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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녀들의 섬
리사 시 지음, 이미선 옮김 / 북레시피 / 2019년 8월
평점 :
이 책은 거친 바다에 맞서서 물질을 했던 강인한 해녀들의 이야기이다. 또한 비극적 역사를 온 몸으로 견뎌낸 여성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또한 제주도라는 특정 지역의 전통과 문화에 대한 이야기이며, 한민족, 구체적으로 말하면 제주도민들이 겪어야 했던 격동의 세월을 말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작가가 하고픈 말이 많았나보다.. 책 한권에 해녀들과 우리 민족의 정신과 혼이 몽땅 들어가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 해녀들의 섬 ] 은 어쩌면 소설이라기 보다는 다큐멘터리 (?) 라고 볼 수도 있겠다. 지금은 거의 찾아볼 수 없는 해녀들의 물질하는 모습과 그들이 사용하던 장비, 도구 등이 생생하게 그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당시 목숨을 걸고 물질을 해야했던 그녀들을 위해서 만신, 즉 영적인 힘을 가진 무녀들이 굿을 하거나 목숨을 잃은 해녀의 혼을 불러내는 의식을 치러주는 장면도 보여준다. 너무나 아름답고 매혹적인 장면들이라 시와 노래 아니면 그림처럼 눈 앞에 펼쳐진다.
또 하나, 책을 읽으면서 머리 속에 맴돌았던 것은 바로 그녀들이 해산물을 따러, 즉 물질을 하러 갈 때마다 불렀던 노래, 해녀들의 노동요였다. 앞으로 있을, 힘든 작업, 목숨을 걸고 해야했던 작업에 대비하여 마음을 다스리는 일종의 최면요법 (?) 이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가 선창했다.
“ 물질하게 해주세요 ” 그녀의 굵고 쉰 목소리가 바람을 가르고 내 귀에 닿았다.
“ 물질하게 해주세요 ” 우리는 그녀에게 답창을 하며 노랫가락에 맞춰 노를 저었다.
“ 황금빛 조개들과 은빛 전복들.” 그녀가 노래했다.
“ 그것들을 전부 따게 해주세요!” 우리가 화답했다.
뿐만 아니라, 이 책 [ 해녀들의 섬 ] 은 제주도민들이 겪어야했던 가혹한 역사에 대한 보고서이기도 하다. 1938 년 일제 치하에서 시작되는 이야기는 일본의 패망 이후, 광복과 그 뒤에 바로 이어진 미국의 내정간섭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거기에 반발했던 제주도민들이 잔인하게 학살당했던 피비린내나는 제주 4.3 사건을 고발하고 있다. 여성들이 강간을 당하고, 청년들이 고문을 당했으며, 사람들은 총살을 당했다. 책을 읽는 동안 그들이 겪어야했던 시련에 충격을 받았고 엄청난 분노를 느꼈다. 도대체 같은 민족을 그렇게 잔인하게 죽일 수 있는 사람들의 정체와 명분이 궁금했다. 그리고 왜?????? 우리는 아직 역사를 되풀이하고 있는지도 매우~~~~ 궁금했다. ( 친일파는 왜 아직 청산되지 않았는가 )
정치가 민족을 갈라놓기 전까지 제주도는 평화롭고 조화로운 땅이었다. 제주도민들이 원한 것은 공산주의도 민주주의도 아니었고 다만, 그 누구의 지배와 간섭도 받지 않고 자치적으로 주도적으로 살아가는 것이 전부였는데, 누군가는 그런 생각과 말을 하는 사람들을 반민족행위를 한다고하면서 그런 식으로 죽였던 것이다. 아직도 제주도엔 원혼들이 떠돌고 있을 것 같아 가슴이 매우 아팠다.
책은 1938년을 시작으로 2008년까지 주인공 해녀 영숙과 미자 사이에서 발생한 주요 사건들을 보여주여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영숙 어머니인 대장 해녀 밑에서 훈련을 받으며 함께 자란 그들은 그 누구도 갈라놓을 수 없을만큼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사이였다. 마치 친자매처럼 함께 물질하며 우정을 쌓았던 그들. 그러나 영숙에게 발생한 비극적인 사건은 그들의 사이를 산산조각으로 만들어 버린다. 영숙에게 미자가 가장 필요했을 때 그녀는 손을 내밀어 주지 않는다. 물론 제주도에서 일어난 그 사건과 관계된 일이다.
2008년 이제 80대 노인이 된 영숙에게 재닌이라는 여인이 다가온다. 그러면서 미자라는 사람을 아는지 묻는다. 영숙은 치가 떨리는 그 이름을 잊을 수도 없고 잊을 생각도 없지만 알지 못한다고 말한다. 이 장면은 책의 첫 부분이지만 독자들은 다 알고 있다. 그녀가 미자를 너무나 잘 알고 있다는 사실을.
해녀이야기에서 시작하여 제주도에서 발생한 비극적 사건을 이야기하는 이 책. 박경리님의 토지와 존. S. 펄벅의 대지를 읽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민족을 쥐고 흔들었던 역사적 사건들, 특히 비극적인 사건들이 주인공들의 삶을 쥐고 흔들었다. 이제 영숙의 선택이 남았다. 그녀는 미자를 용서할 것인가? 이 책은 정말 소장가치가 100%, 아니 200% 인 책이다. 감동 그 자체이고 작품성이 너무나 뛰어나다. 다시 한번 더 읽을 일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