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못하는 병, 고칠 수 있다 - 대치동 정찬호 박사의 공부해방 선언
정찬호 지음 / 이미지박스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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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공부 못하는 병 고칠 수 있다>의 제목을 보면 대한민국에서 공부를 못한다는 것은 거의 질병 수준이다. 그렇다면 공부를 못하는 학생은 환자란 말이다. 얼핏 들으면(공부 못하는 학생들에겐) 상당히 기분 나쁜 소리로 들릴지 모르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희망이 보이는 말이기도 하다. 무슨 말이냐? 병에 걸렸을 때 올바른 진단을 받아 처방대로 약을 먹으면 나을 수 있듯이 공부를 못하는 것도 그 원인을 제대로 분석하고 대처하면 극복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신경정신과 전문의이면서 대한민국에서 가장 치열한 교육열로 이름높은 대치동에서 학습클리닉을 운영하는 저자는 공부를 방해하는 다양한 원인들을 진단하고 각각의 경우에 대해 구체적인 진단과 처방을 제시한다. 획기적인 공부법보다는 기본에 충실하고 충분히 실제 공부에 적용할 수 있는 현실적인 처방들이 많이 제공되고 있다. 성적이 잘 오르지 않아 고민인 학생들 스스로 자신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조언을 얻을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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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부탁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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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름의 독서법 가운데 하나는 베스트셀러를 읽지 않는다는 것이다. 읽더라도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 광풍 같던 유행이 지난 다음에 읽는 것이다. 그것은 수많은 다른 독자들의 찬사로 인한 선입견을 최대한 배제하고 순수하게 작품 그 자체를 이해하기 위해서이다.

 

작년 겨울에 출간된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가 어느새 100만부 이상 팔렸다고 한다. 신경숙의 재주를 모르는 바 아니지만 밀리언셀러가 만들어지는데는 작품 외적요소도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다. 도대체 어떤 것이 사람들로 하여금 그의 책을 읽게 만들었는가? 

 

<엄마를 부탁해>는 한달 사이 연이어 있는 남편과 자신의 생일을 치르기 위해 자식들이 있는 서울로 상경했다가 실종된 칠순의 노모를 찾는 이야기에서 시작된다. 노모는 오래 전부터 뇌졸중을 앓아왔다. 최근에는 익숙했던 부엌일조차 할 수 없고 자주 기억이 끊기는 일이 벌어졌었다. 그런 노모를 지하철 서울역에서 잃어버린 것이다.  

 

총 4장과 에필로그로 구성된 소설은 소설가인 큰딸, 장남, 남편, 그리고 새가 된 엄마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너무나 오랫 동안 한 자리를 지켜서 있는지 없는지조차 모르는 물건마냥 엄마는 서울역에서 잃어버리기 전에 이미 오래 전부터 잊혀진 존재였음을 남은 가족들은 뼈아프게 깨닫는다.

 

막 일어서는 암소를 태몽으로 태어난 엄마는 평생 소처럼 가족을 위해 자신을 돌보지 않고 일했다. 누가 알아주기를 바라지도 않았고 누가 알아주지도 않았다. 무심한 남편, 시어머니 같은 시누이, 어느새 머리가 굵어져 더이상 엄마를 필요치 않는 아이들. 어머니는 뼛국물까지 다 주는 가는 소처럼 사라졌다.

 

읽다 보면 우리 엄마 이야기라고 해도 무방한, 아니 과거 우리의 모든 어머니의 이야기라고 할 만한 이야기이다. 아마 그래서일 것이다. 이 소설이 밀리언셀러가 된 까닭이. 잃어버리고 잊어버린 엄마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는 이들이 박소녀(실종된 엄마의 이름) 댁 가족들만이 아닌 것이다. 그 댁의 큰딸같은 사람, 큰아들같은 사람, 그 남편같은 사람이 백만이 넘는다는 이야기다. 어쩌면 우리 모두가 그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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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을 쫓는 아이 (개정판)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이미선 옮김 / 열림원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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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용>에 이런 말이 있다고 들었다. '완벽한 것은 하늘의 도이지만 완벽해지려고 노력하는 것은 사람의 길이다'라는. 그렇다. 사람은 완벽할 수가 없다. 그것은 사람에게는 허락되지 않은, 허락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전적으로 하늘의 도, 신의 영역에 속한 것이다. <연을 쫓는 아이>의 주인공 아미르는 자신을 위해 무한한 충성을 바친 친형제와 같은 하인 하산의 위험을 외면했다. 그는 두렵고 비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이 어찌 아미르에게만 국한된 두려움과 비겁이겠는가? 그가 그토록 사랑을 갈구하고 닮고 싶어했던 완벽한 남성이자 위대한 아버지 바바 또한 젊은 날 자신과 친형제처럼 자란 하인 알리의 아내를 범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그러한 불완전함이 그들의 삶을 선한 길로 이끈다는 게 우리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신의 섭리다. 자신의 비겁과 불의에 대한 양심의 가책, 죄책감, 그것이 바로 선한 길로 인도하는 신의 음성이다. 속죄와 용서, 그리고 희생을 통해 구원은 주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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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 읽기의 혁명 - 개정판
손석춘 지음 / 개마고원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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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석춘이란 명민한 저자가 지금으로부터 10여년 전에 쓴 <신문읽기의 혁명>은 그 당시 많은 대학생들에게 책 제목 그대로 정말 '신문읽기의 혁명'을 가져온 책이다. 신문이 육하원칙에 따른 객관적이고 공정한 사실 전달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고 순진하게 생각하고 있던 사람이나, 신문의 현실왜곡이 어떤 과정과 역학관계에 의해 이루어지는지 무지했던 사람에게 이 책은 '계몽의 빛'을 던져주었다.

 

저자는 신문 읽기를 통해 세상을 이해하고 그것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신문의 '편집' 과정에 주목할 것을 주장한다. 신문 기사가 말단 취재기자에서 편집국장과 사주, 그리고 광고주 및 기타 권력집단과 여러 이익집단에 이르는 신문사 안팍의 역학관계에 의해서 어떻게 '편집' 되는가를 통해 하루하루의 현실(역사)이 의도적으로 재구성되고, 왜곡되어 독자들에게 전달될 수 있음을 다양한 실제 기사들을 예로 들어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편집'을 해체하고 '재편집'하여 신문을 읽음으로써 신문 편집의 변화, 즉 언론 주권을 자신들의 손에 되돌려 놓을 수 있는 성숙한 독자들이 되기를 촉구하고 있다.

 

근대와 더불어 탄생한 신문이란 '새로운(新)' 매체가 오늘날처럼 정보가 초고속 대량 유통되는 시대에도 그 지위를 여전히 누리고 있는지는 확실치 않다. 그리고 다양한 신문사의 여러 기사들이 유(類)적으로 분류되어 파편적으로 제공되는 인터넷 포털사이트의 뉴스를 어떻게 다시 읽어야 할 지에 대해서는 10여년 전에 출간된 이 책을 통해서는 알 수가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개명천지한 세상에서 일부 거대신문사들은 독자들을 호도함으로써 자신의 권력과 부를 유지하기 위해 여전히 현실을 '편집'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또한 그러한 신문사들에 맞서 진실을 알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여전히 훌륭한 무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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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기사의 비밀 창비아동문고 243
루돌프 헤르푸르트너 지음, 조승연 그림, 김경연 옮김 / 창비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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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벽한 부모상이 따로 있을까? 열한 살과 이제 갓 돌을 넘긴 딸을 키우고 있지만, 자식들에게 만족할만한 역할을 하고 있는지는 늘 의문이다. 내가 최소한 해줄 수 있는 것은 외형적이나마 균열이 없는 부모의 틀을 유지해주는 것. 두 딸이 어떻게 느끼든 그 이상은 부모가 어찌해줄 수 없는 일인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부모의 언행이나 행동특성, 가치관 모두가 같은 공간에서 숨을 쉬며 생활하는 자식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완벽한 자녀양육환경에 저해된다는 이유로 부모의 것을 개조해야 한다는 데에는 어쩐지 마음이 기울지 않는다. 부모이기 이전에 인간이기 때문에 언제나 내면에는 스스로가 제일의 자리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편을 보면 화가 치밀고, 자식을 위해 화를 참으면 병이 되어 버리고 만다. 이게 극에 달하면 이혼밖에 선택의 여지가 없어진다.

  하지만, 『노란 기사의 비밀』(루돌프 헤르푸르트너 지음, 창비 펴냄)을 읽고 나면 부부의 틀만이라도 유지해주는 것이 자녀의 심리적인 안정에 부정할 수 없는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야기는 주인공 파울리네가 아빠와 존넨베르그로 소풍을 갔다가 자정이 다 되어 엄마집에 도착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혼한 파트너들이 으레 그러하듯 그들은 서로의 감정을 격하게 할퀴는 대화로 끝을 맺는다. 즐거운 소풍이었지만, 역시 파울리네가 걱정한 일이 일어나고 말자 파울리네는 우울한 심정으로 창밖을 바라본다. 그때 폐업한 건너편 ‘피자 성’ 앞에서 어린 아이를 납치하여 감금하는 장면을 목격한다. 이때부터 파울리네 내면에는 두 개의 의식의 줄기가 흐른다. 한편에서는 엄마와 아빠의 불화가 조장하는 불안감의 격랑이, 한편에서는 비밀의 성과 닮은 ‘피자 성’에 갇힌 아이의 운명에 대한 염려가 번갈아가며 머릿속을 지배한다. 두 개의 줄기는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간극을 좁혀간다. 이혼은 했지만 엄마와 아빠가 예전처럼 완벽한 소풍을 함께 떠나는 장면을 파울리네는 고대한다. 그러나 점점 악화되는 엄마, 아빠의 관계를 보며  불안에 떤다.

  어느 날 아빠가 비밀의 성 앞에 나타나 아이를 차에 태우는 장면을 목격한다. 파울리네는 자신의 삶이 아이의 삶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직감한다. 행복한 가정을 회복해야 할 아빠가 유괴범의 동조자로 행동하고 있는 것이다. 깊어진 호기심이 파울리네를 ‘피자 성’에 접근시켰고, 작가는 ‘상상동물무도회’날에 신을 ‘알록달록신발’을 성 지하에 떨어뜨림으로써 파울리네가 성 안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도록 장치한다. 성 안에서 환상에 사로잡힌 남자아이 로렌쪼를 만난 파울리네는 그 아이의 처지가 자신의 처지와 다르지 않음을 알게 된다. 부모의 이혼과 양방의 분별없는 자식사랑이 그를 성에 감금케 만든 것이다. 내면에 칼질을 당한 아이는 세상을 공격의 대상으로 보고 스스로 성을 구축해 자신을 숨긴다.

  엉망이 되어버린 무도회날 밤, 엄마와 아빠는 파울리네 앞에서 최악의 불화를 연출한다. 뛰쳐나온 파울리네는 거리를 헤매다가, 로렌쪼의 부모가 먹잇감을 다투는 야수들처럼 로렌쪼를 사이에 두고 싸우는 모습을 본다. 파울리네는 자신의 분신을 자전거에 태우고 무작정 떠난다. 로렌쪼를 ‘햇빛산’ 존넨베르그로 데리고 가서 파라다이스를 보여주고  싶었다. 그곳은 노란 기사이자 꼬마 영주 로렌쪼가 살고 있는, 아름다운 것들이 모두 모인 ‘아발론’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야기는 현실의 경계를 넘어서지 않는다. 버스표를 구하지 못한 두 도망자는 터미널 개축현장에서 파울리네의 아빠에게 발견된다. 파울리네는 엄마의 집으로, 로렌쪼는 어린이 정신병원으로 간다.

  저자는 이혼을 통해 겪는 자식들의 아픔을 파라다이스로 끝맺지 않았다. 아이들에게 달콤한 사탕만은 주고 싶지 않았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급증하고 있는 이혼은 이제 신문이나 TV뉴스 속의 일만은 아니다. 세쌍 중 한 쌍은 이혼을 한다는 통계처럼 고개를 돌려보면 이혼의 아픔을 겪는 아이들이 있다. 이혼이 부부의 문제에서 비롯되지만 실질적인 피해자는 자식들이다. 부모의 인생에 이혼은 새로운 시작일 수도 있지만 자식들은 원초적인 둥지를 잃어버린 상실감, 생래적인 믿음을 저버리는 사람들에 대한 배신감, 부모마저 나를 버렸는데 누가 나를 사랑해줄 것인가라는  자기비하감에 빠지는 등 삶의 기반이 무너져 버린다. 이런 상처는 외견상 극복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아이가 자라 성인이 되어서도 ‘상처받은 아이’로 내면 깊이 숨어있다.

 저자는 해답을 주지 않았다. 인정할 건 인정하자는 것일까? 파라다이스로 그리기에 이혼이 주는 아픔이 너무 크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독자들은 뭔가 상큼하고 긍정적인 결말을 원한다. 그렇지 않은 결말은 ‘더 칙칙해지자고 내가 이 책을 읽었나?’하는 회의감을 준다. 노련한 저자도 누구보다 독자의 심리를 잘 알고 있을 테지만, 불편함을 남겼다.

  밀도있는 구성, 추리적 기법, 안이하지 않은 결말이 흥미와 사실감을 더 한다. 문장마다 아이들의 심리상태에 대한 진지한 고찰이 잘 드러나 있다. 흔한 소재를 갖고도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풀어낼 수 있는 구성력과 깊은 성찰로 이끄는 저자의 능력이 감탄스럽다.  

  이 책을 읽고 나서 게운치 않는 마음을 정리하고 싶다면, 프랜시스 호즈슨 버넷의 『비밀의 화원』을 추천하고 싶다. 사랑받지 못한 어린 영혼들이 화원을 가꾸면서 내면을 치유하고 자신을 사랑하게 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백년 전 이야기지만 현대의 어린이들은 물론 어른들에게 영감을 불러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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