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근린생활자
배지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19년 7월
평점 :
소시민의 삶은 고달프다. 좀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는 이 초 자본주의 시대에 집 하나 없는 인생, 야박한 시급을 받고 장시간 일해야 하는 비정규직 근로자, 사회복지의 혜택하나 받지 못하는 저소득 노인들, 그리고 당신들과 우리들....
앞에서 이야기한 사람들은 모두 사회적 약자들이다. 그들은 어쩌면 고달픔을 넘어서서 저주에 가까운 삶을 사는 것 같기도 하다. 눈감고 있으면 코 베어가고 가만히 있으면 팔 다리 떼어가는 야박한 세상 아닌가. 가끔은 거대한 게임 속에서 정해진 운명만을 따라야 하는, 저주받은 인생인가 싶은 생각이 들때도 한두번이 아니다.
배지영의 단편 소설집 [ 근린 생활자 ] 는 고도로 자본주의화 되어 가는 이 세상에, 남들 뛸 때 걸어가거나 심하면 기어갈 수 밖에 없는 짠내 나는 인생들의 암울한 생활상을 가감없이 그려내고 있다. 짠내 정도가 아니다. 이건 암울하기 그지 없다. 삶과 죽음이 왔다 갔다 하는 그들의 삶으로 걸어들어가보자.
단편 [ 근린 생활자 ]
곰팡내나는 반지하 방과 옥탑방 그리고 고시원을 전전하던 상욱. 싼 전세를 구하던 그에게 공인 중개사가 솔깃한 제안을 한다. 상가용 건물을 주거용으로 바꾼 근린 생활 시설을 아주 싼 가격에 매매할 수 있다는 것. 곰팡이 걱정을 안 해도 되고 햇빛도 잘 드는,, 거기에 값이 싸다는 매력을 지닌 시설. 그는 드디어 집을 갖게 된다. 하지만 근생에는 조건이 딸려있었다. 불법적인 건물이라 신고 당하지 않도록 주의할 것. 비정규직 승강기 수리 기사인 상욱은 집마저 불법적이고 불안정한 근생 생활 시설에 머무르게 된다.
| 새 집에서 살기 위한 규칙 1. 반드시 인터폰으로 확인하고 문을 열어줄 것 2. 구청에 신고가 들어갔을 수 있으니 일단 초인종 누르는 사람은 무시할 것 3. 발코니에서 담배를 피우거나 고기를 구워먹지 말 것 4. 애인을 데려오지 말 것 |
단편 [ 그것 ]
주인공은 산림청에 소속된 정직원이다. 그의 일은 저장드럼을 특수 트럭에 실어서 전국의 산지에 묻는 것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의 삶에 불길한 일이 발생하기 시작한다. 자신의 여동생을 시작으로 매제까지 암에 걸려 의문의 죽음을 당한다. 여기서 독자는 눈치를 어느 정도 챌 수 밖에 없다. 그가 하는 일이 여동생과 매제의 죽음에 어느 정도 관련이 되어 있다는 사실을... 거대한 산업 구조 안에서 인간은 개미 정도 밖에 존재감이 없는 걸까? 라는 의문을 일으킨 단편이었다.
단편 [ 삿갓조개 ]
개인적으로 제일 충격적이었고 슬펐던 단편이었다. 제대로 된 근로조건을 보장받지 못하고 야박한 시급에 매달려야 하는 현대의 노동자들의 슬픈 자화상. 주인공은 해안가 발전소의 도수관에서 자라나는 삿갓조개를 떼어내는 일을 하는 비정규직 노동자이다. 도수관 내부는 산소가 모자라서 항상 산소통을 지닌 채 작업을 해야 하고 거대한 가위로 삿갓조개를 파내는 작업을 하다가 목숨을 잃은 노동자가 한 둘이 아니다. 그러다 시급 900원을 올리기 위한 파업에 돌입하는 노동자들.. 도수관 안에서 먹고 자고 버티기 시작하는데...
| 시급 900원 인상도 너무 큰 욕심인 듯 싶었다. 사소한 것이라도 원하는 무언가가 성취된 적이 없는 그였다. ' 그래야 해서 ' 가 아니라 ' 그래야 하는' 줄 알고 살아왔다. '그렇게 살아왔듯' 침묵하고 운명을 탓해야 했다.
|
우리는 어디로 걸어가고 있는 걸까? 무엇을 위해 사는 걸까? 이 책을 읽고 난 뒤 자꾸만 드는 물음이다. 언젠가부터 정신적 가치를 몽땅 잃어버린 듯한 우리 사회. 다른 사람은 돌아보지 않고 그냥 각자도생.... 마구 살아가는 느낌이다. 발전소라는 거대 기업이 노동자에게 시급 900 원을 지급하지 않으려고 경력직을 잘라내고 싼 시급의 신입을 고용하는 장면에서 분노가 치밀어오르고 마음이 먹먹해졌다. 어쩌면 그들에게 자살 가위를 쥐어줬는지도 모르겠다. 작게는 그 발전소가,, 크게는 그런 기업을 방치하는 이 사회가. 함께 살아가야한다는 외침은 어느새 " 경제 성장 " 이라는 슬로건 뒤로 묻힌 것은 아닌지.. 오늘따라 마음이 착잡하다. 있는 그대로 이 사회를 보여준 듯한 단편 소설 [ 근린 생활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