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판에 적힌 시 한 편 국어 선생님의 시 배달 3
오연경.이옥근.임동민 엮음 / 창비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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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시를 읽은 적이 언제였던가? 한 때 시를 쓴답시고 쓰디 쓴 청자 담배 꼬나물고 숱은 밤을 지새웠지만 정작 시는 단 한 줄도 쓰지 못했던 젊은 날도 있었거늘. 십 하고도 수 년을 시가 무슨 밥 먹여주냐는, 내가 경멸해 마지않던 속물들마냥 나도 어느새 시보다는 밥을 가치의 중심에 두고 그렇게 살아왔나 보다. 

 

명색이 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는 선생으로 해마다 몇 편의 시를 접하지만, 온갖 수사법과, 심상과, 운율과 상징적 의미로 난도질하여 분석하는 것만 가르쳤을 뿐, 가슴으로 시를 느끼고 사랑하는 법은 아이들에게 전달하지 못했었다. 내가 감동 받지 않은 시를 당연히 학생들로 하여금 감동 받게 할 수 없었으리라. 그렇게 아이들도 시가 무슨 밥 먹여주냐며 그저 어떤 내용이 다음 시험에 나올 것인지만 골몰하며, 시를 배웠으되 단 한 번도 시를 만나지 못하게 되었으리라.

 

그러다 우연히 집어 든 책이 <칠판에 적힌 시 한 편>이다. '국어 선생님의 시 배달'이란 부제가 달린. 현직 국어 선생님들이 고른 50여 편의 시와 간단한 감상으로 구성된 이 책은 새롭게 시와 시을 읽는 것의 즐거움을 깨닫게 해주는 책이다. 시가 우리 나날의 삶과 동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밥 먹고 사는 고된 현실을 위로하고, 지친 우리의 어깨를 보듬으며 다시금 내일을 전망하게 해 줄 수 있는 훌륭한 수단임을 재확인하게 해 준다. 

 

이 책에서 건진 시 귀절 하나.

 

종소리를 더 멀리 보내기 위하여

종은 더 아파야 한다

                    - 이문구의 시 '농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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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팬 펭귄클래식 45
제임스 매튜 배리 지음, 이은경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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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TV를 통해 여러 번 <피터 팬> 연극과 뮤지컬을 본 적이 있다. 하늘을 둥둥 날아다니고, 해적들과 싸우며 신나는 모험을 하는 이야기에 푹 빠져 들었었다. 영원히 나이 먹지 않고, 철 들지 않는 소년 피터 팬. 한 때는 그처럼 그렇게 영원한 철부지로 남아 있고 싶다는, 행복했던 유년기에 대한 미련을 놓지 못했던 시절도 있었다. 

 

마흔을 넘겨 처음 읽어 본 <피터 팬>은 조금 색달랐다. 그동안 무대공연물로만 보아왔던 이야기를 서술자를 통해 전달되는 소설로 접해보니 사뭇 친숙하면서도 낯선 무언가가 있었다. 특히나 앞부분에 저자인 제임스 매튜 배리란 특이한 인물에 대한 해설 때문인지 어쩌면 이 소설은 작가가 잃어버린 유년기에 대한 집착을 형상화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소년들에게는 엄마가 필요하다. 심지어 잔인한 해적 선장 후크에게도 말이다. 모든 남자 안에는 소년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 소년은 영원히 나이들지 않은 채 허공을 날아다니며 엄마를 찾고 있다. 우리를 감싸주고, 해진 옷과 양말을 건사해 주고, 잘못을 지적해 주며, 잠자리에서 이야기를 들려 줄, 우리를 위로해 줄 엄마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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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딩으로 리드하라 - 세상을 지배하는 0.1퍼센트의 인문고전 독서법
이지성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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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세기말, 많은 사람들이 '인문학의 죽음'을 이야기 했었다. 약간은 과장도 있었지만 대체로는 엄연한 사실이었다. 80년대를끝으로 사회과학으로 대표되는 인문학의 시대가 종언을 고하고, 기억하기도 싫은 IMF를 겪으면서 사람들은 당장 빵을 줄 수 없는 고상한 학문에 더이상 관심을 두지 않았다. 대학가에서 사회과학서점들이 문을 닫았고, 오로지 돈, 직업, 출세, 성공을 키워드로 하는 실용서들이 서가를 점령했다.

 

베스트셀러 작가 이지성의 <리딩으로 리드하라>는 '참 애매하다.' 인문고전 독서의 중요성을 다소 광기어린 듯 주장하고 있으면서도 실제 이 책은 가벼운 실용서에 불과하다. 왜 인문고전 독서를 읽어야 하고, 인문고전 독서가 어떤 효용이 있으며, 도서 목록과 독서 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으나, 어쩌면 이 책은 다른 여타 실용서와 같이 그렇게 소비되고 말 것이다. 물론 작가 자신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고, 애초 그가 의도한 것도 인문고전 독서에 대한 대중의 주의를 환기시키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미치지(狂) 않고서는 미칠(及) 수 없다고 했던가? 정말 미친듯이 인문고전 독서에 매달려 본 저자의 경험의 마력인지 이 책을 읽다보면 인문고전 독서를 새롭게 시작해야겠다는 의지가 자기도 모르게 생긴다. 상당히 설득력이 있고 방대한 자료 조사와 경험에 토대를 두었다는 점에서 신뢰가 간다. 그러나 설득의 한 방편이자 논의의 편리성, 주장의 명료성 때문에 지나치게 인문고전 독서의 가치를 절대화하고, 마치 인문고전 독서만이 개인의 성공과 국가와 민족의 흥망성쇠의 주요 원인인 것처럼 강조하고 있는 점은 좀더 판단을 유보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특정 종교에 대한 편향성이 이 책의 완성도를 다소 떨어뜨리는 면도 있다. 지극히 개인적인 내용이겠지만 방대한 인문고전 독서도 신앙 앞에선 중립을 지킬 수 없다는 사실에 한 사람의 평범한 독자로서 의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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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4
헤르만 헤세 지음, 전영애 옮김 / 민음사 / 200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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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古典)은 누구나 다 알고 있지만 그 누구도 읽지 않는 책이라고도 한다. 나와 같이 얄팍한 독서 습관을 가진 독자들은 가끔 그 말을 방패 삼아 자신들의 무지와 게으름을 위안하기도 한다.

 

나이 마흔을 넘겨 <데미안>을 읽었다. 이 사실에 나의 아내는 너무나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젊은 시절 <데미안>을 읽지 않았다는 것이 무슨 파렴치한 범죄쯤이나 되는 듯이 말이다. 그러나 나는 내가 너무 이른 나이에 <데미안>을 읽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한다. 그리고 청소년 필독도서 목록에 부디 이 책을 추천하는 어리석은 전문가들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흔히 <데미안>을 성장소설로 분류하곤 한다. 주인공 싱클레어가 혼돈스런 청소년기를 거쳐 자기 만의 길, 다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이 되어 가는 과정이 소설의 주된 내용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실이 그러하듯 그렇게 보는 것이 타당하기도 하고 전혀 어불성설이기도 하다. <데미안>을 불완전한 청소년이 자아 찾기 과정으로서의 성장소설로 보는 관점은 작품 속 싱클레어와 데미안이 그토록 경계하여 마지 않았던 낡은 관습과 체제 순응적인 해석에 불과하다. 

 

<데이안>은 청소년들에게 권하기엔 상당히 부적절한 책이다. 차라리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가 그들에겐 더 어울리고 도움이 될 것이다. <데미안>은 심오한 종교적 주제, 다소 비의적이며 신비주의적인 주제를 다룬 소설이라 보는 것이 더욱 타당하다. 소설의 형태를 갖추고는 있지만 어찌 보면 작가인 헤르만 헤세의 종교적 고민을 담고 있는 자전적 에세이에 가깝다.

 

헤르만 헤세는 선교사의 아들로 태어나 신학교를 다니다 중퇴 후 열 다서의 나이에 자살을 시도했었다 한다. 그 동기가 무엇이었을까? 그 후 작가가 되고 삼십대 중반엔 인도 여행을 다녀온다. 이 짤막한 약력에서도 <데미안>을 비롯한 <수레 바퀴 아래서>는 물론 <싯다르타>와 같은 그의 대표작들의 단초를 알아차릴 수가 있다.

 

그의 전기를 읽어 보지는 않았지만 아마 그는 대단히 종교적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이 아니었을까 싶다. 선교사의 아들이자 신학생이었기에 일찍부터 기독교 신앙과 교리에 밝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청년기를 보내야 했던 19세기 말, 20세기 초반의 유럽의 상황과 그 자신의 내면적 갈등을 해소하기에 그가 받은 기독교적 교육 내용은 큰 도움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이상과 현실 사이의 불일치와 모순만을 가중시키지 않았을까?

 

어쩌면 그의 자살 시도와 그 실패는 유년기의 안정되어 보이고 굳건해 보였던 정통 기독교 신앙과의 결별이자, 해결하지 못한 자신과 세계의 문제에 대해 새로운 해결책을 찾기 위한 종교적 회심의 계기였으리라 추측해 본다. <수레 바퀴 아래서>의 한스 기벤라트는 죽었지만 <데미안>의 에밀 싱클레어는 이제껏 알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의 모습에 눈을 뜨게 된다. 한스 기벤라트와 에밀 싱클레어는 헤르만 헤세의 분신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자아와 세계, 성스러움과 속됨, 남자와 여자, 정신과 육체와 같은 분열을 극복하려 하였던 것 같다. 데미안과 그의 어머니 에바 부인과 그들이 관계 맺는 인물들이 보여주는 비의적 종교의 색채는 흡사 비슷한 시기에 유럽에 유행하던 신지학회(크리슈나무르티를 새로운 구세주, 미륵불로 내세운 신비주의 종교 단체, 여성들이 지도자였다)를 연상시킨다. 비록 소설적 형태를 취하고 있으나 <데미안>의 주요 등장인물들은 하나의 동일 인물의 서로 다른 양상들로 볼 수도 있다.

 

싱클레어, 데미안, 피스토리우스, 에바 부인은 분열된 세계 가운데 하나의 세계에만 속하는 무리들이 아닌 독창적이면서 새로운 세계를 이끌어 갈 카인의 표지를 가진 신 인류의 성장과정이자 한 인물의 내면을 관념화한 것이다. 작품 후반으로 갈수록 싱클레어는 데미안이면서, 피스토리우스이자, 에바 부인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싱클레어는 데미안도 아니고, 피스토리우스도 아니고, 에바 부인도 아니다. 작품 마지막에 그가 온전히 자기 자신을 확인했을 때 그는 데미안과 완전한 일치를 느낀다. 그럼으로써 분열된 모든 것들이 통합된다. 

 

어쩌면 헤르만 헤세는 니체를 너무 많이 읽었을지도 모른다. 과대망상가였거나 신비주의자였을지도 모른다. 그러지 않고서야 <데미안>과 같이 기괴하고 지나치게 비현실적이면서 대단히 관념적인 소설을 쓸 수는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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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습니다 2013-02-25 2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제가 어려서 데미안을 읽었는데 삶의 많은 부분이 그 영향을 받았습니다.
카톨릭 교의에 심취하였고 그와 결별하며 가치관의 혼동을 겪었으며
장교가 되어 어색한 나와의 만남을 가졌을 때 이 소설을 떠올리게 되었죠
그리고 아직도 분열된 자아의 통합을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분명 청소년기에 자아탐구에 희망을 주기보다는 어떤 분열을 향한 길을 제시하죠.
마치 퀸의 보헤미안 랩소디를 클래식처럼 가르쳐주는 것이라고나 할까요
 
허클베리 핀의 모험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6
마크 트웨인 지음, 김욱동 옮김 / 민음사 / 199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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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많은 사람들로부터 '고전'이나 '명작'이란 평가를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그 작품에 대한 비판적 평가를 내리는 데 주저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전문가들의 의견과 불일치한다고 해서 스스로 쫄지 말란 말이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은 앞서 발표된 <톰 소여의 모험>의 후속편이면서도 전편과는 전혀 다른 형식과 내용의 작품이다. 전편은 말 그대로 주인공 '톰 소여'의 모험을 중심으로 한 재미있는 아동 소설이었다. 반면 <허클베리 핀의 모험>은 전편의 등장인물과 사건의 일부를 이어받기는 했으나 전혀 새로운 서술 형식, 허클베리의 내면적 독백이 지리하게 이어지고 있고, 미시시피강을 따라 흘러 내려가면서 겪는 시시콜콜 사건들이 아무런 필연성 없이 이어질 뿐이다. 게다가 후반부의 샐리 아줌마네에서 벌이는 검둥이 짐 탈출 사건은 도대체 무슨 의도로 그런 이야기를 지어냈는지 알 수가 없다.

 

번역자인 김욱동 교수의 번역이란 것도 그렇다. 마크 트웨인이 사용한 남부 사투리와 속어를 실감나게 재현하기 위해 검둥이 짐으로 하여금 얼토당토 않는 충청도 전라도 사투리를 사용하게 한 것은 너무도 어이가 없다. 톰 셀린저의 <호밀 밭의 파수꾼>을 읽었을 때 느꼈던 이질감과 생경함을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읽으며 다시 한번 강하게 느꼈다. 한국인과 미국인의 정서 차이인지, 내가 수준 이하의 문학적 감수성을 가진 탓인지는 모르겠다. 자신의 엉망진창인 작품의 면죄부로 작품 앞에 '경고문' 운운 하면서 써 붙여 놓았을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다. 원래 말 많은 사람 치고 쓸 말을 하는 사람은 드문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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