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또 메일을 뿌려봅니다.
월요일이지만,
막 딴 와인과 다음주의 빨간날들에 대한 기대로 아름다운 밤입니다.

음악.으로 흥을 돋구어봅니다.

음악 고르면서
어제 읽었던 개빈 라이얼의 '심야 플러스1 midnight plus one' 에서 좋았던 구절 옮겨봅니다.

'빠리는 4월이다. 비도 한 달 전만큼은 차갑지 않다. 그러나 패션쇼를 보기 위해서 비를 맞으며 가기엔 너무 춥다. 비가 그칠 때까지는 택시를 잡기 어렵고, 비가 그친 뒤면 택시가 소용이 없다. 겨우 몇백 야드밖에 안 되는 거리이다. 그러나저러나 형편이 좋지 않은 것이다. 결국 '뒤 마고'에 궁둥이를 붙이고 술잔을 기울이며 바깥 셍제르망 거리에서 푸른 신호와 동시에 그랑프리의 팡파르와도 같이 시작된 저녁 러시아워의 소음을 듣고 있었다.'

- 심야플러스1의 첫페이지입니다. 4월의 빠리. 뒤 마고에 앉아서 셍제르망 거리의 푸른 신호와 동시에 그랑프리 팡파르와도 같이 시작된 저녁 러시아워 소음을 듣고 있었답니다. 젠장. '빠리' 가 뭐길래, 셍제르망이 뭐길래, 이리도 멋지단 말입니까. 쳇!

주인공은 전직 영국정보원인 루이스 케인입니다. 모든지 '영국' 들어가면 환장하는 접니다만, 캉베르의(칸베르.라고 적혀있지만, 프랑스발음상 캉베르라고 맘대로 고쳐봅니다) 어느 까페에서 만난 유럽의 넘버3 총잡이 로벨. 의 모습은

'건장한 몸집으로 나보다 서너 살 젊고 키는 2인치쯤 작아 보였다. 억센 느낌의 금발을 짧게 자르고, 엷은 붉은 빛 체크 무늬 스포츠 코트에 거무스름한 바지를 입고 손으로 짠 넥타이를 매고 있었다. 옷차림으로는 아무것도 알아낼 수가 없었으나 얼굴이 모든 것을 말해 주고 있었다. 전에는 유령 같은 것에 사로잡힌 듯한 얼굴이었는지 모르나 지금은 그 유령에 익숙해진 표정이다. 꽉 다문 입매에 연한 푸른 빛 눈이 제빨리 움직이는가 하면 곧 꼼짝도 않고 고정되기도 했다. 그밖에 주름살이 눈에 띄었다. 두 가닥의 깊은 주름살이 코를 지나 입가에 이르렀고 눈가에도 주름이 있었고 이마에는 만들어 붙인 것 같은 주름이 고랑에 패어져 있었다. 그러나 거기에서 뭔가를 읽을 수 있는 것이라고는 전혀 없었다. 다만 주름살이 거기 있다는 것 뿐이었다. 피로한 얼굴도 아니었다. 굶주린 표정도,고달픈 표정도 아니었다. 지옥의 밑바닥을 들여다본 적은 없지만 어차피 그렇게 되리라고 체념하고 있는 얼굴이었다. '

'로벨은 홀스터 매는 일을 끝내자 침대 끝에 앉은 채 총을 찔러넣었다가 다시 총을 쓱 뽑았다. 그 동작을 되풀이하고 있었다. 카우보이 책에 나오는 것같이 매끈한, 아니 우아한 동작은 아니었다. 다만 잡아서 꺼낼 뿐이었다. 그런 태도는 마음에 들었다. '

그런 총잡이도 맘에 들고, 그런 총잡이를 관찰하는 영국 정보원도 몹시 맘에 들지요. 하드보일드지요?

'모두들 잠자코 있었다. 가끔 허베이와 뒷자리의 여자가 담배를 붙이는 빛이 얼핏 눈에 들어올 뿐이다. 동이 트기 전 한 시간이 우울한 시간이다. 새로운 하루를 맞는데 힘이 충실해 있지 않다는 것을 의식하는 시간이다. 환자가 밤의 지루함에 지쳐서 체념하고 죽어 가는 시간이다. 솜씨좋은 총잡이가 숨어서 적을 기다리는 시간이기도 하다.'

동트기 한 시간 전. 우울한 시간.에 대한 정말 맘에 드는 글귀입니다.

109페이지.의 도의 이야기도 정말 멋진 장면인데, 다 옮기기 너무 기네요. 섣불리 옮겼다가 맥락을 해칠까 저어되기도 하구요.

'그 뒤로 침묵이 계속되었다. 하늘이 다시 흐리기 시작했다. 비구름은 아닌 것 같았으나 회색 구름덩이가 해를 가리고 있었다. 오후는 김 빠진 맥주같이 멋없는 분위기였다.'

어떤 오후였는지 알 것 같습니다. 네. 김 빠진 맥주같은 멋없는 분위기의 오후였습니다.

다음은 제 리뷰에도 인용해 놓은 부분인데, 조금 길게 옮겨 봅니다.

그는 한 모금 마시고 나서 천장을 쳐다보았다. 천천히 조용한 목소리로 이야기하고 있었지만, 나에게 말하고 있는 건 아니었다. 자기에게 들려주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는 몇 년이나 전에 자기 눈앞을 막아 버린 문을 향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글라스가 약간 흐릴 정도로 식히는 거요." 그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얼게 해선 안돼. 얼리면 대개의 것은 일단 맛있게 보일 수가 있소.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이것이 미국을 다스리는 비결이오, 케인. 진짜 마티니에는 시시하게 올리브나 어니언을 넣지 않소. 다만 여름의 냄새를 넣을 뿐이지."

여름의 냄새만 넣어서 마티니 한잔.

멀리서 엔진 소리가 사라져 갔다. 싸늘하게 내리덮는 듯한 밤으로, 별은 보이지 않았다. 브르타뉴에서 뒤에 남기고 온 모양이었다.

내 별빛은 어디에.. 서울에서는 살고 싶지도 죽고싶지도 않다.. 어느 혼혈경찰 따라하는거에요. '나는 산티아고에서는 살고 싶지도 죽고 싶지도 않아' 세풀베다의 소설에서. 핫라인. 이던가요?

247,248pg 도 멋져요. 어딘지 비현실적이면서도, 사실 나도 자주 하는 짓.
역시나 옮기면 분위기 망칠까싶어 생략

그는 천천히 얼굴을 내 쪽으로 돌렸다. 표정이 하나도 없었다. 이이상 더 표정을 지을 수는 없을 것 같은 얼굴이었다. 지옥을 들여다보면 이것이 지옥인가 하고 납득이 갈 것 같은 얼굴이었으나, 지금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그 한 조각차 보이지 않았다.
나 스스로 상상하는 수밖에 없었다.
'술이 필요하구나.'

이 장면은 아마 발췌된 부분만 보고 상상하는 것이 혹여 나중에 책을 읽게 된다면 알게 되는 부분과 다를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아무렇지도 않게 이런 장면에 이런 대사 집어 넣다니, 반칙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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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wup 2006-09-26 0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뻑가는 대사들인걸요. 현실에서 저런 멘트를 날리면 어떨까, 생각하니 웃음이 나오네요. 전 올리브 넣은 마티니 원츄.

하이드 2006-09-26 0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드라이마티니.도 아닌, 애플마티니;; 좀 과.하다 생각되는 대사.이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그닥 과한 분위기.의 책이 아닌지라, 외려, 생략된. 많은 이야기.로 궁금증을 유발하지요.

BRINY 2006-09-26 0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손으로짠 넥타이란 어떤 거지요?? 상상이 안 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