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 우리 영혼은
켄트 하루프 지음, 김재성 옮김 / 뮤진트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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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나를 선택했는지 궁금했어요. 서로 많이 알지도 못하는데요." 


사랑을 시작하는 사람들의 질문. 각자의 오랜 인생 파트너를 떠나 보내고, 함께 밤을 보내기로 한 남자와 여자. 

한 침대에 누워 이야기를 하고, 이야기를 듣는 것에서 시작한다. 


살면서 이런 사랑의 시작을 한번도 해보지 않았다는 것이 더 놀라울 정도로 그들은 그렇게 그녀의 침대에서 '밤에' 사랑을 시작한다. 사랑이었을까, 호기심이었을까, 밑져야 본전이었을까. 잃을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그들의 그것은 사랑 비슷한 것이긴 했을 것이다. 아니, 사랑의 한 모습이었겠지. 백만명의 사람이 있으면 백만가지의 사랑이 있을테니깐. 나와 내가 사랑하는 이가 하는 사랑 또한 같은 사랑이 아닐테니. 


거절 당할까 두려워하지만, 괜찮다고 생각한다. 작은 마을에서 사람들이 수근거릴 것이 두렵다고 생각하지만, 이제 더 이상 사람들 평판 따위 신경쓰지 않겠다고 생각한다. 신경쓰지 않는 것이 아니라, 신경쓰지 않겠다.고 생각하는 것이 안쓰러운 부분. 내 보기에 남자의 시작은 가벼웠고, 여자의 끝은 용기 없음이었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선택하는데, 그 강요받은 선택이 아들놈새끼한테 왔다는 것이 화나고 답답한 부분. 


"토요일 정오 직전, 그는 그녀의 집 앞에 왔다. 그녀는 등이 파인 노란 여름 원피스를, 그는 빨강과 초록이 섞인 웨스턴 풍의 반소매 셔츠를 입었다." 


이 장면이 계속 머릿속에 맴돈다. 그들은 남들의 평판에 신경쓰지 않겠다.고 생각하고, 오기 부리듯이 차려입고 가장 사람 많을 시간을 골라 마을의 카페 정중앙 자리에 앉는다. 예쁜 드레스들을 많이 가지고 있었고, 그 드레스들을 입은 모습을 마을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게 숨어 다른 도시로 음악회를 보러 다녔던 그녀는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등이 파인 노란 여름 원피스를 입고, 자신감도 함께 입어지기를 바라며, 자신이 선택한 이와 함께 마을로 나선다. 


둘 다 사별하고, 만나는데, 뭐가 문젠데..하는 생각이 계속 들어서 답답했지만, 완벽한 사랑이 어디 있으랴. 아니, 흠 있는 사랑조차 완벽할지도 모르겠다. 


"아주 좋아요. 그녀가 말했다. 기대했던 것보다 더요. 좀 신기해요. 여기 깃든 우정이 좋아요. 함께 하는 시간이 좋고요. 밤의 어둠 속에서 이렇게 함께 있는 것. 이야기를 나누는 것. 잠이 깼을 때 당신이 내 옆에서 숨쉬는 소리를 듣는 것." 


애인과 함께 하는 밤은 나에게 '어둠'이다. 그 외의 나의 모든 밤은 형광등 불빛이다. 혹은 스텐드의 노란 불빛(이었는데, 전구 나가고 새로 못 사고 있어). 나는 24시간 불을 켜 놓고 사는 사람이다. 아주 가끔 불을 끈다. 그 때의 나는 무척 지친 상태이다. 하지만 애인과 함께 하는 밤은 나에게 편안하고 안심되는 '어둠'이다. 어느 날인가, 늦은 오후, 커튼까지 친 방안은 무척 깜깜했다. 집에 돌아가야 하는 나는 문득 무서워졌다. 애인이 이 큰 집에 혼자 깜깜한 방 안에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 두려운 마음이 들었고, '괜찮아?' 물었다. 내가 24시간 불을 켜 놓고 산다면, 이 사람은 전기가 없어도 살 수 있을 것 같이 불을 끄고 사는 사람인데, 당연히 '괜찮다' 고 한다. '그래, 그럼 됐어' 라고 말하지만, 애인과 함께 있을 때만 느끼는 편안한 어둠, 밤을 절절하게 깨닫는다. 형광등 불빛 아래 홀로 고양이 둘과 있는 나의 밤과 애인과 함께 하는 깜깜한 밤은 다른 밤 같다. 수면장애가 일상인 나의 영혼도 그 밤들만큼은 깊은 수면을 취한다. 

 

"아직도 이해를 못하네요. 나는 당신처럼 혼자 앉아 생각에 잠기고 문제를 정리하고 그러기가 싫어요. 당신이 와주기를. 나와 이야기 해주기를 원해요." 


이건 꼭 나같네. 

하지만 절대 원하지 않는 결말. 식어버린 사랑. 우정이나 의리나 동료애나 뭐라도, 좋은 그 무엇으로도 변하지 못하고 식어서 재가 되어 흩어지는 사랑. 원하지 않는다. 절대. 네버. 


차츰 루이스가 오지 않는 날이 생겼고 애디 또한 루이스와 함께 누워 있기보다는 혼자서 책을 보고 싶은 밤이 늘었다. 그녀는 옷을 벗고 그를 기다리기를 멈췄다. 그가 오는 날이면 아직도 손을 잡긴 했지만 그것은 다른 무엇보다 습관과 쓸쓸함, 그리고 예감된 외로움과 낙심 때문이었다. 마치 다가올 무엇에 대비하여 이런 순간들을 비축해두려 하는 것 같았다. 그들은 깨어 말없이 함께 누워 잇을 뿐 이젠 사랑을 나누지도 않았다. 


"왜 나를 선택했는지 궁금했어요. 서로 많이 알지도 못하는데요." 


"당신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친절한 사람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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