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 - 하워드 진의 자전적 역사 에세이
하워드 진 지음, 유강은 옮김 / 이후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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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 책의 첫페이지에

어느 강연 막바지에 누군가 그에게 질문했다. " 지금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우울한 뉴스들을 생각한다면, 선생님은 놀라울 만치 낙관적으로 보입니다. 무엇이 선생님한테 희망을 주는 겁니까?"

인간은 폭넓은 스펙트럼의 특질을 보여주지만, 보통 이 중 최악의 것만 강조되며 그 결과 너무나도 자주 우리는 낙담하고 용기를 잃게 된다. 그러나 역사를 돌아보건대, 용기는 결코 꺾이지 않는다. 역사는 거대한 적과 맞서 자유와 정의를 위해 함께 싸워 승리한 사람들의 얼굴로 가득 차 있다 - 물론 충분히 많은 승리를 거두지는 못했지만 훨씬 더 많은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에는 충분하다. 정의를 위한 이러한 싸움에 없어서는 안 될 요소가 바로 인간이다. 잠시라도,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는 순간에도 남들과는 달리 아무리 작은 일이지만 무언가를 행하는 인간이다. 또 영웅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아주 작은 행위라도 불쏘시개 더미에 더해지면 어떤 놀라운 상황에 의해 점화되어 폭풍 같은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이 책을 읽을 시간, 혹은 돈, 혹은 기회, 혹은 의지가 없는 분들. 혹은 그저 안내키는 분들은 여기까지 읽었다면 이 책을 다 읽었다고 해도 좋다. ( 고 내가 장담한다.)

하워드 진의 자전적 역사에세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이 책의 이야기는 ' 그럼에도 불구하고 ' 희망' 이다.'

어떤 책이라도 별 예상 없이  별 기대 없이 읽을 수록 놀라움은 커지고, 깨달음도 커지는 것은 당연지사. 책의 머리말 ( 위에 적은) 을 넘기고 나온 이야기는 바로 미국 남부의 이야기이다. 헌법을 무시하고 인종차별이 행해지고 있는 아틀란타의 어느 도시에서 역사 속의 대규모 사건에 불씨가 지펴진 시민들의 '앉아있기' 운동! 버스 보이콧 운동, 자유승차 운동이 일어난 곳에 있었던 하워드 진의 생생한 이야기이다. 학교 다닐때 교과서에 나왔던 이야기들이다. 별 생각 없었다. 힐러리의 자서전이나 클린턴의 자서전 혹은 에릭 시걸의 '닥터스' 를 읽고, 혹은 포레스트 검프를 보았을 때도 별 생각 없었다. 나는 정녕 무뇌아란 말인가?!

그의 이야기는 선동적이다. 그저 사실을 말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말할 수 없이 선동적으로 들리고, 위험하게 들린다. 그가 이야기하니, 수동적으로 받아들였던 사실들이 그저 또 다른 사실들로 들리는 것에 그치지 않고, 내 머리가 적극적으로 돌아간다.

1960년대라고 하면, 불과 40년전. 나와 일하는 그들이 겪었던 일이다.  내 시대에 그 대단하고 잘난 미국에서 일어났던 일이다. 그 사실이 새삼 말도 안되고 얼토당토 않은 일로 다가온다.

남부에서 인종차별주의자들에 대한 대항, 그리고, 베트남전쟁에 대한 반전운동과 흑인운동의 만남. 그 모든 커다란 흐름을 주도한 것은 개인의 용기 있는 행동이었다. 그 것을 목격했기 때문에 이 늙지 않는 행동파 지식인은 '희망' 이란 것이 있다고 굳게 믿고 있는 것이리라.

그는 어려운 어린시절을 보냈고, 2차대전 때는 자신이 하는 일에 한점 의문 없는 폭격기 조종사였다. 민간인과 항복한, 철수하는 적에게 폭탄을 2만피트 상공에서 폭격을 퍼부었고, 히로시마 원폭 소식에 전쟁이 끝났다고 기뻐했었다고 고백한다. 히로시마에 가서 그 때 살아남은 사람들을 보았고, 또 어느 곳에서 폴란드에서의 폭격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을 만났다. 

국가를 사랑하지만, 잘못된 정책을 행하는 정부에 대해서는 불복종함으로써 바로 잡아야 한다고 말하는 하워드 진의 '시민 불복종'은 그것이 사회 안정을 위협하고 무정부 상태를 낳을 수 있어 위험해 보이지만, 가장 큰 위험은 시민의 복종. 즉 개인의 양심을 정부의 권위에 굴복시키는 것이라고 역설한다. 그와 같은 시민 불복종으로 이루어낸 평화를 향한, 평등, 자유를 향한 커다란 한 걸음, 혹은 작은 몇걸음에 '불복종'이란 불순해보이는 단어가 숭고하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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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5-23 14: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이드 2005-05-26 1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봤어요. 속삭이신 님. 네, 땡스투 적립금 들어왔습니다. 감사해요. 근데, 그 얘기하니깐 또 화나는데요?
 
전쟁중독 - 미국이 군사주의를 차버리지 못하는 진정한 이유
조엘 안드레아스 지음, 평화네트워크 엮음 / 창해 / 200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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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엄마는 이상한 책인줄 아셨나보다. 놀라하며 물어본다.

사실 이 책이 어떤 책이다 하는 것은 리뷰를 통해 익히 알고 있었고, 미국의 그 동안의 행태를 모르고 있었던 것도 아닌데 책을 읽는 내내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그렇게까지 심각할까? 라고 내심 생각하고 있었던것은 미국의 행태를 노출시키는 거대기업 자본의 방송에 노출되었던 탓인걸까.

단순하고 분명하게, 미국의 '전쟁'의 목적에 대해 지적하고 있다. '돈' .

내가 몸담고 있는 곳이 '$ 옷을 입고 있는 탐욕스런 남자'의 모습으로 전쟁에 한 몫 크게 하고 있는 모습으로 나오다니! 직장에 들어와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그 무엇보다도 OFAC (office of foreign affairs comittee) 의 sanctioned country와 SDN 등이었으나, 왜 중요한지, 미국은 뭐가 잘나서, 적성국가 리스트 따위 만들고 자금을 동결하고 이렇게 들들 볶는건지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본 적 없었다.  왠지 이라크의 수백만명의 굶어죽는 아이들의 죽음에  한 몫 한 것 같아 기분 나쁘다.

'테러와의 전쟁' 에 대한 뉴스만 접하고. ' 왜?' 에 대한 이야기는 못들은 탓이다.( 무관심의 탓이다)

이 책은 그 ' 왜' 에 대해 설명해 준다. 테러리스트들이 잘한다는 것이 결코 아니다. 복수에 복수를 거듭하는 멈추지 않는 악순환의 고리에 대해, 그 동안 얻는 것도 없이, 미국의 손을 들어주는 것에 대해 공평한 시각을 가지라는 것이다.

미국인들에게( 혹은 그들의 심정적 동조자인 세계인들에게) 묻는  마지막 페이지의 질문은 의미심장하다.

* 이 전쟁중독이 미국 국민과 전세계 사람들을 도대체 어떤 지경에 빠뜨리고 있는가?

* 도대체 그 비용은 또 얼마인가?

* 전쟁으로 부자가 되는 사람은 누구인가?

* 그 돈을 지불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 그리고 죽어가는 사람은 누구인가?

답이 바로바로 안 나온다면, 당장 이 책을 사서 읽어라. 30분만 투자하고, 5,520 원에 170원 마일리지 준다. 매니아는 더 준다.

그리고 마지막 칸에

'전쟁 중독 환자를 몰아내라!' 고 써 있고, ' 하지만 어떻게요?' 라고 묻는다.

' 그건 지금부터 함께 생각해보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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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아 - 어느 시골의사 이야기
존 버거 지음, 장 모르 사진, 김현우 옮김 / 눈빛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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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버거와 장 모르의 '사샬' 이라는 어느 시골 의사 이야기.

책은 평화로운 영국의 어느 시골의 풍경 사진으로 시작된다. 뒤로는 나즈막한 산이 보이고, 들판이 있고, 앞에는 할아버지와 손자, 혹은 아버지와 아들이 잔잔한 강물위의 조각배위에서 낚시대를 드리우고 있다.

그리고 옆 귀퉁이에 써 있다.

' 풍경은 기만적일 수 있다. 종종 풍경은 거기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이 펼쳐지는 무대라기보다는 하나의 커튼처럼 보인다. 그 뒤에서 사람들의 투쟁, 성취 그리고 사건들이 벌어지고 있는 그런 커튼... '

그리고 다음장 . 흑백사진이지만, 왠지 개와 늑대의 시간처럼 보이는 하늘과 산과 드문드문 떨어져 있는 집 일고여덟채.

' 그 주민들과 함께 커튼 뒤에 있는 이에게. 풍경은 더 이상 지리적인 대상에 그치지 않고 전기傳記적이고 개인적인 그 무엇이 된다'

다시 페이지를 넘기면 '어떤 무게나 견고함도 모두 거부하는 것처럼 보이는' 안개가 자욱한 숲 속. 그리고 아마도 아래에는 도로가 있는 듯 삐죽 윗부분만 겨우 모습을 드러낸 전봇대와 전깃줄. 한 벌목꾼이 나무 밑에 깔리고, 의사에게 연락한다. 의사는 클락션을 계속 울리며, 벌목장으로 서둘러 간다. 앞에 오는 차들에게 경고를 주기 위해서일뿐만 아니라 나무에 깔린 사람이 클락션 소리를 듣고 의사가 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하기 위해서이다. 이 책의 주인공인 닥터 사샬이다.

나무에 깔려서 고통받고 있는 환자와 어쩔줄 몰라 하는 동료들에게 의사가 가고 있다는 걸 알리기 위해, 클락션을 계속 울리는 사샬 박사. 짙은 안개 속의 당황한 그들에게는 다가오는 클락션 소리만큼 반가운 소리는 세상에 없을 것이다. 이야기는 이 에피소드에서 시작된다.  처음에 읽을 때는 별 생각 없이 지나쳤으나, 이 작지만 무거운 '행운아'라는 책을 다 읽고 리뷰를 쓰려고 다시 첫 페이지부터 뒤적이니, 닥터 사샬의 환자를 대하는 마음을  잘 나타내주는 이야기이다.

이 책. 좀 특이하다.  존 버거는 시골의사의 생활과 가치관을 쫓고, 장 모르는 시골의 환자들, 그리고 의사의 사진을 찍는다. 그리고 제목은 '행운아' (A Fortunate Man)이다.

첫페이지에서 작가는 사진 속의 평화로운 시골 풍경과 그 풍경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할 것임을 암시한다.  그 중심에는 물론 ' 사샬 박사' 가 있다.

사샬 박사는 작은 마을의 모두를 안다. 처음 시작은 전쟁중의 해군 군의관이었다. 사람을 구하는 사람이 된 것에 크게 보람을 느끼고 그에게 의존하는 사람들에게 권위 있는 존재로 받아들여지고 동시에 그들에게 봉사하고 있다는 느낌도 받았다. 전쟁 후에 그는 결혼을 하고 ( 존 버거는 여기에서 그의 직업적인 삶에 대한 것만 이야기 할 것임을 밝히고 있다.) 국민건강보험 소속의 시골 의사의 길을 택한다. 늙은 의사의 보조의사로 시작했는데, 움직이기 싫어하는 늙은 의사덕분에(?) 젊은 의사는 직접 현장에서 환자를 대할 수 있음을 기뻐했다. 그는 항상 과로했고, 또 그것을 자랑스러워했다. 시골에서의 제2기는 삼십대 중반즈음에 찾아왔다. '이십대처럼 자발적으로 자기 자신이 되는 대신, 스스로를 직시하고 제 2의 위치에서 판단을 내리는 것이 필요한 삶의 시기였다.'  그리고 그는 나이를 먹는 자신의 모습 뿐만 아니라, 그의 환자들도 같이 나이들고 변해가는 것을 본다.

늙은 파트너가 죽고, 사샬은 수술실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진다. 환자의 육체적인 병만 볼 뿐 아니라, 환자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자기 자신과 그리고 환자들을 관찰하기 시작한다.

그는 마을에서 특권을 지닌 존재가 된다.  마을 사람들이 사샬을 특권을 가지는 사람으로 여기는 것은 자신들은 상식에 의존하는 데에 반해, 그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상식은 절대 스스로를 가르칠 수 없으며, 스스로의 한계를 넘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 상식은 탐구하려는 정신, 즉 철학과 구별되는 한에서만 하나의 범주로 존재할 수 있다.'

존 버거는 사샬의 '의사'라는 직업과 직업관 등을 관찰하고 고통과 질병, 두려움, 죽음. 그리고 '의사' 에 대해 사유한다.

'몸이 아플 때는 많은 관계들이 단절된다. 질병은 무언가를 분리시키는 것으로, 왜곡되고 분열된 자의식을 형성한다. 의사는 환자와의 관계를 통해서, 그리고 그에게 허락된 특별한 친밀감을 사용해서 그 깨진 관계를 보상해 주고, 환자의 악화된 자의식에 다시 사회적인 성격을 불어넣어 주어야 한다.'

사샬은 마을에서 특권을 가진 존재라고 앞서 말했다. 여기에서 '특권'은 우리가 생각하는 비리나 뇌물, 권력과는 관계 없다. 그의 특권은 마을 사람들 누구이건 그를 가족의 하나로 여기고, 자신을 맏기고, 그에게 의존하고, 그를 존중하는 등의 마음에서 얻어지는 ' 특권'이다.

그런 사샬의 지금의 고민은 환자들의 더 나은 삶이다. 숲의 사람들은 그가 가진 것-일, 가족, 가정-을 유지하기를 기대하고, 자기가 누리고 있는 즐거움-잠자리에서 마시는 한 잔의 차, 주말판 신문, 주말의 술집, 이런저런 게임, 농담 등-을 계속 유지하기를 기대한다. 그들은 최소한의 것에 안주해야 한다고 배웠고, 그렇게 자라왔다. '사는 게 그런 거죠' 라고 말한다.

그러나 숲사람들과 달리 사샬은 삶에서 최대치를 기대한다. 숲사람들에게 특히 아버지의 어머니의 것을 물려받아 역시 삶의 최소한의 것에 만족하는 젊은 세대들에게  때로는 직업학교에 연결해주거나 , 그들의 고민을 들어주면서 숲에서의 삶이 더 이상의 기회를 주지 않고 있는 것에 대해 고민한다.

이야기는 현재 진행형이다. 결론은 나지 않았다. 하지만 존 버거는 여기까지는 말할 수 있다.

'사샬은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고 있다.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는 자기가 추구하고 싶은 것을 추구하고 있다. (...) 사샬은-우리 사회의 끔찍한 현실에 비추어볼 때- 행운아이다.'

존 버거는 시골 마을 의사인 사샬을 통해 궁극적으로는 원하는 일을 하지(알지) 못하는 우리의 끔찍한 현실을 비추고 있다. 그 과정에서 말로 표현 못하는 것조차도  그의 관찰을 벗어나지 않고 차근차근 이야기 된다. 우리가 의사에게 의존하는 이유,  몸이 아플 때 관계의 단절과 그 단절을 이어주는 의사의 역할, 의사와 환자간의 변증법적 관계에 이르기까지. 그는  풀어낸다.

한 편의 고요한 풍경 사진으로 시작한 이 글의 마침은 사샬이 일을 할 때 스스로에게 다짐하는 말의 인용이다. 그 논리는, '그 금욕적인 특징에도 불구하고, 위대한 긍정적 비전의 씨앗을 그 안에 담고 있다. '

" 죽음을 떠올릴 때마다 - 매일 누군가 죽어가죠- 나는 나 자신의 죽음을 생각하는데, 그 생각이 더 열심히 일하도록 만들어줍니다."

나도 리뷰를 이 인용으로 마치고 싶지만, 사샬박사의 직업관과 같은 그의 다짐은 가장 투박하고, 거칠면서도 죽음만큼 강력한 말이라는 사족을 달지 않을 수 없다.

늦게나마 존 버거를 만나게 된 나는 또 다른 의미에서 '행운아' .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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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mas 2005-02-07 0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좋은 리뷰군요. 추천 하나.^^
저도 존 버거 애독자 중 한 사람이랍니다.

하이드 2005-02-07 0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흑. 감사합니다. 존 버거 책 리뷰 쓰기 너무 힘들어요. ㅜ.ㅜ ( 힘들지만 잘 썼다가 아니라, 힘들어서 억지로 겨우겨우 그럭저럭 쓰고말다입니다.) 지금 남아 있는 책 3권있고, 꼭 주문하고 싶은 책이 두권 더 있어요. 꽤나 많이 번역되어있네요. 그리고, 이 좋은 책들에 왜 제 허접한 리뷰가 첫 리뷰인지;; 아는 후배가 번역하셨다니! 전 항상 역자 프로필이나 후기를 재미있게 보는데, 이 분은 지금 EBS PD로 있으시고, 제가 사려다 품절되서 못 산 ' 두첸의 세계명화 비밀 탐사' 를 번역하신 분이시더군요. 그리고, 이 전에 읽은 존 버거의 ' 그리고 사진처럼..' 를 번역하신 분은 의대 나오셔서, 사진공부 하시고, 현재 사진가, 가정의학 전문의를 하고 계시더군요. 사진 에세이도 내시고, 열화당의 사진책도 많이 번역하신 것 같고. 재밌어요. ^^
 
그리고 사진처럼 덧없는 우리들의 얼굴 내 가슴
존 버거 지음, 김우룡 옮김 / 열화당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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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화당에서 나온 존버거의 책이다 . 하얗던 표지는 며칠새 손때가 타서 꼬질꼬질 해졌다. 원제는 And Our Faces, My heart, Brief as Photos. 이다.

그의 글처럼 심플한 표지와 목차이다. 1부는 시간, 2부는 공간에 대한 것이다. 목차인즉 1. 한때 2. 여기서

작가의 어느 한 때에 관한 글들을 모아 놓았다. '어느 이야기의 한때'에서는 테이블 위 한장의 사진에 관해 이야기한다. 사진이 들어가야 할 부분은 네모만 그려져 있고, 우리는 지금부터 이야기할 존버거의 이야기에서 네모 속의 사진 안에는 앙카라 교외 어느 판잣집의 한 방에   여섯 남자가 일렬로 서 있는 것을 상상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 각기 다른 몸집의, 표정의, 옷차림의 그들의 공통점은 그들이 노동자이다. 그들은 노동조합연합인 DISK가 불볍단체로 규정되면서 체포되거나, 사형당하거나, 도망중이다. 이 한장의 사진은 정치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하고 있으며 정치란 원천적으로 억압할 수 없는 것이다.라고 말하고 잇다. '유토피아는 양탄자 위에서만 존재한다. 하나, 그들의 삶을 지배해 온 것들을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사실 역시 그들은 알고 있다. 참을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은 그것 자체로 하나의 희망이다'

'암스테르담에서의 한때' 에서는 렘브란트의 그림에 나온 그의 사랑하는 여인 헨드리키에를 말한다. 거기서 그는 그림들이 보여주는 천재성 때문이 아닌 그 그림들이 연유된, 그리고 그림들이 표현하고자 한 삶의 경험들이 말 이전에 다가와 말의 영역 너머로 옮아가 버리는 것에 대한 경험을 공유한다.

'지나간 어느 한 때' 에서는 죽음과 헤어짐을 삶과 사랑을 말하고, 오손에서의 한때에서는 상실을 말한다.

두번째는 '어디서' 이다.

각각의 에피소드에는 제목도 없다. 작가는 떠남과 이별, 행복, 사랑에 대해 이야기한다.

계속 써내려가면서  이 책의 리뷰쓰기란 정말 내 능력 밖이라는 생각이 계속 들고 있다!

존 버거는 이 짧은 에세이집에서 어느 한 때와 장소에 머물렀을 때의 이야기를 시간과 공간과 차원과 우주를 오고가며 하고 있다. 인생에서 맞닥트리는 사건. 우연. 이벤트들을 대하는 그는 사소한 것에서, 흔해빠진 것에서 삶과 죽음, 사랑과 멀어짐, 이별, 행복 등을 보고 - 그런 거창한 주제에도 불구하고 - 군더더기도 없이 이야기하고 있다. 이것은 사람 몸으로 치면 체지방 0%의 군살 하나 없는 그러나 우락부락한 근육을 자랑하지 않는 호리호리하면서 단단한 몸매이다. 너무 진지해서 재미없을 것 같지만, 읽을수록 멘토가 되어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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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 론리하트
너새네이얼 웨스트 지음, 이종인 옮김 / 마음산책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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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교감하는 순간이 있다. 마음이 동해서, 소리내서 읽지 않고 못배기게 만드는 책. 오늘 아침, 이 책 너세네이얼 웨스트 웨스트의 '미스 론리하트' 이라는 제목의 책과 교감했다.  

"인간은 늘 꿈을 가지고 자신의 비참함과 싸워왔다. 과거게 꿈은 아주 막강한 것이었지만 그 꿈은 이제 영화, 라디오, 신문 때문에 유치한 것이 되어버렸다. 인간의 꿈을 배신한 사례가 무수하게 많았지만 최근의 이런 매체들은 정말 최악이었다."

첫 페이지의 저 문장은 작가의 의도인지는 모르겠지만, 첫문장은 아니었고, 소설 뒷부분쯤에 나오는 이 소설을 뚫고 있는 한 문장이었다. 꿈을 잃어버린 사람들. 꿈을 잃도록 조장하는 미디어들. 그 미디어들로 대표되는 세속. 즉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 이 세상.

미스 론리하트는 신문에 투고하는 익명의 독자들에게 고민 상담을 해주는 남자다. 이 책과 나의 궁합이 잘 맞은 것은 둘째치고,  너세네이얼 웨스트는 정말 내가 이때까지 만난 최고의 이야기꾼이다. 정말 맛깔스럽고, 문장 하나하나를 꼭꼭 씹어먹고 싶은 글을 쓰는 작가이다. "그 자는 도피주의자야. 자신의 내면적 정원만 단장하려 든단 말이야. 하지만 어디로 도망가겠나? 그 자가 자신의 성격이라는 과일을 과연 어떤 시장에다 내다 팔 수 있겠나? 요사이 영농위원회는 실패작이거든."

절망녀, 상심녀, 모든게 지겨운 여자, ( 그러고 보니, 소개 되는 편지들이 다 여자로 부터 온 것이다.  유일하게 남자로부터 온 편지는 미스 론리하트에게 직접 건네지고,  파티에서 우연히 발견되어, 전달되지 않는다. ) 들로 부터 받는 비상구가 보이지 않는 상황의 구세주가 없는 인간들의 갑갑한 이야기들은 독실함과 의구심 사이를 왔다갔다 하는 기독교인인 미스 론리하트를 황폐화 시켰다가, 집착하고, 강박하게 했다가, 굳건하게 했다가, 결국은 깨달음을 줬다가 그 즉시 모든 것을 빼앗는다.  얼마전에 본 J.D. 셀린저의 ' 바나나피쉬를 위한 완벽한 날들' 의 결말을 떠올리게 하는 허무하고도 강렬하고도, 믿기지 않아 다시 한번 전페이지서부터 읽게 만드는 마지막 문장이었다. ( 이런 , '바나나피쉬를 위한..'를 보고 최고로 강렬한 문장이라고 평했던게 엊그제인데...) 사실, 마지막 결말이 그렇다 하더라도, 이 책은 처음부터 결말에 이르기까지 모두 강한 인상으로 박혀버렸으므로, 외려, 전체적인 아우라에 비하면, 결말이 약하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이 책을 읽은 다른 사람들처럼 150페이지 정도의 중편소설을 읽고나니 수많은 의문이 든다. 의미심장해보이는 수많은 상징들로 가득차있다. 일독을 한 지금은 애써 분해하고, 해석하려 하지 않으려한다.

해럴드 블룸님의 '교양인의 책읽기' 를 보고, 잽싸게 샀던 두 권의 너새네이얼 웨스트의 책이었다. 그의 평을 끝으로 리뷰끝.

"미국 사회의 어두운 비전을 이처럼 완벽하게 묘사한 작품은 두 번 다시 없다. [미스 론리하트]는 [위대한 개츠비], [해는 또 다시 떠오른다] , [성단]을 능가하는 작품이다. 20세기의 미국 산문문학을 통틀어서 [미스 론리하트]의 작품 수준을 능가하는 소설을 쓴 작가는 포크너 단 한 사람뿐이다. "

                                    해럴드 블룸 Harold Bloom ( 예일 대학교 및 뉴욕 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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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5-02-02 1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절망녀, 상심녀, 모든 게 지겨운 여자......
저는 이 책 나오자마자 열광하며 샀었어요.
그런데 기대에 뭔가 조금 아주 조금 못 미친 듯.^^

로드무비 2005-02-02 1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재 사진 확대해서 보려고 왔어요.
근사한데요?^^

하이드 2005-02-02 1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저도 예전에 나왔을때 언젠가 보관함에 넣어두었다가, 이번에 .. 라기엔 좀 되었지만, 해럴드 블룸의 ' 교양인의 책 읽기 ' 읽고 사 뒀다가 이제야 읽었는데, 너무 맘에 듭니다. 두번, 세번 읽어도 계속 좋을 것 같은 예감이 강하게 드는 책입니다.

balmas 2005-02-03 0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추천 하나에, Thanks to도 들어갑니다.^^

하이드 2005-02-03 06: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고맙습니다. BALMAS님 >.<

드팀전 2005-02-05 2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 2년전 쯤 봤는데 지금은 잘 기억이 안나네요.그다지 강한 이펙트를 주진 못했나봐요.아니 그 의미를 전부 이해하기엔 좀 인내가 부족했다는게 맞는 말이겠지요.주인공이 좀 당혹스럽게 죽음을 맞게 되는 장면은 기억이 나네요.언젠가 다시한번 의미를 새기며 읽어봐도 좋을 책이리라 생각하고 다음 기회에 다시 한번 봐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