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링필드, 어느 캄보디아 딸의 기억
로웅 웅 지음, 이승숙 외 옮김 / 평화를품은책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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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캄보디아에서 일어난 대 학살에 휘말렸던 한 소녀의 집안이 실제로 겪었던 실화를 바탕으로 쓰인 이야기이다. 킬링필드는 1975년 캄보디아의 공산주의 무장단체였던 크메르 루주 정권이 론 놀 정권을 무너뜨린 후 1979년까지 노동자와 농민의 유토피아를 건설한다는 명분 아래 최대 200만 명에 이르는 지식인과 부유층을 학살한 사건으로 20세기 최악의 사건 중 하나로 여겨진다.

인간이 동물과 구분되는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이성을 가진 존재라는 것이다. 인간인 우리는, 옳은 일과 옳지 않은 일에 대한 명확한 구분을 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역사를 살펴보면, 전쟁과 대학살을 통해 인간이 인간에게 가장 많은 피해를 입힌 것도 사실이다. 단지 이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말이다. 사실 난 전쟁과는 거리가 먼 평화로운 시기에 태어나서 지금까지 살아가고 있지만, 가끔씩 어른 세대가 말씀해주시는, 우리나라가 겪어야 했던 전쟁과 학살, 기근 등은 너무나 참혹해서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고 있다.


이 책은 주인공 1975년 4월 프놈펜에서 시작하여 1980년 2월 베트남 람싱 난민촌에 들어갈 때까지, 작가와 작가의 식구들이 겪어야 했던 고난을 적은 글이다.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중산층의 부러운 것 없이 생활하던 5살 로웅과 그 가족들. 하지만 공산주의 정권의 등장으로 한순간에 피난길에 오르게 된다. 아버지의 직업은 헌병으로 전 정권에서 일을 했던 사람이었는데, 신분을 속이고 가족들을 안전한 곳으로 이동시키기 위해서 노력을 한다. 그 와중에 다른 식구들 또한 자신의 몫을 다 한다.

“도시에서는 나의 관심과 우정을 바라는 아이들과 친해졌지만, 여기서는 아이들이나 나를 의심하고 내가 다가가면 달아난다.” (p.79)

하지만 이 가족 앞에는 더 많은 시련들이 놓여 있었다. 아빠의 처형과 엄마와 언니, 동생의 죽음. 결국 이들과 이별의 슬픔을 겪게 되지만 남은 가족은 떠난 가족들을 기억하면서 살아간다.

“크메르루주는 복수심에 불타는, 피에 굶주린 사람들을 만들어냈다.

폴 포트는 나 같은 어린아이도 사람을 죽이고 싶어 하게 만들었다.”(p. 350)

지도자의 역할은 중요하다. 공산주의 정권이 들어섰을 때 노동자들과 농민들은 그들이 자신들을 빈민에서 구제해 줄 것이라고 굳건히 믿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도자의 잘못된 신념이 모든 것을 변하게 하였다. 정치 이념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사람들이 가족들을 잃게 되고, 터전 또한 버리고 떠나야 했다. 모두가 공포에 떨면서 힘들게 일해도 불행과 배고픔만이 기다리고 있었다. 폴 포트와 그의 집단만 배가 고프지 않은 것이다.

새로운 지도자의 등장으로 인해 모든 사람들이 평화로운 삶을 살 수 있다면 그 지도자의 혁명은 성공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누구든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어야지 다른 곳을 볼 수 있는 눈이 생겨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혁명이라는 이름 아래, 처형과 기아, 질병과 강제노동으로 죽음에 이른 사람들의 가족들은 죽을 때까지 가슴속에 상처를 깊이 새긴 채 기억하며 살아가야 한다. ‘그 시기에 여러분이 캄보디아에 살고 있었다면, 이 이야기는 또한 여러분의 이야기가 될 것이다.’라는 저자의 말처럼, 책 속 장면들이 생생한 영화를 본 것처럼 먹먹하게 가슴으로 다가온다.

아직도 세계 곳곳에서는 이념과 종교에 의한 전쟁이 일어나고 있다. 인간이 인간에게 어떤 이유에서든 악행을 저지르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이런 슬픔이 더 이상 되풀이되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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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의 천사 에드거 월리스 미스터리 걸작선 4
에드거 월리스 지음, 양원정 옮김 / 양파(도서출판)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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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에 나와 있는 아름답고 순수한 모습의 한 여인. 시대를 거치면서 미의 기준은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하지만 커다란 눈망울에 오뚝한 콧날 발그레한 두 볼을 가진 그녀를 보는 순간, 여인네들은 선망을 품을 것이고 남정네들은 마음을 빼앗길 것이다. 사람들은 아니라고 하지만 곧잘 겉모습으로 사람을 판단하게 된다. 영어 속담에 Don't judge a book by its cover ( 겉모습으로 판단하지 마세요 )라는 말이 있는데, 얼마나 사람들이 겉모습에 잘 속아넘어가면 이런 말이 생겼을까?

에드가 월리스의 < 공포의 천사 >를 읽게 되었다. 전작 < 트위스티드 캔들 > 과 < 수선화 살인 사건 >에 이어 3번째 책이다. 현대 미스터리와는 다르게 이야기의 구조가 그다지 복잡하지 않다. 트릭을 기반으로 하지 않기 때문에 복선이 여기저기 깔려 있거나 깜짝 놀랄만한 반전이 등장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흥미로운 구도 ( 진 브리거랜드를 중심으로 하는 ) 가 있어서 전체적인 줄거리가 긴장감 있게 펼쳐진다.

책 속 등장인물은 다음과 같다.

제임스 메레디스 : 살인죄를 뒤집어쓰고 사형을 선고받은 남자.

진브리거랜드 : 메레디스의 전 약혼녀. 천사 같은 미모를 가진 여성이지만 겉과 속이 다르다.

잭 글로버 : 메레디스의 절친. 냉철한 변호사이고 진 브리거랜드의 의중을 의심한다.

리디아 : 메레디스와 결혼하게 된 행운의 여자. 상속녀이지만 생명의 위협을 받는다.

재그스 : 리디아의 보디가드. 비밀스러운 정체를 가진 남자이다.

약혼자인 제임스 메레디스가 유죄 판결을 받을 수 있도록 거짓 위증을 하는 진 브리거랜드. 메레디스의 약혼녀이자 친척인 그녀는 메레디스가 살인죄로 사형을 받을 경우 그의 전 재산을 빼앗을 수 있다. 메레디스의 아버지는 독특한 유언을 남겼는데, 반드시 메레디스가 30살 이전에 결혼을 해야만 유산을 받을 수 있다고 한 것이다. 메레디스는 친구이자 변호사인 잭 글로버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진에게 모든 재산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 처음 보는 여인인 리디아와 결혼을 하게 된다.

리디아 베일은 아버지의 빚을 갚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결혼을 수락했는데 결혼식을 올리자마자 메레디스가 목숨을 잃는 바람에 그의 모든 재산을 상속받게 된다. 이제 진 브리거랜드와 그녀의 아버지는 리디아 베일로부터 재산을 빼앗기 위해 총공격에 돌입하게 된다. 바보스러울 정도로 진을 의심하지 않는 리디아. 그러나 진의 의중을 의심하는 변호사 잭은 친구의 재산과 리디아를 보호하기 위해서 경호원 재그스를 리디아 곁에 둔다.

“부인 앞으로 모두 남겼네.”

“불쌍한 메레디스, 그 애는 정말 간절히도 브리거랜드 집안으로부터 자신의 재산을 지키고 싶어 했어.

그래서 한 번도 이전에 본 적 없는 여자에게 전 재산을 위임한 거지.”

“그래서, 이제는 브리거랜드 부녀가 메레디스 부인의 상속인이 되었고요?

잰 정말 지옥문이 열린 거라고요!”(p. 59)

진범이 누구인지 가려내기 위해서 긴장감과 궁금증을 가진 채 이 책을 읽어내려가게 되는데, 사실 이 책은 처음부터 악인 = 살인을 저지르는 자 가 누구인지 미리 알 수 있도록 장치를 꾸며놓았다. 그러나 천사의 외모를 가진 데다가 훌륭한 말솜씨까지 뽐내는 그녀 앞에서 사람들은 통찰력을 상실하게 된다. 단 한 사람, 변호사 잭만이 그녀가 쓰고 있는 천사의 가면을 알게 되지만, 그의 말은 다른 사람들에게 먹히지 않는다. 리디아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정말 답답할 정도로 진에 대한 의심을 1도 품지 않는 리디아.

“저는 돈 없는 삶이 더 두려워요.” 진이 조용하게 말했다.

저는 냉담하고 심술궂은 고용주를 위해 일해야 하는 간 나날들이 두려워요.

(중략) 가난한 남편과 그 밑에 줄줄이 태어난 아이들, 무능한 하녀와 함께, 아니 그마저도 없이 집안일을 하는 것이 두려워요.

제가 두려워하는 것은 이런 것들이에요, 아버지.”

“저는 아직 지난날 일링에서의 생활을 잊지 않았어요.”

진은 자신의 두려움이 무엇이고 왜 돈이 필요한지 진심을 절절히 표현하고 있다. 시대는 다르지만 사람들은 돈 때문에 울고 웃는다. 사람들의 삶이 그다지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돈에 대한 두려움과 갈망 때문에 많은 일을 저지르는 사람들... 진도 그런 사람들 중 한 명이었을까? 그녀는 과연 자신이 원하는 것을 손에 넣고 행복한 삶을 살아갈 것인가? 메레디스가 남긴 유산의 최종 승자는 누구일까? 그것을 찾아내는 것이 이 책을 읽는 하나의 재미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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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랑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비
우야마 게이스케 지음, 황세정 옮김 / 대원씨아이(단행본)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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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잊지 말아요!’라는 노래가 생각나는 두 남녀의 숭고한 사랑 이야기.

삶에 항상 행복한 순간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한 순간을 즐기고 있는데 불현 듯 다가오는 불행의 씨앗. 우리가 마음 먹은 대로 혹은 우리가 계획한 대로 굴러가지 않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다. 그 중 가장 힘들게 느껴지는 불행 중 하나가 바로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이 아닐까?

신출내기 건축가 마코토와 카페에서 일하는 히나. 비를 계기로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은 소소하게 둘 만의 행복을 꿈꾸며 어느 해변 마을에서 함께 살아간다. 하지만 비가 내리던 어느 날 , 오토바이 사고로 둘 다 생명이 위태로울 정도의 중상을 입게 된다. 눈을 뜬 두 사람 앞에는 자신들을 ‘안내인’이라고 밝힌 상복 차람의 남녀가 나타난다. 이들의 도움으로 두 사람은 20년이라는 수명을 더 받고 되살아나지만, 서로의 수명을 나누어 살아가야하는 너무나도 가혹하고 슬픈 나날이 시작된다. 일명 ‘라이프 셰어링’의 시작이다.

두 사람은 상대방의 수명을 빼앗으며 살아야만 한다. 내가 행복을 느끼면 상대방의 수명 중 1년이 줄어들고, 내가 불안, 초조함 등의 감정을 가지게 되면 상대방의 수명이 1년 늘어나게 되는 것이다.

“마안해! 바빠서 그랬어!”

히나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러더니 비명이라도 지르듯이 외쳤다.

“웃기지 마! 그것도 핑계라고 대는 거야!”(p. 115)

상대방의 행복이 곧 나의 불행이라니. ‘행복체질’ 을 소유한 히나에 비해서 마코토는 부정적인 사람이다. 그러다 보니 마코토의 수명은 자꾸만 줄어들게 된다. 자신에게 늘 행복함을 주었던 그녀의 미소가 이제는 자신의 수명을 단축시키는 무기가 되자, 그는 그녀의 모든 게 싫어지게 된다. 히나 역시 그의 마음을 느끼게 된다. 억지로 불행해 보이려고 호러영화도 보고, 행복한 감정을 억제하기 위해서 스스로 마음의 브레이크를 거는 등 노력을 하게 된다. 기적을 일으켜보려는 이런 그녀의 순수한 사랑 때문에 마음이 더 아팠던 것 같다.

수명을 빼앗을 때마다 히나는 늘 “미안해”하고 사과해 주었다. 몇 번이나 몇 번이나 사과해 주었다.

(p. 195)

마코토는 집 주인 와아타 씨와의 대화를 통해서 많은 반성을 하게 된다. 그동안 자신의 생명을 빼앗는 히나에 대한 분노에 집착한 나머지 사랑하는 사람의 생명을 빼앗아 오면서 느낄 히나의 괴로움에 대해서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는 그런 자신을 원망하면서 둘이 같이 행복해질 수 있는 하루하루를 살아가려고 최선을 다 한다. 자신의 꿈과 그녀를 위해서 말이다.

서로의 타임캡슐에 담긴 ‘미래의 편지’를 읽고 히나가 마코토의 꿈을 위해 자신의 남은 수명을 포기하게 된다. 이 후의 마코토의 최후의 선택이 참 .... 서로의 행복을 진심으로 바라는 마코토와 히나의 선택을 보며 나도 저런 사랑을 과연 할 수 있을까? 의문을 품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기 위해 필요한 단 두 가지 말.

‘미안해’와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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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가이드북 - 삶을 여행하는 초심자를 위한
최준식 지음 / 서울셀렉션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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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무덤 앞에서 울지 마세요. 나는 거기에 없습니다. 거기에 잠들어 있지 않답니다.

나는 천 갈래의 바람이 되어 저 넓은 하늘을 날고 있습니다.

가을에는 햇살이 되어 밭을 비추고 겨울에는 다이아몬드처럼 반짝이는 눈이 되겠습니다.

아침에는 새가 되어 당신을 깨워드리고 밤에는 별이 되어 당신을 지켜보겠습니다."


죽음 이후를 아름답게 표현한 한 편의 시이다. 이 시를 지은 사람이 누구인지 정확히는 알 수 없다. 미국 원주민이 지은 시라고 추정된다고 했을 때, 그들은 죽음이라는 단어가 내포한 의미를 제대로 알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죽는다고 이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지는 게 아니라는 것. 거대한 유기체인 이 세상에서 물, 불, 바람, 얼음의 형태로 우리는 살아있을 거라는 사실을 지혜로운 옛 사람들은 알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현대인들은 죽음 교육을 따로 받지 않는다. 죽음을 향해 매 시간 걸어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는 죽음을 회피하고 외면하려고만 할까? 어차피 맞닥뜨려야 한다면 제대로 알고 가야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다보니, 예전에 봤던 영화가 생각난다. [파니 핑크] 라는 독일 페미니즘 영화에서 여주인공은 우울증에 시달리면서 죽음에 두려움 때문에 미리 준비를 한다. 관에 들어가서 시체 체험을 하는 것. 그런데 두려움 때문에 대비를 하기 보다는 죽음을 자연스럽게 맞이하기 위해서 대비를 해야하지 않을까?


이 책 < 죽음 가이드북 > 은 죽음을 전혀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여러 사례를 통해서 보여준다. 논란의 여지가 있는 주제들이긴 하지만 영혼, 전생, 사후세계 그리고 임사 체험 등을 인정하고 있다. 예를 들어서 죽음학의 선구자인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박사는 호스피스 활동을 통해서 죽었다 살아난 환자들을 수없이 만났고 그들의 체험담을 들으면서 사후생을 인정한다.


인류 사회에 존재한 신비 종교가 중 영의 세계에 관한 한 가장 뛰어난 사람이라고 여겨지는 스웨덴의 에마누엘 스베덴보리. 그는 약 27년에 걸쳐 천사의 도움을 받아서 영계를 방문한다. 하계 ( 지옥 ) 과 천계 ( 천당 ) 등을 돌아다니며 많은 영화과 대화를 나눈 스베덴보리는 이런 체험을 정리해 여러권의 책을 출간한다. 그의 증언에 따르면 사람이 죽으면 일단 중간계에 머무르며 자신이 생전에 한 일을 스스로 검사한다고 한다. 이것을 " 라이프 리뷰 " 라고 하는데 살아있을 때 알 수 없었던 생의 의미가 이때 드러난다고 한다.


원불교를 창시한 소태산 박중빈 선생은 임종을 맞은 본인이 해야할 일과 가족이 해야할 일을 구분해서 설명해준다. 노인일수록 죽음을 이야기하고 싶어하지 않으니 젊을 때 미리 죽음을 준비해야 하고 당사자가 막 임종하려들때 가족들이 큰 소리로 울어선 안된다고 한다. 영혼은 에너지체이니 사람들의 생각에 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 소태산 박중빈 선생은 죽음 교육이 어릴 때부터 이루어져야한다고 주장한다. 죽음 교육을 전혀 하지 않는 한국 사회가 그의 이야기에 귀기울일 필요가 있다.


삶과 죽음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비타민 복용, 심한 운동, 머리 염색, 주름살 성형 등등은 늙어감을 감추려는 행동이다. 이런 산업은 죽음으로 향하는 늙음에 대한 두려움을 이용한 산업이라고 생각한다. 자연스럽게 순리에 따를 수 있는 지혜를 심어주려는 노력이 지금부터라고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책을 읽다가 또 아름다운 시를 만나서 적어본다. 암투병 중 더이상 치료가 불가능해 호스피스 병동으로 옮기는 어머니가 자식들에게 남기는 시이다.


" 자네들이 내 자식이었음이 고마웠네. 자네들이 나를 돌보아줌이 고마웠네.

자네들이 세상에 태어나 나를 어미라 불러주고 젖물려 배부르면 나를 바라본 눈길에

 참 행복했다네.

지아비 잃어 세상 무너져. 험한 세상 속을 버틸 수 있게 해줌도 자네들이었네.

병들어 하느님 부르실 때 곱게 갈 수 있게 곁에 있어 줘서 참말로 고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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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호의 죄 - 범죄적 예술과 살인의 동기들
리처드 바인 지음, 박지선 옮김 / 서울셀렉션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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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이 작가의 데뷔작이라니.. 놀랍도다. 미술계에서 큐레이터로 오래 일했던 사람이 이렇게 글을 잘 써버리면 전문 작가들은 어떡하라고... 갓 데뷔한 작가가 이토록 강렬하고 흥미롭고 또 자극적인 .. 그러나 막판 충격적 반전을 제시할 수 있는 범죄소설을 써낼 수 있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사실 미술계나 예술계에 대해서는 잘 몰라서 소설 초반은 약간 지루했지만, 소설 중반부부터는 내가 스토리를 이끄는 게 아니라 스토리가 나를 이끄는 느낌이 들었다. 단순치정범죄일거라고 예상된 살인사건에 어마어마한 규모의 범죄 집단이 연루되어 있었다니....


이 작품에 대한 뉴요커지의 비평에 따르면


" 뉴욕 미술계의 타락을 펄프 픽션의 형식으로 풀어낸 긴장감 넘치는 소설 "이라고 한다. 펄프 픽션이라는 장르가 따로 있나? ( 그 동명의 영화 말고 ) 싶어서 정의를 한번 찾아보았다.


펄프 픽션이란? 장르문학의 종합 선물세트라고 한다. 모험물, 탐정물, 미스터리, 판타지, 호러, 후 컬트, 로맨스, SF, 서부극, 전쟁물, 영웅물 등등 닥치는 대로 쓰인 글이고 강도, 살인, 성, 폭력, 약물을 소재로 하는 자극적인 범죄물이 대다수라서 " 전체적인 질 " 이 종이 질에 비길 만큼 " 낮았다 "라고 해서 펄프 픽션이라고 붙여졌다고 한다. 펄프 픽션 = 저질, 싸구려 소설.


확실히 고급스러운 장르는 아니지만,, 범죄소설은 범죄소설다워야 하는 법. 잘 만들어진 B급 범죄 영화 같은 < 소호의 죄 > 속으로 들어가 본다.


뉴욕의 예술계인 소호의 이름난 미술 작품 컬렉터인 어맨다 올리버가 얼굴에 총을 2방 맞고 머리가 날아간 채 발견된다. 어맨다의 전 남편인 필립이 곧 자신의 전 아내를 죽였다고 고백하지만, 그는 이미 치매 증상에 가까운 울프심 증후군이라는 병에 걸려있는 상태라서 사고가 정상이 아니다. 소설의 화자인 잭 ( 미술 컬렉터, 탐정 아님 ) 은 필립과 친구 사이지만 죽은 어맨다와도 좋은 친구 사이였다. 기억을 잃어가는 필립을 위해서 마치 빚을 갚는 기분으로 어맨다의 살해범을 추적하는 잭. 경찰의 지지부진한 수사를 뒤로하고 사립탐정 호건이라는 친구와 함께 사건을 추적한다.


" 안녕하십니까. 저는 필립 올리버이고 아내를 살해했다고 믿습니다. "

그는 연단에 올라서자마자 차분하게 말했다. 아내를 잃은 내 친구는 또 그 헛소리를 하고 있었다. 진짜인지 고도의 계산인지 알 수 없었다.

" 사람들이 그러는데 제 기억력이 예전 같지 않다더군요. "


그러던 와중에 어맨다의 내연남이었던 비디오 아티스트 폴 모스라는 남자의 존재를 알게 된다. 그리고 그가 약간 변태적 성향의 작품을 감상하거나 찍는다는 사실을 포착한다. 불법적인 포르노 시장 ( 아동 포르노 등등 )에 연루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단서를 얻는 잭. 조폭 영화에서 흔히 보듯이 범죄 집단에 몰래 잠입하여 그들을 추적한다. 추적하던 중, 폴이 필립의 첫 번째 부인이었던 앤젤라의 딸인 멜리사 ( 12살 )에게 접근을 시도했었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도대체 이 예술계에선 어떤 추악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예술과 외설의 경계가 아슬아슬하게 펼쳐지는 소설이다. 본인들은 예술 활동이라고 하지만 누군가의 눈에는 변태적 성욕이나 엽기적 행태로 보일 뿐이다. 또한 범죄소설이라고 하지만 약간 로맨스가 돋보이는 소설이기도 하다. 3번째 부인까지 두는 필립은 정신이 없는 상황에서도 죽은 2번째 아내 어맨다를 그리워하고 소설의 화자인 잭은, 자유연애를 주장했던 까다로운 프랑스 여자였던 전 부인 나탈리를 매우 그리워한다. 관능이 두드러지는 상황에서도 사랑에 대한 주인공들의 갈망이 살아있는 소설이다.


인간의 추악한 욕망으로 인해 벌어지는 범죄를 다루는, 다소 관능적이면서도 동시에 와일드한 하드보일드 범죄 소설 < 소호의 죄 >. 그러나 계속 삶과 죽음 그리고 사랑의 의미를 성찰하는 주인공 잭의 시각이 마치 철학자 같아서 작품이 깊이가 있다는 느낌도 든다. 탐정 호건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끝끝내 성당에 들어가기를 거부했던 잭은 인간의 자유 의지를 고집하고 싶었던 것일까? 그것이 어떤 대가를 치른다 하더라도?


걸쭉한 스튜처럼 여러 가지 재료와 맛이 한꺼번에 녹아든 요리 같은 소설이다. 끝까지 어맨다의 살인범이 누구인지 알 수 없게 만드는 묘한 장면을 연출하는 저자. 이 열린 결말마저도 독자들의 뒤통수를 서늘하게 만드는 그는... 진정한 범죄 소설 대가로의 첫발을 내디딘 것만큼은 틀림이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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