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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단어에는 이야기가 있다
이진민 지음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24년 9월
평점 :
의미의 정수를 찾고,
사유의 확장을 돕는 철학자의 단어 산책
언어에는 그 나라의 문화와 철학이 깃들어있다. 따라서 언어를 공부하다 보면 그 나라에 직접 가지 않더라도 분위기를 조금 느낄 수 있다. 책 [모든 단어에는 이야기가 있다]는 철학자인 저자 이진민씨가 특히 좋아하는 독일 단어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아마도 각 단어에 녹아들어 있는 독일 문화와 정서,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좀 낯설지만 흥미진진하게 다가올 이야기들을 소개해놓은 듯하다. 한국과 미국에서 바쁘게 살다가 지금은 독일 뮌헨 근교에 있는 시골에서 느긋한 삶을 누리고 있다는 이진민 저자. 그녀가 독자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는 과연 무엇일까?
이 책에는 총 16개의 독일 단어들이 소개된다. 그중에는 ARBEIT, 즉 아르바이트와 같은 우리에게 익숙한 단어들도 있지만, FEIERABEND 파이어아벤트나 SERVUS! 제르부스와 같은 낯선 단어들도 있다. ARBEIT (아르바이트)의 경우, 우리나라 사람들은 "알바"라는 축약된 표현을 많이 쓰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시간제 근무라는, 약간은 가벼운 의미로 쓰이는 반면, 실제 독일에서는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근무를 뜻한다고 해서 놀랐다. 앞으로는 '아르바이트'라는 단어를 쓸 때, 원래 독일어에 담긴 노동에 대한 진지한 태도를 떠올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독일에서든 한국에서든 아르바이트, 즉 노동이라는 단어가 더 이상 슬퍼지지 않기를 바란다. 그것이 한국에서의 아르바이트의 의미 건, 독일에서의 아르바이트의 의미 건 말이다."
독일 하면 생각나는 것? 바로 맥주와 소시지. 나는 젊은 시절부터 맥주보다는 독일에서 파는 소시지를 꼭 한번 먹어봤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는데, 이 책에 옥토버페스트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옥토버페스트는 10월을 뜻하는 옥토버와 축제를 뜻하는 페스트가 합쳐져서 생긴 말이라고 한다. 여기서는 Prost! (프호스트) 라는 독일 단어가 소개되는데, 이 말은 바로 "건배"란 뜻이다. 이 대목에서 흥미로웠던 내용은 바로 독일 사람들이 맥주를 즐겨 마실 수밖에 없었던 역사였다. 과거에는 세균에 오염되지 않은 식수를 구하기가 너무 어려워서 집집마다 맥주를 빚었다는 사실. 특히 맥주를 만들 때 끓이고 발효하는 과정을 거치므로 비교적 마시기에 안전해서 의사들이 많이 권했다고 한다.
"다시 말해서 이들에게 맥주는 건강 음료였던 것이다. 내 아이의 건강을 위해 사랑으로 맥주를 준비하는 엄마라니, 당장 잡혀갈 것 같은 느낌이지만 당시의 생활상으로는 자연스러웠던 모양이다."
개인적으로는 소개된 여러 단어들 중에서 제일 인상 깊었던 것이 바로 KINDERGARTEN (킨더가르텐), 즉 유치원이다. 독일에서 처음 아이들을 위한 유치원 제도가 만들어졌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언뜻 들었던 것 같은데, ( 바로 이 책에 있었다 ) 이 단어에 담긴 유치원의 의미는 실로 깊이가 있었다. 아이들을 의미하는 Kinder 와 정원을 의미하는 Garten이 합쳐져서 만들어진 단어. 즉, 아이들이 뭔가 배우는 곳이라기보다는, 흙과 물과 풀이 어우러진 곳에서 온몸으로 그것들을 만끽하며 체험하고 배우는 곳이라는 의미라고 저자는 말한다.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는 시스템을 구축한 독일인들의 세심함이 느껴진 대목이다.
여러 단어들을 통해서 독일의 문화와 철학 등을 소개하는 책 [모든 단어에는 이야기가 있다] 독일이라는 나라에 한 번도 가보지 못했지만, 이 책을 통해서 짧은 여행을 해 본 느낌이다. 게다가 단순히 문화를 가볍게 소개하는 글이라기보다는 언어에 담긴 독일이라는 나라의 역사와 철학 등을 소개하고 있어서 더 깊이 있게 느껴지기도 한다. 솔직히 말하면 독일 문화에 대한 깊이 있는 강연을 들은 느낌도 든다. 우리나라의 경우 '빨리빨리' 문화가 있었기에 이렇게 큰 경제적인 발전을 이룰 수 있긴 했으나 사실 사유와 철학이라는 것이 삶에 깃드는 것을 방해하기도 한다. 철학자 이진민 작가의 책 [모든 단어에는 이야기가 있다]는 독일어에 깃든 철학과 문화 등을 소개하면서 독자들에게 세상을 보는 눈을 좀 더 넓힐 기회를 주는 것 같다. 깊이 있고 격조 높은 독서 시간을 선물해 준 좋은 책 [모든 단어에는 이야기가 있다]
* 출판사에서 받은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