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찾아드립니다 - 루틴을 벗어나, 나만의 속도로 사는 법
애슐리 윌런스 지음, 안진이 옮김 / 세계사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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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는 Time Smart : How to Reclaim your time and live a happier life 

'당신의 시간을 되찾고 행복한 삶을 살아라는 부제'를 가지고 있는데, 왜 번역 부제를 '루틴을 벗어나, 나만의 속도로 사는 법'이라고 했는지 모를 일이다. 루틴에 대한 이야기가 거의 없긴 하지만, 루틴을 가지라는 이야기는 나오지만, 루틴에서 벗어나라는 이야기는 어디에도 안 나오는데 말이다. 나만의 속도라는 것도 책 내용과는 관계 없는 좋은 아무말 같다.


번역본 부제는 긴가민가 하지만, 책의 내용만은 지금 필요한 내용들이다. 저자는 시간을 연구하는 자칭 "괴짜" 교수로 시간에 관한 각종 연구로 데이터들을 쌓아가고 있다. 시간이냐, 돈이냐의 문제는 새로운 문제는 아니다. 이 책과 저자의 연구가 새로운 것은 우리가 지금까지 '시간이냐, 돈이냐' 의 문제에서 늘 돈의 손을 들어줬는데, '시간'의 중요성을 과학적으로 피력하려고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간이냐 돈이냐에서 사회의 답이 '돈'이기도 하고,  나는 시간을 선택했다고 하는 사람들 마저도 사회적 공감대가 '돈'이어서 죄책감을 느끼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나는 늘 '시간'을 선택해왔는데, 내가 무의식적으로 사용했던 전략들이 이 책에 잘 설명되어 있다. 사회의 발전은 '시간'을 중요시하는 방향으로 가야할 것 같은데, 이것만은 그렇게 역류하듯이 온 사회의 노력이 필요하고,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 자칫하면 거꾸로 가서, 주 120시간 일하기 같은 쌉소리가 나오게 된다. 


워라밸을 중요시하자는 것은 일과 삶의 밸런스 정도가 아니라 제발 죽지 않고, 사는 것만이라도 제대로 살게 일하는 시간을 줄이고자 하는 것이고, 미라클모닝 같은 것은 잠 잘 시간도 없이 일하는 이들에게 사치와도 같은 것이 되어 버렸다. 


이 책 6장 제목처럼 '시간 빈곤은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바꾸어야 할 것이 있긴 하다. 시간 빈곤은 우리가 가진 시간과 우리가 필요로 하는 시간의 불일치에서 생기는 문제가 아니다. 시간 빈곤은 시간에 관한 우리의 사고방식과 가치관에서 온다. 


돈 중심에서 시간 중심으로의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고, 왜 그래야 하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고 이해해야 한다. 

시간과 돈에 관해 연구하면서 발견한 가장 중요한 사실은 "우리는 시간이 가장 귀중하고 유한한 자원이라는 것을 잘 모른다." 는 것이라고 한다. 


시간을 중시하는 사람들은 더 친사회적 prosocial 이라고 한다. 친사회적이라는 것은 남들을 이롭게 하는 행동을 하는 것을 말하는데, 당연하다. 시간의 여유가 있어야 더 이타적이 되고, 여유가 생긴다. 돈도 마찬가지지 않느냐고 한다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시간은 유한하고, 돈에 대한 욕심은 무한해서 이미 돈을 많이 가지고 있어도 더 벌려고 한다. 시간에 우선순위를 두지 못하고, 직업적 성공에 집중하며, 재산을 불리거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많은 시간을 포기한다. 가장 귀중한 시간을. 


'시간이 돈이다' 라고들 말하는데, 건강과 행복을 위해 이 고정관념을 뒤집어 '돈이 시간이다' 는 진리를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시간 풍요는 어느 정도 먹고 살만한 사람들에게나 해당되는 것이 아닌가 싶을 수도 있는데, 그렇지 않다. 시간 풍요는 다양한 경제적 계층의 사람들에게 두루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시간 빈곤을 겪는 사람들은 덜 행복하고, 생산성이 떨어지고, 스트레스를 더 많이 받는다. 그들은 운동을 적게 하고, 살이 찌는 음식을 먹고, 심혈관계 질환에 더 많이 걸린다. 시간 빈곤은 타협을 강요한다. 우리는 영양가 풍부한 저녁식사를 준비하는 대신 길모퉁이 패스트푸드점에서 햄버거 하나를 사온다. 그러고는 TV를 바라보며 별생각 없이 음식을 먹는다. 여러 가지 일들을 해내기 위해 시간을 최대한으로 확보하려고 애쓰다 보면 가만히 앉아서 소금, 지방, 설탕으로 얼룩진 하루를 보내게 된다." 


이 책에서 재미있었던 개념은 '시간 부스러기 time confetti' 라는 용어였다. 타임 푸어가 되는 여섯 가지 이유 중에 타임트랩, 스마트 기기의 역설에 나오는 개념이다. "시간 부스러기란 비생산적인 멀티태스킹을 하면서 잃어버리는 몇 초와 몇 분을 가리킨다. " 하나씩 떼어 놓고 보면 심각한 문제로 보이지 않지만, 작은 부스러기들은 모으면 커질 뿐더러, 작은 부스러기 주변의 시간을 오염시킨다. 주로 스마트폰 알람이지만, 이 외에도 회사에서, 집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들에 이 시간 부스러기들이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시간이 부스러기로 변할 때, 우리는 시간 빈곤을 실제보다 크게 느낀다. 


타임푸어가 되는 또 다른 이유들 중 하나로 '돈에 대한 집착'이 있다. 


" 돈을 더 버는 것에 집착하는 사회는 시간 풍요에 도달하려면 부유해져야 한다는 잘못된 믿음을 가지고 있다. 어떻게든 돈을 모으면 미래에 행복을 살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우리는 이렇게 생각한다. '나중에 여가시간을 더 가지기 위해 지금 열심히 일해서 돈을 더 벌어야해.' 이것은 잘못된 해결책이다. 머지않아 알게 되겠지만 올바른 해결책과는 정반대로 접근한 것이다. 돈벌이에 집중하는 것은 덫에 걸려드는 것과 같다. 돈벌이에 집중하면 돈에 대한 집착만 강해질 뿐이다." 


점점 확대되는 경제적 불안정 역시 일 지상주의의 원인이기도 하다. 1970년대 초반 이후로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서 소득 불평등이 급격히 커졌고, 사회가 불평등해지면 사람들은 자신의 현재 지위와 무관하게 미래의 경제적 상황에 불안을 느끼게 된다고 한다. 이 불안에 대처하기 위해 더 오래 일해서 돈을 더 벌려고 한다. 어린 시절에 경제적 불확실성을 경험한 사람들이 성인이 되고 나서도 항상 돈에 집중하는 경향을 나타내기도 하다. 


"우리의 자아정체성이 일과 생산성에 파묻혀 있기 때문에 우리는 바쁜 모습을 남들에게 보여줄 때 우리 자신에 대해서도 좋은 감정을 느낀다. 바쁘면 자신이 꼭 필요한 사람이고 책임감 있는 사람인 것 같다." 그리고, 고용주들은 '바쁨'에 보상해준다. 


좋아하지도 않고, 통제할 수도 없는 일에 매여 있는 것이 시간 빈곤의 주된 원인이고, 시간 풍요에 도달하는 가장 확실한 길은 기쁨을 주는 활동에 시간을 더 많이 쓰고, 불행한 활동에 시간을 덜 쓰는 것이다. 말은 쉬운데.. 여기에 대한 제안도 함께 한다. 


부정적인 시간을 전환한다. 나쁜 시간을 행복한 시간과 결합한다. 긍정적 시간을 늘린다. 노동 시간을 줄인다. 여가시간을 최적화한다. 등등 


시간 조달에 대한 예로 자전거가 두 번이나 나온다. 저자의 강의를 들은 캐머런은 저임금 아르바이트를 하는 대학생이었고, 전략을 세운다. 새로운 아르바이트는 토요일마다 아침 6시부터 시작하고, 첫 월급으로 중고 사이트에 올라온 자전거를 구입했더니 통근시간이 확 줄었다. 그전에는 걸어갔는데, 이제 6분이면 일터에 도착. 그리고, 예약기능이 있는 커피머신을 사서 커피 머신이 토요일 새벽 4시 57분에 저절로 작동해서 커피를 추출하는 동안 몇 분 더 누워 있을 수 있게 되었다. 또 다른 예는 빗물보존기가 생겨서 물을 뜨러 가지 않아도 되고, 자전거가 생겨 멀리 있는 학교에 갈 수 있었던 인도의 소녀. 


잠든 휴면시간을 깨우기 위한 방법들을 이야기하는 중에 '최대주의자'와 '만족주의자'가 나온다. 


'최대주의자 maximizer '는 최대의 성과와 감정을 얻기 위해 가장 좋은 선택을 하길 원하는 사람들이고, '만족주의자 Satisficers'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적정 수준에 만족하는 사람들이다. 전자는 '가성비' 와도 닿아 있는 것 같다. 


시간은 공짜고, 돈은 아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디폴트인 경우가 많다. 여행지에서 실망스러울 때, '이게 돈이 얼만데' 와 같은 생각이 든다거나, 좀 더 기름을 싸게 넣기 위해 좀 더 먼 주유소에 가는 경우, 이 외에도 돈과 시간이 선택지에 오를 때, 이미 그 저울은 돈으로 기울어져 있어서 돈을 선택하는 것이 내적으로도 외적으로도 인정받고, 반대의 선택은 어려워진다. 

여가시간의 금전적 가치를 생각할수록 그 여가의 즐거움은 감소하고, 청소 서비스에 돈을  투자할 때 돈의 가치는 생각하지 말라는 것이다. 돈으로 '시간'을 샀고, 그렇게 산 시간이 얼마나 좋은가에 집중하라는 것.  


인생의 시기마다 우선순위는 달라지고, 시간풍요도 시기별로 달라진다. 시간을 희생하고, 행복을 희생하더라도 돈을 더 벌어야 하는 것이 우리가 시간 빈곤 결정을 내리는 이유들 중 하나이다. 


10대에는 20대를 위해 시간과 행복을 희생하고, 미루고, 20대에는 3-40대를 위해, 3-40대는 은퇴후를 위해 계속 유예하고, 버틴다. 시간이 무한하기라도 한 것 처럼 말이다.  


"뭔가가 우리를 행복하게 하거나 목표의식을 준다면 그것을 붙잡아야 한다. 우리는 그것에 우선순위를 부여하고 관심을 기울이고, 우리를 그것과 멀어지게 하는 방해를 차단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우리는 모두 살아 있는 존재로서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끊임없이 방해를 받는 시대에 시간을 초 단위로 신중하게 계획하지 않으면 시간은 쉽게 흘러가고 불행하게 흘러갈 것이다." 


마지막 장에서는 '시간 빈곤은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 를 이야기하고 있다. 기업, 조직, 정부는 모든 사람이 시간을 똑똑하게 사용하도록 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근데, 이게 지금 시간 빈곤자들의 조직, 기업, 정부에 통하는 이야기인가 모르겠다.  


지금 나의 고민은 시간이 많고, 시간을 다 내가 좋아하는 일에 쏟고 있는데, 시간이 있는만큼 일을 못하고 있어서 초조한 것이다. 이 책의 많은 부분은 시간과 돈 사이에서 시간에 중점을 두는 패러다임으로 바꾸는 이야기이다. 나는 늘 시간이 중요했고, 시간이 없는 것이 돈 없는 것보다 훨씬 더 불행하게 느껴진 시간 중심형 인간이라고 생각했는데, 나 역시 돈을 중시하는 사회에 서서 시간을 중시하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좀 더 걸음을 성큼성큼 옮겨 시간을 중심으로 생각하고 행동하기 위해 노력해야 겠다. 시간의 중요성이 잘 안 와닿는데, 돈이라고 생각하면 팍팍 와닿았다. 시간이 돈이 아니라 돈이 시간이다. 자잘한 돈 안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은 다 아는데, 시간 부스러기 안 만드는 것의 중요성은 몰랐다. 나의 가장 큰 시간부스러기 제조기는 역시 스마트폰 제조기이고, 여러번 지웠던 핸드폰 시간 확인 앱을 다시 깔았다. 돈도 시간도 하루 아침에 그에 대한 가치관과 쓰임새가 바뀔 수 없다. 계속 노력하고, 시행착오 겪으며 나에게 맞는 최적을 찾아나가야 하는데, 그게 뭐든 '시간' 중심으로 생각할 것. 


시간이 지금 내게 더 중요한, 지금 시간을 더 잘 보내야 할 이유들이 많다. 열 다섯살의 신부전 3기 내 고양이도 그 중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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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입니다, 고객님 - 콜센터의 인류학
김관욱 지음 / 창비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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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센터에서 담배를 많이 핀다고? 그게 무슨 상관인데?


저자는 문화인류학과 교수이자 가정의학과 전문의이다. 콜센터 상담사들이 담배를 많이 피우는 것에 대한 의문으로 시작해 한국 사회에서 '콜센터'라는 블랙홀이 담고 있는 다양한 문제점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사회문제에 대한 책을 읽는다고 다 내 이야기처럼 와닿는 것은 아니지만, 이 책은 정말 내 이야기로, 내 주변의 이야기로 와닿았다. 많이 속상하고, 좀 울기도 했고, 답이 없지만, 저자가 반복해서 말하듯이, 지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다. 


아는 것이 먼저이고, 그 다음은 몸과 말이다. 그리고나서야 마음이 움직여 진정으로 변하게 된다. 

달걀을 던지는 것과 같은 일을 계속 하는데, 그 바위가 모습만 계속 바뀌고 있다면 어찌해야 할까. 페미니즘과 비슷하다. 몸이 알고 있는 것을 거꾸로 알게 되었을 때, 관성은 힘을 잃고, 바뀐다. 다시 돌아갈 수 없다. 


+++ 

'왜 상담사들은 담배를 많이 피울까?' 에 대한 답을 찾고자 석사 시절이던 2012년 처음 콜센터에 방문했다. 여성 흡연자층이 확산하는 하나의 이유를 찾고자 했던 셈이다. 그런데 연구가 끝날 무렵 나는 콜센터가 낮은 임금으로 여성 상담사의 노동력을 사용하면서 이들의 건강을 조금씩 빼앗아가는 것은 물론, 더 나아가 '이상적인 여성상'에 대한 고정관념마저 재생산하고 있다고 느끼게 되었다. 친절하고 공감에 능통하며 순종적인 딸과 아내, 어머니의 모습 말이다. 수화기 너머 상대방이 불친절하거나 짜증과 화를 내도, 상황이 불쾌하거나 어색해도, 조금 무리한 부탁을 해도, 그리고 임금이 많지 않아도 당연히 이해할 수 있는 여성.


+++


요즘 역사 이야기 읽고 있다.  영국 산업혁명과 미국과 유럽의 노예제에 대한 글들을 읽으며 정말 야만의 시대였구나. 그 시대가 그리 먼 과거가 아니구나 싶었는데, 아니다. 그 야만의 시대가 지금도 바로 여기에도 펼쳐지고 있다. 다른 나라의 과거까지 갈 것도 없이 이야기는 1970, 80년대 소위 '공순이'로 불리던 여공의 삶에서 시작한다. 


당시 여공들의 장시간 노동은 한국 노동집약적 산업의 핵심 경쟁력이었고, 잔업은 물론이고, 철야 작업까지 자주 이어졌다. 각성제인 타이밍을 비타민인 양 먹으면서 일했고, 타이밍마저 없을 때는 쓴 커피 가루를 숟가락으로 퍼먹으며 일했다고 한다. 


구로공단 50주년 기념행사에 '수출의 여인상 복원 기념' 행사 또한 있었다. "그때 우리를 산업역군이라고 불렀는데 정말 '개지랄'이다. (...) 당시 우리 여공의 목숨은 파리만도 못했다. 인권이고 뭐고 없었다. 성폭행 같은 것은 정말 비일비재했다. " 


과거 여공들에게 타이밍을 먹이며 매일 야근과 철야를 시켰듯이, 여성 상담사의 경우 담배를 워킹 드러그로 허용했다. 가까운 곳에 흡연실을 만들어주고, 바깥에서는 여성의 흡연에 대한 나쁜 시선이 유지되지만, 안에서는 흡연을 일의 연장으로 권한다. 화장실 가는 것조차 압박 받을 정도로 매 초, 매 분 모니터 되는 상황에서 말이다. 


인류학자 윌리엄 잔코비악에 따르면, 드러그 푸드, 특히 술과 담배가 노동력을 강화하는 도구로 활용되었다고 한다. 산업화가 진행되고 기술이 더욱 복잡해지면서 그것은 담배와 커피로 대체된다. 상담사들이 술보다 담배를 더욱 선호하는 것은 술을 마시면 다음 날 머리도 아프고 목소리도 잘 나오지 않아 업무에 지장을 주지만 담배는 큰 부작용 없이 곧바로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워킹 드러그로 담배, 커피, 약국에서 각성제 먹는 사람들 이미 주변에 많다. 


콜센터 상담사들의 감정노동에 대해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실상은 감정 이상의 노동 현장이다. 


"막상 일을 시작해보니 이 일이 완전히 여성형 막노동이라고 느끼게 되었다며, 이를 "여공들의 디지털 버전"이라고 했다. 정적이고 지엽적이고 반복적인 일의 특성을 '여성적'이라고 보는 고정관념도 심했으며, 먼지 대신 전자파에 노출되고, 일의 개념이 1970년대에 머물러 있다고 표현했다." 


손님은 왕이다라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던 때가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이상한 말이다. 동료 시민을 하인이나 부하나 백성으로 격하시킨다는 말이야? 조선시대로 가시던가요. 진상들은 늘 있어왔고, 나 또한 그런 진상짓 했었을텐데, 참 못났다. 구조적 문제라고 하면 보통 모호한데, 이건 분명히 알겠다. 진상에게 그래도 된다는 시그널을 주는 주체가 바로 구조적 문제이다. 저자의 말을 빌리면 "컴플레인을 세게 해도 되는 무대, 즉 진상의 세계를 만든 제작자' 말이다. 


"이것은 시민들에게 감정노동자를 배려해달라고 감정에 호소할 문제가 아니라 안전한 노동 환경에 대한 문제가 아닐까?" 


정말 그렇다. 


나는 병원에 거의 안 가지만, 병원에 가는 것도 눈치 봐야 하는 것이 일의 가장 비인간적인 부분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콜센터에서는 CCTV 다는 정도가 아니라, 모든 시간과 모든 일이 다 실시간으로 모니터되고, 평가 되고, 피드백을 주게 된다. 상담사들은 기계가 아닌 인간 부품 취급 당한다. 화장실 가는 시간 조차 통제당한다. 200명이 넘는 상담사가 한 공간에서 일하던 센터가 있었다. 사무실 양쪽 벽 끝에 부채가 각각 세개씩 걸려 있고, 근무 시간 중에는 이 부채를 든 사람만 화장실에 갈 수 있었다고 한다. 모두들 일하면서 부채가 걸리기만 기다렸다가 기회가 생기면 그 즉시 달려가 부채를 잡았다고 한다. 모욕적이다. 


학자들은 이러한 물리적 외형 및 그 안에서 일어나는 노동 양상을 가리켜 "양계장과 같은 대량 사육 농장" battery farms라고 표현한다고 한다. 끔찍하다. 그리고, 저자는 이것이 단순 비유가 아님을 보여주는 또 다른 사례를 듣는다. 모 센터에서는 봄이 오면 에어컨을 켠다고 한다. 봄이라 나른해서 졸지 말라고 에어컨을 켜서 상담사들이 실내에서 목도리 두르고 카디건 걸치고 일한다. 창문은 다 블라인드 내린다. 창밖 보지 못하게. 


"상담사는 체온과 시각마저 높은 생산량 (콜 수)을 위해 통제받는다. 이것은 마치 실제 양계장에서 닭이 달걀을 최대한 많이 생산하도록 축사의 온도를 엄격히 조절하는 것을 연상하게 만든다. 그리고 사료에 항생제를 섞어 인위적으로 병균에 내성이 생기게 만들듯 콜센터 밖과는 달리 편리한 흡연실을 구비해 악성 고객의 공격에 내성이 생기도록 상담사들이 자유로이 흡연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도 한다. " 


이 책에서 가장 섬찟하게 기억에 남았던 것은 '미소 띤 음성' 이다. 

서비스만 친절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전달하는 목소리에마저 친절함이 배어 있어야 하는 것이다. 한 상담사가 받은 통화 품질 평가표를 보면 


"평이한 상담이 진행되었습니다. 다소 정중한 어미 표현 및 미소 표현 부족하여 건조한 상담이 진행되어 아쉽습니다. ㅇㅇ콜의 특성상 미소 띤 음성과 생동감 있는 어미 구사, 정중한 언어 표현이 필요함을 당부드립니다." 


상담사의 목소리는 ARS의 기계음과 달라야 한다. 인간이지만 기계처럼 일하기를 강요당하고, 기계와 다른 인간미를 강요받는다. 미소 띤 음성을 읽는 순간, 그게 뭔지 너무 잘 알 것 같았다. 이걸 내가, 개인이 그렇게까지 친절하지 말라고 할 수도 없는 일이고, 공범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어버렸다. 


여성들이 모인 곳, 여초 직장이 저임금, 강도 높은 노동에 감정노동까지 더 하여 여유들이 없기 때문에 간호사들의 태움 같은 것들이 나오는 것 아닐까 하는 이야기를 본 적 있다. 콜센터에서 미소 노동을 하면서 본인들의 감정은 죽이고, 실적으로 매 순간 평가 받고, 그를 위해 팀장에게 빵셔틀, 커피셔틀, 과일셔틀을 하고, 동료가 아닌 경쟁자와 왕따가 있는 내외부 모두 극한의 공간이다. 


그리고, 코로나 19 팬데믹 이후의 세계가 펼쳐진다. 가장 약한 그곳에서부터 팬데믹이 악습들을 들춰낸다. 

상담사들은 필수노동자가 되지만, 안전을 보장받지 못하고, 이례적인 과로에 대한 보상도 받지 못한다. 제대로 된 교육도 없이 상담에 투입된다. 여기까지도 답답한데, 상상 이상이다. 업무량 뿐만 아니라 폭언과 책임 전가 또한 폭발적으로 늘었고, 상담사는 온몸으로 버틸 수 밖에 없었다. 코로나 19사태로 전체적으로 콜 수가 증가하자 최소 기준 콜 수를 100콜에서 120콜로 상향 조정한다. 죽어라 달리고 있는데, 결승선을 뒤로 밀어 버린다. 이 전대미문의 상황 속에서 그 모든 고통을 감내함에도 보상은 없다. 추가 보상도 없고, 휴식 시간이나 인력 확충도 없다. 기준선을 더 올려 버리고, 더 열심히 하라고 지시한다. 


코로나 19로 인한 분산 근무 방역지침은 원청회사에게 콜센터를 풀 아웃소싱으로 전환해 완벽하고 지속적인 간접고용을 유지할 수 있게 해줬다. 


상담사들은 '벽'이다. 정규직 직원들을 보호하기 위해 민원인을 끝까지 막는 벽! 


6장에서는 상담사들의 노동운동 도전기가 나온다. 나는 6장에서 조금 울었다. 드라마나 영화가 아니라 현재의 이야기까지 읽고나니 씁쓸하지만, 그렇게 계란으로 바위를 쳤지만, 상담사의 힘은 유한하고, 그들의 저항을 억누르는 무게는 무한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들이 함께 만들어갔던 실천의 기억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몸자보 걸기, 돌발파업, 로비 점거 시위, 적정 콜 받기, 동시이석, 그리고 이로써 얻어낸 크고 작은 성과들은 절대 사라지지 않는 소중한 기억들이다." 


7장에서는 몸펴기 운동에 대해 나온다. 서문에서 이 부분을 읽으며, 상담사들이 맨날 앉아 있으니깐, 하기 쉬운 운동 나오나보다. 단순하게 생각했는데, 그 이상이다. 이 책에서 '몸'은 아주 중요하다. '마음'을 움직이는 것, '마음'과 함께 움직이는 것이 '몸'이다. 


+++ 


나에게 학문과 연구의 최종 목표가 있다면 바로 이 세가지로 정리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첫째, 내가 내 몸의 주인이 된다. 둘째, 내 몸을 내 스스로 건강하게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과 믿음이 생긴다. 셋째, 돈을 들이지 않고 일상에서 건강을 쉽게 유지할 수 있다. 


+++ 


7장 또한 감명 깊게 읽었다. 마음의 여유가 없을 때, 사례로 나온 어느 상담사가 나쁜 음식들을 먹고, 잠을 못 자고, 흡연을 하고, 술을 마시고. 그것을 '가난한 루저들의 싸게 노는 법' 이라고 자조적으로 말하고,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자신의 몸을 돌 볼 여유 한 톨도 없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는 것을 안다. '몸펴기 운동'이 결국 마음을 펴는 이야기가 좋았다. 


몸펴기 운동을 소개하는 김사범은 영리만 추구하는 기업 때문에 노동자가 열악한 노동 환경에서 건강을 잃고, 그렇게 잃게 된 건강이 또다시 의료 자본의 영리 추구 수단이 된다고 말한다. (저자 또한 몸펴기 운동에 감명 받아 사범 자격증을 딴다) 


8장에서는 타국의 콜센터들과 비교하여 한국의 콜센터들의 특징을 보여준다. 저임금의 낮은 지위를 유지하며 전통적 여성상을 끊임없이 재생산한다는 것이다. 


첫 직장으로 몸에 밴 사회생활 목소리와 톤이 있다. 어떤 화난 고객도 달랠 수 있고, 가족도 못 알아듣고, 친구와 지인도 놀라는 그런 목소리. 나는  웃기기도 하고, 그렇게 내가 가진 가면에 은근 자부심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깊이 생각해보지도 않았는데, 이 책을 읽다가 깨닫고 화가 났다. 나는 누구에게 배워서 그런 사회생활 목소리를 냈고, 그것이 필요 없는 지금까지도 그 목소리와 톤을 종종 내고 있는 것일까. 그걸 누구에게 또 전달하고 있었던 것일까. 


리뷰에 다 쓰지 못한 좋은 이야기들이 많다. 

저자는 지고 싶지 않다고 이야기했고, 나 또한 그렇다. 뭘 어떻게 해야할지 잘 모르겠지만, 이건 아니다 싶다. 

구조를 어떻게 바꾸어야 할지도 모르겠고, 개인이 어떻게 해야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는 것에서 시작한다고 믿는다. 

알았고, 알리고, 그 다음은 몸. 


바위는 바람과 비에 닳아 바스라져 모래가 된다. 달걀에 깨지지 않을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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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ing-peace 2022-04-10 15: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이디님의 독후감을 읽으며 많은 상념이 일었습니다. 창 밖을 내다보게 되는 글입니다. 인간에게 자유란 얼마나 소중한지 자각하게 하는 좋은 내용입니다.

하이드 2022-04-10 20:38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좋은 연구서였어요. 자유에 대한 기준이 얼마나 낮았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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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주 지음 / 아침달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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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주 작가님의 먹고, 놀고, 읽고!, 걷고, 쉬고, 만드는 다양한 여성들 그림 너무 좋다. 엽서북의 퀄리티도 짱짱하게 나왔다. 가장 좋아하는 그림은 자주 바뀌지만, 소파에서 책 읽고 있는 여자와 검은 고양이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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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근 지음 / 언탱글링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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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극소수의 디스크수저를 제외하고는허리 아픈, 허리 아플 모두가 읽어보면 좋을 책. 전문지식을 전문용어로 쉽게 설명하고 있다. 허리에 대한 마음가짐이 바뀜다. 허리 통증은 병이 아니라 생활의 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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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매탐정 조즈카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95
아이자와 사코 지음, 김수지 옮김 / 비채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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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위 좋아야 읽을 수 있는 자칭 직관적이고 논리적이고 분석적인 일본남자추리소설가가 화자. 영매탐정 조즈카 인형 놀이 하면서 요염하고, 망가진 여자 시체 같은거 끝도 없이 나온다. 반전을 위한거라기엔, 앞의 3분의 2가 너무 진심인데? 후반이 어떻든 앞에 계속 똥밭이라 찜찜함이 가시지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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