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호의 죄 - 범죄적 예술과 살인의 동기들
리처드 바인 지음, 박지선 옮김 / 서울셀렉션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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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이 작가의 데뷔작이라니.. 놀랍도다. 미술계에서 큐레이터로 오래 일했던 사람이 이렇게 글을 잘 써버리면 전문 작가들은 어떡하라고... 갓 데뷔한 작가가 이토록 강렬하고 흥미롭고 또 자극적인 .. 그러나 막판 충격적 반전을 제시할 수 있는 범죄소설을 써낼 수 있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사실 미술계나 예술계에 대해서는 잘 몰라서 소설 초반은 약간 지루했지만, 소설 중반부부터는 내가 스토리를 이끄는 게 아니라 스토리가 나를 이끄는 느낌이 들었다. 단순치정범죄일거라고 예상된 살인사건에 어마어마한 규모의 범죄 집단이 연루되어 있었다니....


이 작품에 대한 뉴요커지의 비평에 따르면


" 뉴욕 미술계의 타락을 펄프 픽션의 형식으로 풀어낸 긴장감 넘치는 소설 "이라고 한다. 펄프 픽션이라는 장르가 따로 있나? ( 그 동명의 영화 말고 ) 싶어서 정의를 한번 찾아보았다.


펄프 픽션이란? 장르문학의 종합 선물세트라고 한다. 모험물, 탐정물, 미스터리, 판타지, 호러, 후 컬트, 로맨스, SF, 서부극, 전쟁물, 영웅물 등등 닥치는 대로 쓰인 글이고 강도, 살인, 성, 폭력, 약물을 소재로 하는 자극적인 범죄물이 대다수라서 " 전체적인 질 " 이 종이 질에 비길 만큼 " 낮았다 "라고 해서 펄프 픽션이라고 붙여졌다고 한다. 펄프 픽션 = 저질, 싸구려 소설.


확실히 고급스러운 장르는 아니지만,, 범죄소설은 범죄소설다워야 하는 법. 잘 만들어진 B급 범죄 영화 같은 < 소호의 죄 > 속으로 들어가 본다.


뉴욕의 예술계인 소호의 이름난 미술 작품 컬렉터인 어맨다 올리버가 얼굴에 총을 2방 맞고 머리가 날아간 채 발견된다. 어맨다의 전 남편인 필립이 곧 자신의 전 아내를 죽였다고 고백하지만, 그는 이미 치매 증상에 가까운 울프심 증후군이라는 병에 걸려있는 상태라서 사고가 정상이 아니다. 소설의 화자인 잭 ( 미술 컬렉터, 탐정 아님 ) 은 필립과 친구 사이지만 죽은 어맨다와도 좋은 친구 사이였다. 기억을 잃어가는 필립을 위해서 마치 빚을 갚는 기분으로 어맨다의 살해범을 추적하는 잭. 경찰의 지지부진한 수사를 뒤로하고 사립탐정 호건이라는 친구와 함께 사건을 추적한다.


" 안녕하십니까. 저는 필립 올리버이고 아내를 살해했다고 믿습니다. "

그는 연단에 올라서자마자 차분하게 말했다. 아내를 잃은 내 친구는 또 그 헛소리를 하고 있었다. 진짜인지 고도의 계산인지 알 수 없었다.

" 사람들이 그러는데 제 기억력이 예전 같지 않다더군요. "


그러던 와중에 어맨다의 내연남이었던 비디오 아티스트 폴 모스라는 남자의 존재를 알게 된다. 그리고 그가 약간 변태적 성향의 작품을 감상하거나 찍는다는 사실을 포착한다. 불법적인 포르노 시장 ( 아동 포르노 등등 )에 연루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단서를 얻는 잭. 조폭 영화에서 흔히 보듯이 범죄 집단에 몰래 잠입하여 그들을 추적한다. 추적하던 중, 폴이 필립의 첫 번째 부인이었던 앤젤라의 딸인 멜리사 ( 12살 )에게 접근을 시도했었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도대체 이 예술계에선 어떤 추악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예술과 외설의 경계가 아슬아슬하게 펼쳐지는 소설이다. 본인들은 예술 활동이라고 하지만 누군가의 눈에는 변태적 성욕이나 엽기적 행태로 보일 뿐이다. 또한 범죄소설이라고 하지만 약간 로맨스가 돋보이는 소설이기도 하다. 3번째 부인까지 두는 필립은 정신이 없는 상황에서도 죽은 2번째 아내 어맨다를 그리워하고 소설의 화자인 잭은, 자유연애를 주장했던 까다로운 프랑스 여자였던 전 부인 나탈리를 매우 그리워한다. 관능이 두드러지는 상황에서도 사랑에 대한 주인공들의 갈망이 살아있는 소설이다.


인간의 추악한 욕망으로 인해 벌어지는 범죄를 다루는, 다소 관능적이면서도 동시에 와일드한 하드보일드 범죄 소설 < 소호의 죄 >. 그러나 계속 삶과 죽음 그리고 사랑의 의미를 성찰하는 주인공 잭의 시각이 마치 철학자 같아서 작품이 깊이가 있다는 느낌도 든다. 탐정 호건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끝끝내 성당에 들어가기를 거부했던 잭은 인간의 자유 의지를 고집하고 싶었던 것일까? 그것이 어떤 대가를 치른다 하더라도?


걸쭉한 스튜처럼 여러 가지 재료와 맛이 한꺼번에 녹아든 요리 같은 소설이다. 끝까지 어맨다의 살인범이 누구인지 알 수 없게 만드는 묘한 장면을 연출하는 저자. 이 열린 결말마저도 독자들의 뒤통수를 서늘하게 만드는 그는... 진정한 범죄 소설 대가로의 첫발을 내디딘 것만큼은 틀림이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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