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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 포터와 혼혈왕자 세트 - 전4권 (무선) ㅣ 해리 포터 시리즈
조앤 K. 롤링 지음, 최인자 옮김 / 문학수첩 / 2005년 11월
평점 :
절판
이야기 속의 이야기
- 이야기 구조로 해리포터 읽기 -
1.
1999년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문학수첩 刊)이 처음 국내에 번역 소개된 이래 2005년 총 7부로 계획된 시리즈의 여섯 번째에 해당하는 해리포터와 혼혈왕자가 출간되기까지, 해리포터 시리즈는 줄곧 작품 자체의 뛰어난 문학성은 물론 그 경이로운 스토리만큼이나 놀라운 작품 외적 사건들(상상을 초월하는 책의 판매부수와 그에 필적하는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의 상업적 흥행 같은)로 대중들의 뜨거운 관심의 초점이 되어 왔다. 그리고 곧 다가오는 2007년도에는 시리즈의 완결판인 7부가 발표될 예정이어서, 해리포터를 창조한 작가(그녀야말로 진정한 마법사가 아닐까?) 조앤 롤링의 마법에 이미 완전하게 사로잡힌 전세계의 수많은 독자들은 어서 새해가 밝아오기를 목이 빠져라 기다리고 있다.
바보 같은 의문이겠지만, 해리포터 시리즈의 어떤 점들이 이런 일들을 가능하게 했을까? 무엇보다도, 그리고 당연하게도 해리포터 시리즈는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한 번 책을 손에 잡으면, 어지간한 독자라면 끝까지 읽기 전까지는 결코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게 만드는 무언가가 분명히 있다. 그렇다면 그 ‘무언가’는 무엇인가?
2.
해리포터 시리즈는 작가만의 독창적인 상상력의 소산임에 틀림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오랫동안 우리들의 관심과 흥미를 사로잡아왔던 익숙한 이야기 구조들이 곳곳에 녹아들어 있다.
시리즈 초반에 주인공 해리포터는 어릴 때 부모를 잃고 이모부댁(더즐리 가족) 계단 밑 벽장에서 살면서 이모부 가족으로부터 온갖 멸시와 학대를 받으며 살고 있는 11살의 소년으로 그려져 있다. 그러던 그에게 어느 날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하더니 해그리드라는 거인이 찾아와 부모님의 죽음과 자신에 대한 놀라운 사실들을 알려주게 된다. 자신의 부모님이 그러했던 것처럼 해리도 보통사람(머글)이 아닌 마법사이고, 그것도 이미 한 살 때 자신의 부모님을 살해한 볼드모트라는 사악한 마법사를 물리친 위대한 영웅이며, 호그와트라는 마법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는 어린 시절 읽었던 동화 미운 오리 새끼나 신데렐라를 연상시키는 이야기 구조이다. 허름한 다락방 구석에서 하인으로 천대 받던 소녀가 하루 아침에 훌륭한 가문의 무남독녀 외동딸의 신분을 회복한다는 소공녀의 이야기 구조와도 그리 낯설지 않다. 이러한 이야기는 누구나 그 나이 무렵에 가져 보게 되는 판타지(fantasy)가 아닐까? 판타지는 10대 청소년들에게 현실의 결핍을 보상하는 가장 경제적이고도 가장 낭만적인 방법이다.
호그와트에 입학한 해리포터는 시리즈 내내 헤르미온느와 론이라는 단짝 친구들과 함께 여러 가지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맞추기 힘든 퍼즐 조각 같은 사건들을 해결하기 위해 각각 서로 다른 장단점을 가진 세 친구는 때론 갈등하고 때론 서로를 지지해 주고 협력하면서 사건 해결에 그들이 가진 능력의 최선을 다한다. 사건은 종종 미궁에 빠지거나 예상치 못했던 반전을 가져오고 그로 인해 해리와 친구들은 때로는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위험에 처하기도 하지만, 여기 저기 흩어져 있는 결정적인 단서들을 극적으로 짜 맞추어 마침내 사건을 해결하게 된다.
셜록 홈즈와 제임스 본드과 같은 전설적인 탐정이나 비밀첩보원의 이야기를 창조해낸 영국의 문화적 배경 때문인지 해리포터 시리즈에도 탐정소설이나 첩보소설과 같은 이야기 구조가 자주 보인다. 예를 들어, 여학생인 헤르미온느는 셜록 홈즈처럼 치밀한 논리를 전개하는 천재형의 인물로 그려져 있고, 그에 비해 론은 항상 한 발 늦는 조력자 왓슨처럼 그려져 있다. 한편 해리포터는 사건을 해결하는데 종종 투명망토나 호그와트 비밀지도와 같은 신비한 물건들을 사용하는데, 이것들은 007 시리즈에서 궁지에 몰린 제임스 본드를 아슬아슬하게 살려주는 비밀무기들을 연상시킨다. 자신의 모습을 감출 수 있고 다른 모든 사람들이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 알 수 있는 물건, 누구나 그런 물건을 갖고 싶어 하지 않을까?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해리포터 시리즈는 영웅 이야기의 일반적인 구조를 갖추고 있다. 일반적으로 영웅들은, 남들과 다르게 태어나서(기이한 탄생·혈통) 어릴 때부터 남다른 능력이나 재주를 갖고 있지만(비범한 능력) 부모나 세상으로부터 버림을 받는다.(기아) 그러나 생명의 은인을 만나 도움을 받으며(조력자의 구원), 자기를 해치려는 무리와 싸워(적과의 투쟁) 자기가 처한 어려움을 물리치고(승리) 마침내 위대한 영웅이 된다는 것이다.
마법사라는 혈통, 해리 자신은 물론 어느 누구도 정확히 예측할 수 없는 자신의 마법적 능력, 일찍이 고아가 되어 친척집에서 더부살이를 해야 하는 운명, 해그리드와 덤블도어, 그리고 헤르미온느와 론과 같은 친구들의 도움, 어둠의 마왕 볼드모트와 그의 추종자들인 죽음을 먹는 자들과의 목숨을 건 투쟁...
아직 스토리가 완결되지 않아 최종적으로 해리포터가 위대한 마법사이자 영웅으로서 성공할지 실패할지는 미지수이지만 대체적으로 해리포터는 일반적인 영웅의 이야기 구조를 충실하게 따르고 있다. 그 외에도 유럽의 여러 신화와 전설에서 차용한 인물과 이야기 요소들(인어, 늑대인간, 집요정, 켄타우로스, 거인과 용 등등)이 곳곳에 숨어 있지만 여기서는 그 모든 것들을 다 언급하기 어렵다. 해리포터 시리즈를 좀 더 깊게 이해하고자 하면 이 글 맨 끝에 첨부된 도서들을 참고하기 바란다.
3.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말처럼, 전세계적인 센세이션을 일으킨 판타지 소설 해리포터 시리즈도 이미 우리에게 익숙한 이야기 구조를 바탕으로 이루어져 있다. 다양하고 복잡하지만 오래된 내의(內衣)처럼 몸에 익숙한 이야기의 틀 속에서 독특하고 개성 있는 인물들이 종횡무진 엮어나가는 해리포터 시리즈는 정말 마법과도 같이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 아이들에게는 꿈과 상상의 나래를, 어른들에게는 어느새 잃어버린 행복했던 유년의 몽상을 되살려 주는 해리포터 시리즈. 올 겨울 온 가족이 함께 이 경이로운 마법의 세계에 빠져 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