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donga.com/docs/magazine/weekly/2006/07/14/200607140500039/image/200607140500039_1.jpg) |
1~8.다니엘 헤인시우스의 연작 판화 ‘사랑의 엠블럼(1608)’
바다에 배가 한 척 떠 있다. 바람이 거센 듯 돛이 한껏 부풀어 있고, 파도도 제법 거칠어 배가 기우뚱 한쪽으로 기울어진다(그림 1). 선미에 앉은 소년은 어깨에 날개를 달고 있는 것으로 보아 큐피드로 보인다. 그의 눈앞에서 또 다른 큐피드 둘이 밧줄을 타고 돛대로 올라간다. 뒤쪽으로 항구의 풍경이 보이고, 바다 위로 드리워진 검푸른 하늘엔 재미있게도 별 대신에 사람의 눈들이 반짝이고 있다. 무슨 뜻일까?
그림은 어느 무명의 수집가가 1620년에 만든 그림 앨범에서 나온 것이다. 그림의 작자는 다니엘 헤인시우스. 원작은 흑백의 동판화인데, 나중에 수집가가 채색을 하고 금박을 입혔다. 헤인시우스의 원작에는 그림을 두른 테두리 안에 ‘어둠 속의 빛’이라는 모토와 더불어 이런 문장이 적혀 있다. “왜 그대는 저 어두운 망망대해에서 카스토르를 찾느뇨? 사랑에서는 하늘의 별이 아니라 눈이 길잡이라오.”
원작에는 그림 아래로 시 텍스트가 붙어 있다. “밤이 나의 사면에서 하늘을 감추네. 이 위험 속에서 내가 큰곰자리에 의지할 수 없다면, 나는 그대의 눈이 내게 보여주는 방향을 취하려네.” 이제 저 그림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을 게다. 저것은 한마디로 사랑의 항해. 거기서 나를 이끌어주는 것은 쌍둥이자리의 알파성(카스토르)도, 북두칠성(큰곰자리)도 아니고, 나를 바라보는 연인의 눈이다.
상징적 그림 ‘엠블럼’
대개 이미지는 그 자체로 이해가 되기에 굳이 설명이 필요하지 않지만, 이 그림은 뜻을 따로 풀어줘야 한다. 이렇게 눈에 보이는 이미지 아래로 보이지 않는 의미를 담은 그림을 ‘엠블럼’이라 부른다. 이 낱말의 어원인 그리스어 ‘엠블레마’는 원래 모자이크 속의 타일처럼 ‘삽입된 조각’을 의미했는데, 나중에 의미의 변화를 겪어 상징적 그림을 가리키게 된 것이다.
엠블럼은 크게 세 가지 요소로 이루어진다. 먼저 그림의 제목 노릇을 하는 표제(inscriptio). 이를 ‘모토’ 혹은 ‘레마’라고도 부른다. 둘째는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도상(pictura). 하지만 이 그림은 그냥 봐서는 의미를 알 수 없기에, 그 뜻을 풀어줄 해제(subscriptio)가 필요하다. 해제는 아름다운 운문의 형식으로 되어 있고, 내용적으로는 신화나 성서, 그밖의 문학 고전을 바탕에 깔고 있다.
엠블럼은 르네상스 말기에 시작해 특히 바로크 시대에 크게 유행했다. 17세기는 합리주의 시대였다. 데카르트에 따르면 모든 관념은 명석 판명해야 하고, 이 원칙에 따라 고전주의 비평가들은 그림에 단 하나의 분명한 의미를 가질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엠블럼은 바로 그 합리주의와 고전주의에 정면으로 반기를 든다. 발터 벤야민이 엠블럼에 주목한 것은 이 때문이었을 것이다. 모더니즘은 고전주의 미학의 해체에서 시작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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