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공녀 웅진 완역 세계명작 6
프랜시스 호즈슨 버넷 지음, 에델 프랭클린 베츠 그림, 손영미 옮김 / 웅진주니어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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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어렸을 적 언제쯤인지 잘 기억할 수는 없지만, 흑백TV로 보았던 영화 <소공녀>의 추억은 마흔 고개를 넘긴 나이에도 가벼운 신음을 내뱉을 정도로 행복했던 기억 가운데 하나이다.  



 깜찍한 요정같은 셜리 템플이 그 앙증맞은 얼굴로 연기를 하던 <소공녀>. 그 후로도 다른 여러 편의 영화를 통해 접했던 이 아름다운 이야기를 중년을 넘긴 나이에야 비로소 책으로 읽게 되었다.

 

사라 크루는 어머니를 여의고 군인인 아버지와 인도에서 생활하다가 런던의 기숙학교에 들어가게 된다. 부유한 아버지 덕에 공주님처럼 특별 대우를 받는 사라는 자신을 시기하고 미워하는 사람들을 포함한 모든 사람을 한결같이 상냥하고 친절한 태도 대한다.

 

사라의 열한 번째 생일날 사라는 친구와 함께 다이아몬드 광산에 투자한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했을 뿐 아니라 그 충격으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사라에 대한 이유없는 미움을 품고 있던 기숙학교 교장 민천 선생은 사라를 다락방으로 내쫓고 하녀처럼 부리며 학대한다.  

 

한편 사라 아버지의 친구로 다이아몬드 광산 사업을 벌였던 캐리스퍼드는 자신의 실수로 친구가 죽고 그의 외동딸이 천애의 고아가 되어 소식을 알 수 없게 된 일에 대한 죄책감으로 병이 들어 영국으로 돌아온다. 사라가 머물고 있는 기숙학교 옆으로 이사온 그는 친구의 딸을 찾는 일에 매진한다. 

 

다락방에 살던 사라는 옆집에 이사온 신사분의 인도인 하인 람 다스를 알게 된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인간다움을 잃지 않으려고 애쓰는 사라를 보고 도움을 주고 싶었던 람 다스는 캐리스퍼드씨의 허락을 받아 사라가 잠든 사이 누추한 사라의 다락방을 아늑한 공주님의 방처럼 꾸며준다. 다음날 사라는 눈앞에 펼쳐진 마법과 같은 일에 기뻐하며 자신을 도와주는 누군가에게 감사해 한다. 

 

그러던 어느날 사라의 다락방으로 들어온 람 다스의 원숭이를 되돌려 주기 위해 옆집을 방문한다. 람 다스를 통해 자신이 호의를 베풀어 준 소녀를 만나게 된 캐리스퍼드는 사라가 그토록 찾아 헤맸던 친구의 딸이란 사실을 알게 된다. 마침내 자초지종을 알게 된 사라는 기숙학교를 떠나 캐리스퍼드씨의 보호를 받게 된다.

 

어른이 되어 읽는 동화는 어린 시절보다 훨씬 더 감동적이다. 선과 악이 분명하게 대조되는 동화의 세계 속에서, 선량한 주인공이 부도덕하고 천박하며 사악한 인물들에게 조롱받고 학대 받으면서도 자신의 인간다움을 잃지 않고 끝내 구원받는다는 이 뻔한 권선징악의 스토리는 현실의 부조리함에 상처받은 어른들의 너덜너덜한 마음을 치유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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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두막
윌리엄 폴 영 지음, 한은경 옮김 / 세계사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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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가끔 귀가 얇아지기도 하는 모양이다. 도서관에 들렀다가 <오두막>이란 책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어디서 보았는지 모르겠는데 최근에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었다는 그 책이었다. 베스트셀러라는 타이틀의 압박!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른 책들은 수많은 사람들의 선택을 받은 만큼 나름대로 수긍할 만한 내용과 감동을 갖추는 경우가 많다. 물론 예외라는 것은 늘 있는 것이어서 때로는 왜 그 책이 많이 팔렸는지 도무지 이유를 알 수 없는 황당한 경우도 있는데, 이 책 또한 그런 경우 가운데 하나인 듯하다. 

 

어린 시절 보통 이상의 기독교인이면서도 알콜중독자인 아버지에게 몹시 학대 당했던 사람(맥)이 있었다. 맥은 어린 시절 아버지의 매질에 못이겨 가출을 하고 그 후로 아버지와는 별개의 삶을 살아간다. 그에게는 아름답고 착한 아내와 사랑스런 다섯 자식이 생겼다. 나름대로는 행복한 삶을 영위하던 그는 아내를 두고 아이들과 떠난 캠핑에서 물에 빠진 큰아들을 구하는 사이 막내 딸아이 미시를 잃어버린다. 지역 경찰의 도움으로 수색을 하던 중 목격자들이 나타나고 현장에 남겨진 증거를 통해 미시는 악명 높은 연쇄납치 살해범에게 납치된 것으로 판명된다. 얼마 후 목격자들의 도움으로 외딴 곳의 오두막에 도착한 맥과 경찰은 아이의 피묻은 옷을 발견하게 된다. 그후 맥과 그의 가족은 예전의 생활로 돌아가지 못하고 '거대한 슬픔'이 맥과 가족들 사이에 머무르게 된다. 

 

그리고 얼마 후 맥에게 한 통의 편지가 도착하는데 보낸 사람은 놀랍게도 하나님이었다. 편지 속에서 하나님은 맥에게 끔찍한 사건의 현장인 오두막에서 만나자고 한다. 맥은 이것이 연쇄 살인법의 계략이거나, 누군가의 잔인한 장난이거나 ,어쩌면 정말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어쩐 일인지 그곳으로 가기로 결정한다. 오두막에 도착한 맥은 그곳에서 흑인 아줌마로 나타난 하나님과 작업복 차림의 예수, 그리고 성령으로 추정되는 사라유란 인물을 만난다. 이들은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삼위일체의 존재가 맥에게 필요한 형태로 드러난 것이다. 그곳에서 이틀간 머물면서 맥은 자신의 마음 깊은 곳에 있던 상처를 발견하고 그것을 치유하게 된다. 자신을 학대했던 아버지를 용서하고, 미시가 예수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마지막에는 가장 어렵고도 힘든 미시를 살해한 범인을 용서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도움으로 미시의 시신이 암매장된 곳을 발견하게 된다.

 

다시 현실로 돌아온 맥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교통사고를 당한다. 병원에 머물면서 미시의 죽음이 자기 때문이란 죄책감에 마음의 문을 닫은 둘째 케이트에게 맥은 그것은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워주고 케이트의 상처를 치유해 준다. 교통사고로 다시 그 지역 경찰을 만난 맥은 하나님이 가르쳐 준 장소로 경찰을 인도하고 거기에서 미시의 시신을 발견한다. 그것을 토대로 범인을 추적하여 마침내 범인을 체포하게 되고 맥의 변화는 이웃으로 조금씩 퍼져 나가기 시작한다.

 

세상에 만연한 고통과 불의를 보거나 아니면 본인이 직접 그것 속에 머물고 있는 이들에게 과연 하나님은 존재하는가 하는 의문이 드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내가 고통 받고 있을 때 신은 어디에 있는가 하는 의문말이다. 아마 이 글의 저자는 나름대로 그러한 의문을 품고 이 이야기를 썼는지 모르겠다. 기독교인이라면 어떻게 받아들였을지 모르겠으나 나로서는 이 이야기가 그다지 가슴 뭉클하게 다가오지 않았다. 먼저 성부 성자 성령을 인간의 형태로 형상화해서 주인공과 대화 나눌 수 있도록 만든 것은 문학적 상상력이라는 측면에서는 어떨지 모르겠으나 신학적 측면에서 많은 논란의 여지가 있을 것 같다. 이 이야기 속의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심리치료사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너무나 미국적인 상상력이라고나 할까? 상처를 가진 사람에게 마음을 열고 공감을 해주며 스스로의 힘으로 마음 속에 억압해 두었던 상처를 꺼내어 직시함으로써 상처를 치유하도록 도와준다. 물론 새겨들을 만한 말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나에게는 차라리 영화 <맨 프럼 어스>나 <신과 나눈 이야기>가 더 공감하기 쉽고 감동적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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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방울의 물을 마르지 않게 하는 법
강호진 지음 / 영림카디널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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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가의 화두를 연상시키는 책 제목 <한방울의 물을 마르지 않게 하는 법>은 언젠가부터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접하는 역사추리 팩션(faction)이다. 그런데 소설을 읽는 동안 내내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과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 그리고 <천사와 악마>의 내용들을 머릿속으로 대조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이 책은 앞서 나왔던 전범(典範)들을 '어쩔 수 없이' 답습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이 소설에서는 영락사라는 절에서 승려들이 연쇄적으로 살해당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그들은 모두 200년 전에 쓰인 <영락사몰락기>라는 소설 속의 승려들과 같이 10대지옥의 형벌 대로 처참하게 살해당한다. 공교롭게도 에코의 <장미의 이름>에서도 수도원의 수사들이 연쇄적으로 죽어나가는데 그들의 죽음은 <요한계시록>의 일곱가지 예언을 연상시킨다. 

 

또한 이 글의 주인공인 '현인호'는 미술사학자로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서 그의 전문지식, 고미술학, 특히 불교탱화에 대한 지식이나 도상학 등의 지식을 이용하는데, 이는 <다빈치 코드>의 주인공인 기호학자 로버트 랭던 교수를 자연스레 떠올리게 만든다. 

 

그리고 불교내지 승가 집단, 즉 폐쇄되어 있고 비합리적인 신비에 둘러싸여 있으며 종단을 유지해 나가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세속화되고 부조리한 모습을 보이는 종교 집단을 냉철한 이성으로 비판적인 입장에서 바라보는 주인공의 시선은 <장미의 이름>에서의 윌리엄 수사나 <천사와 악마>의 역시 로버트 랭던 교수를 떠올리게 만든다. 이 소설 속의 봉허 노장스님은 자신만의 독선과 아집으로 끔직한 비극을 초래했음에도 전혀 자신의 신념이나 행동을 회의하지 않는 인물로 <장미의 이름>의 눈 먼 수도원장 호르헤 신부나 <천사와 악마>의 바티칸 궁무처장 카를로 벤트레스카와 쉽게 오버랩된다.  

 

게다가 일반인들이 잘 알지 못하는 승려 조직 속에 알려지지 않은 비밀조직 '제바계'는 <다빈치 코드>의 '시온수도회'나 <천사와 악마>의 '일루미나티' 같은 비밀결사조직과 비슷하지 않은가?

 

마지막으로 기존의 추리소설이나 앞서 예를 든 팩션들에 심심찮게 등장하는 '암호 풀이 게임'도 이 소설에 등장하는데,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장미의 이름>이나 <다빈치 코드> 그리고 <천사와 악마>에서와 같은 자연스러움이랄까 미처 생각하지 못한 발상의 환기가 주는 지적 쾌감이 다소 부족하다.

 

물론 이 소설이 소재와 등장인물만을 우리 고유의 것으로 살짝 바꾼 기존 서구의 팩션의 짝퉁이라고 폄하할 의도는 전혀 없다. 오랫 동안 전통적인 것, 너무나 익숙해서 별달리 새로울 것이 없는 불교라는 종교 또는 그 조직을 고찰(古刹)의 오래된 먼지처럼 켜켜이 내려 앉은 미신과 비이성적 신비주의에서 벗어나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관점이라는 밝은 태양빛 아래 놓으려는 작가의 시도는 참신하다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일부 호사가들처럼 승려 조직의 부패나 세속성, 어느새 물질주의와 정치 논리가 횡횡하는 곳이 승가라는 음모론적 시각이 비록 한 때의 흥미와 관심을 집중시킬 수 있을지는 모를지라도, 카잔차키스의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이나 김성동의 <만다라>와 같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내 계몽의 빛에 속살을 드러내 보일 수 없는, 그러한 이해가 불가능한 종교성을 작가가 좀더 깊이 있게 표현해 주었기를 바라는 것은 지나친 무리일까?

 

상구보리(上求菩提)를 위해 하화중생(下化衆生)을 등한시하는 것도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하화중생만이 최선은 아닌 것이다. 종교성의 핵심은 세속과 초월, 이성과 신앙, 중생(인간)과 부처(신)와 같은 분별과 대립의 완전한 지양에 있는 것이다. 모든 시시비비, 모든 언설이 그치는 곳, 거기엔 웅장한 침묵이 있다. 그러기에 사찰 '불이문(不二門)' 주련에 '입차문래 막존지해(入此門來 莫存知解 : 이 문으로 들어옴에 알음알이를 가져오지 말라)'라고 하지 않았던가? 

 

끝으로 이 소설에서 정말 아쉬운 점 하나만 지적하겠다. 이 소설 193쪽에서 주인공이 성보박물관 학예사인 '고미연'과 대화하는 장면에서 작가의 착각이었는지 '고미연'을 홍제스님의 속가 딸 '이영선'으로 오기한 부분이 나온다. (193쪽 맨끝에서 둘째 줄) 1차적으로 작가의 실수이고, 2차적으로는 그 실수를 바로잡지 못한 편집자의 실수이다. 그리고 그 실수를 그저 실수로 넘어가지 못하고 이렇게 주절거리고 있는 나 또한 실수이다. 아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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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2009-08-08 0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리뷰를 읽고 나서 정말 아쉬운 점 하나 지적드리죠. 님의 최대의 실수는 추리물 리뷰에 스포일러가 있다는 경고도 없이 결론과 범인를 함부러 싸질러 놓았다는 겁니다. 허허~
 
비밀의 책 : 앤디미온 스프링 비룡소 걸작선 54
매튜 스켈턴 지음, 조영학 옮김 / 비룡소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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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책 ; 엔디미온 스프링>은 두 개의 이야기가 새끼처럼 꼬여있는 소설이다. 복잡하게 꼬여있는 이야기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하나의 이야기는 15세기 독일 마인츠에서 구텐베르크의 도제인 엔디미온 스프링이 1인칭의 '나'로 등장하는 이야기이다. 

 

인쇄기를 이용해 성서를 찍어 돈을 벌려는 구텐베르크에게 푸스트(파우스트)란 인물이 나타나 재정지원을 조건으로 동업을 요구한다. 그는 하인처럼 부리는 데릴사위 페터와 두 마리의 뱀이 새겨진 궤짝을 가져왔다. 어느 날 밤 엔디미온은 푸스트가 궤짝 안에서 용의 가죽으로 만든 종이를 꺼내는 것을 엿보게 된다.호기심에 몰래 궤짝 안의 용피지를 꺼내보자 용피지는 엔디미온에게 세계의 신비를 보여준다. 그리고 용피지의 일부는 책으로 변신해 엔디미온의 수중에 들어간다.

 

불멸의 지혜를 위해 악마에게 영혼이라도 팔 수 있는 푸스트로부터 용피지를 지키기 위해 엔디미온은 페터의 도움을 받아 또 한 권의 책으로 변신한 궤짝 속의 나머지 용피지를 등에 지고 영국의 옥스퍼드로 떠난다. 되도록이면 푸스트로부터 멀리, 그리고 책들로 가득 찬 대학 도서관에 그 책을 숨기기로 한 것이다. 여러 어려움 끝에 마침내 엔디미온은 옥스퍼드에 도착하고 도서관 근처의 교회 밀실 바닥에 책을 숨긴다. 그러나 엔디미온의 이름이 새겨진 또 한 권의 책은 같이 묻히지 않았다.  

 

또 다른 이야기는 아빠와 불화로 잠시 떨어져 지내는 엄마를 따라 옥스퍼드에 온 블레이크와 더크 남매의 이야기이다.

 

블레이크는 우연히 대학 도서관에서 백지로 된 신비한 책을 발견하는데 책에는 '엔디미온 스프링'이란 이름이 새겨져 있다. 그 책은 고서를 수집하고 연구하는 엑스 리브리스 클럽의 초대 멤버 가운데 한 명이었던 살마나차르에 의해 발견되었다가 우여곡절 끝에 다시 블레이크를 통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책과 관련된 수수께끼를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블레이크와 여동생 더크는 때론 대립하고 협력하면서 엔디미온과 마찬가지로 '궁극의 책'을 노리는 어둠의 세력으로부터 책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블레이크는 더크와 함께 옥스퍼드의  미로와 같은 거대한 지하 도서관에 들어가 '궁극의 책'을 찾아 헤맨다. 어둠의 세력 역시 가까이 있다는 것을 남매 또한 알고 있었다. 블레이크는 책들로 가득한 깊은 우물 속에 들어가 마침내 궁극의 책을 찾지만 우물 위에 기다리고 있던 여동생 더크가 납치된다. 책과 여동생을 바꾸자는 쪽지를 보고 찾아간 약속 장소에서 평소 자신들에게 친절하게 대하던 엑스 리브리스 회장의 아내인 다이애나 벤틀리를 만난다. 그녀는 엑스 리브리스 초대 멤버 가운데 한명이었으며 책을 차지하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 그녀로부터 책과 동생을 지키기 위해 사투를 벌이던 블레이크는 정신을 잃게 되고 책은 그 와중에 옥상의 틈새로 사라진다.

 

병원에서 정신을 차린 블레이크는 어느새 가족을 찾아온 아버지와 재회하고 졸리언 교수로부터 사건의 전말을 듣게 된다. 그리고 어느 날 밤 누군가가 집앞에 가져다 놓은 '엔디미온 스프링'을 발견한다.

 

<비밀의 책 ; 엔디미온 스프링>은 출간 즉시 영화화 하기 위해 판권이 팔렸다는 소식만으로도 대단히 흥미있는 소재와 재미있는 이야기란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조금 깐깐한 독자의 입장에서 보면,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와 같이 이야기 구조가 치밀하지는 못한 듯 하고, 사건 전개 속도 역시 조금 느슨한 느낌이 든다. 책을 소재로한 미하엘 엔데의 <끝없는 이야기>나 움페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과 비교해도 그 무게와 맛이 아직은 설익은 듯하다.

 

하지만 어린 시절, 책에 코를 파묻고 오랜 시간을 보낸 기억이 있는 사람들, 도서관의 오래된 종이 냄새가 어머니 체취처럼 그리운 사람들, 퍼즐처럼 복잡한 이야기 속의 단서와 수수께끼를 맞춰보는 데 남다른 흥미가 있는 사람들에게는 보통 이상의 즐거움을 주기에 충분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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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에서 만난 다섯 사람
미치 앨봄 지음, 공경희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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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에서 만난 다섯사람>은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로 이른바 '모리 신드롬'을 국내에 불러 있으켰던 미치 앨봄의 두번째 책이다.

 

바닷가 놀이공원 루비가든에서 놀이기구 정비를 담당하는 에디는 83세 생일날 고장난 놀이기구에 생명을 잃을 위기에 처한 소녀를 구하고 천국에 간다. 그곳에서 자신의 인생과 알게 모르게 연결된 다섯 사람과 차례로 만나는 과정에서 자신의 상처와 자신도 모르게 타인에게 준 상처를 이해하고 용서하고 화해함으로써 진정한 평화에 이른다.

 

사람들은, 아니 적어도 나는, 나이가 들면서 나도 모르게 진정으로 나를 이해해 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생각을 자주 해 왔다. 나 자신조차도 때로는 스스로의 생각과 감정을 이해할 수 없어 괴로워 하기도 했으니까. 그러므로 인생이라는 것은 절로 세상과 타인으로부터 단절되고 고독한 것이며, 지루한 일상의 연속과 그러한 일상에 대한 만성적인 불만의 계속에 다름 아니었다. 지금 여기 나 자신 말고 다른 어디 누군가에게만 행복과 만족이 존재할 것만 같았고 그렇기에 늘 지금 여기 나 자신을 부정해 왔었다. 그러나 어찌 알았으랴. 바로 그렇게 지금 여기 나 자신 바깥에서 행복과 만족을 찾는 행위 자체가 바로 그 모든 불행과 불만족의 근원이었음을!

 

에디가 천국에서 다섯 사람을 만나면서 치유되듯, 나 또한 여러 사람들과 책들을 만나는 과정에서 나와 나의 일상, 주위의 사람들과 사물들을 새로운 시선, 갓 태어난 어린아이의 시선으로 되돌아보게 되었다.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도 그랬듯 이 <천국에서 만난 다섯사람> 역시 읽는 내내 잔잔한 감동과 가끔은 눈시울을 적시면서 책 속의 에디처럼 나도 모르게 가슴 한 곳에 응어리졌던 무언가가 녹아내리는 체험을 하였다. 삶은 얼마나 신비로운가? 그리고 그러한 삶을 더욱 강렬하게 상기시키는 죽음은 또한 얼마나 신비로운가? 메멘토 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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