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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기사의 비밀 ㅣ 창비아동문고 243
루돌프 헤르푸르트너 지음, 조승연 그림, 김경연 옮김 / 창비 / 2008년 7월
평점 :
절판
완벽한 부모상이 따로 있을까? 열한 살과 이제 갓 돌을 넘긴 딸을 키우고 있지만, 자식들에게 만족할만한 역할을 하고 있는지는 늘 의문이다. 내가 최소한 해줄 수 있는 것은 외형적이나마 균열이 없는 부모의 틀을 유지해주는 것. 두 딸이 어떻게 느끼든 그 이상은 부모가 어찌해줄 수 없는 일인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부모의 언행이나 행동특성, 가치관 모두가 같은 공간에서 숨을 쉬며 생활하는 자식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완벽한 자녀양육환경에 저해된다는 이유로 부모의 것을 개조해야 한다는 데에는 어쩐지 마음이 기울지 않는다. 부모이기 이전에 인간이기 때문에 언제나 내면에는 스스로가 제일의 자리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편을 보면 화가 치밀고, 자식을 위해 화를 참으면 병이 되어 버리고 만다. 이게 극에 달하면 이혼밖에 선택의 여지가 없어진다.
하지만, 『노란 기사의 비밀』(루돌프 헤르푸르트너 지음, 창비 펴냄)을 읽고 나면 부부의 틀만이라도 유지해주는 것이 자녀의 심리적인 안정에 부정할 수 없는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야기는 주인공 파울리네가 아빠와 존넨베르그로 소풍을 갔다가 자정이 다 되어 엄마집에 도착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혼한 파트너들이 으레 그러하듯 그들은 서로의 감정을 격하게 할퀴는 대화로 끝을 맺는다. 즐거운 소풍이었지만, 역시 파울리네가 걱정한 일이 일어나고 말자 파울리네는 우울한 심정으로 창밖을 바라본다. 그때 폐업한 건너편 ‘피자 성’ 앞에서 어린 아이를 납치하여 감금하는 장면을 목격한다. 이때부터 파울리네 내면에는 두 개의 의식의 줄기가 흐른다. 한편에서는 엄마와 아빠의 불화가 조장하는 불안감의 격랑이, 한편에서는 비밀의 성과 닮은 ‘피자 성’에 갇힌 아이의 운명에 대한 염려가 번갈아가며 머릿속을 지배한다. 두 개의 줄기는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간극을 좁혀간다. 이혼은 했지만 엄마와 아빠가 예전처럼 완벽한 소풍을 함께 떠나는 장면을 파울리네는 고대한다. 그러나 점점 악화되는 엄마, 아빠의 관계를 보며 불안에 떤다.
어느 날 아빠가 비밀의 성 앞에 나타나 아이를 차에 태우는 장면을 목격한다. 파울리네는 자신의 삶이 아이의 삶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직감한다. 행복한 가정을 회복해야 할 아빠가 유괴범의 동조자로 행동하고 있는 것이다. 깊어진 호기심이 파울리네를 ‘피자 성’에 접근시켰고, 작가는 ‘상상동물무도회’날에 신을 ‘알록달록신발’을 성 지하에 떨어뜨림으로써 파울리네가 성 안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도록 장치한다. 성 안에서 환상에 사로잡힌 남자아이 로렌쪼를 만난 파울리네는 그 아이의 처지가 자신의 처지와 다르지 않음을 알게 된다. 부모의 이혼과 양방의 분별없는 자식사랑이 그를 성에 감금케 만든 것이다. 내면에 칼질을 당한 아이는 세상을 공격의 대상으로 보고 스스로 성을 구축해 자신을 숨긴다.
엉망이 되어버린 무도회날 밤, 엄마와 아빠는 파울리네 앞에서 최악의 불화를 연출한다. 뛰쳐나온 파울리네는 거리를 헤매다가, 로렌쪼의 부모가 먹잇감을 다투는 야수들처럼 로렌쪼를 사이에 두고 싸우는 모습을 본다. 파울리네는 자신의 분신을 자전거에 태우고 무작정 떠난다. 로렌쪼를 ‘햇빛산’ 존넨베르그로 데리고 가서 파라다이스를 보여주고 싶었다. 그곳은 노란 기사이자 꼬마 영주 로렌쪼가 살고 있는, 아름다운 것들이 모두 모인 ‘아발론’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야기는 현실의 경계를 넘어서지 않는다. 버스표를 구하지 못한 두 도망자는 터미널 개축현장에서 파울리네의 아빠에게 발견된다. 파울리네는 엄마의 집으로, 로렌쪼는 어린이 정신병원으로 간다.
저자는 이혼을 통해 겪는 자식들의 아픔을 파라다이스로 끝맺지 않았다. 아이들에게 달콤한 사탕만은 주고 싶지 않았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급증하고 있는 이혼은 이제 신문이나 TV뉴스 속의 일만은 아니다. 세쌍 중 한 쌍은 이혼을 한다는 통계처럼 고개를 돌려보면 이혼의 아픔을 겪는 아이들이 있다. 이혼이 부부의 문제에서 비롯되지만 실질적인 피해자는 자식들이다. 부모의 인생에 이혼은 새로운 시작일 수도 있지만 자식들은 원초적인 둥지를 잃어버린 상실감, 생래적인 믿음을 저버리는 사람들에 대한 배신감, 부모마저 나를 버렸는데 누가 나를 사랑해줄 것인가라는 자기비하감에 빠지는 등 삶의 기반이 무너져 버린다. 이런 상처는 외견상 극복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아이가 자라 성인이 되어서도 ‘상처받은 아이’로 내면 깊이 숨어있다.
저자는 해답을 주지 않았다. 인정할 건 인정하자는 것일까? 파라다이스로 그리기에 이혼이 주는 아픔이 너무 크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독자들은 뭔가 상큼하고 긍정적인 결말을 원한다. 그렇지 않은 결말은 ‘더 칙칙해지자고 내가 이 책을 읽었나?’하는 회의감을 준다. 노련한 저자도 누구보다 독자의 심리를 잘 알고 있을 테지만, 불편함을 남겼다.
밀도있는 구성, 추리적 기법, 안이하지 않은 결말이 흥미와 사실감을 더 한다. 문장마다 아이들의 심리상태에 대한 진지한 고찰이 잘 드러나 있다. 흔한 소재를 갖고도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풀어낼 수 있는 구성력과 깊은 성찰로 이끄는 저자의 능력이 감탄스럽다.
이 책을 읽고 나서 게운치 않는 마음을 정리하고 싶다면, 프랜시스 호즈슨 버넷의 『비밀의 화원』을 추천하고 싶다. 사랑받지 못한 어린 영혼들이 화원을 가꾸면서 내면을 치유하고 자신을 사랑하게 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백년 전 이야기지만 현대의 어린이들은 물론 어른들에게 영감을 불러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