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 - 제10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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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저히 믿을 수 없는 광경이 눈앞에 펼쳐진 것이다. 그것은 자신이 살던 집보다 족히 서너 배는 됨직한 거대한 물고기였다. 물고기는 바다 한복판에서 불쑥 솟아올라 등에서 힘차게 물을 뿜어올렸다. 주변에 있던 어부들도 물고기를 보고 놀라 탄성을 질렀다. 금복은 믿을 수 없는 거대한 생명체의 출현에 압도되어 그저 입을 딱 벌린 채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물고기는 거대한 꼬리로 철썩 바닷물을 한 번 내리치고는 곧 물 속으로 사라졌다. 50pg

이 이야기는 금복의 이야기이다. 그녀(그)는 여자로 태어나 남자로 죽었다. 춘희라는 기골장대한 딸을 낳았고, 소싯적부터 남자를 환장시키는 페로몬을 뿜으며 여러 남자를, 그리고 여자 하나를 안았다.
그녀.로 태어났지만, 베짱과 포부하나만은 그 어느 불알달린 그. 못지않았으니, 사람들은 그녀를 여장부.라고 불렀다. 그녀의 큰 그릇은 그녀의 직관과 어우러져, 무슨일을 하든지간에 악착같고 무모했고, 그 악착같고 무모한 일이 성공해 '금복'을 만들었다.

이야기는 교도소에서 갓출감한 '붉은 벽돌의 여왕' 이자 금복의 딸. 춘희(春姬)에게서 시작해서, 금복이 태어나기 훨씬 전 어느 국밥집 노파의 이야기. 이 모든 이야기- 작가의 말대로 이 이야기를 '거대한 복수극' 이라고 할때- 의 시발점인 이야기로, 그리고 절대 분간할 수 없는 쌍둥이 자매와 코끼리 점보의 이야기로, 통뼈이자 괴력의 소유자인 걱정의 이야기와 '희대의 사기꾼이자 악명 높은 밀수꾼에 부둣가 도시에서 상대가 없는 칼잡이인 동시에 호가 난 난봉꾼이며 모든 부둣가 창녀들의 기둥서방에 염량 빠른 거간꾼인' 칼자국의 이야기로, 그리고 文이 있고 약장수가 있다. '평대'라는 새로이 막 새로이 깨어나는 마을이 있고, 그 시절, 한국전이 있었고, 계속 그 자리에 있고 싶어한 장군님이 있었고, 검정색 양복을 입고 다니는 그 부하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이야기와 사람들 속에 '금복'이 있다.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금복'은 결코 예사롭지 않지만, 그녀 주변의 인물들도 하나같이 괴기포스를 지니고 있는데, 아무리 이야기라지만, 기대치 않았던 이건 뭔가, 마르께스의 마술적 리얼리즘? 1톤에 달하는 밥벌레가 묘사되고, 결코 죽지 않는 양치기 개. 죽었던 인물들이 끊임없이 등장해 이야기를 주체적으로 진행시킨다.

적지 않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끊임없이 다가온다. 이 파도가 물러나고 나면, 다음 파도가 오고, 그 다음파도, 그 다음파도가 오듯이.
이야기를 해주는 화자에 의해 진행되는 소설덕분인가. 처음에는 제법 진지하게 읽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 너무 늦게) 이 모든 것이 지독하고 거대한 농담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 소설을 좋아하지 않는 나이지만, 이 책이 재미있다.는데 의의를 달기는 힘들다.



개망초.
그것은 춘희가 금복의 손을 잡고 평대에 처음 도착했을 때 역 주변에 무성하게 피어 있던, 슬픈 듯 날렵하고, 처연한 듯 소박한 꽃의 이름이었다. 이후, 그 꽃은 가는 곳마다 그녀의 뒤를 따라다녀 훗날 그녀가 머물 벽돌공장의 마당 한쪽에도,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혹독한 시간을 보낼 교도소 담장 밑에도, 그녀가 공장으로 돌아오는 기찻길 옆에도 어김없이 피어 있을 참이었다. 150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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