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빈리 일기
박용하 지음 / 사문난적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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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표지가 하얗게 정갈된 것 처럼 내용 또한 정갈스러운 느낌이었습니다. 시인 박용하씨가 서울을 떠나 오빈리에서 살아가면서 하루하루를 적은 글이었습니다. 정말 말 그대로 '일기'였습니다. 저와 많은 다른 사람들이 일기를 적듯이 그 역시도 하루하루 일기를 적었습니다. 평범한 그의 하루들을 읽으니, 그의 하루 속에서 살아가는 것 같고 그와 함께 1년을 보낸 듯 하였습니다. 박용하씨의 말과 생각들 중에서 이해되지 않는 부분도 있었고, 어떤건 너무나 내 마음 같아서 애절하기로 했습니다.

 

저녁에 초등학교 5학년 딸 수학공부를 도와주는데 대뜸 날아든 딸아이의 질문에 할 말이 없었다.

“근데, 아빠! 사다리꼴 넓이는 왜 구해야 하는거요?”

 

아내는 교수인지 밖으로 나가는 시간이 많았고 그가 집안 살림을 하면서 딸과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뜬금없는 딸의 질문에 저도 그와 같이 뻥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아이의 질문에 그가 했을 것처럼 저도 고민해봤습니다. 왜 사다리꼴 넓이를 구해야할까요? 초등학생의 질문에 재치있게 뭐라고 답하면 좋을지 생각해보았지만 쉬운 답은 아니었습니다. 저 역시 (윗변 + 아랫변) * 높이 / 2 라는 공식을 아직까지 외우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디에 쓸모가 있는지 외우고만 있지 제대로 사용해본 적이 없네요. 그렇게 생각하니 저도 나중에 자식이 물어보면 뭐라고 대답해줘야할지 고민이 되었습니다. 

 

아직도 나는 내가 너무 센 사람. 나는 많이 죽어야 하는 사람이다. 내가 죽어야 내가 산다.

 

책의 맨 뒤에 보면 심재상님과 함성호님의 간단한 소개글이 있습니다. 그들의 말에서 박용하씨는 불같이 타오르는 열혈청년이라고 했습니다. 그 불은 아직까지도 꺼지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죠. 그것과 매치되는 듯한 말이 일기에 적혀있었습니다. 바로 위의 말입니다. 저는 이 말을 읽고 제 고개가 그저 끄덕였습니다. 박용하씨와는 다르게 이걸 받아들였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제 자신을 보았을때 저는 저 말이 너무나 저와 같아 마음이 아팠습니다. 저 역시 저를 많이 죽여야하고 suppression 해야하는 사람입니다. 특히 오늘 같은 날은 더욱더 저 말이 제 가슴에 꽂힐 수 밖에 없었습니다.

 

『오빈리 일기』는 한 사람이 살아가는 1년 간의 일기였습니다.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그가 살아가며 텃밭을 일구고 수확을 기쁨을 알며, 수확한 것들로 나누는 기쁨을 알아가는 과정들, 그리고 시를 잘 쓰고 싶은데 적어도 맘에 들지 않는 그의 모습들, 이웃들과 술한잔 기울이며 살아가고 친구들, 그리고 가족들과 간간히 만나면 살아가는 그의 모습은 한 사람의 모습이었습니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일기란 것에 대한 묘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 책 한 권에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한 사람의 1년치 생활 모습이 들어가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생활을 제가 같이 지낸 것이지요. 그것은 색다른 경험이었고 나 또한 그 1년을 더 살아온 것 같았습니다. 그의 일기장에 이렇게 적혀있었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하루가 다르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게 없다지만 인생에 같은 하루는 없다. 

 

이게 이 책이 저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남겨주는 말이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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