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월의 독서

 

박 준

 

그림자가

먼저 달려드는

산자락 아래 집에는

 

대낮에도

불을 끄지 못하는

여자가 살고

 

여자의 눈 밑에 난

작고 새카만 점에서

나도 한 일 년은 살았다

 

여럿이 같이 앉아

울 수도 있을

너른 마당이 있던 집

 

나는 그곳에서

유월이 오도록

꽃잎 같은 책장만 넘겼다

 

침략과 주름과 유목과 노을의

페이지마다 침을 묻혔다

 

저녁이 되면

그 집의 불빛은

여자의 눈 밑 점처럼 돋아나고

 

새로 자란 명아주 잎들 위로

웃비가 내리다 가기도 했다

 

먼 능선 위를 나는 새들도

제 눈 속 가득 찬 물기들을

그 빛을 보며 말려갔겠다

 

책장을 덮어도

눈이 자꾸 부시던

유월이었다

 

 

 

 

 

 

 

 

 

박준 시인의 '유월의 독서'를 유월이 가기 전에 읽어줘야지. 했는데,

2016년의 반과 함께 유월이 갔다.

 

나는 이 곳에서 '유월이 오도록 꽃잎같은 책장만 넘겼'

'책장을 덮어도 눈이 자꾸 부시던 유월'은 갔다

 

더운데 뭐, 할 수 없지. 하지만, 더우면 움직이기 힘들다. 7월을 잘 보내면, 8월이다. 8월을 잘 보내면,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인 가을. 7월을 잘 보내야 한다. 새로 시작하기 좋은 7월의 첫 날. 잠 못 자고 있지만, 6월 마지막 날 삼시 세끼는 잘 먹었다. 7월 첫 날의 목표는 삼시 세끼와 밤에 잠 세시간 이상 자기.

 

작년부터 올 상반기까지, 아빠, 엄마, 동생, 나.. 우리 가족 모두 각자가 많이 힘들었다. 나는 이전과 똑같이 별볼일 없지만,  다른 가족들, 특히나 아빠마저 힘들어하니, 불안한 마음이 생겼더랬다. 6월에 많은 것이 풀렸다. 아빠는 궤도에 올랐고, 아빠의 도움으로 엄마의 일이 풀렸고, 동생도 궤도에 올랐다. 나만 여전히 레일 밖에서 소풍 중이다. 그래도, 밝아진 가족들의 목소리를 들으니 마음이 편해진다. 마냥 방관자처럼 구경만 할 수 없는 것이, 혼자만의 소풍이 아니라 파트너가 생겼고, 이제 함께인 생활을 계획해 나가야 한다.

 

회사 다닐때는 어땠더라. 가게 할 때는 어땠더라. 가게 할 때는 일을 너무 많이 해서, 그러니깐 하루도 못 쉬고, 아침부터 밤 늦게까지 일 하는걸 4년여를 했는데, 그렇게 벌어서 임대료로 고이 바쳤던 아름다운 기억이 있다. 다시 일을 시작하기가 겁이 난다. 매일 매일 일한다는 것을 생각만해도 심장이 쫄깃쫄깃한 거. 내가 좋아하는 일을 했으니, 즐겁게 할 수도 있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가능한 적게 일하면서 적당히 벌고, 다만, 내가 가장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을 가정해서 벌어야 한다.

현재의 나는 집안일도 안 하고, 돈도 안 벌고. 책도 안 읽고, 놀지도 않고,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것도 아니고, 잠을 많이 자는 것도 아닌.. 도대체 뭐 하는 인간인가 싶은 그런 것이다.

 

대학 졸업하기 전부터 취업이 되어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살았는데, 돈을 많이 벌 때도 있었고, 적게 벌 때도 있었다. 잘 찾아봐야지. 하지만, 여름은 더우니깐, 내가 좋아하는 것만 하면서 보낼 것이다. 책을 많이 읽고, 짐을 많이 정리해서 비우고, 꽃을 더 많이 잡으면서.

 

유월까지의 독서는 두서 없었지만, 칠월의 독서는 좀 더 집중하며 빠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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