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마음, 모르는 마음 - 어느 법학자의 위빠사나 수행기
황영채 지음 / 행복한숲 / 2005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대입학력고사가 끝난 열아홉의 겨울, 우연히 누이의 서가에 있던 라즈니쉬의 책을 읽고 나도 모르게 깨달음의 세계, 구도자의 삶을 추구하게 되었다. 대학시절엔 전공보다는 동서양의 철학서적을 탐독하고 여러 종교 경전과 신비주의에 경도되었다. 그러다 서른이 가까워서야 간경, 참선, 요가, 명상 등 실제 수행의 길에 뛰어들었고 전국을 헤매며 스승을 찾았다. 그러던 중 어느 스승을 만나게 되었고 그동안의 모든 노력이 부질없는 헛된 것이었음을 깨닫게 되어 처음부터 다시 공부를 하게 되었다. 이름하자면 직지인심의 조사선 공부였는데 몇 년의 절치부심 끝에 어느날 경계가 달라지는 체험을 하게 되었다. 그 이후 이전에 읽었던 책들이나 경험했던 수행법들을 새로운 관점에서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전 법무장관이자 한국 법철학의 태두였던 고 황산덕 선생의 장녀인 황영채씨의 <아는 마음, 모르는 마음>도 위빠사나 수행을 직접 해본 사람의 경험담이 듣고 싶어 읽게 된 책이다. 그녀도 부모님의 영향으로 어릴 적부터 불교 수행의 분위기 속에 자라왔던 모양이다. 금강경 독송회를 창시한 백성욱 박사의 영향을 많이 받은 모양인데  그다지 수행의 성과가 없었는지 미얀마에서 출가하여 위빠사나를 공부한 묘원법사를 만나 위빠사나 수행을 하게 된 모양이다. 대부분 지적인 사람들, 전문직 종사자들이 위빠사나 수행에 잘 적응하는 것 같다. 아무래도 남방불교가 경전에 근거하여 대단히 복잡하고 논리적인 체계를 갖추고 있기에 그런 경향이 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아직 진지한 수행의 경험이 없었던 저자가 신선하게 위빠사나 수행을 받아 들이는 개인적 과정이 잘 정리 되어 있지만 그다지 얻을 것이 없는 내용이다. 묘원법사의 지도 방법에 대해 약간의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 다라고 할까?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지혜라 할 수 있는 위빠사나는 직접 경험에 보지 않아 확언할 수 없지만 북방의 수행자 입장에서 볼 때 알아차리는 주체와 그 대상이 객체의 이분법을 뛰어넘기가 힘들 것 같다는 느낌이다. 물론 모든 것은 조건에 의해서 인연생기할 뿐 주체나 자아가 없다는 것을 남방 위빠사나도 전제하고 있지만 호흡이나 감각, 마음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주시하고 알아차린다는 표현 속에 대상과 주체의 분리가 있는 것 같다. 북방 조사선 입장에선 둘 다 망상일 따름이다. 보는 놈이나 보여지는 놈이나 그 놈이 바로 그 놈이란 소리다. 어떤 면에서 있는 그대로의 실상을 본다는 면에서 조사선이 좀더 직접적이지 않을까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잃어버린 예수 - 다석 사상으로 다시 읽는 요한복음
박영호 지음 / 교양인 / 200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잃어버린 예수>는 우리나라 근현대의 독창적인 영성가 다석 유영모의 사상을 깊이 숭모하고 따르는 제자 박영호가 요한복음을 해설한 책이다. 역사적 예수와 성서판본에 대한 비판적 연구성과를 일부 반영하고 있는 이 책에서 저자는 예수의 영성신학이 훗날 바울로의 속죄신학(예수의 보혈로 인류가 구원받았다는)에 의해 변질 또는 변형되었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러한 관점에서 예수가 본질적으로 전하려고 한 말씀을 다석 유영모의 예수관, 신관, 영성관을 바탕으로 풀어내고 있다. 

 

다석에 따르면 예수는 하느님이 아니다. 하느님은 영성, 성령, 허공(빈탕), 무(無)이다. 예수는 우리와 마찬가지로 육체를 가진 인간, 제나(자아)였으나 하느님-하느님의 성령-말씀을 깨달아 얼나(성령, 영성)로 부활한(솟난) 사람이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짐승이지만 하느님의 얼나를 깨달음으로써 수성(獸性)을 극복하고 영성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따라서 그의 관점에서 예수와 석가의 깨달음은 동일하다. 즉 종교간의 종파적 차이가 극복되게 된다. 그러한 의미에서 다석은 자생적인 종교 다원주의자라 할 수 있다. 

 

다석과 그의 제자 박영호를 비롯한 새로운 기독교 사상가의 출현은 매우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동안 종교라는 미명하에 벌어진 인류의 수많은 비극을 보건대 차이에서 비롯된 적대와 대립을 넘어 다른 가운데 같은 소통의 실마리를 그들을 통해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가 예수의 복음서 가운데 비상식적인 이적기사나 예수를 신화화하는 것에 대한 비판은 건전한 기독교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반드시 한번 심사숙고해 봐야 할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앞으로 다석과 그의 제자들로부터 성숙할 자생적 영성신학의 밝은 미래를 기대해 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프로이트, 영혼의 해방을 위하여 - 사회학자의 눈을 통해 본 프로이트의 삶과 사상 그리고 정신분석학
김덕영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9년 2월
평점 :
절판


이 책 <프로이트, 영혼의 해방을 위하여>는 특이하게 사회학자가 쓴 프로이트의 생애와 정신분석학에 대한 교양서이다. 얼핏 사회학과 정신분석학의 만남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도 들지만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반 지난 시대와는 전혀 새로운 사회와 문화가 형성되는데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이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는 점에서 충분히 이해가 가능하다. 마치 생물학에 있어서 다윈의 진화론과 정치 경제학에 있어서 마르크스의 자본론이 새로운 시대를 여는데 기여을 한 만큼 말이다. 

 

프로이트가 창시한 정신분석학의 혁명적 특징은 그 이전까지 인간의 합리적 이성에 의한 사회와 문화의 진보 가능성에 대한 희망을 철저히 무너뜨리고 기본적으로 인간은 비합리적이고 충동적인 무의식의 지배를 받는다는 사실을 밝힌데 있다. 인간은 예측 불가능하고 알 수 없는 본능과 성적 욕망(리비도)에 의해 조건화되어 있으며 그것은 그러한 개인의 집합인 사회와 문화에서도 마찬가지라는 것이 프로이트의 입장이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그러한 반계몽주의적이고 반이성적인 정신분석학적 발견을 통해 프로이트가 추구한 것은 본능과 욕망의 합리적인 충족을 통해 건전한 사회와 문화를 가능하게 하는 이성의 회복이었다. 

 

저자가 사회학자인 만큼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이 탄생하게 된 사회적 배경의 탐구에 있다. 산업혁명 이후 새로운 자본주의 시대의 도래와 그로 인한 자본주의적 규율사회(자본주의적 질서, 윤리)와 성적 순결을 강조하는 억압적 빅토리아 왕조의 문화적 영향 아래 있는 서구 시민계층의 가족 구조에서 그의 오디푸스 콤플렉스 이론이 탄생했다는 분석은 매우 신선한 관점이다. 하나의 이론은 그 이론이 만들어진 사회 문화의 영향에서 결코 독립적일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하기에 정신분석학이 인간과 사회에 대한 매우 새롭고 혁명적인 시각을 인류에게 제공해 주지만 비서구 사회와 21세기 새로운 시대에도 절대적으로 보편타당한 이론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할로 죽이고 방으로 살리고
원철 지음, 이우일 그림 / 호미 / 2009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해인사 출신 원철 스님의 책 <할로 죽이고 방으로 살리고>는 중국 선어록 속의 다양한 일화를 오늘날 현대를 사는 우리 입장에서 재미있게 풀어낸 책이다. 그다지 선에 대한 안목이나 깊이는 없고 대중적 호기심에 부합하는 수준의 가벼운 읽을거리다. 스님의 글 재주와 재치는 만만치 않은 분량의 책을 순식간에 읽을 수 있게 만들었다. 다만 공안이나 선사들의 대화 이면의 속뜻을 읽어내는 스님의 안목은 송구스럽지만 여러 모로 부족한 점이 많아 아쉬웠다. 아무래도 이 일 저 일 많이 맡아 하다보니 자기 공부할 시간이 없어서 그랬으려니 생각한다. 심심파적용으로는 괜찮은 책이지만 선 공부나 선에 대해 알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그다지 소용없는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석 류영모 - 우리말과 우리글로 철학한 큰 사상가
박영호 지음 / 두레 / 2009년 2월
평점 :
절판


다석 류영모 선생(1890~1981)을 어떤 분이라고 말해야 할까? 신선? 도인? 참 크리스천? 기인? 달사? 스승? 진인? 신비주의자? 종교 다원주의자? 그 어떤 정의도 걸맞지 않지만 그 모든 정의가 다 옳은 인물이 아닐까 싶다. 함석헌 선생을 아는 사람은 많지만 그의 평생 스승이었던 류영모 선생을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한 평생을 은둔자처럼 북한산 기슭에 살며 몇몇 진리를 탐구하는 사람들에게만 알려져 있을 뿐 세상에 자신을 드러내려 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근래 그의 직계제자들과 몇몇 학자들을 통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그의 전기가 스승의 사상을 널리 알리기 위해 평생 노력해 온 제자 박영호에 의에 씌어졌다. 

 

우리나라가 낳은 가장 독창적인 영성가라 할 수 있는 다석 류영모 선생은 열 다섯에 기독교에 입문하여 정통 기독교 신앙을 따르다 이십대 초반 톨스토이 사상에 심취해 있던 오산학교 교사 시절 편협한 정통 기독교 신앙에서 벗어나 유교 경전을 비롯 불교와 노장 사상 등을 폭넓게 공부하였다. 하루 한 끼를 먹고 널판지 위에서 늘 무릎 꿇은 자세로 생활하며 늘 참 진리만을 추구하던 다석은 52세 되던 해 큰 깨달음을 얻게 된다. 그 후 자신의 언어로 성서를 비롯한 여러 종교의 경전과 고전을 인연있는 사람들에게 강의하여 그를 따르는 제자들을 만난다. 한문에도 조예가 깊었으나 순 우리말과 글로 자신의 사상을 표현하였다. 

 

근세기 우리나라 초창기 기독교인은 물론 여러 민족지사들과 훗날 민주화 투쟁에 힘쓴 함석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친 그의 사상은 독창적인 자신만의 언어로 표현되었기에 아직까지 세상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지 못했고 다소 이해하기 어렵다. 김흥호 전 이대교수와 이 책의 저자인 박영호 선생이 다석의 사상을 널리 알리기 위해 그의 사상전집을 여러 권 출판하였지만 직접 그에게서 배운 사람이 아니고서는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다행인 것은 근래에 몇몇 뜻있는 학자들이 그의 사상을 보다 객관적으로 연구한 성과물을 내놓고 있다는 것이다.

 

짐승과 신의 중간쯤에 놓여 있는 인간이라는 존재. 식(食)과 색(色)이라는 동물적 욕망 때문에 나날이 인간성이 파괴되어 가는 이 시대에 사는 우리는 인간의 가치, 인생이 목적이 인간의 육적인 한계를 벗어나 절대의 신성에 도달하는 것-다석의 표현에 의하면 제나가 죽고 얼나로 솟나는 것-이라는 다석의 가르침에 좀더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예수의 말씀처럼 사람이 빵만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말씀으로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육적 욕망은 결코 만족을 모르는 것이어서 그 끝에는 자기파괴와 허무만이 있을 뿐이다. 육체와 물질의 추구가 극한에 이르고 있는 이 세상에 다석의 말씀은 새로운 복음이 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