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정판 서문
참회와 사랑의 고백

건축은 시대의 모습을 담는 그릇이요, 깨달음과 생활이 만든 환경이며, 인간의 정신이 대지 위에 새겨놓은 구축물이다. 젊은 날, 이런 생각으로 한국의 역사적 건축을 바라보며 [한국건축의 재발견]이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3권의 책을 낸 지 벌서 10년이 가까워온다. 그 사이에 많은 분들이 나의 책을 읽었고 결점들을 지적하곤 했다. 내용상 오류도 많았고, 편집이나 책의 체제가 불비한 점도 많았다.
  그동안 너무나 많이 바뀌었고 달라졌다 .이 책은 월간 [이상건축]에 3년간 연재된 내용을 정리하여 출판한 것인데, 이 잡지는 누적된 경영상의 압박을 견디지 못해 건축계에서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건축이론과 비평을 무게 있게 다루었던, 보는 잡지가 아니라 유일하게 '읽는 잡지'가 폐간되었다는 아쉬움은 너무 크다. 뿐만 아니라, [이상건축]에서 발간했던 [한국건축의 재발견]시리즈도 절판돼, 서점에서 찾아볼 수 없어 원성도 꽤 일었다.
  이 책에서 다루었던 옛 건축물들도 그 10년 동안에 너무 많이, 너무 자주 변해버렸다. 생명공학을 전공하는 한 친구는 1-2년을 주기로 새로운 이론과 분야가 출현해 그를 따라가기도 벅차다며, 변하지 않는 과거의 건축을 다루는 내 전공을 무척 부러워하곤 했다. "지나간 역사가 어디 변하랴?" 하여 한번 공부로 평생을 우려먹을 수 있지 않느냐는 야유 섞인 부러움이었다. 그러나 수많은 사찰과 건축문화재들이 중창불사라는 이름으로, 또는 문화재 복원이라는 명분으로 엉뚱하게 변해버린 새 건축 환경은 내 책의 내용을 틀린 것으로 바꾸어버렸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변한 것은 세월이다. 이 책의 내용을 쓰던 시절에는 '신진.소장'학자라는 타이틀이 익숙했지만, 이제는 '중진'이 되었고 곧 '원로'가 될 것이다. 강력한 이론과 개념에서 출발한 건축만이 좋은 건축, 의미있는 작업이라고 믿었던 시절이었다. 물론 아직도 혁명적 이론과 개념의 가치는 유효하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주어진 조건들을 충실히 하나씩 풀어가는 성실함, 작은 성취에도 만족하고 즐거워하는 건강함, 일상적 필요에 따라 만들어지는 실용성, 무엇보다도 평범함 속에서 발견되는 아름다운 깨달음들. 대부분의 건축들이 가지고 있는 이 작고 소중한 가치들을 통해 새로운 건축의 모습을 엿보기도 한다.

 이런 저런 필요에 의해 새롭게 개정판을 펴내게 되었다. 펴집을 바꾸고, 내용도 현재에 맞추어 손을 보았다. 책의 제목도 [김봉렬의 한국건축 이야기]라는 다소 낯간지러운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건축적 사고는 10년 전, 초판이 출간될 당시에 맞추어져 있다. 오히려 미진한 점을 더 보강해 당시의 생각을 부각시키려고 노력했다. 이 책은 내 건축 여정의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여정을 위해 정리해야 할 기행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제까지 단거리 경주를 하듯이 건축과 역사를 대해왔는지 모른다. 오로지 결승점을 향해, 무엇인가 이루어야 한다는 목표를 향해 질주하듯 공부를 했고 생각을 했다. 미처 소화되지도 못한 생각들을 뒤로한 채, 글을 쓰고 책을 내기에 바빴다. 그래서 어느 정도 명성도 얻고, 사회적 지위도 얻었다. 이력서의 연구결과물 난을 채울 수 잇는 묵직한 여러 줄의 경력도 얻었다. 모두가 눈에 보이는 목표들이었다.
  그러나 나의 여정이 경기가 아니라 건강과 사색을 위한 산책이라면, 연구의 방법도 생각의 순서도 달라질 것이다. 두리번거리며 가끔 지나온 길을 뒤돌아보기도 하고, 다른 경주 코스를 어슬렁거리기도 하고, 때로는 질주하고 때로는 휴식하며, 건축과 역사라는 거대한 숲을 즐길 것이다. 심지어 한 발로 뛰어도 보고, 멀리 뛰어도 보고, 좁게 뛰어도 보고, 제자리 뛰기도 할 것이다. 그러면서 보이지 않았던 것, 보지 않으려 했던 많은 것들을 새롭게 보는 재미에 푹 빠지고 싶다. 그러면서 보여지는 것, 깨달아지는 것들만 정리해도 의미 있는 성과들이 쏟아지기를 기대하는 것 역시 또 다른 욕심일까?

(중략)

"세상의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능력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쑥스럽지만 새삼스러운 깨달음이다. 건축에 대한 사랑, 역사에 대한 사랑, 이 땅에 대한 사랑, 그리고 이 세상과 사람들에 대한 사랑.

2006년 3월, 서리풀 마을에 떠 있는 13층 집에서
김봉렬


초판 서문

과거의 역사, 특히 우리와 직결되는 한국의 문화를 보는 눈은 두 가지 극단적인 편견의 함정을 조심해야 한다. 하나는 원초적인 문화의 산물로 비하하는 태도, 다른 하나는 근거 없는 칭송과 조건반사적인 감탄의 분위기. 근대화 시기에는 너무 폄하해서 문제가 됐지만, 현재는 오히려 맹목적인 애정이 문제다. 서구의 모든 한계를 한국문화가 극복시켜줄 것같이 맹신하거나, 혹은 현재의 문제를 해결할 열쇠가 과거에 있는 것처럼 신화화하는 풍조가 조성되고 있다.
  과거의 한국건축을 마법과 같은 신비주의의 산물로 여기거나 박물관의 유물과 같이 동결된 문화유산으로 취급하는 한, 한국건축은 낭만적 회고나 강압적 애정의 대상은 될지언정 하나의 건축적 실체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부풀려진 신화도 아니요, 박제화된 교과서도 아니다. 무엇이 있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무엇으로 볼 것인가의 해석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 해석은 사실적인 감동에 뿌리를 두어야 한다. 따라서 현장을 답사하고 조사하고 탐구하는 것에서부터 글을 시작했다. 역사적 건축의 현장은 늘 폐허였다. 이제는 사라져간 형태와 쓰임새, 소멸되고 만 기술과 재료들, 그리고 끊어져버린 건축적 생각들, 뿐만 아니라 해가 다르게 건물들은 사라지고 변형되고 파괴되어간다. 그러나 폐허는 온갖 껍데기들이 소거되고 본질의 속살을 드러내는 시작점이다. 정교한 상상력만 있다면 건축의 본질을 향해 탐구하기에 더없이 좋은 현장이다.
  건축을 통해서 역사를 읽고, 인간을 읽고 싶었다. 거꾸로 역사를 통해서 건축의 본질을 깨닫고 그것을 만든 사람들의 생각을 이해하고 싶었다. 이 책에 실린 글을 쓰면서 간절히 희구했던 목표들이다.
  탐구를 계속하면서 몇 가지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과거의 건축을 구성했던 생각과 과정이 현재와 그다지 다르지 않다는 사실, 지식과 기술은 축적되지만 깨달음의 크기와 폭은 시간과는 무관하다는 점, 국적과는 상관없이 건축이 갖는 보편적인 가치와 본질은 결국 하나라는 사실이다. 그 깨달음을 전하기 위해 현상의 묘사보다는 설화의 삽입과 지엽적 사실의 확대 해석, 추론과 가설이 난무했는지도 모르겠다. 독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기 위함이며, 그럼으로써 추론적인 이론들을 도출하기 위함이다. 객관적이라는 허울 아래 현재적 필요가 없는 과거의 탐구가 지적인 유희에 흐르기 쉽듯이, 현실적이라는 이유만으로 역사와 이론에 뿌리를 두지 못한 실천이란 우연에 불과하다.

 

 이 책은 월간 [이상건축]에 1995년 11월부터 연재해온 내용을 다시 추린 것이다. 26회의 계획으로 1997년 12월까지 실린 내용이 예상보다 방대해져서 총 3권의 책으로 묶을 수밖에 없었다. 첫째 권은 비교적 역사적 관점이 부각된 내용을 추렸다. 그렇다고 모든 시대를 다루면서 시대적 변천과정을 서술한 연대기적 내용은 아니다. 오히려 특정 시대의 특정한 건축이 어떻게 탄생하는가의 공시적 내용들이 대부분이다. 둘째 권에서는 다양한 용도와 목적의 건축들 속에 담겨 있는 생활과 생각들, 그리고 여러 가지 형태의 건축적 아름다움을 읽고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셋째 권은 주로 이론적인 내용들을 다루었다. 터잡기부터 세부기법까지, 그리고 한국건축의 집합적 성격, 불교신앙과 성리학적 정신이 갖는 건축이론의 상이점들이다. 첫째, 둘째 권보다는 약간 더 전문적인 담론의 세계를 맛볼 수 있다.
  연재가 진행되는 도중에 소중한 분들로부터 많은 찬사와 충고를 받았다. 글이 너무 어렵다, 건축학자가 아닌 건축가나 일반 대중이 보기에는 너무 학술적이고 딱딱하다, 흔한 답사기같이 재미있게 쓸 수는 없는가... 아니다, 글들이 너무 대중적이다. 이제 학자의 길을 폭하고 저널리스트로 나서기를 작정했는가? 두 극단의 반응들이 들려왔다. 도대체 이 책의 성격은 무엇인가. 일반인을 위한 건축답사기인가, 아니면 건축인들을 위한 학술서적인가. 집필의 동기는 건축인은 물론 일반인들에게도 한국건축의 의미와 가치를 생각해보게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이도 저도 아닌, 혹은 모두를 포함한 수준이 된 감도 없지 않다. 우리 문화와 건축에 애정을 가진 분들에게 이 책은 쉬운 책일 것이다. 반면 보물창고의 문턱 넘기를 주저하는 분들에게는 어려운 책일 것이다.

많은 분들의 도움과 관심이 있었다. 밀실에서 혼자만의 작업을 통해 나온 것이 아니라, 집단적인 성원의 결과라는 점에서 남다른 기쁨을 느낀다.

(후략)

1999년 2월, 눈 덮인 의릉을 바라보면서
김봉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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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6-04-15 09: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껏 빠져들어가 보십시오~~~ ^^

하이드 2006-04-15 0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첫장 시작했는데, 그닥 만만치 않네요.

Mephistopheles 2006-04-15 1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왕이면..^^ 시간나실때 책속의 건축물을 직접 답사 가시면
감회가 남다르실 껍니다..^^

하이드 2006-04-15 1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넵. 열심히 하겠습니다. 불끈