모르겠지만.

 

227- 그러니까 우리 사랑하도록 하자

 <![endif]-->

이리저리 여행을 다니노라면, 인생이란 참 별거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인생은 짧으니까. ..... 중간 생략.... 그러니까 우리는 사랑하도록 하자, 열심히 책을 읽고 음악을 들으며 여행을 떠나자. 혁명은 멀고 사랑은 간절하니까.

 

- 닥터 지바고를 읽고 혁명 보다는 사랑이 생활에 가까우니 사랑에 전념하자시는 작가님의 말씀! 쿠바에 묻히신 체 게바라 님을 무덤에서 벌떡 일어나시게 만들 문장일 지도 모르겠으나, 나는 엄청나게 공감을 하며 내가 주어야 할,  아니면 받아야할 (?) 사랑에 대해 떠올려 본다.  빚쟁이처럼 내놔라고 사람들에게 얘기를 하고 다닐까?

사랑 내놔... 안 주면 뗏지뗏지.

 

259쪽 : 생사를 건 사랑이라고 말하는 거야? 지금껏 그 남자 없이 살았잖아. 충분히 불행했지. 내 말은 그래도 그때 네가 죽고 싶어하진 않았다는 거야... 하지만 그게 삶이었다고 할 수도 없어.

 

어느덧 여름의 하반기에 접어들었다,, 곧 가을이 찾아오겠지. 물론 목숨을 건 사랑은 아니었지만.... 사랑을 잃고 난 뒤 허망함과 좌절감에 잠을 이루지 못했던 젊은 날이 떠오른다. 도대체 사랑이 뭔지 몰라 헤매고 다녔던 수없이 많은 나날들..... 소심한 내 마음은 아직도 사랑보다 사랑 때문에 치러야했던 상처들이 딱지처럼 마음속에 들어앉아 있다. 그러나 그것들 또한 나의 삶이었던 것.... 사랑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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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토랑에서 - 맛, 공간, 사람
크리스토프 리바트 지음, 이수영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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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레스토랑이라는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어떤 느낌이 드는가 하면, 크리스토퍼 교수님이 제자들과 한 팀이 되어서, 레스토랑을 소재로 하여, 방대한 한 다큐멘터리 영화를 찍은 것이 아닌가? 하는 그러한 느낌이 든다. 그러나 철저히 감정이나 주관적 의견을 배제하고 관찰자 입장에서 모으신, 인종과 국가를 넘나드는 레스토랑에 대한 실험적인 영화를 찍으신 것 같은, 그러한 느낌.

 

이 영화는 연대순으로 각 나라와 민족에 속한 레스토랑의 발전과 변천사에 보여준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이 영화가 레스토랑을 단지 음식을 먹는 공간으로만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레스토랑이라는 소재를 가지고 다양한 관점 ( 내부의 권력 투쟁, 음식의 변천사, 미식가들의 화려한 언변, 그 당시 사회적 격변 등등 ) 에 관련된 자료를 가지고 독자라는 관객들에게, 수없이 많은 실존 인물들의 실제 활약상을 슬라이드로 보여준다거나 아니면 인터뷰 형식으로, 그들의 입을 통하여  흥미로운 레스토랑과 그 안팎의 모습을 보여주는 듯 하다.

 

사실 저자가 역사학자이자 문학 및 문화사 교수님이기 때문에 각 사회 문화를 반영하거나,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을 슬쩍 보여주기도 하면서, 사회와 문화를 비추는 거울과도 같은 역할의 레스토랑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것도 수많은 증인들의 사례를 통해서.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위에서도 얘기했듯이,  미식가의 비평에 관한 부분이 이 책에서 빠져 있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식도락가의 미식 비평은 레스토랑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기 때문이므로 이 부분에서 대해서도 많은 설명이 이어진다. 수많은 실제 인물들의 증언을 통해서.

 

일단 1800년대부터 시작된 레스토랑에 대한 이야기는 프랜시스라는 한 여성 사회학자의 웨이트리스 직업 구하기 대작전과 유럽에서의 1700대 후반 레스토랑의 태동에 대한 설명을 작가가 과거형으로 설명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사실 프랜시스의 사회 참여적 실험 연구는 아주 인상 깊었고 신선했다. 왜냐하면 사회과학이라는 것이 저런 식으로도 연구될 수도 있다는 것, 접근 방식이 매우 직접적이고 현장 중심이라는 면에서 매우 생생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그녀의 활동이 사회를 변화시키는데 있어서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책의 나머지도 이런 식으로 펼쳐진다. , 레스토랑이라는 하나의 사회가 있고 그것은 하나의 생명체처럼 스스로 발전하고 진화한다. 그러면서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인간 사회와 어우러지면서 서로에게 좋든 나쁘든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프랜시스나 바바라 에런 라이크라는 사회학자는 레스토랑에 잠입 취재를 하고 책을 발간하는 활동을 통해 ( 프랜시스는 -- 시중드는 여자 / 여성 웨이트리스의 사회적 지위 등을 다룸, 바바라 에런 라이크 --- 노동의 배신 / 노동자의 빈곤 문제를 다룸 ) 서로 영향을 미칠 수 있게 중간 역할을 한 것이고.

 

이 뿐만 아니라 전후 미국에서는 제임스 볼드윈이라는 아프리카계 작가와 몇 몇 대학생들이 레스토랑이라는 공간에서도 벗어날 수 없는 인종차별에 대항하는 장면이 나온다. 다른 것 보다 유독 이런 부분이 와 닿았다는 것은 어쨌든 레스토랑이라는 개념 자체가 하나의 사회이고 사회에서는 계급 차별이나 빈부 격차 그리고 열린 사회, 개방된 사회일 수록 인종 차별 문제가 불거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레스토랑이라는 " 하나의 창 " 을 통해 그 당시 격렬했던 미국에서의 인종 차별 문제를 우리가 현재 알게 해 준다.

 

하지만 위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이 책은 비판을 위한 글만을 적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날줄과 씨줄처럼 민족과 인종과 시공간을 넘나드는 다양한 레스토랑과 그 안에서 펼쳐지는 맛있는 음식들과, 그리고 그것을 맛보고 비평을 하는 미식가들의 어우러짐에 대한 부분이  더 많이 나와 있다다시 말해서, 엄청나게 다양한 요리법이 등장하고 그 요리를 맛보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등장인물들이 등장하여 요리 뿐 아니라 그 요리를 만드는 사람이라든가 레스토랑의 분위기를 칭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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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면 사실 잘 아는 사람은 아니지만 미식 비평가라고 하는 요제프 벡스베르크나 게일 그린 그리고 앤서니 보데인과 같은 사람들이 미국의 식도락계에 큰 영향을 끼친 인물들이라는 정도는 알 수가 있었다. 게일 그린이라는  여자는 샌드위치에 대한 식도락 평가를 내리기 위해서 100개의 샌드위치를 먹어보는 철저한 여자였다는 글을 통해서 말이다.

 

그들 외에도 1977년 뉴욕 타임스는  미미 셰라톤이라는 여자를 프랑스로 파견하여 미식 비평을 하도록 시키는데 그녀는 여러 식당을 다녀보고는 실망을 하고 그것을 글로 표현한다. 폴 보퀴즈 레스토랑은 셰라톤의 비판을 성적인 욕구불만으로 몰아세우고, 메트로는 케첩을 핥아먹는 양키라고 표현하기까지 한다. 이처럼 그 당시에는 미식 비평이 아주 중요했음을 알 수 있다.  ( 지금도 그럴 것이다. 요리사를 자살로 몰아갈 만큼 )

      

이제 포스트 모더니즘에 들어서게 되면서 레스토랑에 대한 사람들의 다양한 재해석이 몰아친다. 다니엘 벨은 새로운 문화 엘리트들의 지식 실험실이 될거라고 하고 조지 리처는 노동과 소비가 표준화된 사회, , 레스토랑도 맥도널드 화가 될 것임을 보여준다. 그러나 저자는 푸디 ( 새로운 미식 비평 집단 - 음식 전문 기자단 ) 라는 새로운 집단을 통하여 미래 사회에는 레스토랑이 오히려 본래의 음식, 지속 가능한 음식을 추구하는 집단으로 돌아갈 것임을 넌지시 암시하고 있고 또 그들이 가지고 있는 자유로움과 관용성 덕분에 레스토랑이라는 것과 그 안팎의 것들 ( 음식, 사회, 문화 ) 가 매우 개방적이게 될 것임을 바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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