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굿 메이어
앤드류 니콜 지음, 박미영 옮김 / 북폴리오 / 2012년 1월
평점 :
절판
참 오래도 읽었다. 파스텔 톤의 표지가 내 마음을 설레이게 하더니 책을 읽어내려가는 순간부터 단숨에 읽어 내려가기엔 아까운 그런 글이었다. 내게는..
'선량한 티보 크로빅'.. 책을 다 읽고 났을때 머릿속에 가장 깊게 남는 말은 바로 '선량한 티보 크로빅'이었다.
티보 크로빅은 도트시의 시장으로 20년을 지내왔다. 누구나 그를 부를때 '선량한'이라는 말을 붙일 정도로 그는 시장직을 완벽하게 수행하고 있고, 모든 사람들이 좋아하는 시장이다. 법없이도 살 것 같은 티보 크로빅.. 하지만 그에겐 남에게 말 할 수 없는 일급 비밀이 있었으니, 바로 그의 비서 '아가테 스토팍'을 오래전부터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사랑하는게 무슨 죄가 있냐마는 아가테는 이미 결혼을 한 몸이니 선뜻 그녀에게 고백할 수도 누구에게 고민을 털어놓을 수도 없는 상황. 그렇게 티보는 매일 그녀의 출근을 기다리고 그녀의 발소리, 그녀의 표정 하나하나를 마음에 새기고 관찰하는 것으로 하루하루를 보낸다. 누가보면 스토커냐고 할 것 같기는 하지만, 티보의 그것은 마치 사춘기시절 첫 사랑의 설레임을 안고 매일을 기대와 흥분에 쌓여 혼자 꿈을 오가는 그런것과 흡사하다. 그정도의 나이에 이런 순수한 마음이 남아있기나 한건지 의문이 들 정도로 그는 아가테를 마음깊이 사랑한다.
마침, 아이를 잃고 나서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남편과 사이가 점점 벌어지고 있던 아가테는 삶에 흥미를 점점 잃게 되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 시장과 남편을 비교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매일 점심시간 분수에서 도시락을 먹는 아가테를 바라보던 티보는 그녀의 도시락이 분수에 빠지던 어느날 어렵게 그녀와 점심을 함께 하게 된다. 수년간 마음속에만 간직했던 감정들을 이제 슬슬 풀어나갈 시간이 되었다. 하지만 티보의 마음은 너무나고 깊고 소중한 것이기에 조금씩 서로의 감정을 확인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사실 20년을 청렴한 시장으로 보낸 티보가 유부녀 비서와 팔짱을 끼고 거리를 활보하며 점심을 하는 것도 대단한 용기라고 생각했는데, 이혼도 하지 않는 그녀와 어찌 진도를 나갈 수 있단 말인가???? 다른분들의 서평을 보고 있자니 아마 티보의 이런 행동이 굉장히 답답하고 지루했던 모양이다. 허나, 오랜 세월 진심을 다해 마음속 깊이 간직했던 사랑인데, 그 소중한 사람을 어찌 쉽게 가질 수 있겠는가 말이다...
--;; 하지만, 이미 오랜동안 육체적인 사랑에 목말라있던 아가테는 급기야 폭발하기에 이르고, 전에는 너무나 미워했지만 잠자리에서만큼은 그녀를 만족시켜주는 남편의 사촌 헥토르와 새 살림을 차리게 된다. 티보의 마음을 죄다 흔들어놓고 말이다! 아, 티보는 그 오랜세월을 기다려놓고는 '타이밍'을 맞추지 못했던 것이다!! 사랑에 타이밍이 얼마나 중요한가! ...그렇게 3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티보는 여전히 그녀를 사랑한다. 전처럼, 아니 전보다 더 많이. 아가테의 새로운 생활은 최악의 상황이었지만 그런 그녀를 진심으로 걱정하고 챙기는 것 또한, 그녀를 가진 헥토르를 죽을 만큼 미워하고 질투하지만 아가테를 위해서 그를 도와줄 수 밖에 없는 그런 사람역시 티보였다. 이 대목에서도 답답한가? 하지만 누군가 진심으로 사랑하게 된다면, 이런일은 가능할 것 같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행복과 사랑을 위하는 길... 아.. 불쌍한 티보.. 사실 너무 불쌍하고 안쓰러워서 미치는 줄 알았다.
'굿메이어'가 내개 매력으로 다가왔던 이유는 '시장'이라는, 거기에 '선량한 시장'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기에 진정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살 수 없었던 한 남자의 이야기가 안쓰러웠기 때문이다. 한번뿐인 인생, 그리 길지도 않은데 우린 무엇을 위해 '타이틀'에 목이 메여 있을까? 책에서는 '사랑'이라는 주제를 엮어놨지만, 둘러보면 우리의 일상도 이런일이 많을 것이다. 남의 시선때문에 결정하지 못 했던 일들, 선택하지 못했던 상황.. 누구나 쉽게 말하는 '해도 후회 안해도 후회'의 상황이라면 '해보고 후회하는 편'이 조금은 속이 후련하지 않을까? 문득 용기내기 못 했던 내 젊은 날의 시간들이 떠올랐다. 그때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지금과는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티보는 그렇게, 그런 이유로 사랑하는 여인을 지켜봐야하는 남자가 되었다. 하지만, 이제 그녀와 가까워지려고 하는 그 순간에도 그는 플라토닉적인 사랑을 그녀는 에로스적인 사랑을 갈망하고 있으니, 타밍도 코드도 맞지 않는다. 그렇다고 육체적인 것을 원하는 아가테를 누가 원망할 수 있겠는가? 플라토닉적인 사랑이 있으면 에로스적 사랑이 따라오는 것은 당연지사. 그저 그녀의 상황이 순서가 뒤바뀌어있었을 뿐. 그렇다고 티보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으니... '남이하면 불륜, 내가 하면 로맨스'라는 말이 떠올랐다. 유부녀인 아가테를 마음에 품고 있었던 티보는 죄인일까? 아직 이혼절차를 밟지 않았던 그녀와 잘해보려고 했던 그 상황이 죄일까? 표면적으로는 있을수도, 있어서도 안되는 이야기지만 불행한 결혼생활이 지속되었던 아가테의 입장을 알고 나면 그저 티보와 아가테가 새로운 삶을 맞이하길 응원하게 될 것이다. 물론, 그저 책이니 이렇게 쉽게 응원이 되기도 하겠지만 말이다.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는 표현이 딱 맞아 떨어질 정도로, 현실에서는 있을 법하지 않지만 이런 이야기가 실제로 존재한다면 참 좋겠다는 욕심이 앞선다. 신데렐라와 미녀와 야수가 실제로 존재했으면 하는 바램을 갖게 하듯이 말이다. 작가의 처녀작임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글솜씨는 정말로 놀라웠다. 장면 하나하나를 설명하는 그녀의 문장은 너무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았다. 특히 티보가 아가테를 관찰하는 일상 하나하나, 거리의 풍경과 모습을 담은 무장 하나하나가 설레임을 더해줬다. 티보의 그 애타는 마음과 두근거림이 그대로 전해지는 것 처럼...더불어 1200년전 고인이 된 도트시의 '성발푸르니아 수녀님'이 제 3자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해나가는 구성도 재미있었고, 혹자는 이해가 안간다고 했던 체사레나 기욤,유령들의 등장들도 픽션이니까, 동화니까 더 이야기를 풍족하게 채워줬던 것 같다.
결국 티보는 불행의 구렁텅이에서 아가테를 구해내고 만다. 함께하게 된 티보와 아가테. 과연 그들의 결말은 해피엔딩일까?
달콤하고 몽환적이며 설레이는 이 작품은... 단순히 '로맨스'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있어서 사랑이란 어떤 모습, 어떤 의미인지. 인생에 있어 내게 우선순위는 어떤 것들인지 다시한번 돌아보는 좋은 시간이 되었다. 그런만큼 작가의 다른 작품들이 상당히 기대되기도하고, 오랜동안 머릿속에 남게 될 것 같다.
제가 인생에 대해 아는 건 이겁니다. 세상에 우리가 낭비해도 될 만큼의 사랑은 없다는 걸 전 알게 되었어요. 한 방울의 여유도 없지요. 사랑을 찾는다면, 어디에서 찾았든 소중히 보관하고 여력이 닿는 한 오래도록, 마지막 입맞춤까지 누려야 합니다. p3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