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봐
세라 슈밋 지음, 이경아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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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역기능적이고 위태로운 가족. 따라서 이들 가족에게 일어난 일들이 그다지 놀랍지는 않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가족에게 일어난 사건은 끔찍하면서 소름 끼친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소설은 세라 슈밋의 데뷔작으로써 독자들에게 큰 공포와 전율을 전달한다. 미국 전역을 공포에 빠트렸던 희대의 살인 사건 " 리지 보든 " 미스터리를 문학적으로 재해석한 작품 -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봐 ( See What I Have Done ) 를 들여다보자

" 리지 보든 도끼를 들어 엄마를 40번 내리쳤다네

자신이 한 짓을 보고는 아빠도 41번 내리쳤다네 "

리지 보든은 다른 용의자가 뚜렷하게 없는 상태로 도끼에 찍힌 채 죽은 아버지의 곁에서 발견된다. 그녀 외에 집에 드나든 사람의 흔적이 없었기 때문에 범죄 혐의로 재판을 받은 리지 보든, 그러나 확실한 증거가 없기 때문에 그녀는 무죄로 풀려난다. 실화를 바탕으로 하였지만 세라 슈밋의 재창조로 이루어진 이 소설은 매우 섬세한 필치로 쓰였다. 이 이야기는 주인공 리지를 중심으로 쓰였긴 하나, 글은 여러 사람들의 입을 통해서 전달된다. 언니 엠마, 자녀들을 학대하고 통제적인 아버지 앤드류, 새엄마 애비 ( 특히 리지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 그리고 외삼촌 존과 그의 친구 벤쟈민이 바로 그들이다. 그리고 또 중요한 한 사람이 있는데 그녀는 바로 가정부 브리짓이다.

[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봐 ]는 한 운명적인 사건을 다루는 이야기이다. 도끼가 등장하고, 부모를 죽였을 수 있을 패륜적인 이야기라 한순간에 독자들을 사로잡는다. 이 소설은 한 범죄로 시작되는데, 어느 날 아침 앤드류 보든은 거실에서 시체로 발견된다. 그리고 외출한 줄 알았던 새엄마 애비 보든 마저 2층에서 살해된 채 발견된다. 도대체 어떤 일이 발생한 것일까? 사람들은 리지 보든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첫번째, 아버지를 처음으로 발견한 사람이 바로 그녀이고 둘째, 그녀는 평소에 다소 이상한 행동을 하는 것으로 비치곤 했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리지를 범인으로 볼만한 정황적인 부분이 많았다. 통제적이고 억압적인 앤드류와 차가운 새어머니 애비가 이끄는 가정 안에서 리지는 결코 사랑받는다고 느끼지 않았고 항상 관심과 애정을 갈망했다. 그런 역기능적인 가족 안에서 그녀는 당연히 비정상적인 마음을 가질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실제로 리지가 속삭이듯이 말하는 것을 들어보면 뭔가 사이코패스? 쏘시오 패스? 같은 느낌이 든다. 제대로 된 사랑과 애정을 받지 못해서 정상적으로 성장하지 못한 리지가 과연 심리치료를 받을 수 있었을까? 당연히 불가능했을 것이다. 언니인 엠마가 리지를 안아주고 위로하려고 했다 하더라도 한계가 있었을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불행한 가정은 나름의 이유가 있는 법이다.

하지만 범죄가 발생했을 당시 집에 리지만 있지는 않았다. 리지가 아버지를 발견했을 그녀는 큰소리로 가정부 브리짓을 불렀었고 ( 브리짓이 집에 있었다는 증거 ) 집에는 아무도 모르게 한 사람이 숨어 있었다. 그는 바로 벤쟈민이라는 사람이었는데 그는 외삼촌 존과 친구 사이였고, 그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기 위해 소리도 내지 않고 숨어있었다. 그가 집에 숨어든 이유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이 소설은 리지, 엠마, 브리짓 그리고 벤쟈민이 돌아가면서 전달하는 시점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이로 인해서 독자들은 이 사건을 중심으로 봤을 때 각 개인이 어떻게 느꼈는지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면에서 매우 효과적인 듯하다. 독자들은 그들의 생각과 느낌을 통해서 그들이 느끼는 것을 느끼게 되므로 필연적으로 이 이야기의 궁극적인 피해자가 누구인지 궁금해할 수밖에 없게 된다. 작가 세라 슈밋은 이야기 속에서 독자들에게 바로 이 점을 물어보는 듯하다. 도끼 살인의 피해자는 부모이지만 이 사건의 실질적인 피해자는 과연 누구란 말인가?

책을 읽는 내내 나는 리지와 함께 사건을 재현하는 것처럼 느낄 만큼 생생한 소설이다. 그동안 나는 그녀의 광기가 내 안에서 휘젓고 다니는 것을 느꼈다. 뭔가 불쾌하고 음습한 느낌이어서 책의 막판 부분에는 우울감까지 느껴졌다. 매우 훌륭한 책이긴 하나 리지의 이상한 정신 상태에서 살아 가기는 매우 힘들다는 생각이 든다. 리지 보든, 그녀가 실제로 도끼를 집어 들고 자신을 키워주고 길러준 부모를 내리친 것일까? 미친 듯 보이는 그녀의 광기로 봤을 때 의심스러운 면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세라 슈밋은 리지의 광기가 어디서 비롯되었는지를, 그녀의 가족 관계와 내력을 통해서 잘 보여주고 있다. 책을 다 읽고 난 지금은, 살해범이 누구인지 도저히 확신할 수가 없다. 아마도 저자의 의도가 그것이었던 것 같다. 그녀의 꼼꼼한 연구와 조사 덕분에 묻혀있던 밋밋한 살인 사건에 생생한 숨결이 불어넣어진 듯하다. 어둠과 비밀 그리고 저주가 가득한 미스터리를 만나보고 싶다면 오늘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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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형사 동철수의 영광
최혁곤 지음 / 시공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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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한 사건을 다루는 동시에 유쾌함을 잃지 않는 작품이라니 꼭 읽어보고 싶은 책이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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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건 볼품없지만 트리플 3
배기정 지음 / 자음과모음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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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다 보니, 나의 젊은 시절 한때가 떠올랐다. 한국에선 도저히 못 버틸 것 같아서 중동의 한 지역으로 여행 겸 봉사활동을 떠났었는데 거기서 사실 외국인보다 한국인을 더 많이 만났다. 각자 사연이 있었지만 다들 공통점이 하나 있었는데, 일종의 현실 도피형 (?) 인간들이 많았다는 점. 내가 뭘 해야 할지 모르겠고, 한국에서는 버틸 수 없을 것 같고, 여기 말고 거기에는 다른 게 있겠지... 하고 건너와봤지만 글쎄... 다들 현실은 꿈보다 더 견고하고 높은 장벽이라는 것을 깨닫고 조용히 고국으로 돌아갔다.

한국에서 열심히 미래를 준비하고 있던 또래들의 눈에는 한심하기 짝이 없는 찌질한 인간들로 비쳤을 수도 있다. 아니, 진짜 찌질 그 자체였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도 한참 동안이나 내가 무엇을 해야 하고 어떤 사람이 돼야 하는지에 대해서 방황하고 고민을 거듭했다. 쉽게 풀리지 않던 나의 청년 시절... 그러나 하나는 확신할 수 있는 게, 그 방황과 고민이 사실 헛된 것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이제 어른이 되어보니 내가

많이 단단해지고 확고해졌다는 걸 느낀다 ( 물론 그럴 나이가 되어서 그렇겠지만 )

이 책 [ 남은 건 볼품없지만 ]에는 3가지 단편이 등장한다. 책 제목과 같은 단편 1부, 그리고 [ 끝나가는 시절 ] 과 [ 레일라 ]라는 작품까지 포함하여 3편이다. 이 작품들 모두 불투명한 미래를 끊임없이 걱정해야 하는 20대 혹은 30대 초반이 등장한다. 그들은 오랫동안 누군가의 밑에서 빛을 못 보고 허드렛일만 주야장천 하기도 하고 음악의 꿈을 꾸었다가 어머니의 병환에 현실과 타협하기도 한다. 여자친구의 집에 얹혀살다가 바람을 들켜서

쫓겨나는 주제에 여자 친구의 비싼 가방을 훔쳐서 팔아먹기도 하는 인간도 있다 ( 물론 자신이 사준 선물이겠지만 ) 저자의 현실이 녹아있는 작품들이라서 그런 것일까? 정말 실감 나는 이야기들이라 읽는 내내 정말 재미있었다.


첫 번째 작품인 [ 남은 건 볼품없지만 ]에는 관계가 명확하지 않은 커플 후재와 주인공 섞정이가 ( 물론 진짜 이름이 아님, 후재와 몸을 섞는 사이라고 그냥 그렇게 부름 ) 등장한다. 그런데 그들이 모텔에서 겪는 소동은 어쩌면 심각하게 다루어져야 할 범죄 ( 데이트 폭력, 인질극 ) 임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묘사하는 방식은 전혀 심각하지 않다. 오히려 월미도에 있는 탬버린 놀이기구에서 텐션을 이기지 못한 사람들이 이리 뒹굴고 저리 뒹구는 아비규환을 봤을 때와 같은 실소를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병원에 누워 있는 사람이 계속 깨어나지 않는 상황이 왜 이리 심각하지 않은가? 그렇게 누워 있다가도 갑자기 눈을 반짝 뜨며, " 섞정아! 나 꿈에서 진짜 스펙터클한 영화를 찍었어! "라고 말할 것 같다.

시를 써서 등단하고도 백수처럼 지내면서 어머니에게 폭력을 가하는 아버지를 견디기 힘들었던 주인공 섞정. 그런 아버지 때문에라도 예술 하는 남자는 쳐다도 보지 않겠다고 결심했지만, 의외로 그녀가 끌리는 건, 온통 예술 한답시고 똥폼 좀 잡는 남자들이다. 일본 유학 시절 만난 남자 찰스가 그랬고 ( 결국 월세 안 내고 도망감 ) 가끔 침대를 공유하는 이상한 관계인 후재는 예쁘고 어린 여자 친구를 두고 있으면서도 주인공을 그런 식으로 만난다. 그러나 주인공은 후재의 삶을 부정하거나 욕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유롭고 충실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자신의 삶을 사랑하는 그를 있는 그대로 인정한다. 가오를 심하게 잡으면서 알파치노의 눈빛을 닮으려 하고, 고민이라도 토로할라치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 후재를, 그녀는 있는 그대로 사랑했나 보다. 섞정은 후재가 깨어나면 이렇게 말해주려 한다.

" 잠들어 있는 후재가 도주범 발리송을 잡는 데 열을 올리는 것 말고, 열세 살로 돌아가 깡촌의 논에서 트랙터를 몰고 다니는 꿈을 꾼다면 좋을 것 같았다. 운전이 서툴러 아버지에게 욕을 실컷 얻어먹는 꿈을 꾼다면, 그래서 진저리를 치며 눈을 뜬다면, 서른세 살의 후재가 바보처럼 겁에 질린 눈을 하고 나를 바라본다면. 그런다면, 나는 잠자코 후재의 손을 잡을 생각이었다. 후재야, 이젠 너를 괴롭히는 괴물 트랙터는 없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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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사고 전문 삼비 탐정 - 2021년 한국 추리 문학상 대상
윤자영 지음 / 북오션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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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영웅들이 많다. 멀게는 영화 속 어벤저스부터 가까이는 아파트 안팎을 관리해 주시는 경비원 아저씨까지. 그러나 영웅의 역할은 뭐니 뭐니 해도 안타까운 입장에 처한 약자를 돕는 것 아니겠는가? 지구를 구하는 어벤저스도 멋있긴 하지만 석연치 않은 교통사고로 인해서 몸과 마음이 망가져버린 피해자들을 돕기 위해서 소매를 걷어붙인 영웅도 멋있을 것이다. 그런 영웅이 등장하는 책이 있는데, 제목은 [ 교통사고 전문 삼비 탐정 ]이고 주인공인 그 영웅의 이름은 박병배, 혹은 이름의 이니셜을 딴 BBB, 즉 삼비 탐정이다.

사실 그는 현재 최가로 변호사를 도와서 도로 교통 전문 감정사로 일하고 있긴 하지만, 원래 그의 직업은 교사였다. 같은 교사 부부와의 모임 후, 교차로를 건너다가 신호를 무시한 채 달려온 차에 치여서 아내는 전신마비를 그리고 아들은 정신지체를 얻게 된다. 이에 절망한 아내는 스스로 세상을 등지게 되고 하루아침에 삶과 가정이 나락에 빠지게 된 박병배는 복수심에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했다가 교도소에 갇히고 그때 그를 도와준 국선 변호사 최가로의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는 것이다.

4편의 단편이 실린 이 연작 추리 소설에는, 왠지 낯이 익은 이야기가 한 편 실려있었다. 그 이야기의 제목은 바로 [ 외국인 아내 보험 살인 ]이다. 그런데 제목만 봐도 머리를 스쳐가는, 실제로 발생한 사건이 있었다. 캄보디아에서 온 젊은 부인을 조수석에 태우고 졸음운전을 했다가 사고를 낸 한 남자 이야기. 우연의 일치인지 혹은 필연의 결과인지, 그의 아내는 그가 일으킨 교통사고에 의해 그 자리에서 사망을 했지만 운전자였던 그는 가벼운 찰과상만 입은 채 살아남았다.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더욱더 중요한 것은 이 사고로 인해서 그가 타낼 보험금은 100억 원에 가깝다는 것.. 뭔가 지독한 음모의 냄새가 가득한 사건이라고 생각했는데, 저자도 그렇게 생각했는지 [ 외국인 아내 보험 살인 ] 은 그때 그 사건을 바로 떠올릴 수 있을 정도로 비슷하게 전개되는 이야기였다.

안타까운 점은, 실제 사건과 마찬가지로 심증은 있지만 물증이 부족하다는 점이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데 걸림돌이 된다. 그러나 교사로서, 물리 공학적 지식을 가진 박병배는 사건이 일어난 날의 날씨와 도로 상황 등을 파악해나가면서 사건의 진상을 밝힌다. 여기서 정말 예상치도 못했던 반전이 등장하는데 또 얼마 지나지 않아서 더 큰 반전이 등장한다. 혹시나 실제 사건에 대해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이 이야기가 대단히 흥미로울 것이라 장담한다.

이외에도 1부 [ 누나의 자살 ]이라는 편에서는 이별의 아픔을 극복하지 못하고 도로가에 있는 교량에서 뛰어내린 한 여성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그녀는 남자 친구와 펜션에 놀러 갔다가 이별을 한 후, 혼자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가드레일을 받는 사고를 냈고, 이상하게도 사고가 난 지점에서 멀리 떨어진 한 교량에서 추락을 했는데 다른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경찰은 누나가 자살을 했다는 결론을 내리고 수사를 종결지으려 한다. 그러나 과학과 논리적 지식으로 가득 찬 박병배의 눈에 비친 그녀의 마지막 모습은 타살 가능성을 암시한다.

이 책 [ 교통사고 전문 삼비 탐정 ] 을 통해서 억울한 교통사고를 겪었거나 앞으로 겪게 될 사람이 많겠구나 생각을 했다. 어차피 차는 늘어나면 늘었지 줄어들지는 않을 것이므로. CCTV 나 블랙박스와 같은 첨단 기기가 잘 갖추어졌다는 데에서 안심을 했고 우리 현실에서 영웅 박병배와 같은 분들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익에 눈멀기보다는 순수하게 피고인을 위해 노력하는 국선 변호사 최가로와 자신의 불행을 계기로 남을 돕는 따뜻한 심성의 소유자 박병배, 이들 커플의 티키타카도 매우 재미있는 소설이다. 주로 놀리고 재미있어하는 쪽은 최가로 이지만 박병대는 그런 그녀의 모습마저도 좋아하고 믿고 신뢰하는 듯 보인다. 앞으로도 이들 팀의 활약이 정말 기대되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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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워크
스티븐 킹 지음, 공보경 옮김 / 황금가지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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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낮잠을 잤고 악몽을 꿨다. 거리의 사람들은 모두 무표정하게 걷고 있었고 서로에게 관심이 없었다. 어떤 사연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가족들은 지독하게 아프고 외로우면서도 서로를 외면하고 있었다. 너무나 생생한 꿈이어서 그런 감정이 누군가를, 혹은 나 자신을 죽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그 순간 나는 잠에서 깨어났고 현실에서는 내가 전혀 외롭지 않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그리곤 왜 이런 꿈을 꿨는지 곰곰이 생각해봤더니 그 전날 스티븐 킹 옹이 가명 리처크 바크만으로 쓴 책 [ 로드 워크 ] 읽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책 [ 로드 워크 ] 에는 흥미로운 사연이 있다. 미져리나 캐리와 같은 장르 소설의 대가, 스티븐 킹이 싸구려 통속 소설을 쓴다고 비판하는 비평가들의 코를 납작하게 하려고 썼다는데, 와우.. 깜빡 속을 뻔 했다. 평소에 스티븐 킹 소설의 매력인 – 공포와 어둠 그리고 악의 정수 –을 너무나 좋아하는데 그 부분을 살짝 비껴간 소설이니까. 이 소설도 한 인간의 파국을 다룬다고 하는 면에서는 장르로 볼 수도 있겠으나, 주인공 바튼 도스의 내면에 주로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에 굳이 분류하자면 심리 스릴러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주인공 도스는 한 세탁 회사에서 중간 관리자로 일하고 있다. 나름 성실하게 일해왔고 가정에 충실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날 청천벽력같은 소식이 들려온다. 예상치 못했던 고속도로의 건설에 집과 회사가 위치한 부지가 포함된 것. 아들 찰리의 죽음과 그로 인한 아내와의 거리감 때문에 안그래도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던 도스의 심리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 바로 그때부터이다. 회사가 이전 하는 순간 그는 일자리를 잃게 될 것이고 다른 집으로 이사가게 된다면 아들 과의 소중한 추억을 잃게 된다.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다가, 폭주하기 시작하는 도스. 총을 사들이고 화염병을 만들기 시작하는데.....

마치 대낮에 술취한 한 아저씨가 자신의 삶을 넋두리하듯 늘어놓는 듯한 그런 소설인 [ 로드 워크 ] 그는 머리 속 존재들과 끊임없이 대화한다. 이 책이 다중 인격, 즉 해리성 인격 장애를 가진 남자에 대한 스릴러인가? 하고 궁금해하면서 끝까지 책을 읽었는데, 그건 아니었다. ( 그래도 어느 정도는 해리성 장애가 아닐까? ) 그렇다기 보다는 미국이라는 사회를 정면으로 비판하고 있는 글이라는 생각은 들었다. ( 스티븐 옹을 비판한 콧대높고 위선적인 비평가들을 포함하여 )

주거 환경을 개선한답시고 혹은 삶의 질을 높인답시고 추진했던 개발 때문에, 소박하지만 그래도 나름 행복했던 삶이 부정당했던 경험이 누군가에겐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주인공 바튼 도스는, 비록 아들 찰리는 없지만 아들과의 추억이 가득한 집을 강제로 철거당해야하고 예전 사장님의 따뜻한 애정을 받으며 다녔던 회사가 단지 이익에 의해서 움직이는 장소가 되어버린 상황을 참을 수가 없다. 문명이란게 인간을 위한 것인가? 아님, 인간이 문명에게 지배당하고 있는 것인가?

“ 야만인들이라.. 저들이야말로 야만인이었다.

정부 놈들은 사람들을 집에서 내쫓고 물어뜯고 삶을 파괴했다.

어린 소년이 재미삼아 개미집을 걷어차듯이 남의 인생을 박살 내 놓았다 ... ”

결론을 이야기하자면, 이 책 [ 로드 워크 ] 는 결코 읽기 쉬운 책은 아니었다. 이리 저리 방황하며 총을 사들이고 회사의 공장 이전 계약서에 서명을 하지 않거나 곧 철거를 앞두고 있으면서도 이사갈 집을 알아보지 않는 이상한 (?) 한 아저씨의 넋두리가 조금 지루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점점 어둠과 살기를 불러올 것 같은 이 아저씨의 움직임에 눈길이 갔다. 인간을 위하는 척, 사람을 돌보는 척 하지만 정작 본질적인 부분을 돌아보지 않는 미국 정부와 이 세상에 곧 불을 지를 것 같은 느낌이랄까? 불안하고 초조하고 어두운 그의 심리에 빠져들다 보면 시간가는 줄 모르고 책을 읽게 된다. 그러나 너무 몰입하지는 말길... 나처럼 한 낮에 악몽을 꿀 수도 있으니. 아니다.. 어쩌면 현대인은 모두 눈 뜬 채 악몽을 꾸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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