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가본드 36
이노우에 다케히코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3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1년 반 전 여름. 책이 어느 순간에 집을 삼켜 버릴 정도의 수준이 된 적이 있었다. 책장이 3개나 있지만 1개당 50권 정도는 꼽을 수 있는 데 거기도 꽉 차고, 바닥에는 세로로 위태롭게 쌓여져 있는 책들. 왠지 책에 포위된 이 느낌. 탈출하고 싶었다.

한적한 토요일 오후, 너무 오래된 책들과 철이 지난 법 관련 서적들은 집 앞 고물상에 버리고 그 돈으로 담배를 사려는 창조 경제를 구상하였다.

고물상은 집에서 5분 거리다. 아침 출근할 때마다 이미 철문은 활짝 열려있고,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수레를 들고 출발 준비를 하고 계신다. 희끗희끗한 머리를 올백하고 꽁지 머리, 위에는 허름한 티셔츠와 조끼차림. 바지는 군복. 수염이 더부룩한 분이 항상 철문 앞에 나와 여기를 지나칠 때면 청소를 하고 계신다. 그리고 뭐라 뭐라 써 있는 영문 티와 청바지를 입고 스포츠 머리로 여기 저기 뒤에서 뛰어다니며 세수대야로 물을 뿌리고 있는 청년도 한 명 있었다. 이 두 분이 여기 고물상의 주인들 인 것 같았다. 여기 사장님은 인자하신 듯, 항상 할머니, 할아버지께 손수 커피를 타 주시는 모습을 종종 보았다.

고물상에 가서 인사를 하고 수레를 하나 빌린 후 책들을 실어 갔다. 한 무더기의 책을 가지고 가는 나를 반갑게 맞이 해 주시는 두 분.

책들을 저울대에 쌓으며 법학 관련 책이 많이 나오는 걸, 꽁지 머리의 사장님은 유심히 보시는 듯 했다. 책을 모두 계산한 금액, 몇 천원을 손에 쥐고 담배를 사려고 급하게 가려는 나에게 사장님은 주저 하듯이 말을 꺼내셨다.

 

저 혹시 법 공부를 하시나요?”

? , 그냥 준비하는 시험이 있어서요.”

나의 답변에 무슨 확신이 서시는 지. 사장님은 사무실로 나를 초대했다.

 

저기 책 팔러 오신 분에게 죄송하지만 조금 말씀 드리고 싶은 게 있어서 말이죠.”

사장님의 이야기는 이러했다. 여기서 일하는 스포츠 머리의 청년은 올해 25. 지체 장애인 3급이라고 했다. 몇 달 전 수레를 끌고 다니며 파지를 모아 오길래. 젊은 청년이 이런 일을 하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라 관심을 가지고 지켜 봤다고 한다.

이 청년은 부모님과 함께 살지만, 어머니는 생수 공장을 다니시다 몇 년 전 중풍으로 쓰러져서 누워 계시고, 아버지는 허리 디스크가 도져서 병원도 못 다니시고 집에만 계시기에 자신이라도 돈을 벌려고 파지를 모으기 시작했다고 한다.

주변에서 매미의 시끄러운 소리와 사무실에서 들려오는 교통방송. 찌는 듯한 더위. 그 속의 청년의 삶에 대한 이야기는 더 덥고 숨이 막혔다.

사장님은 그럼 왜 직장 같은 데나 공장으로 취직을 하지 파지를 모으냐고 물어 보았다. 파지 줍는 일은 정말 돈이 안되기 때문이다. 청년은 어머니가 쓰러지셨을 당시 벼룩시장 같은 걸 보고 돈을 많이 준다는 말에 인천까지 일을 하러 갔었다. 하지만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그가 지체장애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1년 동안 일을 시켜 준다는 명목 아래 그를 컨테이너 박스 같은 곳에 가두고 일을 시키며 집에 보내지 않았다.

집에 가고 싶어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도망을 가 보았지만 얼마 가지도 못 해 다시 잡히고 또 잡히면 심하게 구타를 당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치 만화처럼 아침에 컨테이너 박스에서 일어나니 문도 열려있고 자신을 감시하던 사람들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이런 기회를 놓치면 탈출을 못한다는 생각에 그곳을 달리고 달려 탈출했다고 한다. 전철역에서 집에 가고 싶지만 돈이 없어, 역에 오시는 분들께 사정을 말했지만 아무도 도와주지 않아 결국에 역의 직원에게 사정을 말하고 집에 다가 연락을 해 무사히 집으로 올 수 있었다.

악몽 같은 시간을 보낸 후, 경찰에 신고를 하고 보내던 그에게 법원에서 하나 둘 우편이 오기 시작했다. 그 내용은 3천 만원 정도의 빚을 갚으라는 것이었다.

아니, 내가 여기까지 듣고. 기가 막히더라고, 지체장애인들 데려다가 노예처럼 일 시킨다는 건 들어 봤는데 직접 들으니 어이가 없어 가지고 말이야. 내가 그래서 정운이(그 청년)에게 집에 있는 통지서들 가지고 와 보라고 했어. 근데 봤더니 핸드폰 요금이 300만원 넘는 것도 있고, 그게 한 두 개가 아니더라고. 게다가 내용들이 무슨 사기 같은 것을 했다고 법원에서 벌금을 내라고 천 만원 정도 통지서가 나왔어. 빚이 그리 많으니 핸드폰 하나 개통도 못하니, 어디 직장에 취직이나 할 수가 있나. 게다가 본인도 그럴 엄두도 못 내고 말이야.”

사장님은 파지로 돈을 벌 수는 없으니 자신의 일을 도와주며 월급을 받으라고 권유했고, 그 때부터 정운이는 이 곳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중학교 밖에 못 나와서 말이야. 이거 뭘 도와주고 싶은 데 어떻게 해야 할 지를 모르겠더라고, 그래서 아까 학생이 책을 버리는 데 법 관련 책들이 많이 나오더라고. 우리한테 사실 직접 버리러 오는 사람들은 없거든. 다 할머니나 할아버지들이 가지고 오시지. 그래서 아 글쎄, 학생이 책을 버리는 데 막 감이 오더라고. 이 사람은 뭘 알겠지 하고 말이야.”

그러더니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밖을 향해

정운아! 정운아! 이리와 봐! 얼른 얼른 그거 나중에 하고!”

뭐냐. 이 주체 못하는 운명적 파도의 흐름.

정운이는 땀에 흠뻑 젖은 채 목에 걸은 수건으로 얼굴을 닦으며 들어왔다.

사장님은 아빠 미소를 지으시며

인사 드려. 이 분이 법 전공하신 데

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30분 가량 앉아 있었는데 어느 새 법 전공 학자가 되어 이 곳 사무실에 존재했다.

토요일 담뱃값 벌려고 책 팔러 왔는데 법학 전공 학자가 되어버린 청년의 기구한 사연을 그대들은 들어 보셨는가.

무대는 갖춰졌고 난 그 역할을 멋지게 해 내야 했다.

마치 법 공부 몇 년 한 사람처럼 일어서서 정운이를 보고 환하게 웃으며 악수를 청했다.

정운이는 손을 수건을 닦은 채 고개를 푹 숙이며 인사를 했다. 고개를 숙이는 그의 등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등에서 하늘을 향해 솟아 오르는 땀의 열기를 보며, 그가 얼마나 고단하고 열심히 삶을 살아가는 줄 알 수 있었다. 루쉰 선생은 서점에 자신의 책을 사러 온 노동자가 준 돈을 두 손에 받고 그 무게가 돈의 무게가 아닌 이름 모를 생명의 무게처럼 느꼈다고 쓴 구절이 있었다.

 

여기서 물러서면 우리 셋 다 피 본다. 왠지 몰라도 아는 척 해야 할 것 같고, 나를 뚫어지게 보고 있는 저 눈들을 향해 외쳐줘야 할 것 같다는 압박감이 들었다.

머리에선

깨끗하게 돌아서라. 모른다고 해라. 여기서 더 들어가면 큰일이다.’

입에선

사장님, 제가 지금은 경황이 없이 와서요. 모레 다시 한번 찾아올 테니 정운씨에게 온 통지서 좀 가져다 주시겠어요. 한번 저도 살펴봐야 될 것 같아요.”

망했다. 망했어. 육체와 정신이 따로 노는 나란 남자. 멋진 남자.

사장님은 자신의 예견이 맞았다는 듯이.

, 그래. 그래. 학생도 봐야 더 자세하게 알 수가 있겠지? 내가 준비해 놓을께.”

환하게 웃으시며 커피 한잔을 더 타 주셨다.

밖으로 나와 사장님과 담배를 피며 옆에서 서 있는 정운이를 천천히 보았다. 정운이는 담배를 피며 하염없이 바닥을 보고 있었다. 날씨가 더운 탓인지 쑥스러운 탓인지는 몰라도 나를 쳐다보지 못하고 있었다.

정운아 우린 소개팅 하는 게 아니란다. 너가 나에게 부끄럼을 탈 필요가 없어.

난 가슴 큰 여자가 좋아.

집으로 돌아온 나는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워 머리를 감싸 쥐었다. 고뇌, 고뇌의 폭풍우였다. 어떻게! 어떻게! 도울 수 있단 말인가? 뭘 알아야 돕지. 나도 법 모르는 데 어쩌냐!

인간의 정지된 뇌와 다르게 자연은 규칙적으로 움직였고, 하루, 이틀이 지나갔다.

저녁에 찾아가야 하는 고물상을 앞에다 두고 심각한 고민에 휩싸였다. 이대로 튀어야 하나? 아님 사실대로 말하고 변호사에게 찾아가 보시라고 할까?

변명을 뭐라고 해야 하나 그러나 그들의 기대에 찬 그 눈빛들이 생각났다.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교내 법학과 교수님 사무실을 찾아갔다.

교수님 사무실 앞에 있는 철문이 어찌나 무거워 보이던지 두드릴 용기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지옥에 빠진 그들과 나를 구해야 한다는 절박감에 나는 문을 두드렸고, 그 안에는 한 분의 노신사가 앉아 계셨다.

읽으셨던 책을 덮으시고 의아한 듯이 나를 쳐다보시는 교수님께 인사를 드렸다.

학점 때문인가?”

교수님은 차분한 표정으로 양 손에 깎지를 끼고 책상에 팔꿈치를 올리시며 말했다.

고물상 때문입니다.”

더운 날씨, 날카로운 인상의 교수님, 연구실이라는 막힌 환경.

난 그곳에서 뇌세포가 뒤엉켜 버렸나 보다.

고물상? 신의칙 판례에 나온 거 말인가?”

이건 뭔 소리냐?

교수님의 진지한 대답에 난 더 당황하고 무슨 대화인 지 모르는 혼란감속에 자아가 붕괴되는 줄 알았다.

뽑아간 음료수를 책상 앞에 올려 놓으며 난 땀을 폭포수와 같이 흘리며 내가 겪고 있던 일들을 얘기해 드렸다.

교수님은 허허 웃으시며.

, 직원이셨군요. 저도 학생 같지 않아 보이기에 좀 놀라기는 했었어요. 민사 소송이 걸린 듯 한데 저도 근거 자료가 없으니 뭐라 답변 드리기는 힘들고, 무료법률구조공단이라는 게 있습니다. 아마 O시에도 그 사무소가 있을 테니 거기를 꼭 찾아가 보세요. 전문가들이 있으니 무료로 그 부분들을 해결해 줄 겁니다.”

무료법률 구조공단! 내 귀에는 그 단어가 천국의 트럼펫처럼 울려 퍼졌다. 교수님에게 감사하다고 고개를 푹 숙이며 여러 번 인사를 드렸다.

결전의 날. 우리는 고물상의 철문을 닫고 고요한 사무실에 앉았다. 내 상반신만큼이나 쌓여 있는 통지서들을 살펴보며 하나 하나씩 체크해 갔다. 그런데 여러 번 독촉이 왔음에도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은 정운이가 참으로 이상했다. 대략적으론 이야기를 하는 데 세부적인 상황까지 물어보면 답변을 못하기 일쑤였다. 게다가 방금 말한 것과 지금 얘기한 것이 서로 부딪쳐서 말이 안 되는 것들도 있고, 말하던 나도 지칠 뻔 했다.

눈치를 보시던 사장님은 나를 데리고 나오셔서 얘기를 하셨다.

내가 지체장애는 뭔지 잘 몰랐었는데, 정운이 일 시키면서 어떤 건지 알았지. 쟤가 말을 표현을 잘 못하고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하면 이해를 못 하더라고. 아침에 세수대야에 물 뿌리는 거 가르쳐 주려고 세수대야 가지고 오라고 하면 주저 주저 하다가 아, 글쎄. 수레를 가져 오더라구. 그래서 나는 쟤가 나 가지고 장난치는 줄 알았다니까.”

사장님의 이야기는 정운이가 사람들보다 약간 떨어지는 의사소통 능력과 지능이 사람들 보다 못하다는 얘기였다. 그러니 얘기하다가 답답하면 정운이가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니니까 이해를 해 달라는 것이었다.

인내와 인내를 걸친 대화 속에서 결론은 정운이는 인천에서 그의 명의를 도용 당해 통장이 쇼핑몰 사기 계좌가 된 것인 것 같았다. 정운이를 가둔 그들은 물건을 보낸다고 하고 물건은 보내지 않은 채 돈만 정운이 통장으로 받은 채, 잠적을 한 것 같았다. 결국에 명의자는 정운이니까 당연히 그가 고소를 당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정운이가 알고 그 사기를 도운 건지 그렇지 않은 지가 명확하지 않았다.

일단 사장님과 정운이에게 무료법률구조공단을 내가 아는 데로 설명하고 그곳을 같이 찾아가 보기로 했다.

토요일 오전, 무료법률구조공단을 방문했다. 허름한 건물 3층에 위치한 공단은 주변에 개인회생 개인파산이라는 커다란 글귀를 써놓은 법무사, 변호사 사무실들로 둘러싸여 있었다. 마치 불신지옥 예수천당이 한때 지하철을 지배했듯 이 세상은 개인회생 개인파산만이 지배한 듯 오로지 그 글귀들만 빨간 색으로 주변을 장식하고 있었다.

좁은 사무실에 사람들은 이미 빽빽하게 들어서 있었다. 고개를 숙이고 자신의 번호표만 하염없이 보는 사람, 당신들은 뭐 땜에 왔느냐라며 노골적으로 불쾌한 눈빛으로 두리번거리는 사람. 차림새들은 모두 간단한 티셔츠나 세월 지난 셔츠 차림으로 폭풍이 지난 황량한 들판에 서 있는 앙상한 나뭇가지들처럼 그들은 앉아 있었다.

안내되어 간 칸막이 친 책상 앞에서 구조공단 직원과 대화를 나누었다. 바가지 머리의 30대 중반 정도의 남성이 정장 차림으로 앉아 있었다. 이미 눈은 반쯤 풀린 채로 쉬지도 않고 떠 들은 듯 혼이 나가 있는 표정이었다.

그 앞에 스포츠 머리의 정운이는 눈을 깐 채 앉아 있었고, 의자를 끌어와 양 옆에 수호신처럼 앉은 꽁지머리 군복바지 차림 사장님과 정장 차림의 올백머리의 나.

우리의 이름 모를 아우라에 직원도 약간 움찔 하시는 듯 보였다. 자초지종은 내가 설명하고, 사장님은 정운이를 그렇게 만든 무리들에 대한 감정적 격노를, 정은이는 진실입니다라고 짧게 말했다. 셋이서 파트를 나누어 노래 부르는 걸그룹처럼 내가 나오면 둘이 쉬고, 사장님 나오면 둘이 쉬고, 걸스데이처럼 우리는 호흡을 맞췄다. 직원은 우리를 번갈아 보며 정말 진지한 자세로 들어 주었다. 우리가 말하는 거 집중 안 했다가는 자신에게 어떤 해를 입힐 지 모르는 공포감을 느꼈을 지 모르지만 그의 눈빛은 참으로 진지했다. 우리의 이야기를 듣고 날아온 통지서들을 분석하며 그는 간간히 예리한 질문들을 하나씩 던졌다.

조사를 해 준 직원은 이미 정운이를 괴롭힌 주범은 3명인 데 그 중 2명은 판결을 받아 감옥에 있다고 얘기해 주었다. 그들은 정운이 뿐만 아니라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많이 그렇게 해 와서 고소를 당하고 사법적 판결을 받았다고 한다. 다만 나머지 한 명이 잡힘으로 정운이의 소송에 대한 해결이 된다고 해 주었다. 대신 지금 빚 진 것들이 핵심인데 나머지 한 명이 잡혀 법원에서 정운이의 무고함이 밝혀질 것이고 그러므로 빚들은 소멸될 것이라 해 주며, 지금은 그런 상황들이 진행 중이라 정운이에게 통지서들이 어떤 영향을 주지는 않을 것이라 해 주었다. 다만 신용불량도 그 때 모두 해결될 것이기에 그 때까지 힘들어도 버티라고 하였다.

 

우리의 굳은 표정이 풀리는 것을 보고 환하게 웃는 직원의 그 미소가 어찌나 아름답던지. 그 때 그의 뒤에서 어떤 후광이 비치는 것 같았다. 내가 꿈꾸던 것도 저런 모습이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돈을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람에게 도움을 주며 돈을 버는 것. 그것이 내가 꿈꿔온 길이지 않는가? 바쁜 직장 생활 속에 노무사 공부를 한다고 하지만 의욕이 넘치지 않았던 나는 직원의 모습을 보며 저것이 진정한 실력자의 모습이라 감탄을 하였다.

셋이서 돌아오는 길에 사장님은 냉면을 사주셨고, 우리는 같이 먹으며 서로를 칭찬했다. 예전에는 잘 몰랐던 느낌이었다. 누군가를 도와준다는 것, 그리고 그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 근데 참 신기한 것은 그를 도와주며 나 역시 스스로에게 자신감을 얻었다는 것이다. 나도 복잡한 것들 것 누군가를 위해 노력하면 해 낼 수 있구나 하고 말이다. 내 안의 이런 용기가 있는가 하고 말이다. 아마 내 일이라면 이렇게 용기를 가지고 부딪치진 못 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법학과 교수님과 공단의 직원을 보며 내가 가고 싶은 길에 대해 욕심이 생겼다.

복잡한 일은 해결이 되어 마무리가 됐지만, 제대로 말도 못하는 정운이를 같이 무언가를 해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을 못하는 건 읽고 쓰는 능력이 퇴화되어 그런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이 들었다. 그 때 문득 스친 생각은 고물상 사무실 책꽂이 있던 만화책들이었다.

사장님은 그 책들은 팔기에는 아까워 남겨 놓았다고 하시는 데, 그 책들 중에는 배가본드전 권도 들어 있었다.

방랑자 배가본드

난 이노우에 타케히코가 미야모토 무사시를 그릴 때 그를 반대했었다. 1권부터 한 10권까지 읽다가 내가 알고 있는 요시카와 에이지의 무사시가 사라진 듯 해 흥미를 잃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나마 전권이 갖춰진 배가본드는 내 마음을 흔들었고, 독서를 끊은 지 오래인 나에게도 그리고 정운이에게도 부담 없는 만화가 좋다고 생각이 든 것이다.

일주일에 한 번 우리는 사장님의 배려 속에 조용한 사무실에서 배가본드를 읽었다. 타케히코의 문장을 소리 내어 읽으며 그냥 눈으로만 봤던 그의 책들이 참 많은 것을 담고 있다고 생각했다.

17년간 그리고 있는 미야모토 무사시. 그는 그 속에서 무엇을 발견하고 싶은 것이었을까?

배가본드는 어느 정도 읽을 무렵 정운이는 자신은 소설을 써 보고 싶다고 나에게 말을 했다. 무언가를 향해 전력으로 도전한다는 것 그것이야 말로 우리가 바랬던 바 아닌가!

난 며칠 뒤 노트와 필기구를 사서 정운이에게 선물로 주었다. 그가 글을 쓴다면 좋을 거라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검을 향해, 천하무적을 향해 달려가는 무사시를 보며 나 역시 몸을 단련하자 마음 먹고 직장 근처 수영장을 끊었다. 7 ~ 8시까지 수영을 하기 위해서는 5시반에는 집에서 나가야 했다. 수영장에 가서 기초 수영을 배우며 잠도 밀려오고 피곤한 마음에 하라는 수영은 되지가 않고 물 속으로 자꾸만 가라 앉는 나를 발견했다. 어느 날은 나무토막처럼 둥둥 떠 다니기도 했다.

그런 동안 사장님은 정운이가 일 하다가 잠깐 쉬는 시간이면 하늘을 보며 중얼거리며 노트에 열심히 뭘 적더라고 얘기해 주었다. 내심 기대가 되었던 나는 정운이에게 한, 두 달이 흐를 무렵 무얼 그리 적고 있냐고 물어 보았고. 정운이는 연애 소설을 쓰고 있다고 했다. 3부작으로 구성 중인 데 그 첫 번째 작품의 제목은!

네 건방진 입술을 뺏어봐!’

내용은 건방진 아가씨의 입술은 순수한 청년이 뺏어간다는 그런 내용이었다. 조용한 사무실에서 자신의 소설을 낭독하는 정운이에게 뭐라 대꾸할 말이 없어 조용히 듣기는 했는데 여자 대사를 할 때는 여자 목소리를 내는 정운이를 보며 감정 안 넣어도 이해하니 이상한 여자 목소리 내지 말라고 멱살을 잡고 싶기도 했다.

그러나 어찌됐든 말을 잘 못하는 것과 다르게 이야기도 논리적이고 잘 쓰는 정운이가 대단한 생각이 들어. 한번 연애 소설 사이트 같은 곳에 올려 보자고 했고, 우리는 글을 올린 후 그 반응이 기대가 되어 설레는 마음을 품은 채 며칠 기다리며 댓글을 기다리기로 했다. 며칠 뒤 사이트를 열어본 우리는 100여개의 댓글 수를 보며 이러다가 소설가로 책 출판 하는 거 아니냐며 자축을 하고, 댓글 내용을 보았는데.

똥구멍으로 글을 쓰냐

아주 지랄도 풍년이다.’

입술을 뺏는 게 왜 주제냐. 도대체 무슨 의도로 글을 쓴 거냐

엄청난 악플의 현장을 목격했고.

가장 나은 댓글은

그래도 쓰느라 고생했네요.’

댓글을 다 보며 우리는 말이 별로 없었고, 정운이는 고개만 하염없이 숙이고 있었다.

그 때 난 요시카와 에이지의 무사시 이야기를 해 주었다.

정월, 모두 새해를 맞이해 분주하던 날. 무사시도 무사 수행 중 이었으나 가족이 그리워 자신의 이모가 보고 싶어졌다. 추운 밤 배가 고픈 무사시는 이모를 찾아 갔다. 늦음 밤에 찾아간 이모는 오랜만에 만난 무사시에게 소문에 너가 흉폭하다하며 곳간이라도 좋으니 재워달라는 무사시에게 차갑게 집에서 재워 줄 수는 없다며 먹던 떡 2개를 싸서 무사시에게 쥐어 주었다.

무사시는 그 얼은 떡을 먹으며 잠도 못 잔 채 거리를 나와 새벽에 강가에서 찬 물로 목욕을 하며 스스로 외쳤다.

난 여기서 정운이에게 말했다. 이 부분이 중요한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곤경에 빠질 수 있지만 그걸 어떻게 받아 들이냐가 중요하다고 말이다.

무사시는 검으로 인생을 찾겠다는 자신이 잠시 사람의 정이 그리워 찾아가고 이런 대접을 받았다고 약해져 있다니 아직도 자신은 멀었다며 반성을 했다.

사무실 형광등 불빛 아래서 정운이를 향해 손을 펼치면 열변을 토하는 내 자신!

우리는 스스로를 단련해 보자고 글을 쓰는 것이 아닌가? 댓글이 무어냐! 우리를 모르는 사람이지않는가. 무사시는 검을 통해 자신의 인생을 찾아갔다. 그렇다면 우리는 주위에서 뭐라 한다고 못났다고 금방 풀이 죽어 글 쓰는 것을 포기해야 하는가! 그래! 똥구멍을 쓴다고 하면 똥구멍도 좋다. 써보자! 한번 써보자! 다 쓰자! 계속 써 보자!

사무실에서 큰 소리가 나자 뭔 일인가 달려온 양동이 든 사장님도, 멍하니 눈을 깔고 있던 정운이도 신들린 듯한 나의 목소리! 하늘을 향해 일직선으로 솟은 듯한 소나무와 같은 나의 팔 놀림. 게다가 난 내 말에 내가 취했다.

이름 모를 감동이 우리 세 명을 덮쳤고, 사장님은 또 말 없이 냉면을 시키셨다. 정운이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쓰기를 결의하고 말이다.

정운이와 <배가본드>를 읽으며 미야모토 무사시도 우리도 인간. 그가 걸었던 그런 집념의 길이 그리고 그런 열정이 우리 안에도 다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란 생각이 들었다.

누구나 각자의 내면의 무사시가 있다. 그가 천하무적의 길을 걷든, 아니면 그런 것들을 아지랑이로 보든. 어떤 벽을 향해 전심전력으로 움직이고 모든 것을 다 연소시키고 싶은 그런 마음. 그걸 발견하고 만들어 가는 것. 그것이 내 안의 무사시의 싸움이지 않을까. 인생이라는 전쟁터에서 말이다.

무사시. 그것은 하나의 인격의 이름일 것이다. 그를 통해 내가,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것은 우리 안에도 같은 무사시가 있기에 밖에 타케히코를 통해 보여진 무사기가 내 안의 무사시를 자극하는 것은 아닐까?

 

배가본드 20편의 작가의 말

인연이란 참으로 오묘한 것이다. 사람과의 인연 소설이나 만화와의 인연 한 편의 영화나 한 곡의 노래와의 인연 자신이 진심으로 원했을 때. 그것들은 마치 미리 알기라도 하듯 거기에 있다. 그런 것들이 나를 살려준다.

 

그러하다. 참으로 그러하다.

 

우리는 <배가본드>를 읽으며, 스스로의 나약함을 비웃었다. 그리고 이노우에 타케히코가 그리는 무사시의 유튜브 동영상을 보며 그의 집념에 감탄을 했다. <고백>이라는 타케히코가 미야모토 무사시를 휴재하는 동안 인터뷰한 글들이 출판된 것도 있었다. 그는 인터뷰를 통해 ‘리얼’이란 만화는 그릴 것이 정해져 있고 생각할 필요가 없듯 그대로 그리면 된다고 했다. 하지만 무사시는 다르다고 했다. 거기엔 소재도 없고 아무 것도 없다. 자신이 찾아야 하고, 자꾸 창작해 가야 한다고 했다.

 

그의 글을 읽으며 저 작가 참으로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어느 날 우리는 <배가본드>의 한 주인공 마타하치의 어머니 혼이덴 할머니가 죽을 때 자신의 아들을 위한 유언을 할 때 글을 읽었다.

 

흔들리지 않고 외길을 걷는 모습은 아름답다.

하지만 보통 사람은 꼭 그렇지만도 않은 법.

헤매고...

실수하고...

멀리 돌아가기도 하지.

그래도 좋아.

뒤를 돌아보렴.

여기 부딪히고 저기 부딪히고 이리저리 헤맨 너의 길은...

분명 누구보다도 넓을 테니까.

지나온 길이 넓은 만큼 너는...누구보다도 다른  사람에게 너그러울 수 있는 게야.

나도...무사시도...되지 못한 인간이 될 수 있을게야.

 

마타하치..

이 세상에 강한 사람 같은 건 없단다.

강해지려고 발버둥치는 사람...

있는 건 오직 그 뿐이야.

약한 사람은 자기를 약하다고 하지 않지.

너는 이미 약한 자가 아니란다.

강해지려고 노력하는 자.

이미 그 첫걸음을 뗀 게야..

내가 뭐랬니?

너의 미래는 활짝 펼쳐질 거라 했지?

여덟 팔자 모양으로

지지마라. 마타하치. 지지마!

 

지지마라 마타하치 지지마를 읽는 데 정운이가 울음을 터트렸다. 마치 자기에게 한 소리처럼 들렸다고 한다. 자신은 약하고 한 없이 나약하고 바보 같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마타하치처럼 부모님께 칭찬 받기 위해 거짓말도 많이 하고 말이다. 나 역시도 똑같았다. 만만치 않은 허풍의 거성을 쌓았다.

 

우린 그 후 약하지만 지지 않으려고 노력해 갔다. 정운이는 작년 겨울, 고물상에서 일하며 다닌 장애인 센터에서 여자친구까지 사귀었다. 속으로 정운이는 연애능력은 나보다 한 수 위라고 생각을 했다.

 

정운인 열심히 글을 쓰고, 난 도서관에서 열심히 공부 중이다.

 

고물상 동지들은 나에게 엄청난 믿음을 가지고 있다. 앞으로 1년 그랬듯이,

나아가자. 난 O시의 미야모토 무사시다!

지지마라! 루쉰p! 지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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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4-07-17 17: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으면서 무척 안타까워 아 이걸 어쩌지 어떻게 도울 방법이 없나 전전긍긍했는데, 루쉰피님이 제대로 방향을 잡고 그들 옆에 있어주었네요. 어렵고 고단한 삶에 대한 내용이 담겨있지만 아주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루쉰피님.
지지말고 지치지도 말고, 공부 열심히 해서, 하고자 하던 일 꼭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루쉰피님.
응원합니다. 진심으로요!

루쉰P 2014-07-18 12:42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의 응원해 주시는 진심의 마음이 모니터를 뚫고 저에게 전달되네요. 너무 감사해요. ㅎ
그들 옆에 제가 있던 게 아니라, 그들이 제 옆에 있어주었어요. 그래서 의욕을 다시 가지게 되었죠. 어렵고 고단한 삶에도 유머는 있고, 즐거움은 있다고 믿어요. 물론 지금 사회 돌아가는 게 웃음을 찾기도 힘들고 사람 힘 빠지게 하는 것들의 연속이지만 주위 만큼은 제 책임 영역이라 생각해 뭔가 즐겁게 만들어 볼라구요. 허허허

지지말고 지치지도 말고! 음~~~너무 맘에 들어요!
다락방님도 이 여름 지지마세요. 전철에서 책도 많이 읽으시구요. ㅎ 전철도 잘 타면 시원할 때 많아요 ㅎ

노이에자이트 2014-07-20 1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료법률구조공단 같이 우리가 활용하면 도움이 되는 곳이 꽤 있죠.하지만 그런 곳이 있다는 것을 모르면 무용지물입니다.그런 곳에서 법률상담 해주는 사람들은 대단해요.대부분 법률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상담하러 오고 그런 사람들에게 일일이 설명해주고 질문을 이끌어 낸다는 게 정말 힘들거든요.

아, 그리고 워낙 요시카와 에이지 것이 유명합니다만, 사바다 렌자부로가 쓴 미야모도 무사시도 잘되었다고 합니다.혹시 읽어보셨는지요?

루쉰P 2014-07-21 09:14   좋아요 0 | URL
무료법률구조공단은 대단하다고 생각들더라구요. 그치만 그 곳에 오신 사람들의 분위기가 너무 무거워서 다시는 가고 싶지는 않은 곳이더라구요. ㅎ

사바다 렌자부로가 쓴 무사시도 있다고 들었는 데, 읽지는 않았어요. 요시카와 것이면 되지 않겠느냐는 생각에 말이죠. ㅎㅎㅎ
기회가 되면 한번 읽어 볼려구요. 무사시는 참 대단한 거 같아요. 계속 여러 작가들에 의해 재탄생을 하니 말이에요. 뭔가 사람들을 울리는 그런 것이 있나봐요.

배가본드의 무사시를 그린 타케히코는 무사시가 천하무적이라는 명분으로 사람을 죽인 것에 대해 자유롭지 못 할 것이다. 음 그러니까 어찌됐든 승부라 해도 살인이다. 그 죄책감으로 인하여 보통 사람과 같은 평범한 삶은 살기 어려울 것이다. 라며 이야기를 풀어나가더라구요.

요시카와 에이지는 없던 새로운 시각이라 보면서 대단한 데 그런 생각이 들었죠. ㅎ노자님 무지 더워요. ㅎ 건강하셔야 됩니다. ㅎ

쉽싸리 2014-07-19 07: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동과 웃음, 활력, 진한 페이소스 이 모든 걸 가진 당신께 경배! ㅎㅎ

루쉰P 2014-07-21 09:16   좋아요 0 | URL
이거 부끄러워서 뭐라고 답을 해야 할 지, 여태 받은 칭찬 중 한 줄로 이렇게 과한 칭찬을 받기가 얼마만 인지 후후후
모니터보고 울 뻔 했어요. 푸하

잘 지내시고 계시죠? 오랜 시간 동안 돌아오지 못하고 방랑하고 다녔네요. ㅎㅎㅎ
이제는 정신 차리고 살려구요.

감은빛 2014-07-27 0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루쉰님 특유의 글을 아주 오랜만에 읽었네요!
무척 반가워요!
루쉰님의 용기가 대단하네요.
잘 알지도 못하는 법률 상담을 자처해 나서고,
잘 알지 못하는 이를 위해 글쓰기 공부도 함께 하고......

대단하세요!
애쓰신 만큼 좋은 결과가 있기를 기대합니다!

루쉰P 2014-07-27 17:14   좋아요 0 | URL
저도 감은빛님의 댓글을 보니 왠지 고향에 돌아온 이 기분...

아니에요. 전 용기가 없어요. 제가 알기론 감은빛님이 저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모르는 사람들과 대화하며 그들을 도와주시는 걸로 알고 있어요.

전 뭐랄까 포위됐다고 할까요? 그 상황에서 도망칠 수 없었기에 한 발 나간 것 뿐이에요. 덕분에 더 많이 배웠죠. ^^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이 어떤 인간인 지 알게 되고 느끼는 것 같아요.

요즘 계속 공부하느라 도서관에 있어요. 지금도 도서관이에요. 하지만 한 달에 한 권은 책을 읽으려구요. 그래서 서평도 길어도 쓸라구요. 푸하
감은빛님만 읽어 주신다면 쓸 겁니다. ㅋㅋㅋ

꼬마요정 2014-07-27 2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순식간에 읽어내렸습니다. 같이 분노하고 안타까워하고.. 마침내 일이 잘 해결될 것 같다는 부분에서는 저도 모르게 '다행이야'라고 외쳤지요. 루쉰님 멋지세요~ 무료법률공단에 계신 분들도 멋지세요~ 아.. 그래도 세상은 이렇게 살 만한 곳인가 봅니다. 저도 더 노력해야겠어요..

사실, 저는 돈이 아니라 사람을 상대로 하고 싶어서 수수료가 얼마 안 되어도, 동네 사람이니까, 혹은 세법을 잘 모르니까 싶어서 친절하게 이것 저것 해 주고 하는데요.. 그걸 당연하게 생각하거나 막말을 하면 저도 모르게 힘이 빠지거든요. 안 그런 사람들도 많은데 한 번씩 그런 사람들 만나면 참 힘이 드네요. 그래도 또 혹시 힘든 사람 도와주게 될 지도 모르니 힘을 내 봐야죠. 루쉰 님 글 읽고 힘 내서 갑니다.^^

루쉰P 2014-07-28 08:51   좋아요 0 | URL
멋지시다고 해 주시다니 갑자기 눈물이 ㅋ

꼬마요정님은 동네 분들에게 세법을 가르쳐 주시는 군요. 움직이는 무료법륭공단이네요. ㅎ
근데 그런 사람들은 있어요. 내가 선의를 베푸는 것에 대해 당연히 생각하는 사람들, 좀 뻔뻔하다고 할까요? 그런 사람들 보면 힘이 빠지는 게 당연하죠!!
대신 그런 사람들에게 좋은 일을 하시는 꼬마요정님이 상처 받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전 그렇게 대놓고 많은 사람을 도와주지는 못하거든요.

사실 정운이도 옆에서 도와주기는 하지만 이 친구도 거짓말이 습관이 되어서 책을 안 읽었는 데 읽었다고 하거나, 경제적으로 많이 안 좋은 데도 불구하고 피시방을 가거나 하면서 저에게 거짓말을 한 적이 많이 있어요. 처음에는 도와주려는 마음도 모르고 어떻게 나에게 거짓말을 하고 사람을 속일 수 있지 하고 배신감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에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보니까 그의 모습 속에 내가 있더군요. 저 역시 피시방도 많이 가고 공부해야 하는 데 그냥 시간 대충 보내고 말이죠. 마치 제가 정운이 보다는 낫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런 것이 아니라 저 역시도 정운이가 하는 행동들을 똑같이 하고 있더군요. 그래서 느꼈죠.
나 자신도 바뀌는 것이 참 힘든 데, 하물며 타인을 뭔가 더 좋은 방향으로 바꾼다는 것은 참 힘들구나, 그렇다고 포기하거나 그런 것이 아닌 내가 성장해야 정운이도 성장한다. 우리 같이 성장하자라는 쪽으로 마음을 잡았어요.
내가 정운이 쪽으로 잡아 먹히던 가, 아니면 내가 정운이를 잡아 먹는 가의 싸움이더라구요. ㅎ

꼬마요정님도 예의없고 그런 사람들에게 잡아 먹히지 마세요. 그 사람들은 그렇게 살면서 스스로의 삶을 무너뜨리잖아요. 그런 사람들 때문에 내가 동요되면 안 되는 것 같아요. ㅎ 우리는 우리의 길을 걸으시자구요.
전 사람들이 예의없고 자기 입장만 내세운 다는 것을 알고 있었어요. 정말 좋은 사람은 만나기가 힘들어요. ㅋㅋㅋ
저를 봐도 그렇거든요. ㅋㅋㅋ

꼬마요정님이 사람을 상대로 해 주시는 일에 즐거움을 느끼신다면 그 즐거움을 깨뜨리지 않도록 그런 저급한 3류의 사람들에게 휘둘리지 마세요. ㅎ
저도 휘둘리지 않을거에요 ㅋ

아이리시스 2014-08-02 15: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운이는 잘 지내고 있나요. 또 만나면 잘 지내라고 전해주세요. 응원한다고도. 예전에 우리동네 주민센터에서 일한 적이 있는데요. 거기 되게 좋아요. 아마 그 분위기를 잘 알고 있어서 제가 물 좋고 산 좋은 군이나 읍 같은 동네에서 살아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하는 지도 몰라요. 물론 확실한 직업이 있어야겠죠. 통장 아주머니들이 대표로 주민센터 2층에서 행사 있으면 삼계죽, 떡, 과일 등 점심시간마다 막 돌리고 매일 잔치하듯 행사가 있기도 하고 그래요. 대학생때라 사무장님은 시킨 일만 대충 하고 딴짓하지 말고 영어공부 하라 잔소리하시고. 주민센터에서 제일 힘든 건 아마 상식 이하 민원손님일 겁니다. 근데 더 힘든 건 사회복지담당이에요. 부자동네라면 사정은 많이 다르겠지만 쌀, 라면, 지원금 거의 하루가 멀다하고 나가지만 아슬아슬하게 법적으로 대상이 안 돼서 사정하러 오시는 분들이 많아요. 거의 나이 많으신 분이라 한분한분 붙잡고 설득하지만 말이 잘 통하지도 않죠. 그런데 복지사가 올려주고 싶은 마음 굴뚝 같아도 법이 하는 일이니 냉정해야 하잖아요. 스트레스는 알지만 조금 더 친절하고 상냥하면 좋을텐데 늘 생각했었어요. 지금은.. 그럴 수밖에 없고 그래야 버티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친절, 공정을 잃으면 의미 없는 게 공무원의 일이니까.

하루는 초등학교 때 친하게 지냈지만 이제는 안부조차 모르는 동네 친구 어머니가 주민센터에 오셨어요. 수급품을 타러 오신 것 같았는데 인사를 하기도 안 하기도 그렇다는 생각이 들어 제가 먼저 다른 쪽으로 숨어 버렸어요. 어머님은 알아보셨는데 제가 그냥 미적거리며 모른 척을 한거였는지도. 머리만 숨고 몸통은 그대로 있는. 아버지가 아프고 형편이 그렇다는 건 알았지만 주민센터에서 수급품 받으러 가세요 한 날인 걸 뻔히 아는데 거기 서 있을 수가 없었던 제가 조금 더 크고나선 되게 많이 부끄러웠어요. 적어도 그런 걸 부끄러워하면 안된다고, 생각과 행동과 글과 행동이 다른 나를 그때부터 용서하기가 어려워진 것 같아요. 뭐 이런저런 일들이 많았지만 여전히 사람은 사람을 최선을 다해 보호하고 서로 채찍질하고 함께 일어나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어요. :)

루쉰P 2014-08-02 21:14   좋아요 0 | URL
도대체 아이리시스님은 안 해 본 일이 어떤 거에요? ㅎ 마치 평행이론을 달리듯이 저와 같은 분야의 업무를 많이 경험하신 것 같아요. 혹시나 마주쳤을 때 저와 똑같이 생기셨는 데 머리만 기신 거 아닐까요? ㅎ 도플갱어처럼 말이죠 푸하

주민센터에서 일도 하시고 대단하세요. ㅎ 근데 전 아이리시스님이 몸을 숨길 수 밖에 없었던 마음은 이해해요. 저 역시도 그랬을 것 같아요. 친구 어머님이 저를 보면 민망해 하실 수도 있으시잖아요. 머리만 숨은 게 어디에요. ㅎ 정성이 보입니다.

친구 중에 9급 공무원으로 일하는 녀석이 있는 데 그의 고민은 아이리시스님의 말씀처럼 민원 상담이래요. 조금이라도 상대방이 기분 나쁘게 느껴지면 바로 민원이 들어와서 다시 그 사람에게 죄송하다고 얘기해야 하고 곤욕이라고 하더군요.
그럴 때 보면 안정적인 직업이라고 해도 나는 저렇게는 못한다고 생각을 많이 해요.

공무원도 진상도 만나고 진짜 안된 사람도 만나는 데 그 피로감이 엄청 날 것 같아요. 게다가 본인이 권한이 있는 것이 아니라 현대 사회의 병폐인 결제, 결제 또 결제를 하며 법이라고 하는 기준에 맞춰서 수행만 해야 하니 아마 속병이 무지 날거에요.

정운이는 잘 지내요. ㅋ 요즘은 기타도 배우고 있어요. 13만원이나 주고 기타를 사서 저녁에 고물상에 걸터 앉아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여자친구 불러 줄 세레나데를 연습하고 있어요.
뭐, 사랑의 노래를 부른다는 데 어쩌겠어요. 질투가 나긴 하지만 이해를 하고 있어요. 여자친구도 고등학교 남동생을 키우며 부모님 없이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그런지 정운이가 날로 책임감을 많이 느끼는 거 같아요.
미래의 진로를 제빵사로 잡고 공부도 하고 있어요. ㅎ 무척이나 흡족합니다.
장애인센터에서 제빵 교육을 시켜 준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저보다 더 바빠요. 일하고 가서 공부하고 또 와서 기타치고 ㅋㅋㅋㅋ

저도 공부 때문에 얼굴은 자주 못 보지만 왠지 정운인 성공할 것 같아요. 그래서 저 결혼할 때 기념 케잌을 정운이가 만들어 주기로 약속했어요. ㅋㅋ
다만 제가 결혼한다면 말이죠. -..-

사람이 사람을 최선을 다해 보호한다는 말 참 좋아요. 함께 일어선다는 것도 ㅎ 전 사람과의 사이가 필요할까? 왜 관계를 맺어야 할까? 이런 생각을 많이 했었어요. 그런데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맺으며 자신에 대해 더 안다고 할까요? 그런 걸 느껴요. 그리고 그 속에서 성장하는 것 같군요.
벌써 35살인데 ㅋㅋ 언제까지 성장해야 할 지 기대만땅이에요 ㅋ

아이리시스 2014-08-03 0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저는 그때 그거 보고 듣고 느끼며 철밥통이 문제가 아니라 적성을 찾아 일을 해야겠구나 생각 많이 했어요. 실은..저는 같은 소리 두 번 하는 거 듣는 거 딱 싫어해요.. 별로 다정한 성격이 못 돼요. 사람이 징징대는 거 죽기보다 싫어해서.. 친절과 봉사의 정신이 절대 없거든요.

그나저나 우와 제빵사 뭔가 되게 멋져요. 정운이랑 아주 잘 어울릴 것 같아요. 빵 만드는 정운이는, 기타를 치며 사랑의 세레나데를 연습하는 정운이는, 루쉰님도 없는 여자친구를 가진 정운이는, 어쩌면, 루쉰님보다 먼저 자기 케잌 만들어 결혼할지도 모름.. 분발하세요!! :)

루쉰P 2014-08-03 15:22   좋아요 0 | URL
맞아여 적성이 문제에요. ㅋㅋㅋ 왠만한 인격이 아님 버티기 힘들거에요.

그나저나 루쉰님도 없는 여자친구를 가진 정운이...거기서 약간 울컥했네요. 후후 아이리시스님 전 그녀가 분명 이 지구상 어딘가에 존재한다고 생각해요. 전 그녀를 만나면 손을 꼭 잡고 이야기 해 줄거에요. 어디 갔다 이제 오냐고 그럼 그녀도 수줍게 웃으며 저에게 널 기다렸어라고 말하겠죠. 후후후후
갑자기 마구 흐뭇해 지네요. 전 24시간 분발하고 있어요 분발할 대상이 아직 나타나지 못 했을 뿐이죠 ㅋㅋㅋ

아이 참, 아이리시스님처럼 오랜 시간 연애를 하시는 분들은 제 마음을 모를거라니까요. 이 기대감, 있어요. 그녀는 분명히...있겠죠? 있어야 되는 데....

stella.K 2014-08-06 17: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원래 소설은 처음엔 X구멍으로 쓰는 건데.
정운 씨 그걸 몰랐군요. ㅎㅎ
그래도 그렇게 자신을 깨달아 가는 정운 씨가 기특하군요.

별 관련이 있는 얘긴지는 모르겠는데, 영화 배우 최민식이 영화 명량을 찍고
어느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기자가 묻죠. 당신에게 12척의 배가 있다면 그건 뭐냐구요.
그러자 최민식이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건 일과 가족이라고 말해요.
그것이 나를 지켜 주며, 12척의 배라고.
순간 이 사람 진짜 인생이 뭔지를 아는 사람이구나 싶더군요.
정말 공부해서 깨우치고, 일을 할 줄 아는 능력이 있어야 나를 지킬 수 있고,
남을 도울 수 있겠더라구요. 이걸 저도 최근에야 알 것 같더라구요.
예전엔 일이 마냥 두렵고, 하기 싫은 거였는데 말이죠.
그래서 늦었지만 저도 지금이라도 열심히 일하고, 무지를 깨우치려구요.ㅎ
정운 씨도 그걸 차츰 알아가게 될 거라고 믿어요.
루쉰님도 잘 하셨어요. 홧팅!!! 입니다. 고물상 아저씨도요.^^


루쉰P 2014-08-04 09:15   좋아요 0 | URL
그랬나요? 푸하 근데 정운이는 그새 소설을 잠시 쉬고 있어요. 제빵사가 된다나 하하하하;;;

스텔라님의 말씀이 맞아요. 루쉰 선생께서 대학에서 <인형의 집>강연을 하실 때 여학생들에게 노라가 집을 나갔지만 나간 후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 지 아느냐 하시며 무엇보다 경제력을 길러야 한다고 얘기 하셨거든요.

전 그걸 읽으며 사회에서 누군가를 도와야 하고 그리고 스스로를 도울려면 일이 필요하고 전문적 기술이 필요하다고 30짤 넘어서 알았어요;;; 넘 늦었죠 ㅎㅎㅎ
최민식 얘기는 저도 왕 감동이네요. 파이란 때부터 팬이 었는 데 ㅎㅎ

스텔라님은 많이 아시는 것 같은 데 무지를 깨우치시려 하신다고 하다니 먼지에도 짓밟힐 정도의 이 겸손함...경건해 집니다.
저도! 저도! 스텔라님과 함께 무지를 깨우치는 삶을 살아갈 거 랍니다. ㅎ

루카스 2014-10-06 1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단편소설보다 더 재미있었어요!!
혼자 마구마구 비스비슬 웃다가 급기야 걸스데이 운운하며 치고 빠지는 대사 장면에선 미친 듯이 학학댔지요.

해피앤딩이라 정말 다행이네요.~~
하신다는 공부에 에너지 팍팍 드리고 싶군요.^^

루쉰P 2014-10-07 13:38   좋아요 0 | URL
올라오신 댓글들을 보며 모처럼 만에 너무 격려를 받아 부끄럽기도 하고 힘도 나네요. ㅋ
저는 완전 고시생으로 하루 종일 원 없이 공부를 하며 머리가 회전하는 느낌을 받고 있습니다.
아침마다 노량진에서 성처럼 높이 솟아 있는 공무원 학원들 속에서 츄리니을 입은 채 아니면 간편한 복장으로 험난한 세상의 파도에 살아 남으려고 애 쓰는 청년들을 보며 저도 같이 그 흐름에 가고 있어요. ㅎ

공부가 제일 쉬었다고 어느 책에 쓴 거를 본 적이 있었는 데, 개뻥이더군요. ㅎㅎㅎ
정말 머리가 아퍼요 ㅎ

하지만 써주신 댓글 덕분에 무지하게 에너지 받고 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ㅎ

랄랄라 2016-06-29 17: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런 사연이 ㅠㅠ
도서관에서 열심히 공부중이신 루쉰P님 더위에 지지마시고, 꼭 좋은 성과있길 기도하겠습니다
더운데 힘내세용!!

루쉰P 2016-06-29 23:31   좋아요 0 | URL
ㅋㅋㅋ 저 도서관 안 다니고 고시원 들어온 지 꽤 됐어요 ㅋㅋㅋ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ㅎ

고시원에서 열심히 공부하겠습니다. 화이링 ㅎ

천사 2016-07-31 2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글 정말 최고, 넘 재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