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반야바라밀경
해안 스님 지음 / 불서보급사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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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대한 팔만대장경 가운데 단 한 권의 경전만을 고르라면 단연코 나는 <금강경>을 고를 것이다. 일찍이 선종의 소의 경전이자 동북아시아 불교권에서 가장 큰 사랑을 받은 경전으로 <반야심경>보다는 길면서 <법화경>이나 <화엄경>보다는 짧고, <능엄경>보다는 단순명쾌한 것이 특징이다.

 

<금강경>이 요지를 한 마디로 말하자면, 제32분의 '불취어상 여여부동(不取於相 如如不動)'이라 할 수 있다. 부처, 여래, 아뇩다라삼먁삼보리가 다름 아닌 무상(無相)이요, 무주(無住)요, 따라서 무아(無我)이다. 따로 그러한 물건들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이름이 부처, 여래,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무상, 무주, 무아다. 제1분 법회가 열린 이유에서 석가 세존이 밥 때가 되어 가사 입고 발우 들고 사위대성에 들어가 밥을 빌어 본래 처소로 돌아와 밥 드시고 발 씻고 자리에 앉은 것에 고스란히 <금강경>의 대의가 다 드러나 있다.

 

<금강경> 해설서는 부지기수이나 그 가운데 호남 제일의 선사였던 해안 큰스님의 <금강반야바라밀경>은 지금으로부터 약 40여 년전에 출간되어 세로쓰기의 불편함과 문체의 예스러움이 있으나 선사의 온화하면서도 준엄한 선지가 잘 드러난 명저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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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 소여의 모험 펭귄클래식 35
마크 트웨인 지음, 존 실라이 작품 해설, 이화연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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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애 최초로 책 읽기의 즐거움을 느낀 것이 언제일까? 아마 어린 날 재미있는 책에 푹 파묻혀 시공간의 감각을 잃어버린 경험을 하게 되었을 때였으리라. 그런 즐거움을 선사한 책들 가운데 한 권이 바로 마크 트웨인의 <톰 소여의 모험>이다. 

 

불쌍한 폴리 이모와 사고뭉치에 영악하기 짝이 없는 톰, 그리고 얄미운 범생이 시드, 톰의 단짝 허크와 그의 풋사랑 베키... 벌써 수십 년 동안 그들의 존재를 잊고 살아오다가 문득 다시 펼친 책장 속에서 여전히 옛 모습 그대로 이야기 속에 존재하는 그들을 만나고 어릴 적의 감동이 되살아 남을 느꼈다.

 

그땐 그 얼마나 톰과 같은 아이가 되고 싶었던가? 산 언덕배기 동굴이 아지트가 되고 몇몇 친구들과 상상 속의 인물로 변신하여 뛰놀던 그 시절에 말이다. 나와 똑같은 생각과 느낌을 가진 톰을 책에서 발견하고 얼마나 반가웠던가? 변함없이 생기발랄한 톰의 모습을 보면서 그 사이 나는 어느새 폴리 이모나 도빈스 선생님처럼 딱딱하게 굳어버린 어른이 되어버렸음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

 

내게도 톰과 같이, 어린 시절의 나 같이 어른들이 일방적으로 세워놓은 규칙이나 관습에 반항하는 10대의 자식이 있다. 그의 톰스러움, 허크스러움을 왜 그리 허용하고 인정하기가 어려운 것인지... 어째서 재수 없고 얄밉고 멋대가리 없는 시드 같은 아이들로만 만드려고 하는 것인지... 책을 통해 다시 만난 톰이 내게 묻는 듯하다. 어쩌다가 그렇게 되었느냐고, 다시 자신과 함께 뗏목을 타고 미시시피강을 따라 머나먼 항해를 떠나지 않겠느냐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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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찾아 떠나는 마음여행
김철원 지음 / 북이데아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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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찾아 떠나는 마음여행>은 동양과 서양 종교의 소통과 융합을 통해 새롭게 기독교를 바라보게 해 주는 책이다. 정통 기독교 교리에 구속된 사람들에게는 분명 이단사설로 보일 것이 분명하지만 조금이라도 열린 신앙과 종교적 심성을 가진 이들에게는 너무다 당연하고 평범할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실제로 다석 류영모 선생으로부터 관옥 이현주 목사에 이르기까지 동양적 일원론의 입장에서 서구 기독교 신앙의 이원론을 극복하고 기독교 신앙을 새롭게 해온 이들은 많이 있어 왔기 때문이다.

 

저자는 오늘날 정통 기독교가 빠져 있는 문제점을 하나님와 우리 사이의 격절성(분리)에 두고 장자를 비롯한, 불교, 성리학의 일원론적 관점에서 그 해결책을 마련하고 있다. 특히 불교의 위빠사나(알아차림) 수행을 차용하여 개신교가 카톨릭과 결별하면서 잃어버린 수도사들과 사막 교부들의 수행을 되살리려 한 점이 인상적이다. 하지만 정통 기독교인들에게는 상당히 거북하고 낯선 책이면서, 불교도에게나 선 수행자에게는 친숙하면서도 다소 어색한 느낌을 주는 면이 있다.

 

자신의 논리 전개를 위한 방편이었겠지만, 격절성을 극복하여 일(하나)의 관점, 분별을 넘어선 통합의 관점으로 기독교 교리를 해석하려 하면서도, 서양의 이분법과 동양의 일원론이란 도식적 분별을 극복하지는 못하고 있다. 게다가 알아차림 수행을 통해 자기 안에 이미 존재하는 하나님을 체험하는 문제에 있어서도 여전히 미묘한 이분법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진정 일의 세계, 하나님과 나 사이의 격절성이 하나의 착각이라면 수행이란 점진적 과정이 끼어들 여지가 없는 것이다. 수행이 필요하다는 주장의 이면엔 출발점으로서의 불완전함과 도달점으로서의 완전함이란 분별이 있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종교의 차이를 넘어 모든 구도자들이 넘기 힘든 고개 가운데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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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겁인 空劫人 - 한국의 유마 백봉 거사와 제자들
최운초 지음 / 비움과소통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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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겁인>은 한국의 유마 거사라 불리는 백봉 김기추 거사에게 가르침을 받은 제자들의 인터뷰를 모은 책이다. 백봉은 이제까지 출가 수행자보다 한 단계 낮은 것처럼 인식되었던 재가자들의 수행과 깨달음을 새롭게 바라 볼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여 재가 선풍을 크게 일으킨 대 선지식이었다. 50대 중반의 늦은 나이에 불법을 만나 불과 1년도 되지 않아 큰 깨달음을 얻어 승가와는 다른 재가의 수행과 방편을 개발하여 많은 구도인들의 눈을 밝혀 주었다.

 

인터뷰에 나선 11명의 제자들의 회상을 통해 7~80년대 백봉이 이끌던 보림선원의 가풍과 공부 지도법이 비교적 구체적으로 그려질 수 있었다. 그리고 공부인들 사이에서 갑론을박이 많았던 보림선원의 인가 방식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도 다른 재가 수행단체나 지도자들은 물론, 그 아래서 공부하는 학인들에게 많은 시사점을 준다. 과연 학인에 대한 인가가 어떤 의미인가, 그것이 학인 자신이나 다른 도반, 그 단체에 끼치는 영향은 긍정적인가, 부정적인가? 

 

늦은 나이에 법을 펴게 되고, 특히 세속의 삶을 영위하며 출세간의 공부를 하는 재가자들을 고려하여 백봉은 나름대로의 인가 방식을 고안했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학인의 공부에 대한 점검과 인가가 너무 쉽고 인가 이후의 공부 지도가 두드러지게 보이지 않는다는 점을 개인적으로 지적하고 싶다. 현재 제자들 중 세상에 나와 다른 학인을 지도하는 이는 30여 명의 인가 제자들 중 서넛에 불과한 것으로 알고 있다. 여러 사정이 있겠으나 허술한 인가 방식과 사후 지도의 미흡이 이런 결과를 초래한 것은 아닌지 출재가를 막론하고 수행자라면 다같이 궁리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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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화선 창시자의 선(禪) - 하 - 대혜의 간화선
김태완 지음 / 침묵의향기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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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화선 창시자의 선> 하권은 대혜어록에 나타난 대혜의 간화선과 이후 무문혜개, 고봉원묘, 몽산덕이의 간화선을 비교 연구한 책이다. 저자는 간화선의 창시자인 대혜의 간화선을 원형으로 삼아 무문, 고봉으로 갈수록 본래의 간화선법이 변형되어 몽산에 이르러서는 상당 부분 변질되었다고 보고 있다.

 

물론 타당한 추론이라 할 수 있으나 조금 다른 관점에서 살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저자 역시 자신의 선 체험을 바탕으로 대혜의 간화선을 분석하고 거기에 대한 해설을 붙이듯, 대혜에 의해 고안된 간화선법도 그후 많은 공부인들의 공부 과정 속에서 얼마든지 변형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본다. 특히 무문과 고봉이 보여주듯 화두의 기능이 애초 대혜가 의도했던 망상을 물리치는 방편보다 공부인의 의문을 촉발하고 의심 덩어리를 형성하는 쪽으로 발달한 것은 긍정적인 측면에서의 진보라 볼 수 있다.

 

몽산의 경우도 물론 육조 이후의 조사선과 대혜의 간화선법과는 많은 부분 다르고 북종의 점수적 특징이 드러나 있지만 그 역시 몽산이란 한 공부인의 체험에서 우러나온 것이다. 반드시 어느 하나의 방편만이 원형이고 거기에서 벗어나면 잘못된 것이란 관점은 역시 하나의 틀을 제시하는 것일 뿐이다. 저자도 동의하듯 선은 격외선이다. 일정한 형식이나 틀을 주장하는 순간 어긋나는 것이다.

 

저자의 이번 노작은 그동안 아무런 반성없이 대혜와 고봉, 몽산의 간화선을 같은 것으로 치부하고 공부해 왔던 우리 수행풍토에 신선한 문제 제기를 한 것이다. 이를 통해 무조건 좌복에 앉아 선정에 들어가려고만 한다거나 화두를 염송하여 동정, 몽중, 오매에 일여한 경계를 얻으려고만 하는 맹목적인 선 수행을 다시 성찰할 수 있는 기회가 만들어진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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