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더 이상 실재하지 않는 과거를 상상적으로 소유할 수 있도록 해줬고, 사람들이 잘 알지도 못하는 공간까지 갈 수 있도록 해줬다. 사진이 현대의 가장 독특한 활동, 즉 관광과 나란히 발전한 것도 그래서이다. 현대가 시작되자 평소의 생활 공간을 떠나 정기적으로 짧게 여행 다니는 사람들이 유례없이 많아졌는데, 즐거운 시간을 보내러 여행을 떠나면서 카메라를 갖고 가지 않는다는 것은 자연스럽지 않은 일처럼 여겨졌다. 사진이야말로 자신이 진짜로 여행을 떠났고, 일정대로 잘 지냈으며, 정말 즐거웠다는 점을 확실히 증명해 줄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사진은 가족, 친구, 이웃이 볼 수 없는 곳에서 이뤄진 일련의 소비 활동을 기록해 준다. 그렇지만 사람들이 이보다 훨씬 더 많이 여행을 다니게 됐어도 자신의 경험을 생생한 것으로 만들어 주는 장치, 즉 카메라에 의존하는 태도는 좀체 수그러들지 않았다. 앨버트 나일강을 보트로 여행하거나 14일간 중국을 유람하는 등 전 세계 곳곳을 돌며 일종의 전리품처럼 사진을 찍어 모아오는 사람들은 물론, 휴가 중에 에펠탑이나 나이아가라 폭포 사진을 찍어오는 중하층 사람들도 한결같이 갖고 있는 욕구, 바로 이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것이 사진이다.
  이처럼 사진은 경험을 증명해 주는 방법이기도 하지만, 경험을 거부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사진으로 찍기 좋은 것들을 찾아다니는 일만을 경험이라고 생각하게 되거나 경험을 일종의 이미지, 일종의 기념품과 맞바꿔버리려고 하게 되니 말이다. 그러니까 여행이 고작 사진을 모으는 수단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사실,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여행 도중 흔히 격해질지도 모를 혼란스러움을 진정시켜 주고 완화시켜주는 활동이다. 여행객들은 카메라를 꼭 들고 가야 된다고 생각하며, 여행 중 마주치는 것에는 모두 주목하려고 한다. 그래서 앞뒤 재지 않고 사진을 찍어댄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의 경험에 형태를 부여하는 것이다. 멈춘다, 사진을 찍는다, 그리고 다른 곳으로 간다. 무조건 일만 해대는 무자비한 노동 윤리 탓에 심신 장애를 겪고 있는 사람들, 예컨대 독일인, 일본인, 미국인들이 이런 방식을 매우 좋아한다. 사진 촬영은 일에 쫓기는 사람들이 휴가 중이나 즐겁게 시간을 보내야 할 때마다 느끼곤 하는 불안감을 달래주기도 한다.
이런 사람들은 신의 일과 유사하면서도 친숙한 무슨 일인가를 해야 하는데, 사진 찍기를 바로 그런 일로 여긴다.

수잔 손택 '사진에 관하여on photography'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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