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크 스타킹 한 켤레 - 19, 20세기 영미 여성 작가 단편선
세라 오언 주잇 외 지음, 정소영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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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세기 여성 작가들의 시나 단편집들이 몇 권 나와 있는데, 그 시기 여성 작가들의 단편들을 재조명 하는 것이 의미 있을 뿐 아니라, 무섭게 재미있다. 이 단편집의 큐레이션 역시 훌륭하다. 


엮은이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세기 전환기의 이 시기의 삶의 양상이 현재와 크게 다르지 않고, 그러한 과거를 통해 지금은 고착되어 제대로 보기 힘든 사회의 여러 면모를 새롭게 볼 수 있다고 말한다. 이 시기는 무엇보다도 여성의 삶에 급격한 변화가 찾아오고 새로운 가능성이 열리기 시작한 시기이기도 하다. 


"결혼 말고는 다른 삶의 가능성이 희박했던 과거와 달리 많은 여성들이 다양한 공적 영역에 진출하고 경제적인 독립을 이루면서 결혼과 가족을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기던 생각에 도전 받았다." 


과거의 이 시기를 소설을 통해 읽어봄으로써, 그것이 현재에 어떻게 발전했는지, 어떻게 퇴보하거나 지지부진 그대로인지를 고민해볼 수 있다. 


살럿 퍼킨스 길먼, 케이트 쇼팽, 윌라 캐더, 이디스 워턴, 버지니아 울프, 캐서린 맨스필드의 이름이 낯익다. 

처음 접하는 작가인 세라 오언 주잇, 메리 E. 윌킨스 프리먼, 수전 글래스펠, 엘런 글래스고, 조라 닐 허스턴의 작품도 다 재미있었다. 


세라 오언 주잇의 작가소개에는 "관절염 치료차 숲속을산책하며 자라 자연에 대한 애정이 깊었다. (..) 평생 결혼하지 않고 애니 필즈와 가깝게 지내다가 그녀의 남편인 '애틀랜틱 먼슬리' 편집자 제임스 필즈가 사망하자 여생을 함께 보냈다" 고 나와 있다. 


작품 '백로'는 자연을 사랑하는 소녀가 숲을 찾아온 조류학자를 만나게 되고,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고 생각하고, 그가 찾는 '백로'를 찾아주려 한다. 아주 높은, 아주아주 높은 나무에 올라가는 장면 묘사가 엄청 박력 있고, 손에 땀을 쥐게 한다. 


메리 윌킨스 프리먼의 '뉴잉글랜드 수녀'도 좋았다. 수녀가 나오는 이야기는 아니고, 약혼을 한 채 혼자 30여년 동안 자기만의 성을 가꾸며 남자를 기다린다. 남자가 마침내 돌아와 결혼 날짜가 잡히는데, 자신의 성을 떠나, 자신이 가꾼 모든 것을 버리고, 남자의 집으로 들어갈 생각을 하니 우울해진다. 남자는 자신의 어머니를 봐주는 여자와 사랑에 빠지지만, 둘 다 의무에 따라 결혼을 되돌리지는 않는다. 그 일이 생기기 전까지. 여자, 루이자는 "수녀원에 있지 않았지만 수녀나 다름없었다" 고 하는데, 수녀원이라고 하면, 갇혀 있는 느낌이 강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자신의 세계를 유지한다는 점에서 희망적인 의미로 나온다. 이 시기에는 결혼보다 수녀원이 좋은거였나?


세번째 작품인 샬롯 퍼킨스 길먼의 '누런 벽지'는 워낙 유명하고, 서너번쯤 읽은 것 같다. 읽어도 읽어도 으스스하다. 


케이트 쇼팽의 작품은 '아카디아 무도회에서' 와 속편인 '폭풍우' , 표제작인 '실크 스타킹 한 켤레'가 나와 있다. 결혼생활과 여자의 욕망에 대해 다룬 작품들이다. 


윌라 캐더는 평생 미혼으로 살았고, 남장을 하기도 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이 작품에 나오는 토미가 그렇다. 평생 미혼으로 살지는 모르겠지만. 아버지의 사업을 이끌고, 아버지의 사업 친구들이 토미의 친구들이다. 그 지역에서는 젊은 여자에게도 얼마간의 사업 능력을 기대하고 인정하는 경항이 있고, 토미는 능력자였다. 은행의 출납업을 맡은 제이 엘링턴 하퍼는 사업 능력이 떨어지고, 파트너인 아버지가 꽂아준 청년이었다. 토미가 동부에 갔다 오면서 친해진 여자를 데려왔는데, '바이올렛 향수를 뿌리고 양산을 쓰고 다니는, 얌전하고 기운 없는 하얀 피부의 여자' 였다. 그리고, 제이랑, 토미랑, 그 여자, 제시카랑 이런 저런 일들이. 소설의 결말은 토미처럼 씩씩하다. 


이디스 워턴의 '다른 두 사람'은 블랙코미디 같은 느낌이다. 세번째 결혼한 웨이손 부인 이야기. 


수전 글래스펠의 '여성 배심원단'은 연극적인 느낌이 강한 작품이었다. 바보 남자들에 대항하는 여자들의 연대. 노란 카나리아.


버지니아 울프의 '벽의 자국'에서는 울프의 '의식의 흐름' 기법을 잘 느낄 수 있다. 벽에 난 자국 하나로 이렇게까지 글을 쓸 수 있다니 부러운 마음.     


캐서린 맨스필드의 '작고한 대령의 딸들' 에서는 독재자 아버지가 죽고 난 후의 이야기. 아버지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려고 애쓰는 삶만을 살다 아버지가 죽은 후의 이야기이다. 


앨런 글래스고의 '제3의 그림자 인물' 또한 고딕호러물이다. 주인공이 간호사와 의사. 정신병원에 들어가게 되는 의사의 부인과 죽은 딸. 


마지막 작품인 조라 닐 허스턴의 '땀' 은 포악한 악질 남편과 그 남편과 살아낸 딜리아 존스의 이야기이다. 

 


작가 이름들을 다 기억해둬야지. 생각할만큼 작품성도 재미도 잡은 여성의 눈으로 보고 그린 여성의 이야기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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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1-09-08 12: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무섭게 재미있다니…!!!

하이드 2021-09-08 15:45   좋아요 1 | URL
무섭고 재미있습니다. ㅎㅎ
 
나이트 스쿨 잭 리처 컬렉션
리 차일드 지음, 정경호 옮김 / 오픈하우스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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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아동도서 같지만, 리처가 등장하자마자 훈장을 받더니 학교로 보내졌다고. 


팽당한 것 같은 분위기로 소문이 퍼지지만, '학교' 라고 불리우는 곳에 가니 CIA에서, FBI에서 각각 최근에 큰 공훈을 세운 요원들이 한 명씩 와 있고, 사상 초유의 CIA,FBI, 미육군 합동 작전을 예감한다. 


대통령 직속의 국가안보위원회에서 나와 비밀리에 그들이 해결해야 할 임무를 주고, 모든 지원을 해준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1억달러' 라는 판돈이 그들의 레이더에 떴기 때문이다. 


리처는 상사 니글리를 호출..하기도 전에 니글리가 먼저 알고 리처가 어느 식당 갈 것까지 예측해서 식당에서 마주친다. 

리처가 나오니 리처가 주인공이지만, CIA와 FBI 합동 작전, 그것도 큰 공을 세운 조직내 명석한 이들이 너무 시시하게 나오고 분량도 없어서 그 부분이 좀 아쉬웠다. 대신 의외로 일 잘하는 함부르크 경찰이 나온다. 리처 시리즈에 리처나 리처와 일하는 파트너 외에는 다 일 못하거나 망치는데 함부르크 경찰 나올때마다 리처도 읽는 나도 일 잘하잖아. 계속 생각했다. 리처와 긴밀히 연락하게 되는 함부르크 경찰 그리즈만은 높이 올라가고 싶은 욕망과 무사안일주의가 함께 해서 사소한 일도 부서 찾아 미루는 신공을 발휘하지만, 그 마저 사건에 도움이 된다. 그러고보니, 독일인들의 꼼꼼함을 강조한듯하다. 이 책에도 잭 리처의 적은 둘이다. 1억달러를 거래하는 테러범과 함부르크에 자리잡은 네오나치 조직이다. 조직원이 독일 곳곳에 자리잡고 있다는 설정이다. 


같은 도시에 탈영병이 있고, 헌병인 리처가 있다면, 그 탈영병을 잡는 것은 은행에 맡겨둔 돈 찾는 것과 같다고 자신감을 보이는 리처. 조직에 몸담고 있을 때의 리처는 조직에서 나와 자유인으로 민들레 홀씨처럼 돌아다니는 리처와 많이 다르다. 둘 다 재미있지만, 나는 후자가 좀 더 재미있다.  


모래사장에서 바늘 하나 찾기의 마음으로 함부르크를 훑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뭔가 하고 있는 게 정신건강에 좋은 법이다. 그래서 그는 계속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리처니깐, 계획하고, 계속 머리를 굴려서 가장 확률이 높은 방향으로 계속 갈 뿐이다. 


리처가 산 바지. 단돈 5달러인데, 앞으로 30년도 끄떡없을 것 같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리처처럼 험하게 쓰는데, 30년 입는 바지 그거 뭐야. 나도. 


리처가 국가안보위 상사와 자는 장면이 여러번 나오는데, 그런줄 알고 있었고, 이 책도 두 번째 읽는거지만, 새삼 놀랐다. 

햄버거 패티 묘사를 해도 이보다 더 재미있을 것 같은. 뚝딱거리는 묘사다. 리처가 코어로 하는건 다 잘하니깐, 잘했을거라는 건 의심하지 않지만, 리처의 전투신처럼 여자가 움직이는걸 묘사하는데, 아니..그게.. 되어버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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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1-09-07 09:4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 이 책 없네요? 아직 사두고 안읽은 잭 리처 몇 권 있지만 이 책 삽니다. 코어로 하는 건 다 잘하는 리처라니...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핳하하.

하이드 2021-09-07 09:57   좋아요 2 | URL
그죠? 의심하지 않죠? 못할리가. ㅎㅎ 안 읽은 잭 리처 책 있다니 부럽습니다. 근데, 두 번 읽어도 재미있네요.

독서괭 2021-09-07 11: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코어로 하는 건 다 잘한다니 웃다가 쿨럭 ㅋㅋㅋ 리처가 산 바지 저도 궁금하구요. 저도 혼자 돌아댕기는 리처 쪽이 좀더 재미난 것 같습니다.

하이드 2021-09-07 17:10   좋아요 1 | URL
뭘 해도 코어가 중요. 저는 잠을 잘 못 잤는지, 허리가 아픕니다. ㅎㅎ 잭 리처의 피지컬 부러워요.
 
도서관 런웨이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36
윤고은 지음 / 현대문학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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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여행자들에 이어 두 번째로 읽는 윤고은의 책이다. 

와, 윤고은 글 정말 재미있게 잘 쓰는구나가 첫번째 감상


책소개에 'AS안심결혼보험' 에 얽힌 이야기라고 해서, 뭐여? 보험 이야기? 결혼 보험 이야기? 궁금했는데, '안심 결혼을 AS 하는 보험' 부분이 판타지였다. 아, 대놓고 판타지가 아니라, 그런 일이 상상에서나 가능할법해서 판타지다. 


"안나는 고요한 책들 사이로 걸어가는 걸 좋아했다. 키 높은 서가들이 담벼락처럼 이어진 도서관에서는 아무렇게나 걸어서는 안 됐다. 신발 밑창, 특히 뒷굽을 지면에 잠깐 접촉한다는 느낌으로 내려놓아야만 소리가 나지 않았다. 포스트잇을 한장씩 바닥에 붙이는 것과 비슷하게. 안나는 자신의 걸음이 바닥에 오래 흔적을 남기지 않을 것을 알기 때문에 접촉에 대한 부담 없이 총총 걸었따." 


첫 문장부터 빨려들어가는 책이다. 읽으면서 기발하고, 반짝거리는 문장들에 반하게 된다. 

책에 나오는 연애 티키타카에 가슴 몽글거리게 된다. 


언젠가부터 'AS안심결혼보험'에 가입하기 어려워졌는데, AI가 1차로 엄격하게 고위험군을 걸러내고, 2차로 사람이 걸러낸다. 

그 보험에 가입한다는 자체가 어떤 자격을 주는 것과 같아서 사람들은 보험사에서 요구하는 개인정보들을 착착 내밀면서 자신이 결혼에 적합하다는 증빙을 얻고 싶어한다. 


책인 줄 알고 도서관에서 빌린 벽돌책은 알고 보니 보험약관이었다. 이 보험약관이 중고로 백만원까지 거래되는 희귀본임을 알게 되고, 보험약관인데, 앞부분은 결혼에 대한 에세이처럼 읽히는 책이었다. 


보험금을 청구하는 사례들로 안심결혼을 보장하는 것, 차량보험이 운전자의 안전에 대한 교육과 매뉴얼을 만드는 것과 비슷하다. 그것이 운전자와 차의 안전이 아닌, 결혼과 부부에 대한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매뉴얼인 차이가 있을 뿐이다. 


결혼에 쓴 돈을 합리적으로 쓴 것임을 증명할 수 있으면, 300만원 까지 현금으로 100만원 이상을 돌려받을 수 있다는 약관을 보고 K의 식구들은 영수증들을 긁어 모아 제출하지만, 돌려 받는 금액은 미미하다. 냉장고만 200만원인데, 사치품으로 분류된다. "예전에 쓰시던 냉장고도 용량이 비슷한데, 고장도 아닌데 굳이 왜 바꿨느냐 그거죠." 버려진 냉장고는 831리터 용량이고, 한 번도 고장난 적 없었던 제품. 소음이 심하다고 생각했는데 정상범위였고, 꽃무늬 디자인이 구식이고, 새것도 800리터대 규모였고, 4도어라는 것만 달랐다. 디자인 때문에 멀쩡한 냉장고를 바꾸게 되었으니 합리적 소비가 아니어서 환급받을 수 없다는 결론. '반상기' 도 거절당하는데 "반상기는 '구시대적 발상'을 드러내는 대표적인 사례로, 신부가 부모님을 봉양하는 의미라고는 하지만 그게 과연 지속 가능한 결혼생활을 위한 합리적인 소비일지 의문입니다." 라고. 


보험사의 답변이 계몽적이기까지 한데, 그냥 들었으면 흘려듣거나 발끈했을 것 같은 이야기들도 '환금성' 으로 계산하여 돈을 돌려 받기 위한 이야기로 너무나 쉽게 스위치 되서 보험사 입장을 학습하게 된다. 


안나와 유리는 한 때 룸메이트였던 사이이고, 만났다 안 만났다 연락을 이어가는 관계이다. 

유리와의 줌으로의 연락을 마지막으로 안나가 잠적하고, 그런 안나를 걱정하여 안나와 북클럽을 하는 미정이 유리를 찾아온다. 


본격 코로나 시대 소설이고, 안나는 코로나로 사라지는 여행사에서 일했고, 유리는 코로나로 더 바빠진 보험사 직원이었다.


결혼과 보험, 여행과 책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그를 둘러싼 사각관계가 나온다. 


코로나 시대, 사라지는 것들. 사랑을 하고, 사랑이 끝난 이후를 말하는 소설이다. 


삶이 좋아하는 것으로만 이루어지는게 아님을 알아. 먹구름에 가려 일몰을 볼 수 없는 날도 생기고, 애써 준비한 마음이 오해되고 버려지는 경우도 생기겠고, 삶의 타이밍이 늘 한 발 늦을 수 있고, 내 경우엔 미련도 품을 수 없을 만큼 열 발쯤 늦을 때가 많고, 시간 낭비 같은 산책도 많지. 회복 불가능할 정도의 일도 있고. 내가 사랑하는 세계가 훼손되고 내 속도가 흔들릴 때도 울지 않을 거라고 말할 자신은 없는데. 그렇지만 무언가를 누군가를 아주 좋아한 힘이라는 건 당시에도 강렬하지만 모든 게 끝난 후에도 만만치 않아. 잔열이. 그 온기가 힘들 때도 분명히 지지대가 될 거야. - P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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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내는 법
신숙옥 지음, 서금석 옮김 / 푸른길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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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신숙옥 교수의 이 책이 트위터에 뜬 걸 보니 재미있어 보였다. 처음 보는 저자인데, 책이 꽤 많이 나왔고, 모든 책이 절판이다. 알고보니, 극우 인사와의 토론 동영상으로 나도 봤던 그 분이다. 출판사에 문의 있었나본데, 판권소멸로 재계약, 재출간 계획은 없다고 한다. 알라딘 현재 중고가... 


저자는 재일교포 3세이다. 사이다 발언으로 유명하지만, 자신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화를 내고 있고, 화내지 않고 지나가는 날은 없으며, 결코 화내는 것을 즐기지 않는다고 말한다. 단지

 

"화를 내지 않고는 살아갈 수가 없다." 


첫 챕터에 나온 '나는 매일 화내고 있습니다' 에 요약되어 나오는 저자의 하루는 요즘의 뉴스를 보는 나와 크게 다르지 않다. 

눈 뜨자마자부터 눈 감기전까지 화나는 일 투성이다.  


저자는 도쿄에서 나서 자랐으며, 3대에 걸친 토박이다. 어느 영상을 보니, 시부야에서 나고 자랐다고 한다. 

조선인으로서 차별받고, 극심한 생활고로 어머니와 형제가 오사카의 친척 집에 몸을 의탁하게 되었다. 배가 고파 견디기 힘들 때면 어머니와 둘이 오사카 거리를 걸었고, 그런 날 밤이면 어머니는 울면서 몇 번이나 두 손으로 어린 셋짱 (저자의 일본 이름 세스코) 의 목을 졸랐다. "세쓰코야, 나하고 죽자."

죽는 것은 싫었지만 어머니가 너무 불쌍해서 항상 "응." 하고 대답했다고 한다. 


가난했고, 학교에 다니기도 힘들었고, 밖에서는 북한에서 배신, 한국에서 배신, 일본의 외면, 무시. 안에서는 오빠만 아끼고 딸인 저자는 6살 때부터 일해서 번 돈을 모두 집에 갖다 주었다. 그리고, 엄마는 목을 졸랐지. 이 책을 다 읽어도 모르겠다. 어릴때부터 적대적인 환경에 둘러싸여 자란 저자가 어떻게 굳세게 자라 맨 앞에서 싸우는 행동하는 날카로운 지성이 되었는지. 

작은 힌트들을 책에서 보지만, 무엇이 저자의 힘이 었는지 내내 궁금하다. 


신문에 칼럼을 연재하기 시작할 때 반응의 8-90 퍼센트가 항의였으나 끝날 즈음에는 90퍼센트가 지지를 보내주었다고 한다. 무언가 새로운 일을 시도하면 처음에는 비난이 쏟아지지만, 이를 악물고 참으면 반드시 지지자가 나타난다. 익명으로 제 이름조차 떳떳이 밝히지 못하는 상대를 설득하고 있을 시간은 없다. "조금이라도 이해해 주는 상대편과 어떻게 빨리 손을 잡을 수 있는가가 승부를 결정짓는 요인"이다. 


어떻게 화낼 수 있게 되었는가? 

'연결' 을 통해서. 저자의 울분은 다른 재일 동포의 울분과 통하고, 동포 선배의 눈물, 부모의 눈물, 친구의 눈물, 조부모의 눈물, 여자의 눈물.. 들을 보아 온 경험이 일상생활을 통하여 쌓아 올려지고 정리되어 자신 속에서 나름대로 확고한 기준이 세월을 거쳐 만들어졌기 때문에 화낼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다른 사람에게 화를 낼 수 있으려면 옳은 것, 선량한 것, 아름다운 것, 공평한 것, 합리적인 것 등에 대한 가치관이나 기준이 자신 속에 있지 않으면 안된다. 그 기준이 명확하면 할수록, 그 기준에서 벗어난 타인의 행위나 발언에 대하여 화를 낼 수가 있다." 


저자의 기준은 '나보다 약한 사람, 없는 사람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 준다. 도와준다' '여자이기 때문에 차별 받아서는 안된다' '경제가 약육강식의 자본주의라면, 정치는 무슨 일이 있어도 약자를 구제하는 일을 해야만 한다' '학문은 배울 기회가 없었던 사람을 위하여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배우는 것이다' '폭력으로는 결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등이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는 기준이 "체험을 통하여" 하나씩 쌓아 올려져야 비로소 화를 낼 수 있게 된다. 


저자는 누구에게도 의존할 수 없었고, 바람막이 또한 없었다. 사면초가 속에서 자신만을 의지하고 살아왔다고 한다. 


"혼자서 세파를 헤쳐 나아가는 자는 어떠한 일에도 흔들리지 않는 법이다." 


그의 과거와, 그 세파를 헤쳐 나와 지금에 이르렀다고 생각하니, 흔한 말조차 무겁고 단단하게 다가온다. 


화의 유형에는 분화형, 불평불만형, 방화형, 현관매트형, 그리고 문제해결형이 있다. 

이름 보면 대충 어떤 분노인지 알 수 있는데, 현관매트형만 말해보면, 분노를 참고 참고 참다가 터트리는 테러형이다. 


저자가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화는 '문제해결형' 으로 분노의 근본 원인을 찾아 신속하게 대응하는 유형이다. 


" '화내는 것'은 언어로써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다. '분노를 폭발시키는 것'은 표현할 언어를 잃었을 때의 상태이다." 


" '화내는 것'은 인간관계를 만들고 이어 가기 위한 것이다. '분노를 폭발시키는 것'은 인간관계를 끊기 위한 것이다." 


저자가 화내는 대상은 주로 '사회의 부정'에 대한 것이었고, 상대는 권력이거나 조직이었다. 마지막에야 맞서게 된 것은 가족과의 관계였다고 한다. 10대 무렵부터 집에서 경제적 기둥이었고, 쉴 사이 없이 일하며, 가족 여행이나 음식점 예약까지도 맡아서 했다. 누구 하나 도와주거나 대신해 주지 않으며 정해진 음식점에 대한 불평은 모두가 했다고 한다. 부모는 보살펴야 하는 대상이었기에 무슨 일이 있어도 거스르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사람은 무엇을 위해 화를 내는가? 저자의 답은 '내가 나로서 살아가기 위하여' 이다. 

모욕을 당해도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게 된다면, 그것은 자신이 이미 자신이 아닌 상태이고, 자신을 혐오하면서 자신을 위해 화를 낼 수는 없다. 


화내는 법과 화내는 사람을 상대하는 법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온다. 자기계발서에서 볼 수 있는 내용인가 싶지만, 저자가 드는 사례들이 박력있다. 


이 책에서 가장 기억에 남고, 기억해야지 했던 부분은 '사회에 대한 분노는 어떻게 표현할지' 에 대한 이야기였다. 


어느 순간, 저자가 상대해야 할 대상은 사람이 아닌 '무지' 가 된다. 

무지와의 싸움은 시위와 집회만으로는 이길 수 없다. 일부 엘리트만이 배워 무지에서 해방된다 하더라도 약자는 도움을 얻지 못한다. "이제 권력만이 적이던 시대는 지났다." 이 책이 나온지 20년이 다 되어가는데, 지금에도 굉장히 와 닿는 말이다. 


"권력에 따라 움직이는 '무지'한 사람과 이웃이, 약자를 배제시켜 가고 있는 현실에 어떻게 맞서 싸울 것인가?" 


"다문화공생의 정보(지식과 노하우 등)를 어떻게 생활 속에 스며들게 할 것인가가, 정치적인 힘을 가질 수 없는 (선거권조차 없는) 나의 승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악의를 지닌 확신범을 설득하고 있을 시간이 있다면, 서로 이해할 수 있는 상대와 한시라도 빨리 손을 잡자. 그것이 안전망이 되기 때문이다." 


1) '우'냐, '좌'냐 하는 과거의 틀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는다. 

2) 공통점이 1퍼센트만 있다면 그 점을 지지한다 (비록 활동이 미숙할지라도).

3) 정보가 부족한 사람이 있다면, 필요한 정보를 제공한다. 


시대도 환경도 변하고 있기에 선배 세대와 똑같이 싸울 수는 없다. 현재에 실패와 학습을 반복하며 나름대로 싸워왔고, 싸우는 모습을 후배 세대에게 보여주는 것이, 차별과 싸우는 사회를 이어 가기 위해 필요한 일이다. 후배에게는 후배 시대의 환경과 가치관과 투쟁 방법이 있다. 그것을 지지하고 뒷받침하는 것이 선배, 즉 어른의 역할이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뒤에 이어지는 저자가 직접 계획하고 운영했던 활동 사례들은 각각이 다큐나 영화로 만들어질법한 이야기들이다. 

이시하라 도지사와의 투쟁, 우산 대행진, 다문화 탐험대, 일일 홈스테이, GOGO 기시모토 밥 딜런을 향하여 등이 그것이다. 


오델로의 흑말을 백말로 뒤집듯, 공통점을 가진 사람들을 내 편으로 만드는 일. 그렇게 가장 바닥에서부터 올라왔다고 생각한다. 미력해 보이지만, 주변을 끌어들여 권력과 권력을 따르는 '무지'에의 대항. 이 '화내는 법'은 신념을 가진 약자들의 강력한 무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창씨개명은 조선인이 원해서 한 것이다."라든지 "강간하는 남자는 원기 왕성해서 좋다>"라는 말을 뻔뻔스럽게 내뱉는 ‘영감쟁이‘를 설득하고자 한다면, 인생이 300년이라도 짧다.

무지와 정열 때문에 차별적인 표현을 하는 사람은 말 그대로 화석이다. 장식품으로 놓아둘 수밖에 없다.

악의를 가진 자를 변화시키려고 노력하느니, 서로 잘 이해할 수 있는 사람과 빨리 손을 잡는다. 손을 잡으면 고독으로부터 빠져나올 수 있다. - P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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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는 방식 - 수전 손택을 회상하며
시그리드 누네즈 지음, 홍한별 옮김 / 코쿤북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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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전 손탁의 책을 잔뜩 모아뒀다. 지금 보다보니, 아들 데이빗의 회고록도 있음. 시그리드의 회고록 읽고 읽기 좋겠다 싶다. 수전의 책은 읽지 않았지만. 


시그리드 누네즈의 Sempre Susan, A Memoir of Susan Sontag은 묘하다. 수전과 일했고, 수전의 아들과 사귀었고, 그들과 같이 살았던 시그리드의 문학계 가장 밝은 별 중 하나였던 수잔에 대한 회상이다. 


악의도 선해도 보이지 않는 어조로 수전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이 글을 보고 수전의 괴팍함이나 데이빗과의 관계로 인해 수전이 싫어지지는 않은걸 보면, 내가 느끼는 수전의 아우라가 너무 강하거나 저자가 수전을 좋다 싫다 단순히 말할 수 없는 복합적 감정을 가지고 있지만, 긍정적인 것이 한 스푼이라도 많았던게 아닌가 싶다. 


글은 평범하고, 이야기는 수전의 이야기가 흥미로운거지, 그 외는 평범하다. 고 말하고 싶은데, 가독성이 좋고, 글에 빠져들어 헤어나기 힘들었던 걸 보면, 글도 좋고, 번역도 잘 되었다. 


저자의 글보다 저자가 쓴 수전의 이야기, 저자의 눈으로 보고 느낀 수전의 이야기에 집중하게 된다. 


* 수전은 어린 시절을 따분하게 생각했고, 아동기가 끝나기만을 기다렸으며, 따분하고 아무 가치 없다고 느끼는 "것 같았다". 

* 데이비드는 어릴 때부터 어머니를 '수전'이라고 불렀고, 아버지 필립 리프도 이름으로 불렀다. 그가 '엄마', '아빠'라고 부르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다고 했다. 

* 호기심은 수전의 글에서 두드러지는 미덕이고 수전 역시 호기심이 끝 없는 사람이었지만, 자연 세계에 대해서만은 아무 관심이 없었다 .아파트에서 보이는 전망에 감탄하지만 길을 건너 리버사이드 파크에 갈 생각은 전혀 없는 것 같았다. 

*수전은 항상 바지만 입었고(보통 청바지) 굽 낮은 신발을 신었다(보통 운동화). 백은 절대 들지 않았다. 왜 여자들이 백에 집착하는지 이해를 못 했다. 내가 늘 백을 들고 다닌다고 놀리곤 했다.왜 여자들은 백이 없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지? 남자들은 안 들고 다니잖아? 왜 여자들은 스스로 짐을 지우지? 대신 남자들처럼 열쇠, 지갑, 담뱃갑이 들어갈 만큼 큼직한 주머니가 있는 옷을 입으면 되지 않아? 

* 수전은 키가 큰 것을 마족스러워했다. 페미니즘 학회에 갔을 때 저메인 그리어를 보고 질투를 느꼈단다. "그곳에서 나보다 키가 큰 유일한 여자였어." 

*수전은 운동은 전혀 안 했다. 평생 한 번도 건강한 적이 없었단다. 그래도 날씨가 춥지 않을 때, 그리고 도시에 있을 때는 걷기를 좋아했다. 수전은 느릿느릿 느긋하게 약간 평발처럼 걸었는데 우아하다고는 할 수 없어도 멋있었다. 걸을 때는 턱을 높이 들었고 청바지 허리 부분이나 주머니에 엄지손가락을 걸고 걸었다. 


이런 이야기들이 끝도 없이 나온다. 버지니아 울프의 이야기가 좋아하는 여성 작가들의 책에서 빠지지 않는 것이 좋다. 

"수전은 버지니아 울프가 천재라고 생각하면서도, 나처럼 울프를 우상으로 숭배하는 것은 너무 빤하고 순진하다고 보았다. 게다가 울프의 어떤 면을 (나는 그것이 울프의 정신적, 신체적 병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울프의 나약한 면이라고 생각한다) 수전은 못 견뎠다." 


저자는 좀 내향성의 사람이었던건가 싶은데, 데이비드와 수전의 외향적인 면과 어울리며 힘들었던 것 같다. 


" 수전과 데이비드 둘 다 나의 수도사 같은 면을 못마땅해했다. 그들 눈에는 활기와 호기심이 결핍된 것처럼 보였다. 작가가 되겠다는 사람이 그러면 쓰나! 데이비드는 그걸 어떤 결점으로 보았고 그냥 내버려두면 내가 아주 따분한 사람이 될 거라고 했다. 수전은 틀어박히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본성이 냉정하고 이기적이라고 믿었다. 나는 달라져야 했다." 


읽으면서 수전이 ADHD 였던 건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던 부분


"수전은 늘 무언가에 정신을 쏟았다. 주의를 끄는 것이 없으면 정신이 멍해져서 마치 방송 송출을 안 할 때 텔레비전 화면에 뜨는 노이즈 같은 상태가 된다고 했다. (..) 전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런 한편 그 말이 수전의 과잉 활동과 늘 누구와 같이 있으려 하는 과도한 욕구를 설명하기도 한다. 왜 시골을 싫어하는지, 왜 다른 사람처럼 일하다 멈추고 쉬는 게 안 되는지도. 그 텅 빈 화면이 무척 두렵다고 수전은 확고하게 말햇다. " 


수전에 대한 나쁜 말이 잔뜩 써져 있는데, 이 책을 읽고, 수전이 더 궁금해지고, 얼른 수전의 책을 읽고 싶어졌다면, 저자가 나쁜 말처럼 쓴 것이 나쁜 말이 아니었던 것 아닐까. 책을 다 읽지 않고 (읽다 만 책들만 잔뜩이라) 궁금해 하는건 아무 의미 없으니, 얼른 가서 책이나 읽어봐야겠다. 데이빗의 책도 꺼내두었다. Swimming in a Sea of Death 어머니의 죽음. 수전의 암 투병을 기록한 회고록이다. 그러고보니, 집에 보부아르가 어머니의 죽음을 기록한 아주 편안한 죽음도 있다. 롤랑 바르트의 애도일기도 있다. 읽을 책이 잔뜩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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