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더 앤 마더
엘리자베스 노어백 지음, 이영아 옮김 / 황금시간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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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죽은 줄만 알았던 딸이 눈 앞에 나타나다! 사건의 진실은 과연 무엇일까요? 세 여인들 사이에 벌어질 긴장과 갈등이 얼마나 팽팽할지 벌써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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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몬 - 권여선 장편소설
권여선 지음 / 창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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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아름다울 수 있다. 그리고 동시에 지독하게 비극적일 수 있다. 죽음이라는 덫이 언제 어디서 도사리고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더군다나 그 죽음이 평온하지 못했다면 더욱 더 비극적일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 죽음 이후 남겨진 사람들은 평생 죄책감과 고통에 시달려야 한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죽음.... 미스터리로 남겨진 죽음이라면 더욱 더 그러할 것이다.

 

태양처럼 찬란했던 한 소녀의 죽음과 그것이 남기고 간 깊은 슬픔과 분노 그리고 절망. 이 소설 [ 레몬 ] 속에 등장하는 노란빛은 밝지 않다. 한 미스터리한 죽음이 던져두고 간 깊은 절망과 범인에 대한 복수를 상징하는 듯한 강렬한 노란빛의 [ 레몬 ].

 

“ 죽음은 우리를 잡동사니 허섭스레기로 만들어요. 순식간에 나머지 존재로 만들어버려요.” ( 179쪽 )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던 19세 소녀 해언은, 나라가 월드컵으로 들썩이던 2002년 어느 날, 공원에서 두개골이 파열된 채 죽은 상태로 발견된다. 그녀가 죽기 바로 전 그녀와 함께 있었거나 그녀의 마지막 모습을 목격했던 이들이 용의자로 지목된다. 치킨을 배달하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해언을 목격했다는 한만우. 한만우의 오토바이 뒷좌석에 타고 있던 신정준의 여자친구 윤태림. 그리고 해언을 자신의 차에 태우고 있었던 신정준. 그들은 모두 용의자로 몰리지만 결국 아무도 결정적인 혐의점이 없다. 누구도 해언의 죽음에 책임을 지지 않은 채 유유히 법망을 빠져나가는데.....

 

“ 언니는 누구나 한번 보면 잊기 힘들 정도로 아름다운 소녀였다. 내용 없는 텅 빈 형식의 완전함이 주는 황홀 그 자체였다. 하물며 열아홉이었음에랴. 그 아름다운 형식을 파괴한 자는 누구인가. 한만우인가, 신정준인가, 아니면 제 3의 인물인가. 나는 이제 안다. 그날의 살인자가 누군인지는 몰라도 최소한 누가 아닌지는. 아니다, 나는 살인자가 누구인지도 알고 있다. 그러니 그런 짓을 저질렀던 것이고, 죽을 때까지 내가 그 죄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도 알고 있다 ” (34쪽)

 

해언을 죽인 자는 과연 누구일까? 그러나 이 소설은 속시원하게 범인을 밝혀주지 않는다. 각 주요 등장인물들의 독백을 통해서 범인의 윤곽을 추측만 할 수 있을 뿐. 언니가 죽고 난 이후에 깊은 공허함에 시달리는 다언의 독백 속엔 뒤틀린 그녀의 존재감과 복수심이 보인다. 해언이 살아있을 적에도 태양의 그늘에 가려진 달처럼 떠다니던 다언은 언니의 죽음 이후에 이상한 부채감에 시달린다. 자신이 언니의 존재를 대신하려는 듯 성형수술을 감행하고 언니가 죽은 날 입었던 레몬색 원피스를 입고 다니는 괴상하기 짝이없는 다언의 모습.

 

“ 내가 눈을 떴는데도 엄마는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말없이 내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건 마치 뿌리가 깊은 거스러미를 억지로 뜯어낸 손톱에서 피가 배어나는 걸 지켜보듯, 지극한 고통을 견디는 표정이었다. 나는 엄마가 내 얼굴이 아닌 다른 얼굴을 찾고 있다는 걸 알았다. 엄마는 다른 얼굴을 원하고 있었다. 내가 보고 싶은 얼굴은 어디로 갔지? 이 자리에 왜 그 얼굴이 아니라 네 얼굴이 있는 거지? (87쪽)

 

다언은 형사가 마지막까지 취조했던 한만우를 추적한다. 한치의 의심도 없이 그가 범인이라고 믿고. 한만우의 혐의를 밝히고 복수를 감행하기 위해 한만우와 가족을 만났던 다언..... 그러나 힘겹게 살아가던 이들 가족의 모습에서 삶에 찌들렸으나 선하디 선한 모습만을 발견할 뿐이다. 한만우가 범인이 아니라면 범인은 과연 누구일까?

책은 추리 소설의 형식을 띄고 있으나,,,,, 단순 흥미를 추구하는 책이 아닌 듯 하다. 한 소녀의 죽음과 죽음을 둘러싸고 있는 여러 인물들을 통해서 삶이란게 얼마나 불안하고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 같다. 우리는 모두 평온하기를 바란다. 평온하게 살고 평온하게 죽기를 바란다고나 할까? 그러나 이 소설 속의 주인공들은 모두 비밀을 안은 채 불안하게 살아간다. 깊은 죄책감과 고독을 함께 동반한 비밀을 안은 채 말이다.

언니의 얼굴을 하고 언니의 원피스를 입고 돌아다니던 다언의 무표정한 얼굴에서,

전화상담을 통해서 밤잠 못 자는 자신의 고통을 부르짖던 윤태림의 목소리에서,

다언의 고통을 위로하려다 오히려 잃어버린 자신의 삶을 발견한 상희의 독백에서,

나는 읽을 수 있었다. 죽음보다 더 큰 삶이라는 절망이 있을 수 있음을. 복수를 다짐했고 또 실행했던 다언은 그 이후로 평온해졌을까? 책장을 덮은 뒤 그것이 제일 궁금했다. 이제 [ 레몬 ] 을 떠올리면 상큼한 맛보다는 강렬한 복수의 다짐이 떠오를 것 같다.

" 드디어 오랫동안 열리지 않던 문이 열리고 노란 빛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들어오는 듯 했다. 노란 천사의 복수가 시작되었다. 레몬, 이라고 나는 의미없이 중얼거렸다. 복수의 주문처럼 레몬,레몬,레몬이라고 " (9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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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부로 양복점
가와세 나나오 지음, 이소담 옮김 / 황금시간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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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엉뚱 발랄한 80세 양복점 노인과 현실을 도피하고픈 고등학생 소년의 요절복통 코르셋 혁명 성공기를 그리고 있다. 80세의 나이에 양복점을 운영하는 할아버지가 나온다는 설정도 독특하지만 그 외에 다른 등장인물들도 매우 개성있다.

 

책 표지에 담겨진 등장인물들을 소개해 보자면.... 우선 유쾌한 이사부로 양복점 주인, 항상 풀이 죽어 있던 고등학생 아쿠아마린과 스팀펑크 아스카, 3인방 할머니들- 오사와, 카토, 스즈코, 디지털 지식이 가득한 사진사 오사와 할아버지, 문헌연구와 고증을 통한 작품을 하는 에로만화 작가인 아쿠아 엄마, 점집을 운영하지만 자수의 일인자인 미나미 할멈, 악당 무리로 상점회 사람인 소마일행과 여성해방운동가 마나베 여사.

 

 

무거운 걸음을 옮겨 등교한 나는 평소처럼 지루한 고등학교 생활을 대충대충 보냈다. ”(p.43)

 

주인공인 아쿠아마린의 현재 상태를 매우 잘 나타내 주고 있는 문장이다. 무기력하고 나른한 아쿠아 마린은 학교 생활이 과히 즐겁지가 않다. 꾸역꾸역 학교를 다니는 그, 학교생활을 함에 있어서 그 어떤 목표의식도 없고 의욕도 없이 무미건조한 삶을 살고 있다.

 

이사부로 씨, 혁명을 일으킬 거면 저도 함께하게 해주세요!” (p. 55)

 

그러던 어느날, 주인공 아쿠아는 학교 등굣길을 오고가다, 오래된 양복점 쇼윈도에 전시된 아름다운 코르셋에 마음을 빼앗겨 버린다. 호기심으로 양복점을 찾아갔다가 양복점 주인인 이사부로의 강력한 매력에 사로잡힌 후, 양복점 리뉴얼 오픈 계획에 동참하게 된다. 이사부로 양복점 주인과의 만남 이후, 아쿠아는 자신의 진로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결정을 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게 된다.

 

 

남의 눈치 보지 마. 남과 비교히자 마. 의견을 억누르지 마. 네 인생을 너 이외의 누구에게도 맡기지 마.”(p. 79)

 

보수적인 시골마을의 상점가에 어울리지 않는 양복점의 코르셋 전시..... 이곳 상공회 사람들은 코르셋 전시가 지역사회 이미지를 실추시킨다고 하면서 전시를 계속 반대한다. 하지만 양복점 주인은 끝까지 자신의 의지를 꺾지 않는다. 모두가 철저히 규칙을 지키고 살아가는 곳에서 일방적으로 규칙을 깬다는 것은 쉬운 결정이 아니다. 그러나 비록 어려운 일이지라도, 그 규칙이 부당한 것이라면 규칙을 어길까봐 걱정만 하는 것 보다는 자신의 소신대로 도전해보고 살아보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80세가 넘었다면 젊은 사람들에 비해서 더욱 더 편견이 많고 고루한 사고방식을 가질 수 있는데, 그런 면에서 이 양복점 주인의 유쾌하고 엉뚱발랄한 반항과 도전을 보시라!!!!

 

 

믿을 수 없다. 나는 다시 행렬을 바라보았다. 물론 젊은 사람들이 많지만, 중∙장년도 적지 않았다. 기모노를 입은 사람이 보이는 것은 오피셜 사이트의 효과겠지. 모두 크리스마스의 한산한 하늘 아래에 줄을 서면서까지 이사부로 양복점을 구경하고 싶어했다.(p. 419)

 

 

비교적 술술 쉽고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이야기지만, 소설속의 의복에 대한 이미지가 머릿속에 쉽게 그려지지 않아서 조금 읽기가 어려웠다. 로코코 양식 등 프랑스 의복이나 배경에 대한 전문적인 단어들이 있다보니 배경 지식을 찾아가면서 읽어야하는 어려움도 있었다. 코르셋 혁명의 이유이기도 한 의료용 코르셋이 있는 있다는 사실을 이번 소설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사실 결말은 빤히 보이는 편이지만 해피엔딩으로 끝나서 찝찝하지 않아 좋았다. 그리고 등장인물들 각각이 섬세하게 잘 묘사되어 있어서 그들의 삶에 몰입하기가 쉬웠다. 이렇게 개성있는 사람들이 모이니까 한 권의 재미있는 책이 탄생하는구나!! 싶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표지를 보니 등장인물들의 이름과 그들의 평소 행동들이 막 떠올랐다. 나이가 들어도 이렇게 재미나게 살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소설, 이사부로 양복점, 마음 편하게 웃을 수 있는 시간을 주는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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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 실험 - 문명이 붕괴된 이후의 세상을 실험한 어느 괴짜 과학자의 이야기
딜런 에번스 지음, 나현영 옮김 / 쌤앤파커스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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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문명은 지구 온난화와 에너지 위기 ( 피크 오일 ) 로 우리 생애 동안 붕괴될 것이다. 문명이 붕괴되며 전 세계 수십억 명이 죽음을 맞겠지만 일부는 살아남는다. 문명은 재건되지 못할 것이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야생으로 탈출해 부족을 이루고 생존 기술을 익힌다. 이 과정은 ‘ 재야생화 ’ 또는 ‘ 탈산업화 ’ 또는 ‘ 신부족혁명 ’ 이라 불린다. 재야생화가 되면 삶의 질은 붕괴 이전보다 나아질 것이다 ” ( 265쪽 )

 

괴짜 로봇 공학자의 좌충우돌, 어설픈 유토피아 건설 프로젝트 이야기. 비록 서투르고 엉망진창인 상태로 시작하였고 실패로 끝난 프로젝트이지만, 아무나 시작할 수 없는 일을 해냈다는 점에서 커다란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아무리 온 세상이 경고의 나팔을 불어댄다고 하더라도 문명이 곧 붕괴될거라 예상하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일까? 사실 뉴스에서는 연일 온난화 현상으로 인해 발생하는 이상기후 현상과 그로 인한 자연재해 등으로 집을 잃거나 죽어나가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보도한다. 그러나 그렇다하더라도 일반인들은 그냥 하루하루를 살아갈 뿐이다. 하지만 영원한 것은 없는 법이다. 모두들 알고 있지만 모른 척 하는 문제 ( 환경 오염과 문명의 붕괴 가능성 그리고 그 이후의 인간 생존 ) 에 대해서 용감하게 직면했다는 점에서 주인공의 노력이 가상하다고 하겠다.

 

 

“ 자급자족이 환상이라면 지속 가능성 또한 환상이다. 잠재적으로 영원히 지속된다는 의미에서 정말로 지속 가능한 것은 없다. 모든 것엔 끝이 있다. 단지 시간문제일 뿐이다. ” ( 305쪽 )

 

 

이 책의 저자 딜런 에번스는 실제로 지구가 멸망했을 상황을 염두에 두고 시나리오를 쓴다. 문명이 붕괴된 상황을 가상으로 설정해두고 자연 상태에서 살아남는 실험인데, 그는 집을 팔아서 자금을 대고 함께 프로젝트에 참여할 자원자를 모은다. 딜런과 지원자들은 스코틀랜드의 북부 하일랜드에 채소밭을 가꾸로 천막같은 거주지인 유르트를 짓고 살아간다. 처음에는 뭔가 잘되어가는 듯 보인다. 이상주의자가 그러하듯 모두가 조화롭게 살아가는 것을 꿈꾸었던 주인공은, 너그러운 자연의 품 안에서 갈등없이 평화롭게만 살아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런데.....

 

 

무질서하고 불규칙적이며 혼란 그 자체인 자연 상태가 고개를 쳐들기 시작한다. 추위를 막아주고 잠자리를 따뜻하게 해줄줄 알았던 유르트는, 습기에 매우 약했다. 잠자리에 들땐 따뜻한 상태로 들어가지만 새벽엔 추위에 덜덜 떨면서 이를 딱딱 부딪히며 일어나야 한다. 화장실을 짓는 것도 문제라, 일일이 구덩이를 파고 거기에 용변을 보다가 겨우겨우 쓰러져가는 화장실을 짓는다. 그들이 가꾸는 채소밭은 아이들 소꿉놀이 수준이고 처음 생각과 다르게 모자란 식량은 근처의 식료품점에서 조달해야 한다... ( 문명이 붕괴된 이후의 시나리오인데??? )

 

 

함께 프로젝트에 지원했던 사람들과의 갈등 상황도 연출된다. 영적인 존재를 믿는 애덤은 생각보다 자신의 소유를 중시하는 사람이었고 무신론자인 주인공과 사사건건 부딪힌다. 그리고 단지 짧은 기간동안만 문명이 붕괴된 상황을 가상으로 그려보는 프로젝트란 말에 갸우뚱하며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한시적으로 문명 붕괴 이후의 상황을 단지 실험만 하고 싶었던 주인공의 의도와는 다르게 영원히 자연의 품에서 살아가고 싶은 사람들.. 뭔가를 단단히 착각하고 있는 지원자들을 바라보는 딜런의 얼굴엔 수심이 가득한데...

 

자신의 계획과는 다르게 점점 통제력을 벗어나는 상황을 보고는 모든 것이 실패로 돌아갔다고 생각하는 주인공..... 문명이 아니라 주인공의 신경이 붕괴되는 사건이 발생하고 결국엔 그는 자신의 발로 정신병원에 들어가게 된다.

 

영국 일간지 [ 가디언 ] 이 " 실험복을 입은 알랭 드 보통 " 이라고 표현했다는 저자. 그는 물질문명의 최첨단과 문명 붕괴 이후의 가상 세계 사이에서 지독한 희망과 지독한 좌절의 롤러코스터를 탄다. 그러나 일단 저질러보고 후회하는게 나은 것인가? 그는 이제 두렵지 않다고 말한다.

 

" 문명의 붕괴 역시 두렵지 않다. 문명이 붕괴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 앞일은 누가 알겠는가? - 그 가능성과 직면해봤기 때문이다 "

( 311쪽 )

 

한 괴짜 과학자의 아름다운 도전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는 도전했고 비록 쓰라렸지만 결과를 받아들였다. 그의 표현처럼 심연을 들여다보다가 추락할 뻔했지만 살아남은 주인공. 앞으로도 주인공이 어떤 도전을 하게 될지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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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우스터
김호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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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탐욕은 과연 어디까지일까? 이 책 [ 파우스터 ]를 읽는 동안 내내 들었던 의문이다. 부와 권력을 이용하여 타자의 육체와 영혼을 유린하는 노인들의 모습을 보고,,,,, 혐오감이 생겼다. 정확히 얘기하자면, 세계적 기업 메피스토에 가입한 노인들, 다시 말해 파우스트들은, 자신의 입맛에 맞는 젊은이를 파우스터로 지정하여 그들의 뇌에 거머리같은 연결체를 심는다. 그 연결체가 이식된 파우스터는 아무것도 모른 채 파우스트가 원하는 삶의 방향으로 걸어가게 된다. 파우스트들은 젊고 신선하고 에너지 넘치는 파우스터들의 세계에 접속하여, 삶의 끝자락에 와 있어서 감각이 무뎌진 자신의 육체를 잠시 떠나, 파우스터들이 느끼는 삶과 감각적 쾌락을 고스란히 받아들인다.


 

백전백승, 괴물같은 투수인 야구선수 준석. 어느날 교통사고를 당하고 깨어난 후 낯선 자들을 만나게 된다. 그들은 준석에게 도무지 믿기지 않은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자신을 최경 이라고 소개한 여자는, 본인의 아버지가 파우스트이고, 준석의 전 여친인 지수가 그의 파우스터 였다는 충격적 고백을 한다. 경은 준석에게 함께 손을 잡고 이 파우스팅 게임의 진상을 파악함과 동시에 파우스트 무리들과 회사 메피스토를 처단하자고 한다. 준석은 자신도 누군가의 파우스터임을 알게 되고, 이제는 세상에 없는 전 여친 지수 대신 복수를 다짐함과 동시에 이 역겨운 “ 파우스팅 ” 게임을 뒤집어버리겠다고 결심하는데...


최근 재미있게 봤던 영국 드라마 중에서 얼터드 카본 이라는 작품이 있다. 디스토피아를 배경으로 한 이 영국 드라마에서 부유한 권력층들은 젊은 육체로 영혼을 옮겨다니며 영생을 누린다. 부와 권력을 이용해 타자를 좌지우지한다는 면에서 이 책 파우스터의 설정과 매우 닮아있다. 영화를 보는 내내, 기득권에 속한 인간들이, 본인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남의 생명줄을 쥐고 흔드는 모습이 참으로 혐오스러웠다. 순리대로 흘러가는 삶, 즉, 나이가 들면 병들고 곧 죽음을 맞이해야하는게 인간의 본질이거늘,,,, 마치 자신이 신인양 역행하는 모습이 충격적이었고 동시에 매우 불온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런데, [ 파우스트 ] 와 [ 파우스터 ] 의 양자대결 구도 설정을 통해 저자가 결국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영화평론 전문가이자 장르소설 전문가인 김봉석님의 해석에 따르면,


“ 이미 모든 것을 얻은 세대는 기득권을 잃지 않기 위해 다음 세대를 착취한다. 모든 것을 가진 기성세대에게 젊음은 유일한 실낙원이다. 파우스터의 영혼을 도둑질하고 조종하는 파우스트들. [ 파우스터 ] 는 인간의 절대적인 욕망을 추구하는 기성세대의 탐욕을 고발한다 ”

현대인들은 이미 파우스터라는 비참한 운명에 놓여있다는 생각이 든다.. 공동체가 설정한 시스템 속에서 그 누구도 지배-피지배라는 역할분담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내 욕망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몇 명이나 될까? 부모의 욕망에 따라 대학에 가는 자식들... 회사의 욕망에 따라 일개미처럼 일하는 근로자들.... 어쩌면 우리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는 파우스터-파우스트-파우스터-파우스트들이 아닐지...

자신이 파우스터임을 깨달은 인간들이 할 수 있는 건 뭘까? 자유로워지기 위해서 어떤 희생도 치를 것이다. 반면에 파우스트를 통해서 그 전에 누릴 수 없었던 감각적 쾌락과 성취감을 맛 본 파우스트들은 어떨까? 파우스터들을 그들의 손아귀에 가두어두기 위해서 어떤 댓가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인 주제에 신의 역할을 하려고 했던 자들이 최종적으로 걸어가야 하는 길은.... 아마도 끝도 없는 암흑.... 영원히 채울 수 없는 욕망의 공간... 즉, 지옥이 아닐까.

여러 영화의 시나리오를 담당했던 저자의 작품답게 소설에 생동감과 박진감이 넘친다. 사실 여러 영화나 책에 등장했던 소재 ( 가상세계와 타자의 의식을 활용하는 것 ) 이긴 하지만 막판 반전으로 인해서 뻔하지 않은 스토리 구성을 이끌어냈다. 그리고 독자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주는 묵직한 주제의식도 이 책의 완성도를 높이는데 한 몫 했다는 생각이 든다. 무거운 주제이지만 결코 지루하지 않고 영화처럼 호흡이 빠르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소설이다. 두꺼워도 금새 독자들의 몰입을 이끌어내는 책 [ 파우스터 ]... 저자의 다음 책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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