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급생
프레드 울만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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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1932년 2월에 내 삶으로 들어와서 다시는 떠나지 않았다. 그로부터 사반세기가 넘는, 9천 일이 넘는 세월이 지났다. 별다른 희망도 없이 그저 애쓰거나 일한다는 느낌으로 공허한 날이 가고 달이 가고 해가 갔다. 그중 많은 나날들이 죽은 나무에 매달린 마른 잎들처럼 종작없고 따분했다. 


내 가장 큰 행복과 가장 큰 절망의 원천이 될 그 소년에게 처음 눈길이 멈췄던 것이 어느 날 어느 때였는지를 나는 지금도 기억할 수 있다. 그것은 내 열여섯 번째 생일이 지나고 나서 이틀 뒤, 하늘이 잿빛으로 흐리고 어두컴컴했던 독일의 겨울날 오후 3시였다. 



아름다운 소설을 읽었다. 나는 이런 이야기들에 늘 감동한다. '곰스크로 가는 기차'가 떠올랐다. 내용은 전혀 다르지만, 책에 쓰여지지 않은 이야기들, 주인공의 선택과, 선택에 필연적으로 따르는 포기, 혹은 선택하지 않은 것들이 책에 쓰여진 것만큼이나 선연하게 다가와서 종이에 쓰여진 것보다 더 강하게 가슴을 친다. 


단편도 아니고, 장편도 아닌, 노벨라, 중편 소설이다. 1930년대 초반, 히틀러가 태동하기 직전에 인생의 한 사람을 만난 소년의 이야기이다. 역사책을 이미 읽어버린 우리는 유대인이었던 소년과 유명한 독일 귀족가 아들의 우정의 결말을 알 것 같다. 이 시기의 이야기들은 많이 읽은 것 같지만, 근래 읽었던 'Hhhh'와 이 책 '동급생'이 대단히 인상적이다.


책의 첫 페이지를 읽으면서부터 한숨이 나기 시작했다. 동급생이었던 두 소년이 좋아했던 독일 고전 문학의 한 장면 같다. 아름다운 문장들과 중편의 속도감을 만끽할 수 있다.


책의 여운이 길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니, 오랜만에 소설의 아름다움, 소설이 마음에 해줄 수 있는 것들이 얼마나 큰가 생각하게 된다. 


본문부터 읽기 시작하고, 서문 두 개와 옮긴이의 말은 나중에 읽는 것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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